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107화 (107/178)

< 리액팅 (reacting; 반응연기) (1) > 끝< 리액팅 (reacting; 반응연기) (2) >

이도원은 대학로의 연습실로 나갔다.

한동안 영화촬영으로 인해 바빴기 때문에 오랜만이었다.

주말이었기에 대부분 단원들이 나와 연습을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들려오는 익숙한 노랫소리, 대사소리를 반주삼아 이도원의 심장이 세차게 박동했다.

연습실 문을 열기 무섭게 실내의 열기가 훅 밀려왔다.

그 속에 실려 오는 땀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이도원은 인사를 하며 들어가서 거울 앞에 섰다.

이미 땀범벅으로 연습을 하던 차지은이 곁으로 왔다.

“오빠. 완전 대박이던데요?”

그녀는 휴대폰을 내밀었다.

인터넷에는 이도원에 대한 호평들이 가득했다.

[이도원 하나로 별점 10개 줘도 모자라다 ㅋㅋ]

[우리나라에도 이런 이십 대 배우가 있었다니 싶을 만큼 충격적이에요. 이도원이 아닌 다른 배우였으면 이런 느낌 절대 안 났을 듯.]

[이도원 눈빛 보고 소름끼침 ㄷㄷ]

[시돌에선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아가는 가장이자 로맨티스트, 악마의 재능에선 사이코패스 킬러. 동시에 촬영했다던데… 이도원의 연기력은 이미 명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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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원이 민망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뭐야?”

“뭐긴요. 영화평이죠. 저도 영화 개봉했을 땐 바빠서 영화 못보고 어제 집에서 봤거든요. 보고 감동 먹어서 바로 영화평 찾아봤죠. 오빤 이런 반응 확인 안할 것 같았는데, 역시네요.”

차지은은 자신의 일처럼 뿌듯하게 웃었다.

이도원은 머쓱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꾸 보다보면 인기에 취할 것 같아서.”

“오빤 그래서 멋있어요.”

차지은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사람들이 치켜세워주면 대부분이 거만해지거든요. 근데 오빤 한 결 같이 겸손한 것 같아요.”

“좋게 봐줘서 고맙다.”

이도원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가 생각하는 인기란 거품이었다. 언제 꺼질지도 모를뿐더러 거품이 많이 찰수록 정작 알맹이는 짓눌리게 된다. 인기라는 가벼운 거품이 일으키는 부드러운 감촉이 배우에게는 부담과 나태를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내게 노력으로 얻는 달콤한 과실은 인기가 아닌 배우로서의 능력이다.’

이도원은 연습에 들어가기 전 몸을 풀었다.

차지은은 기대감에 들어찬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까?’

이도원은 매번 달라졌다.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청소기처럼 빨아들이며 자신만의 것으로 발전시켜왔다.

이런 차지은의 관심은 단원들의 시선을 끌어왔다.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데다, 또 예쁘고 성격도 시원시원한 차지은의 관심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틈틈이 이도원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던 정태화까지 관심을 기울이니 다른 이들의 궁금증이 폭발할 만도 했다.

정작 이도원은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못할 만큼 집중해서 다리를 찢고 호흡을 다듬고 발성을 연습했다. 신체반응을 고스란히 느끼며 몰입한 덕분에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단지 웜업(warm-up; 훈련 전 준비운동)일 뿐인데…….’

임하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단원들은 빤한 웜업을 보는 것만으로 ‘어떤 연기를 보여줄까?’ 긴장감이 고조되는 느낌이었다.

마치 업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자랑하는 정태화가 보여주는 분위기와도 흡사했다.

“스으으으-.”

눈을 감고 나직이 호흡을 정리한 이도원은 뮤지컬 <영웅>의 <영웅>이라는 노래를 준비했다.

이도원이 천천히 무릎을 꿇고, 잔잔한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타국의 태양- 광활한 대지- 우린 어디에 있나. 잊어야 하나- 잊을 수 있나- 꿈에 그리던 고향.”

