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영웅의 시대-4화 (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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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가지 혜택

4. 일곱 가지 혜택

딩동딩동

“전형필씨! 전형필씨!”

“누.누구세요?”

“㈜판타스틱에서 배송 나온 직원입니다.”

“㈜판타스틱요?”

“네.”

“무슨 일로 오셨는데요?”

“주문하신 The Age of Hero 전용 캡슐 설치하러 왔습니다.”

“캡슐요?”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시계를 보자 아침 10시였다. 순간 어제 받은 메일이 기억났다. 학교에 들어서며 받았던 스팸 메일.

The Age of Hero 3주년 확장 기념 영주 이벤트에 당첨됐다고 핸드폰에 떴던 스팸 메일. 아침 10시에 방문한다던 그 메일.

‘스팸이 아니라 진짜였나? 아니야. 사기꾼들일 수도 있어. 함부로 믿으면 안 돼.’

물건을 훔치러온 강도일 수도 있었고, ㈜판타스틱의 직원인 것처럼 가장한 후 물건을 떠넘기려는 사기꾼일 수도 있었다.

전에 살던 개봉동 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인데도 도둑이 극성을 부려 털린 집이 한둘이 아니었다.

빈집털이는 기본이었고, 가스검침원, 우유 배달부, 신문배달부, 아파트경비, 음식 배달원 등 온갖 이름을 사칭해 주인이 있는데도 집에 들어가 칼을 들이밀고 금품을 챙겨 달아났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 혼자 있는 집은 강간까지 서슴지 않았다. 아파트가 오래되다 보니 전·월세 값이 싸져 혼자 사는 여성, 노인 등이 많아 도둑놈들이 집중적으로 노려 그렇게 된 것으로 신분증과 얼굴을 보여주기 전에는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홈 비디오 폰을 통해 밖을 내다보자 하얀색 ㈜판타스틱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파란색 모자와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남자 세 명이 사람보다 세 배는 더 커 보이는 커다란 박스와 함께 문 앞에 서 있었다.

“신분증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스피커를 통해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하자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인상도 찡그리지 않고 신분증을 꺼내 비디오 모니터에 갔다 댔다.

5년간 제1공수특전여단에서 게릴라전, 정찰, 정보수집, 직접타격, 요인암살 및 납치, 인질구출, 주요시설 파괴, 항폭유도, 병참선 교란, 민사심리전 등 각종 비정규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주 다양한 전술 훈련을 받았다.

그중에는 상대의 표정과 눈을 보고 거짓말하는 것인지 진실을 말하는 것인지 구별하는 법도 있었다.

그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작심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상 알아맞힐 수 있었다.

남자가 내민 신분증은 ㈜판타스틱에 발급한 신분증이 맞는지 사진과 이름, 주소, 사원번호, 발급 일자 등이 자세히 적혀있었다.

그러나 ㈜판타스틱 신분증을 빼돌려 복사하는 건 사기꾼에겐 일도 아니라서 신분증과 복장만으로 상대를 믿을 순 없었다.

하지만 사기꾼이 물건 하나 팔아먹겠다고 이렇게까지 치밀하게 할 이유도 없었고, 책임자와 뒤에 선 남자들의 표정과 눈빛도 딱히 의심할 만한 게 없었다.

그리고 왼팔을 다쳐 온전할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성인 남성 3~4명은 순식간에 해치울 수 있어 사기꾼들을 겁내진 않았다.

특전사에 있을 때 격투술과 사격술, 추적술 등 몇몇 종목은 1공수 특전여단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로 각종 행사와 시범에 빼놓지 않고 끌려다녔다.

“들어오십시오.”

“죄송하지만, 저희도 전형필님이 맞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신분증을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분증을 받아든 책임자가 서류에 적힌 주민등록번호와 주소, 전화번호 등을 대조한 후 신분증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 후 신분증을 돌려줬다.

“불편하게 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캡슐은 어디에 설치해 드릴까요?”

“저는 캡슐을 주문한 적이 없습니다.”

“여기 보시면 전형필님 앞으로 캡슐을 발송하고 설치하라는 본사 지시서가 있습니다. 확인해보십시오.”

책임자가 내민 서류에는 내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집 주소가 정확히 기재되어 있었고, 캡슐 가격과 배송비, 설치비 등도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또한, 모든 비용이 지급됐다는 것과 내가 지급해야 할 비용이 0원이라는 것도 명확히 기재되어 있었다.

