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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
10.
이름 : 다니엘
나이 : 48살
종족 : NPC
계급 : 평민
직책 : 레오 영주성 집사
특기 : 영지와 영주성 관리
충성심 : 38
성격 : 침착하고 성실함
근력2 순발력1 체력2 지력3
이름 : 조나단
나이 : 45살
종족 : NPC
계급 : 평민
직책 : 레오 영주성 경비대장
특기 : 피오레 열두 가지 검식(스콜라)
충성심 : 37
성격 : 다혈질이지만, 책임감이 투철함
근력5 순발력5 체력6 지력1
집사 다니엘과 경비대장 조나단 둘 다 평민으로 전임 영주 대리 조루즈 준 남작 밑에서 일하던 NPC들이었다.
집사 다니엘은 영주성을 관리하며 영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취합해 내게 보고하는 책임자였고, 경비대장 조나단은 영주성을 방비하고 영지를 보호하며 치안까지 맡고 있었다.
“영주님, 관리들이 영주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대기하고 있습니다.”
“병사들도 영주님께 충성을 맹세하기 위해 연병장에 도열해 있습니다.”
다니엘과 조나단의 안내로 1층으로 내려가자 사무직 관리 5명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이들은 다니엘을 도와 영지와 영주성을 관리하는 평민들로 이들 역시 황제가 파견했던 전임 영주 대리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집사와 경비대장처럼 충성심이 높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마음을 품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새로운 영주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 때문에 그런 것으로 시간이 흐르면 충성심도 조금씩 올라 안정권에 접어들 것이다.
“영주님께 충성을!”
“반갑습니다.”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허리를 90도로 꺾는 관리들을 향해 반갑다고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남작인 내가 악수를 청하자 허리를 펴던 관리들 모두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나를 바라봤다.
“남작인 내가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었는데 멀뚱멀뚱 처다만 보면 어쩌라는 겁니까? 무안하지 않게 어서 잡으세요.”
“가.감사합니다.”
The Age of Hero는 중세 계급 사회를 모티프로 해서 만든 가상현실 게임이라 귀족이 평민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매우 드문 일로 기사와 마법사로 발돋움 중인 뛰어난 재원, 황립 또는 유명한 아카데미를 나온 평민이 아니면 귀족의 손을 잡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계급 간의 격차가 크다는 것으로 The Age of Hero에서 귀족과 평민의 차이를 조선 시대로 비교하면 하늘을 찌르는 권문세가와 비루한 소작농의 차이로 소작농이 고개를 들고 지체 높은 양반을 빤히 올려다보면 불경죄에 걸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잔뜩 움츠러든 관리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고 어깨를 두드려주자 충성심이 10이나 올랐다.
고작 손 잡아주고 어깨 두드려주는 것으로 충성심이 10이나 오른 것만 봐도 평민들이 귀족을 하늘같이 우러러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존경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존경하는 마음에서 충성심이 생기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공포가 충성심으로 표현되는 일도 아주 흔했다.
평민과 농노가 귀족에게 충성하는 것은 많은 귀족이 평민과 농노를 벌레 죽이듯 재미로 죽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평민과 농노는 귀족의 그림자만 봐도 벌벌 떨었고, 작은 잘못에도 죽음의 공포를 느껴 무조건 충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리들이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 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관리들을 대했다. 이런 모습은 남작이란 작위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고, 게임이라는 특수성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5년간 부사관으로 근무한 경력에서 나오는 여유였다. 부대에 장교와 상급자가 많았지만, 내가 주로 상대하는 사람은 일반 사병으로 5년을 근무하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하들을 다루는데 이골이 나 있었다.
관리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 후 건물을 빠져나와 병사들이 도열한 연병장으로 이동했다.
연병장에는 성벽과 성문 근무자 20명, 철광석 광산 근무자 20명을 뺀 81명이 도열해 있었다.
“영주님께 경계!”
“충~성!”
81명이 목이 찢어지라 소리치자 작은 영주성이 떠나갈 것처럼 울렸다. 보통 이런 모습을 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며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그러나 5년 동안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본 장면이라 그런지 가슴을 뜨겁게 울리는 감동도, 흥분도 없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주로 목이 터져라 충성을 외치던 처지에서 받는 처지가 된 것으로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틸라 제국은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은 영주를 거느린 제국이었고, 남작은 그중에서 가장 낮은 계급으로 군대 있을 때처럼 여전히 쫄다구에 지나지 않았다.