애절하게 끊길 듯 이어지는 음정.

눈물을 삼키며…….

이도원의 음성이 말려 올라갔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큰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본다.”

한숨과 함께 이도원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두려운 앞날- 용기를 내어-

우리 걸어가리라.

눈물을 삼켜- 한숨을 지워- 다시 걸어가리라.”

두 눈이 애처로운 우수에 젖었다.

그때 이도원의 눈앞에 어떤 형상이 떠올랐다.

이도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마음이 아리고 절절했다.

“어머니- 어머니-

서글피- 우시던 모습-.”

이도원은 그리움에 몸부림치는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애절하게 불렀다.

그는 불현 듯 어머니의 형상을 잡으려 손을 뻗었다.

함께 그 마음이 하늘에 닿을 듯 애절한 소리가 뻗어나간다.

“날이 세면 만나질까-

멀고 먼 고향- 너무 그리워-.”

손이 떨려왔다.

이도원은 천천히 땅을 짚고 일어나며 노래를 불렀다.

이내 그의 시선이 하늘을 향했다.

“기적소리가- 우리의 심장-

고동치게 하리니.

조국을 향한- 그리운 마음-

눈시울이 뜨겁다.”

가슴을 부여잡던 이도원은 몸을 돌리며 눈을 맹렬하게 빛냈다. 의연한 눈빛과 목소리를 되찾으며 연습실을 가득 채웠다.

“장부가 세상에 태어나- 큰 뜻을 품었으니-

죽어도- 그 뜻 잊지 말자-

하늘에 대고- 맹세해 본다.“

이도원은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하늘이시여- 도와주소서-!

우리 뜻- 이-루-도-록.

하늘이시여- 지켜주소서-!“

이도원이 앞으로 걸어 나오며 하늘로 뻗었던 주먹을 움켜쥐었다.

“우리가- 반드시- 그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폭발적인 울림이 연습실을 장악 했다.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도원은 마음속의 울림을 완전히 끌어냈다.

그 증거로 모두가 표정에 변화를 갖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차지은은 양팔을 감싸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우수수 소름이 돋은 것이다.

‘뭐야?’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다.

이도원은 전에도 지금도 잘했지만 확 바뀌어 있었다.

그걸 느낀 건 정태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에는 노래만 했는데… 불과 보름도 안돼서 연기까지 완벽히 조화시켰어.’

보름 동안 열심히 연습을 한다면 어느 정도 보완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도원이 방금 발휘한 무대장악력과 폭발력은 수년 동안 뮤지컬을 해온 배우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무대 적응력만 받쳐준다면… 긴장해야 될지도.’

정태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더블캐스팅 됐기 때문에 이도원과는 암묵적인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되는 상황이었다. 전까지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지금의 이도원은 충분히 정태화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카리스마를 뿜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도원은 스스로 방금 전 무대를 떠올렸다.

완전히 몰입했고 어떤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때랑 똑같다. 그저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했어.’

<투사>의 라스트 씬 촬영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어떤 부분에서 움직여야지 하고 움직인 것이 아니다.

저절로 노랫말과 대사가 흘러나왔고, 몸이 움직였다.

‘마치 내가 ‘안중근 열사’가 된 것 같았어.’

짝짝짝…….

문앞에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이도원에게 집중됐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권명섭이 포장된 치킨을 손목에 걸고 박수를 치고 있었다.

활짝 웃는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도원이가 내 후임으로 들어왔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잘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권명섭은 신용운의 제자로, 이도원이 들어오기 전 ‘안중근’ 배역을 맡았던 사람이었다.

트레이닝을 받으러 신용운 아카데미로 갈 때마다 종종 보던 사이였기에 이도원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형.”

정태화는 권명섭과 대학동기였다.

그는 권명섭의 손을 잡으며 반갑게 말했다.

“목은 좀 괜찮냐?”