“이것 말고 다른 서류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캡슐을 설치한 다음 서류를 넘겨드리고 인수증을 받아 가면 끝입니다.”

“죄송하지만, 인수증을 보여주십시오.”

“여기 있습니다.”

인수증은 내가 물건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전부로 캡슐 비용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서류는 물론 인수증에도 내게 돈을 요구하는 내용이 없자 어제 받은 문자가 스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말 이런 행운이 내게 찾아온 거야? 하아... 믿기지가 않네.’

방이 하나인 원룸이라 침대 옆에 캡슐을 설치했다. 1억 원이 넘는 최고급 사양 캡슐이라 설치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다.

그러나 캡슐이 흔들리지 않게 바닥에 특수 지지대를 놓고 그 위에 캡슐을 올린 후 전원과 인터넷 선을 연결하자 설치가 끝났다.

마지막으로 기계가 잘 작동하는지 전원을 올려보는 것으로 30분도 안 돼 The Age of Hero의 접속 캡슐 설치가 완전히 끝났다.

“휴대전화는 여기에 이렇게 연결하시면 게임 중에 언제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홈 비디오 폰도 여기 선이 있으니 연결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게임 속 시간은 현실보다 4배 빠르게 흘러 전화기 소리와 벨 소리가 늘어지게 들립니다. 급하지 않으시면 잠시 게임을 중지한 후 전화를 받거나 누가 왔는지 확인하는 걸 추천합니다.”

“알겠습니다.”

“더 궁금한 것이 없으면 인수증에 사인 좀 해주십시오. 그리고 본사에서 전화 오면 좋은 답변 부탁드립니다. 처자식 밥줄이 걸렸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매우 만족함’이라는 멘트를 부탁한 ㈜판타스틱 캡슐 설치팀이 빠져나가자 손등을 있는 힘껏 꼬집었다.

“으아악.”

손등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에 꿈이 아닌 현실이란 걸 다시 한 번 확인했지만, 내게 이런 행운이 왔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라면 하나 끓여 먹고 들어가자.”

어제 먹은 음식은 아침에 먹은 식은 밥 한 공기와 점심 겸 저녁으로 먹은 라면 1개가 전부라서 뱃속 식충들이 밥 달라고 요동을 쳤다.

물을 왕창 넣고 끓인 라면 1개를 국물까지 몽땅 비워 물로 배를 채운 후 좁은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로 몸을 씻었다.

라면에 물을 왕창 넣고 끊이는 건 고등학교 3년 내내 김치는 물론 쌀도 사 먹을 형편도 안 돼 라면 국물로 배를 채우며 생긴 버릇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세끼 모두 부대에서 공짜로 밥을 챙겨 먹자 이 버릇도 사라졌다.

하지만 제대 후 생활고가 다시 시작되자 예전 버릇이 도로 나와 3개는 끓여도 될 물에 라면 1개를 넣고 끓여 먹었다.

목욕재계까지 한 다음 캡슐로 다가가 열림 버튼을 누르자 영화에서 보던 ‘치익’하는 기계음이 들리며 캡슐 뚜껑이 자동으로 열렸다.

긴장된 마음으로 캡슐에 들어가 눕자 침대보다 더 푹신푹신하고 편안했다. 1억 원이 넘는 최고급 사양답게 내부 소재도 남다른지 지난번 게임방에서 누워본 캡슐과는 비교도 안 되게 아늑했다.

내부 공간도 훨씬 넓어 두 명이 누워 굴러도 될 만큼 매우 넓었고, 에어컨과 난방 기능까지 있어 침대 대용으로 써도 됐다.

“앞으로 여기서 자야겠다. 침대는 싸구려라 스프링이 푹 꺼져 아침에 일어나면 허리가 아픈데, 캡슐은 짱짱해서 허리가 아플 일도 없고 춥거나 더울 일도 없겠네.”

닫힘 버튼을 누르자 뚜껑이 닫히며 캡슐 뚜껑에 달린 액정화면에서 The Age of Hero를 소개하는 영상이 나왔다.

5초쯤 보고 있자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과 The Age of Hero에 접속했다는 메시지가 들렸다.

[전형필님, 꿈과 희망이 가득한 The Age of Hero에 접속하셨습니다. 오늘도 마음껏 모험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눈을 뜨자 사방이 온통 하얀 방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모님! ㈜판타스틱에서 운영하는 세계 최초 가상현실 온라인게임 The Age of Hero 3주년 확장 기념 영주 이벤트에 당첨되신 걸 축하드려요.”

