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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맥불변(菽麥不辨)
19.
“다니엘 집사님이 식사는 용서하셔도 밤 시중까지 들지 않으면 저희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또 다니엘 집사가 시킨 일이야?”
“네.”
어제저녁 레이첼을 쫓아내며 다니엘에게 말하겠다고 해놓고 말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하린이를 만나며 접속이 늦어져 늦잠(?)을 자게 돼 말할 틈이 없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할게. 그러니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안돼요.”
“왜?”
“어제저녁 영주님이 드실 음식을 저희가 가져다 먹은 걸 알고 아침에 크게 혼났어요. 어젯밤 시중들지 않은 것도 그렇고요. 오늘 저녁도 이렇게 형편없이 차린 걸 알면 내일 아침 또 혼날 거예요. 그런데 또다시 밤 시중드는 일을 빼먹고, 집사님이 시켰다는 것까지 일러바친 걸 알면 이번에는 정말 가만있지 않을 거예요. 두고두고 저를 괴롭힐 게 확실해요.”
“다니엘이 누굴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성격이야?”
“그렇진 않지만, 저 때문에 집사님이 영주님께 혼나면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고 생각하실 수 있어서 그래요.”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하면 되지.”
“영주님은 잊어도 집사님은 오늘 일을 잊지 않으실 거예요.”
레이첼 말이 맞았다. 내가 지나가는 말로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에도 난리가 날 수 있었다.
레오 영지에서 내 말은 법으로 그 말을 성실히 따르고 이행하지 않으면 반역이었다.
중세 시대는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반역자로 찍히면 직계 가족은 물론 죄질이 심할 경우 방계까지 잡아들이는 연좌제를 시행했다.
The Age of Hero도 연좌제를 따르고 있어 내 말을 무시하다간 사돈에 팔촌까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레오 영지 서열 2위(작은 영지는 집사가 영주의 명령을 출납해 비공식적으로 서열 2위로 불림) 다니엘 집사도 다를 것이 없는 처지로 내 심기를 거슬리면 언제 목이 떨어질지 몰랐다.
이런 불안한 상황이라 내가 쓸데없는 일을 했다고 가볍게 한마디 질책해도 쫓겨날까 봐 불안해 잠을 자지 못했다.
경비대장 조나단과 조장들, 다니엘 밑에 있는 관리들도 마찬가지로 내 눈 밖에 나 쫓겨나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영지에서 쫓겨나는 건 단순히 추방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살아서 영지를 벗어나기도 어려웠고, 운 좋게 벗어나도 다른 영지에서 받아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The Age of Hero는 폐쇄적인 사회로 다른 영지에서 넘어온 사람은 일단 첩자로 의심해서 고문부터 했다.
천운으로 이런 일을 겪지 않고 다른 영지에 무사히 정착해도 다시 관리로 임명되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다.
믿을 수 없는 타지 사람을 관리에 임명하는 일이 아주 드물었고, 임명돼도 말단을 벗어나기 어려워 죽으나 사나 내게 충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만이 쥐꼬리만 한 권력을 지키며 가족을 보호하는 길로 레이첼의 말처럼 이성을 잃은 다니엘이 레이첼을 들들 볶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같이 동침했다고 하면 되잖아.”
“그것도 안 돼요.”
“왜?”
“집사님이 동침한 시녀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거예요. 그때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시녀가 있으면 전에 동침한 시녀들도 모두 불려가 다시 물어보게 될 거예요. 그러면 걸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때는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남녀의 잠자리를 왜 물어봐? 변태야?”
“영주님이 만족했는지 그걸 물어보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어요.”
섹스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자,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은밀한 모습으로 정신질환자나 포르노 배우가 아니면 타인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았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런 은밀한 모습을 다니엘 집사가 물어본다고 하자 기분이 나빴다. 다니엘 집사가 내가 시녀들과 어떻게 놀았는지 궁금해서 물어보려는 게 아니란 건 알았다.
그러나 남의 은밀한 사생활을 물어보는 건 범죄행위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개인 생활을 묻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야. 절대 묻지 못하게 할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물어보지 않아도 느낌으로 같이 잤는지 자지 않았는지 알 수 있어요. 말로만 잤다고 하면 얼마 못가 들통 날 게 확실해요. 영주님, 저와 언니들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영주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저희는 영주성에서 쫓겨날 테고, 그러면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어요. 살려주세요.”
