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114화 (114/178)

< 리액팅 (reacting; 반응연기) (8) > 끝< 리액팅 (reacting; 반응연기) (9) >

이도원은 김흥수 기자에게 물었다.

“기사 보셨죠?”

-아, 예. 지금 보고 있습니다.

“이 사건과 연루된 몇 분의 번호를 문자로 보내겠습니다. 미리 얘기해 두었으니 연락하셔서 인터뷰 하시면 됩니다.”

-도원 씨 말고 다른 분들과 무슨 인터뷰를……?

“지금 올라와 있는 추측성 기사들을 모조리 오보로 만드는 증언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일단… 보내주시죠.

“예. 감사합니다.”

이도원은 전화를 끊고 문자로 차지은과 차수희, 대선타이어 막내딸의 번호를 전송했다.

‘시간이 중요해. 루머가 일파만파 퍼져서 고착화되기 전에 막아야 한다.’

그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오준식에게 말했다.

“회사 법무팀으로 가자.”

“법무팀은 왜?”

뜨악한 오준식이 묻자 이도원이 대답했다.

“쥐구멍 언론과 레드엔터테인먼트를 고소할 생각이다.”

“레드엔터테인먼트를? 무슨 증거로? 자칫 역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어.”

이도원은 피식 웃었다.

“쥐구멍 언론이 사실을 인정하면 이 문제를 사주했던 레드엔터테인먼트 측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이미지에 타격을 받더라도 무혐의가 났을 때 덮는 게 최선이겠지.”

오준식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말했다.

“살 떨리네, 정말. 쥐구멍 언론도 자신들의 오보를 인정하면 지금까지 쌓아온 공신력에 타격을 받는 건데 순순히 인정하지도 않을 것 같고,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대표님과 먼저 상의해봐야 하지 않겠어?”

이도원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대표님은 이 사건에 대해서 내게 일임하셨다.”

이도원은 이 문제에 대해 직접 해결하겠다고 요청했다. 그리고 딱히 묘수가 없었던 이상백은 이도원을 믿고 이 문제에 대한 처리를 일임했다. 무엇보다 전후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이도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도원의 말을 들은 오준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일을 키우는 게 아닐까 걱정되네.”

이도원은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일을 키운 건 내 쪽이 아니라 저쪽이지. 말 만드는 수준이 노벨문학상감이더군.”

그가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오준식은 백 프로덕션으로 운전을 했다.

머지않아, 이도원은 백 프로덕션 사내변호사와 마주앉았다.

“고소장을 작성하신다고요?”

“예. 쥐구멍 언론과 레드엔터테인먼트를 사생활침해, 명예훼손, 모욕죄로 고소할 생각입니다.”

“레드엔터테인먼트까지요?”

그 물음에 이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에서 쥐구멍 언론에 사주했습니다.”

변호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허위사실유포라는 게 좀 애매하긴 합니다. 레드엔터테인먼트 쪽은 아예 처벌을 기대하기 힘들고, 쥐구멍 언론 역시 이 경우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벌금 정도로 끝난다고 봐야합니다. 지금 도원 씨 사건의 진실이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고소를 했을 때 오히려 도원 씨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쪽은 벌금만 물면 끝이지만 우린 이미지를 생각해야하니까요.”

“관계없습니다.”

대답한 이도원이 말을 이었다.

“곧 쥐구멍 언론에서 발표한 것보다 확실한 진상이 드러날 겁니다.”

변호사는 그를 빤히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고소장을 접수하시죠.”

*

김흥수 기자의 특종이 터졌다.

[이도원 측 ‘명백한 명예훼손’에 법적 대응, 고소장 제출 완료]

-연예계… 배우들의 사생활은 어디까지 보장되는가?

