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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테나 검술
23.
“자세는 모두 외우셨습니까?”
“네.”
“그러면 시간 날 때마다 25가지 자세를 연습하십시오. 자세가 완벽히 몸에 배어야 스킬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기쁨에 힘든 줄도 모르고 칼을 휘두르자 4시간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수돗가로 이동해 손과 얼굴만 씻고 니콜라스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아침은 왕후장상같이 먹고, 점심은 평민같이 먹고, 저녁은 거지같이 먹으라고 고기와 채소, 밀 빵으로 배가 터지게 먹었다.
아침까지 음식 종류가 적으면 다니엘에게 혼난다고 레이첼이 애걸복걸해 가짓수도 열 가지나 돼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한식이 아닌 기름이 많은 서양식이라 그런지 너무 느끼해서 쓰디쓴 녹차를 석 잔이나 마셔야 니글거리는 속을 달랠 수 있었다.
“그림에 번호를 매겨놨습니다. 번호대로 따라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정말 아는 겁니까?”
“그게...”
“이게 첫 번째 그림입니다. 땅을 이런 모양으로 판 다음 흙은 버리지 말고 주변 터를 다지는데 씁니다. 그런 다음 벽돌을 이렇게 쌓고...
화장실을 만드는 방법을 단계별로 다섯 장 그림으로 그려 다니엘에게 줬다. 그러나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림이 문제가 아니라 접해보지 못한 방식이라 그런 것으로 다섯 장 그림을 일일이 짚어가며 설명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물어보세요. 물어보는 건 잘못이 아닙니다.”
“네, 영주님.”
“대장간에 사람은 보냈습니까?”
“네, 아침 일찍 건장한 남자 농노 100명을 데려가 래틀에게 직접 30명을 고르게 했습니다.”
“아주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아주 잘했다는 말에 다니엘 집사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다. 전임 영주 대리 조르주 준 남작이 있을 땐 일을 잘해도 잘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평민과 농노를 발가락에 낀 때보다 못하게 여기는 조르주 준 남작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사람들 앞에서 다니엘과 조나단을 망신 줬다.
이런 버릇이 그대로 남아 내가 뭘 물어보기만 해도 얼굴이 파랗게 질려 겁먹은 아이의 눈으로 바라봤다.
176cm의 호리호리한 몸매의 다니엘은 조르주 준 남작에게 아주 호되게 시달려 실제 나이보다 많은 50대 중반으로 보였다.
얼굴에 수염이 밤송이처럼 나 있는 185cm의 거구 경비대장 조나단도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4~5살은 더 들어 보였다.
관리들과 경비대 조장들도 마찬가지로 3~4살은 더 들어 보여 조르주 준 남작의 잔소리가 얼마나 심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영주님, 어젯밤엔 잘 주무셨습니까?”
“레이첼이 밤새 잘 챙겨줘 아주 잘 잤습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오늘 밤은 다른 시녀를 준비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당분간 레이첼과 지내겠습니다.”
“새로 뽑은 시녀 23명 모두 영주님을 위해 농노 중에서 가장 예쁜 아이들로 뽑은 겁니다. 마음껏 데리고 노셔도 됩니다.”
“집사의 성의는 고맙지만, 나는 매일 밤 여자를 바꿔 자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한 명을 충분히 파악한 다음 다른 여자로 넘어가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니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시녀들 일은 시녀들이 알아서 하게 하세요. 그게 효율적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시녀장에게 권한을 넘겨야 합니다. 오늘 중으로 레이첼에게 권한을 넘기세요.”
“권한이라면 어디까지를 말씀하시는 건지...”
“시녀들이 하는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넘기면 됩니다. 다니엘 집사는 오늘부터 공사를 감독해야 하고, 내가 수시로 내리는 많은 업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믿고 맡길 사람이 집사밖에 없는데, 시녀들 일에 시간을 뺏길 순 없습니다.”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도 모르고... 영주님께서 믿어주신 은혜 죽을 때까지 충성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영주님!!”
- 집사 다니엘이 모모님의 진실한 마음에 크게 감명받아 충성심이 50 올라 88이 됐습니다. 축하합니다.
이름 : 다니엘
나이 : 48살
종족 : NPC
계급 : 평민
직책 : 레오 영주성 집사
특기 : 영지와 영주성 관리
충성심 : 88
성격 : 침착하고 성실함
근력 2 순발력 1 체력 2 지력3
믿고 맡긴다는 말 한마디에 다니엘 집사의 충성심이 50이나 올랐다. 레이첼에게 시녀들과 관련된 권한을 넘겨주기 위해 한 말이었지 진심은 아니었다.
다니엘과 같이 한지 얼마나 됐다고 믿고 맡기겠는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말이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낳자 기쁨보다는 미안함이 컸다.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난 건 내 화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조르주 준 남작이 다니엘 집사를 죽도록 괴롭혀 작은 칭찬에도 감격해서 그런 것이었다.
개똥도 필요한 곳이 있는지 조르주 준 남작이 도움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놈이 끼친 패악으로 생겨난 일이라 기분은 별로였다.
“영주님께 충성을! 명령하신 대로 16~20세 사이의 청년들을 연병장에 모두 집합시켰습니다.”
“몇 명이나 됩니까?”
“153명입니다.”
생각보다 인원이 적었다. 그러나 남아선호사상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있는 것이지 여아선호사상이 있었다면 절반도 안 됐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농촌사회는 노동력이 떨어지는 여아보다는 남아를 선호했다. 하지만 여자의 노동력이 남자보다 못하지 않았다.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가사 노동과 잡일까지 모두 합치면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은 일을 했다.