“하아.”
“제발 은혜를 베풀어주세요.”
“알았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못해 승낙하는 척하자 레이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눈이 크고 코가 오뚝한 레이첼은 하린이보다는 미모는 조금 떨어졌지만, 170cm 큰 키에 S라인의 완벽한 글래머로 몸매는 하린이보다 훨씬 육감적이었다.
특히, 일본 포르노 배우가 입는 것 같은 짧고 확 파인 메이드 복을 입고 있어 보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댔다.
송혜교가 밭 갈고 김태희가 나물 뜯는다는 중앙아시아 어떤 나라처럼 The Age of Hero의 여성 NPC는 미녀가 넘쳐나 영주성에서 청소하고 시중드는 시녀도 모두 미녀였다.
그러나 진짜 인간이 아닌 NPC라서 그런지 호기심은 갔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우리 인생도 일장춘몽(一場春夢) 한바탕 봄꿈과 같다는 걸 생각하면 NPC라고 사랑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게임에 깊게 빠지지 않았는지 여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많은 유저가 NPC를 사랑했다.
수준급 미모에 수준급 몸매, 현실보다 더 찐한 쾌락까지 느낄 수 있자 수천만 명의 유저가 NPC에 목을 매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다.
The Age of Hero의 섹스는 실상이 아닌 허상으로 육체적 쾌락을 얻을 수 없는 상상 속의 섹스였다.
그러나 The Age of Hero에서 섹스를 경험한 많은 성인남녀는 실제 섹스를 한 것보다 더욱 짜릿한 쾌감과 전율을 느꼈고, 실제로 사정과 오르가슴을 경험하기도 했다.
게임 속에서 섹스 했는데도 육체가 그와 같은 반응을 하는 건 육체적 쾌락은 정신적 쾌락이 동반되지 않으면 생길 수 없기 때문으로 정신이 극렬한 쾌감을 맛보자 육체도 따라서 반응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유저가 현실의 섹스보다 게임 속 섹스에 더욱 깊이 빠져들며 The Age of Hero가 상용한 3년 동안 대한민국은 신생아 출생률이 30%나 줄어드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 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미국, 유럽 등도 매우 심각했고, 급속도로 유저수가 늘어나는 중국과 인도 등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오늘 밤은 제가 영주님을 모실 거예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시녀를 말씀하셔도 돼요.”
“아니야. 괜찮아.”
“정말요?”
“어.”
“그럼 준비할게요.”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았어. 끝나면 부를게.”
“네.”
다른 시녀를 부르는 건 아닌지 많이 불안했는지 레이첼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밤 시중을 누가 들든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레이첼과 함께 있는 것이 편해 괜찮다고 하자 입가에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마음은 육감적인 레이첼을 당장에라도 품고 싶었지만, 아직 NPC를 안을 준비가 안 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려고 일이 남았다고 했다.
“모모님. 레오 영지에선 모모님이 왕이고, 법이고, 신이에요. 사람들의 시선 따윈 생각할 거 없어요.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시면 돼요.”
“알았어.”
아란은 내가 남들 시선을 생각해 레이첼을 품을지 말지 고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들 시선이 아니라 내 가치관과 부합되지 않아 혼란스러워하는 것이었다.
아란의 말 속에서 슈퍼에고 컴퓨터 환인이 세상 모든 지식을 갖고 있고, 인간의 생각도 깊이 파악하고 있지만, 관찰자의 입장으로만 인간을 보고 있어 인간의 깊이 감춰진 내면까지 알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 동안 고민하다 문을 열고 집무실을 나가자 문밖에 기다리고 있던 레이첼이 욕실로 인도했다.
욕실에 들어서자 시녀 아이린과 아만다가 가슴과 음부만 가린 관능적인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영주님께 충성을! 영주님, 저희가 목욕시켜드리겠습니다.”
“알았어.”
싫다고 말하면 도망가는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듯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가슴과 음부를 가린 천이 너무 작아 간신히 젖꼭지와 갈라진 틈만 가리고 있어 눈 둘 곳이 없었다.