경비대장 조나단 뒤로 서 있는 3명의 조장만 평민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농노로 바뀐 영주에 대한 두려움에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관리들에게 했던 것처럼 조장들에게 손을 내밀자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영주를 빤히 쳐다보는 것도 불경죄에 해당해 성질 더러운 영주에게 걸리면 죽음을 면치 못했다.
그걸 깨달은 조장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조장들과 인사를 마치자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자신들에게도 손을 내밀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병사들이 얼음이 되어 움직이지도 못했다.
“사람 무안하게 계속 보고만 있을 건가?”
“죄.죄송합니다.”
맨 앞 오른쪽에 서 있다가 봉변을 당한 경비병이 급히 내 손을 잡았다. 보기 안쓰러운 만큼 손을 떨어대는 경비병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귀족에게 농노는 개, 돼지보다 못한 존재였다. 가축보다 못한 이들은 영주와 옷깃을 스친 것만으로도 큰 죄가 되어 죽을 수도 있었다.
그 법칙에 따라 만들어진 The Age of Hero에서 농노 NPC는 절대적 약자로 내가 내민 손이 매질보다 더 두려웠을 것이다.
농노가 경비대에 뽑힌다는 건 출세를 의미했다. 영주와 영지를 지키기 위해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 매우 위험한 직업이지만, 하루 한 끼도 풍족하게 먹을 수 없는 열악한 농노의 삶과 비교하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병사는 크게 출세한 것이었다.
그리고 경비대는 현대의 경찰과 같은 치안도 맡고 있어 농노들에겐 칼자루를 쥔 권력자였다.
칼자루를 줬다는 것은 무언가 떨어지는 콩고물이 있다는 뜻으로 이 시대는 뇌물이 당연시되는 사회로 적당히 먹으면 죄가 아니었다.
농노들이 원하는 직업은 농사보다는 기술직이 우선했고, 이왕이면 영주성에서 근무하는 걸 바랐다.
병사, 하녀 등으로 언제 영주와 영주 가족의 눈 밖에 나 죽을지 알 수 없었지만, 배고파 죽을 일은 없어 많은 농노가 기를 쓰고 영주성에 취업(?)하려고 했다.
그리고 하녀들은 영주의 눈에 띄어 농노 신분을 벗어날 수 있었고, 병사들도 공을 세워 평민이나 준 귀족인 기사가 될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미래가 없는 농노들에겐 어느 영지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는 희망 고문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거면 지긋지긋한 농노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이라고 걸고 싶은 것이 농노의 삶이었다.
벌벌 떠는 병사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줬지만, 열심히 일하면 자유민이 될 수 있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아가는 건전한 청년의 눈으로 봤을 때 농노들의 삶은 가혹할 만큼 불합리해 해방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안하는 게 나았다. 당장 내 앞가림도 못 하는 상황에서 어설픈 동정심에 지킬 수 없는 희망을 주는 건 이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이었다.
병사들의 인사를 받고 성문 옆 망루에 올라가 주위를 둘러봤다. TV나 영화에서 보면 영주가 머무르는 성은 고풍스러운 건물과 아름다운 호수, 정원이 있고, 멋진 건물에는 초상화와 조각들이 즐비한 응접실이 있었다.
그러나 3주년 이벤트로 받은 레오 영주성은 그런 호화로움과는 거리가 아주 먼 볼품없는 성이었다.
영주성 중앙에 있는 정사각형의 3층 건물과 그 주위를 둘러싼 성벽, 적의 침입을 감시하는 망루와 성문, 냄새나는 마구간과 대장간, 목공소, 병사들이 쓰는 막사, 작은 연병장, 식량 저장소, 하녀와 일꾼들이 기거하는 작은 건물 등이 전부였다.
레오 영지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 영주성이었지만, 바닥은 보도블록은 고사하고 잔디조차 깔려있지 않아 진창이었고, 하수도 시설도 없는지 오물까지 마구 버려져 코가 썩을 것 같은 악취가 풍겼다.
영주가 머무는 건물 역시 나을 것이 하나도 없어 지하는 각종 창고로 사용했고, 1층은 응접실과 식당, 2층은 관리들이 사용하는 사무실로 쓰였다.
영주가 사용하는 공간은 3층 한 층으로 침실과 목욕탕, 집무실, 공간이동 마법진 포털이 있는 마법 실험실 등이 있었다.
그리고 언덕 위에 세워진 원형의 영주성도 좌우 폭이 150m가 겨우 넘어 작은 요새 수준에 머물렀다.