하지만 농기계가 없는 The Age of Hero의 농촌에선 힘쓰는 일을 남자가 모두 도맡아 해야 해 남아를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조나단을 따라 연병장에 도착하자 다 떨어진 가죽과 헝겊쪼가리로 몸을 가린 지저분한 사내놈들이 잔뜩 서 있었다.
모두 겁에 질린 표정으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차려자세로 서 있었다. 그래도 개중에는 호기심이 두려움을 뛰어넘은 놈도 있어 정신없이 눈알을 굴려 좌우를 두리번대고 있었다.
“모두 차렷. 영주님께 대하여 경례!”
“영주님께 충성을!”
“오늘 이렇게 모이라고 한 것은 너희의 체력과 자질을 시험한 후 경비병을 뽑기 위해서다. 경비병이 되고 싶은가?”
“네에~”
“그러면 시험에 통과해라. 100명이 통과하면 100명을 붙일 것이고, 153명이 통과하면 153명 전원이 경비병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정한 시험에 통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모두 집에 돌아가야 할 것이다.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오늘 시험에서 떨어진 놈에겐 죽을 때까지 다시는 기회가 없다. 죽을힘을 다해 붙어라. 알겠나?”
“네에~”
내가 오기 전 조나단과 조장들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았는지 153명 전원이 목이 터져라 대답했다.
그러나 이들은 조나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경비병이 되고 싶어 목이 터져라 외친 것이었다.
그만큼 농노에게 경비병은 매력적인 직업으로 출세할 기회를 잡겠다는 다짐이 눈에 가득했다.
“조나단 대장.”
“네, 영주님.”
“지금부터 영주성 성벽 외곽을 200바퀴를 돌게 하세요. 가장 먼저 들어온 농노부터 100명을 끊으면 됩니다. 그리고 걷지 않고 끝까지 달리는 농노도 모두 합격시키세요.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까?”
“끈기를 보시려는 거 아닙니까?”
“맞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끝까지 지켜봐야 합니다. 체력이 떨어지는 건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끈기는 타고나는 것으로 돈 주고도 살 수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아는 사람이라고 봐주면 안 됩니다. 비리가 적발되면 더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을 겁니다.”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좋습니다. 믿겠습니다. 시작하세요.”
“영주님께 충성을!”
군례를 올린 조나단이 농노들에게 돌아가자 대장장이 래틀을 보러 대장간으로 이동했다.
영주성이 워낙 좁아 몇 걸음 걷지 않고도 대장간에 도착했다. 30명이 추가된 대장간은 망치질 소리와 고함으로 정신이 없었다.
땅땅땅땅
“이런 병신새끼. 누가 그걸 이곳에 갖다 놓으라고 했어? 정신 안 차려. 죽고 싶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거 누가 만졌어? 어떤 놈이 만졌어?”
“저.접니다.”
퍽
“컥.”
“이 새끼야. 이게 뭔지나 알고 만진 거야? 이게 얼마나 중요한 도구인데 감히 너 따위가 만져. 너는 10년이 지나도 만질 수 없는 도구야.”
“죄.죄송합니다.”
“내가 말했지. 내 허락 없이 공구 만지지 말라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못 들었어?”
“드.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만졌어? 왜 만졌어? 죽고 싶어서 만진 거야?”
“자.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신입들을 6명씩 맡은 래틀의 제자들이 연신 고함지르며 신입들을 호되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신입들을 길이들이기 위해 그런 것으로 현대 사회도 강도만 다를 뿐 새 직장에 들어가면 텃세를 부리며 이것저것 시키고 트집을 잡는 선임들이 워낙 많아 대장간의 모습은 특별히 이상한 것도 없었다.
그러나 The Age of Hero는 폭력이 정당화된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여기저기서 주먹이 날아다녀 보기에는 좋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나 자기들만의 교육방법과 철학이 있었다. 그것을 대체해줄 확실한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간섭하는 건 상대를 무시하고 깔보는 짓에 불과했다.
눈살이 찌푸려져도 일단은 참아야 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다음 하나씩 바꿔나가야 했다. 그게 순서에 맞았다.
“영주님! 오신 것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아니야. 바쁜데 내가 괜히 들러서 방해만 한 것 같네. 미안하게 됐네.”
“아닙니다. 이런 누추한 곳을 찾아주신 것만도 평생 영광입니다. 영주님.”
“알겠네. 그만하고 일어나게.”
“감사합니다.”
“정신없겠군?”
“제대로 된 일꾼을 만들려면 몇 년은 그럴 겁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너무 심하게 두들겨 패진 말게. 한 식구인데 살살 다뤄야지.”
“알겠습니다.”
좁아터진 대장간에 들어갈 공간이 없어 밖에서 기웃대고 있자 래틀과 제자들이 알아보고 황급히 뛰어와 바닥에 엎드렸다.
영주를 볼 때마다 바닥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이 받는 처지에선 나쁠 게 없지만, 하는 처지에선 아주 죽을 맛이었다.
바닥이 깨끗하면 그나마 무릎 아픈 것으로 끝났지만, 진창에 오물까지 잔뜩 있는 날이면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 써야 했다.
농노라고 해도 기분 좋을 순 없는 일로 이런 짓을 시키며 충성을 바라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이었다.
나는 이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서 나고 자라 그런 모습에 익숙했다면 생각이 달랐겠지만, 손 올리는 것으로 상급자에 대한 예의를 끝내는 조직에 5년을 몸담고 있어서 그런 것이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앞으로 엎드려 절하는 거 금지시켜야겠어. 번거로운 것도 문제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 절한 놈 일으켜 세우는데 5~10분은 걸리니,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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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