짝짝짝짝

“모모?”

“전형필님의 캐릭터 이름이잖아요. 잊으셨어요?”

‘아 맞다. 그때 캐릭터 이름을 뭐로 할 거냐고 어떤 여자가 물어봐서 모모로 한다고 대답했지.’

모모는 제1공수 특전여단에 복무할 때 사용한 내 콜사인이었다.

콜사인(Call Sign)은 무전에 사용하는 호출부호로 전투기 조종사나 특수부대 부대원들이 본명 대신 사용하는 이름이었다.

나도 작전에 들어가면 전형필이라는 이름 대신 모모라는 콜사인을 사용했고, 5년 동안 사용해 입에 붙어 이름을 뭐로 할지 물어보자 나도 모르게 콜사인을 대고 말았다.

모모(Momo)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얼버무려 쓰는 말이기도 했지만, 독일의 아동문학가 미하엘 엔데가 1973년 발표한 책의 이름이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했다.

모모는 누더기에 곱슬머리, 크고 검은 눈을 가진 여자아이로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유쾌한 소녀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혼자 살게 됐지만, 생활기록부에는 나를 버리고 떠난 부모가 여전히 이름을 올려놓고 있어 차마 내 입으로 버려졌다는 말을 할 수 없어 멀쩡한 가정에서 사는 행복한 아이처럼 행동했다.

마음은 울고 있었지만, 겉모습은 항상 밝은 표정을 지어야 하는 내 현실이 너무 싫었다.

내가 모모라는 콜사인을 쓰게 된 건 부모가 없는 고아라는 점과 유쾌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

“저는 앞으로 일주일간 모모님이 영지를 관리하는데 도움을 드릴 도우미 아란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아란이라고 이름을 밝힌 도우미는 주먹만 한 크기의 날개 달린 요정으로 귀여운 어린 소녀였다.

“영지도 주는 건가요?”

“영지 없는 영주는 명목상 귀족에 지나지 않습니다. The Age of Hero 최초의 영주님인데 당연히 영지도 드려야죠.”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게 할 게 아니라 모모님의 행운에 하세요. 3억5천만 대 1을 뚫고 당첨된 엄청난 행운이니까요. 그리고 존댓말은 쓰지 마세요. 저는 잠시 모모님을 돕는 요정에 불과해요. 그러니 편하게 말해주세요.”

“아.알았어.”

“영지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궁금해.”

“모모님의 영주는 이번에 3주년을 기념해 확장한 곳으로 아틸라 제국 동쪽 끝에 있는 황제 직영지에요.”

“동쪽 끝이면 수도에서 엄청 멀겠네?”

“10,000km 정도 떨어져 있어요.”

“곤란한데.”

“뭐가 곤란하세요?”

“다음 주부터 수도 크라쿠푸스에 있는 XX대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 영지를 받게 되면 학교에 다닐 수 없어. 미안하지만, 영지는 받을 수 없을 것 같아.”

아틸라 제국 동쪽 끝에 있는 변방의 영지를 준다는 말에 좋았던 기분이 한순간에 얼음 굴에 떨어진 것처럼 싸늘하게 변했다.

아틸라 제국은 동서보다 남북의 길이가 2배 가까이 긴 형태로 러시아보다 땅이 2배 컸다.

아틸라 제국은 수도 크라쿠푸스를 포함해 10대 도시에 문명이 집중돼 있어 동쪽 끝이면 조사하지 않아도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 것을 알 수 있었다.

궁벽한 시골 영지라는 건 둘째 치고 거리가 너무 멀어 도저히 학교에 다닐 수 없어 아란에게 영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말 어처구니없는 생각으로 이런 생각을 한 건 The Age of Hero란 게임에 대해 너무 아는 게 없어서였다.

겨우 하룻밤 수박 겉핥기로 The Age of Hero에 관해 공부하자 지구와 마찬가지로 척박한 시골 땅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대도시와 시골의 땅값을 생각해 쓸모없는 땅이라고 확신한 것으로 중세시대 영주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권력을 누렸는지 조금만 생각했어도 절대 이런 말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고 싶어 밤새 죽어라 몬스터를 사냥하는 유저가 3억 명이 넘는다는 것을 안다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 작품 후기 ============================

글을 읽어보신 후 작품서평란에 문제점이 무엇인지, 지난번 작품과는 어떻게 다른지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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