망루에 올라 바라보자 언덕 아래 좌측과 우측에 통나무에 진흙과 볏짚을 얼기설기 발라 지은 엉성한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다.
집 너머로 추수가 끝난 황량한 밀밭이 보였고, 양과 말, 소를 키우는 넓은 목장도 보였다.
남쪽으로는 제법 커다란 호수가 있었고, 북쪽에는 철광석 광산이 있는 뾰족한 바위산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몬스터가 우글대는 울창한 숲이 군데군데 있었다.
엉성한 집은 모두 농노들의 집으로 2,500명이 이곳에 살았고, 나머지 500명은 철광석 광산이 있는 바위산 아래에 작은 마을을 짓고 살았다.
농노들이 사는 마을은 영주성보다 상황이 더 나빠 화장실도 없는지 더러운 분뇨가 길바닥을 굴러다녀 바람이 불자 망루까지 지독한 악취가 풍겼다.
“정말 열악하네.”
“수도 크라쿠푸스와 10대 도시, 주변 위성 도시를 빼면 다른 영지도 모모님의 영지와 상황이 비슷해요.”
“공작과 후작이 소유한 성도?”
“영주성과 그에 속한 마을은 크고 깨끗하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크게 다를 것이 없어요. 평민과 소작농이 모여 사는 외딴 마을은 더욱 심하고요.”
“이런 상황이면 전염병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을 텐데?”
“이질(dysentery)을 비롯한 각종 전염병과 영양실조 등으로 심할 때는 주민의 3분의 1이 죽을 때도 있어요.”
“내 영지가 그렇다는 말이야?”
“다행히 모모님의 영지는 주변 숲에서 약초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서쪽 영지와 경계인 토리노 강에서 깨끗한 물이 영주성으로 흘러와 물이 부족하지 않아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왜 이런 상태로 놔두는 거야? 길 정비하고 화장실만 만들어도 질병으로 죽는 사람을 크게 줄어들 텐데.”
“귀족에게 농노는 가축보다 못한 존재에요. 그러니 관심을 두지 않는 거죠.”
“농노가 죽으면 노동력이 떨어져 그만큼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잖아?”
“농노가 줄어들면 다른 농노에게 그만큼 일 시키면 되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그러다 농노들이 못 참고 도망가면 어쩌려고 그래?”
“도망갈 곳이 없어요. 사방에 몬스터가 우글대는데 어디로 도망가겠어요. 그리고 다른 영지로 도망쳐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요. 그럴 바에는 살던 동네가 낫죠.”
3주년 이벤트로 영지를 받았을 때 1,000억 원짜리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영지를 둘러보자 로또가 아니라 큰 혹이 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세시대 생활상이 어떤지 책과 인터넷을 통해 대충 알았지만, 내가 알던 것보다 100배는 더 심했다.
실제보다 더 실제같이 중세 시대를 재현한 The Age of Hero에서 농노들의 삶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극악한 모습으로 너무 비참해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비참한 모습들은 가끔 게임 채널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저들은 게임이란 생각에 NPC들의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인터넷에 나온 NPC들의 모습을 아무 생각 없이 봤었다. 그러다 내 영지가 그러자 그제야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무엇부터 해야 하지?”
“그건 모모님이 생각하실 일이에요.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방향으로 영지를 운영할지 모두 모모님의 몫이에요. 모모님의 결정에 따라 영지는 발전할 수도 있고, 더 나빠질 수도 있어요. 그리고 농노들의 삶도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고, 더욱 힘들어질 수도 있겠죠.”
도우미 아란의 말처럼 내 생각에 따라, 내 결정에 따라 영지는 나 하나만을 위한 영지가 될 수도 있었고, 농도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금보다는 나은 영지가 될 수도 있었다.
나만을 위한 영지를 만들겠다면 기존에 했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면 된다. 반대로 농노들도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는 영지를 만들려면 모든 것을 뜯어고쳐야 했다.
뜯어고친다는 것은 내가 누리게 될 혜택을 일부 반납하고, 이익도 그만큼 줄여야 한다는 뜻으로 일정 부분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정치란 그건 것이다. 일정한 재화를 어떻게 나눌지 결정하는 것이 정치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갖게 되면 그 사람은 더없이 풍요로운 삶을 살지만, 나머지 사람은 빈곤에 허덕이게 된다.
반대로 모두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선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부의 사슬을 끓어야 했다.
그래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재화가 돌아갔다.
============================ 작품 후기 ============================
글을 읽어보신 후 작품서평란에 문제점이 무엇인지, 지난번 작품과는 어떻게 다른지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