[시네마24 = 김흥수 기자] 레드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 차지은의 언니인 차 씨는 ‘이도원과 차지은 두 사람이 <우리의 심장> 때부터 열애설이 날 만큼 깊은 친분이 있으며, 열애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심지어 소속 배우인 차지은까지도 레드엔터테인먼트를 통해서가 아닌 개인적으로 입장을 표명해왔다. ‘스폰서 의혹이 제기된 사건 당일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대선타이어 막내딸 오 씨 또한 ‘사사로운 생일파티였고 어떤 거래가 오고 간 사실이 없다. 그 전부터 친분이 있던 김진우가 이도원을 초대했을 뿐이며, 항상 한 사람의 팬으로서 이도원을 응원하고 있었다’라고 주장하며 이번 사건에 대한 해명에 힘을 실었다.

사건관계자나 주변인들의 변호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도원과 그의 소속사 백 프로덕션 측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또한 이도원 측은 쥐구멍 언론과 레드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현재 서초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한 상태다.

[email protected]

기사를 모두 읽은 이도원은 흡족하게 웃었다.

“역시 깔끔하게 나왔네.”

오준식은 고개를 저었다.

“난 간 떨려서 네 매니저 못하겠다. 배에 철판이라도 두르고 가. 레드엔터테인먼트까지 고소했는데 이로빈 대표가 널 보면 가만 두겠어?”

이도원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나쁜 놈은 저쪽인데 왜 내가 피해?”

곧 밴이 레드엔터테인먼트 건물 앞에 도착했다.

이도원이 내리려 하는데 오준식이 말했다.

“같이 가자. 이런 일에는 매니저가 함께 해야지.”

“아깐 간 떨려서 매니저 못 하겠다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오준식은 차를 대놓고 내렸다.

연이어 두 사람은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을 발견한 인포메이션 여직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재빨리 이로빈의 비서실로 전화를 걸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대표실로 바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이도원은 짤막하게 대답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를 보며 오준식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거침이 없구먼.”

“내가 한 가지 알려줄까?”

“뭐?”

오준식이 묻자 이도원이 대답했다.

“맹수들 끼리 싸울 땐 양쪽 다 겁을 먹는다. 꼬랑지를 말면 그 순간 물어뜯기는 거야. 겁을 먹었다는 사실을 적에게 들키기 전에 선공을 취해야 돼.”

“그래서 먼저 물은 거라고?”

오준식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맹수도 종류가 있는데요. 우리가 살쾡이라면 저쪽은 호랑이란 말입니다. 그것도 대호라고요.”

“다윗도 골리앗을 이겼잖아?”

그 순간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이도원은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이로빈의 비서가 대표실 문을 열어주었다.

안에는 이로빈이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장례식 이후 처음인가?”

그는 손을 내밀며 자리를 권했다.

“앉지.”

이도원과 오준식이 나란히 앉았다.

이로빈이 빙그레 웃는 얼굴로 물었다.

“그래. 직접 이곳까지 달려온 이유는?”

이도원은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경고를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경고?”

이로빈이 묻자 이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공포탄 경고사격이었습니다. 다음에는 실탄이 나갑니다.”

“하.”

이로빈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고소장도 그렇고 내게 왜 이러는지 전혀 모르겠군.”

이도원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사진 몇 장으로 어설픈 장난을 하시는 걸 보니 보니 지금까진 똑같이 구린 구석이 있거나, 대표님을 두려워하는 힘없는 상대만 만나셨나보죠?”

그는 짧게 덧붙였다.

“전 아닙니다.”

표정을 굳힌 이로빈이 물었다.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경고 정도로 하죠. 성 스폰서 브로커 레드엔터테인먼트 이로빈 대표님.”

이도원은 몸을 일으켰다.

이로빈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고개를 가볍게 숙인 이도원은 유유히 사무실을 나갔다. 얼른 따라붙은 오준식이 속삭였다.

“가만히 있을까?”

“모르지.”

이도원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오준식이 닫는 버튼을 바삐 눌렀다.

“여기 빨리 뜨자. 무섭다야.”

그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반면 이도원은 편안한 얼굴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가고 난 뒤 이상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원이냐? 기사는 잘 봤다.

“그 정도면 됐겠죠?”

-일단 일단락은 됐다고 봐야지. 사건 규명에 대한 우호적인 글들이 인터넷에 도배되고 있으니까. 고소장만으로 쥐구멍 언론과 레드엔터테인먼트 간의 유착관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어.