그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볼 만큼 얼굴이 두껍지 않아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자 반라의 아이린과 아만다가 다가와 옷을 벗겼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얼굴 몇 번 본 아이린과 아만다 앞에서 빨가벗고 있자 도저히 눈을 뜰 수 없어 눈을 감았다.
그렇다고 손으로 살포시 모아 앞을 가리는 건 더 쪽팔릴 것 같아 아무렇지 않은 척 팔을 늘어뜨린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욕조에서 따뜻한 물을 퍼온 아이린과 아만다가 조심스레 물을 끼얹고 비누 거품을 몸에 골고루 묻혔다.
아이린과 아만다의 부드러운 손이 비누 거품을 내며 가슴과 등을 문지르자 야릇한 느낌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쳤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해 엉덩이를 부드럽게 어루만진 고운 손이 허벅지를 타고 내려가자 개미 백만 마리가 다리를 물어뜯는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피가 나도록 손을 꽉 움켜쥐고 이빨이 부러지도록 깨물었지만, 개미들이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며 물어대자 떨리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The Age of Hero에서 하는 섹스에 집착하는 거구나. 이건 뭐라 표현할 수가 없네. 윽!’
발을 점령한 아이린과 아만다의 고운 손이 다시 종아리를 타고 올라와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엎드려 다리를 비비는 아이린과 아만다의 하얀 등을 짚어 허물어지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자 놀라 나를 바라봤다.
전에 있던 나이 든 시녀들에게 씻는 방법만 배운 아이린과 아만다는 아직 처녀로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몰랐다.
그래서 자신들이 실수해 내가 화를 내는 줄 알고 겁을 집어먹어 눈이 왕방울만큼 커졌다.
“여.영주님! 저.저희가 뭘 잘못했나요?”
“아니.”
“그. 그러면 어. 어디 아프세요?”
“아니야. 괜찮아. 계속해.”
“네.”
등을 짚었던 손을 떼고 허리를 쭉 펴자 놀란 토끼처럼 눈이 댕그래졌던 아이린과 아만다의 손이 다시금 활발하게 움직이며 허벅지로 안쪽을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떨리는 다리를 초인적인 힘으로 1분간 버티자 고운 손이 드디어 몸에서 떨어졌다. 한숨 돌리며 식은땀을 닦아내려는 순간 고운 손 두 쌍이 가장 예민한 부위에 닿았다.
‘윽!’
고운 손 4개가 발기한 성기와 고환을 붙잡고 살살 문지르자 강렬한 쾌감에 다시 다리 힘이 풀렸다.
재빨리 양팔을 뻗어 아이린과 아만다의 허리를 꽉 끌어안아 넘어지려는 몸을 지탱하자 내가 왜 그러는지 그제야 알아차리고 얼굴이 빨갛게 붉어졌다.
아이린과 아만다가 고추에 거품을 내자 가슴과 음부를 가린 작은 천 쪼가리를 뜯어내고 거칠게 욕정을 해소하고 싶었다.
그러나 NPC도 엄연한 여성으로 내 욕정을 풀자고 평생 마음의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다.
악마의 유혹보다 더욱 치명적인 비누칠이 끝나자 따뜻한 물을 떠 와 거품을 말끔히 헹궈줬다.
“영주님, 욕조에 들어가세요.”
“어.”
도자기로 만든 하얀 욕조에 빨간 꽃잎과 파란 나뭇잎이 잔뜩 띄워져 있었다.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욕조에 들어가 눈을 감고 눕자 아이린과 아만다가 뒤에 달라붙어 어깨와 팔을 주물렀다.
부드러운 손이 몸을 주무르자 시원함과 함께 나른함이 동시에 왔다. The Age of Hero는 스태미나만 있을 뿐 피로도 시스템은 없었다.
그러나 장시간 접속하면 뇌에 무리가 가 심한 정신적 피로를 느꼈다. 정신적 피로를 해소하는 길은 수면만큼 좋은 게 없었다.
그다음은 비싼 캡슐을 사는 것으로 최고급 캡슐은 내장재와 에어컨, 히터의 성능뿐만 아니라 뇌파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줘 정신적 피로를 최소화했다.
============================ 작품 후기 ============================
글을 읽어보신 후 문제점이 무엇인지, 지난번 작품과는 어떻게 다른지 작품서평란에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