이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일 층에 도착했다.

“곧 재밌는 기사가 하나 더 터질 겁니다.”

-재밌는 기사라니?

이상백이 물었지만 이도원은 말을 돌렸다.

“대표님. 여기서 전 두 손듭니다. 더 이상 저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거 아시죠? 저를 보호해주셔야 해요.”

-혼자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질러 놓고 엄살은. 일단 사무실로 들어와라.

“알겠습니다.”

이도원은 전화를 끊었다.

동시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김흥수 기자였다.

-익명 제보 완료. <발빠른 뉴스> 확인요망.

<발빠른 뉴스>는 <쥐구멍 언론>과 쌍벽을 이루는 연예계 파파라치 사이트였다.

이도원은 벤에 오르자마자 태블릿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레드엔트테인먼트&쥐구멍 언론 간 유착관계 정황]

2011년 쥐구멍 언론 ‘레드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김성윤 마약 사건’ 최초 보도… 2012년 2월, 김성윤 레드엔터테인먼트 방출.

2012년 한 해 동안 쥐구멍 언론, 레드엔터테인먼트 경쟁업체 ‘소리굽쇠’ 소속 배우 3명 추적 끝에 스캔들 보도.

2013년 ‘레드엔터테인먼트’와 ‘소리굽쇠’ 배우 간 갈등으로 종영된 MAC 드라마에서 레드엔터테인먼트 측 배우 편파 보도. 이주 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사과.

2014년 ‘레드엔터테인먼트’ 측 배우 ‘박주호 마약밀수 사건’ 우울증으로 인한 치료 목적, 합리화 보도… 결국 기소유예.

.

.

.

위의 자료만으로도 쥐구멍 언론은 간접적으로 레드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우호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오해할 여지가 충분하다. 중간 중간 레드엔터테인먼트 소속 배우들이 타깃이 된 경우가 발견되는데, 모두 기획사 측과 갈등을 겪고 있던 것으로 확인이 됐으며 이후 연예계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이도원 사건’에서 이도원 측이 허위사실유포에 관련해 <쥐구멍 언론>과 <레드 엔터테인먼트>를 동시에 고소한 점 역시 이런 유착관계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하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과연 이번 사건이 지금까지 쉬쉬되었던 연예계와 언론사 간의 긴밀한 유착관계와 조작들에 대해 속 시원하게 밝혀지는 계기가 될지 주목받고 있다.

<발 빠른 뉴스= 강구현 기자 [email protected]>

이도원은 기사를 모두 읽은 후 태블릿 화면을 껐다.

이제 할 만큼 했으니 결과는 손을 떠난 셈이었다.

미처 이 기사는 아직 못 본 오준식이 물었다.

“괜찮겠어?”

“뭐가?”

“레드엔터테인먼트 대표한테 완전히 찍힌 거. 아무리 생각해도 조마조마 하다.”

“그건 신경 끄고.”

이도원은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곧 회사에서 주주총회가 한 번 열릴 거야. 기업 상장, 엔터테인먼트로 계열사 분할, 엔터테인먼트 대표 선임에 관한 내용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고.”

술술 나오는 말에 오준식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뭐야? 그런 정보는 어떻게 알고 있어?”

그 질문에 이도원이 대답했다.

“넌 아직 못 들었겠지만 난 그 동안 꾸준히 우리 회사에 주식을 매집해왔고, 지금은 대주주에 속해. 아마도 이번 총회에서 백 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로 결정될 거야.”

기절할 정도로 놀란 오준식은 대로변에 차를 붙였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숨겨놓고, 대수롭지 않게 하냐?”

실망감과 놀라움이 복잡하게 얼룩진 표정이었다.

이도원은 진심을 담아 짧게 말했다.

“미안하다. 너한테만은 진작 말을 했어야 했는데.”

오준식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공동대표라면 나머지 한 명은 누구야?”

그에 이도원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상백 대표님이 백 프로덕션과 엔터 대표를 겸임하실 거야. 그리고 박아현, 차지은, 심재빈과 더불어 널 매니저가 아닌 소속 배우로 집어넣을 생각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