“그럼. 괜찮고 말고.”

시익 웃은 권명섭은 단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치킨을 내려놨다.

“다들 먹고 해.”

*

차지은이 먼저 이도원 바로 옆으로 와서 앉았다.

단원들은 너도나도 원으로 둘러앉아 포장지를 풀고 치킨을 뜯기 시작했다.

그때 딸랑- 소리와 함께 또 한 번 문이 열렸다.

그곳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김진우?’

이도원은 눈살을 찌푸렸다.

차지은을 비롯한 다른 단원들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정태화가 일어나더니 대표로 물어보았다.

“누구십니까?”

김진우는 실내를 스윽 훑더니 답했다.

“김진우라고 합니다. 지은이와 같은 기획사인 레드 엔터 소속 배우죠.”

그는 이도원을 발견하고 얼굴을 와락 구겼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은이와 잠깐 볼까 하는데.”

정태화가 고개를 돌렸다.

차지은은 자기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안의 치킨을 다 삼키지도 못하고 물었다.

“저요? 저 아세요?”

‘지은이’라고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김진우가 입 꼬리를 올리며 다가와서 귓속말을 했다.

“회사 일로 왔는데 잠깐 볼까?‘

차지은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이도원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차지은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김진우와 함께 나갔다.

치킨을 뜯던 권명섭이 이도원의 불쾌한 표정을 보고 물었다.

“뭐야? 너랑 영화 같이 했던 그 배우 아니야?”

“네. 맞아요.”

이도원은 짧게 대답하며 들고 있던 치킨 뼈다귀를 내려놨다.

“잠시 갔다올게요.”

이도원은 연습실을 나가 옥상으로 갔다.

아니나다를까, 차지은과 김진우가 마주서있었다.

살짝 열린 옥상 문을 밀며 나가려할 때, 김진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사진 몇 장 찍어야 될 것 같다. 나도 별로 마음에 안 들지만 대표님 지시니까 거절하진 않겠지?”

차지은은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왜 아까부터 반말 하세요?”

그녀가 팔짱을 끼며 다시 물었다.

“우리 초면인데다 활동경력은 제가 선배 아닌가요?”

김진우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역 때 잠깐 활동한 건 빼지. 어쨌건 사진만 몇 장 찍어주면 돼. SNS는 매니저들이 관리하니까 적당히 맞춰서 사진 올릴 거다.”

차지은은 기가 막힌 듯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 저랑 김진우 씨의 열애설을 터트린다 이거죠? 제가 남자친구가 있는 줄은 저도 몰랐네요.”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죄송하지만 그냥 가주세요.”

김진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왜 고집을 피우지? 대표님이 약속하셨다. 열애설만 잘 터지면 너도 다시 활동 재개할 수 있도록 선처해주신다고.”

“됐고요. 활동 안 해도 되니까 그냥 가시라고요.”

가만히 듣고 있던 이도원은 문을 열고 나갔다.

‘쬐끄만한 게 강단 있네.’

차지은에 대해 생각하고 김진우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스폰서 둘 때부터 알아봤지만, 역시 안 될 새끼야. <악마의 재능>으로 인기 좀 얻으니까 콧대만 올라갔군.’

김진우는 미처 이도원의 존재를 눈치체지 못했다.

그는 차지은의 태도에 기분이 상한 얼굴로 말했다.

“멍청한 건가, 아니면 사태파악을 못하는 건가? 너나 나나 서로 밀고 당기고 조금만 노력하면 지금 보다 몇 배의 인기를 누릴 수 있는데!”

김진우가 차지은의 팔을 잡았다.

차지은은 저항하지 않았다. 다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사람이요. 아니, 배우는요. 나 자신에게 진실하고, 상대배우에게 진실하고, 관객에게 진실해야 좋은 연기가 나오는 거거든요? 제가 어제 <악마의 재능>을 봤어요. 왜 그쪽 연기에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는지 알겠네요. 도원 오빠한테 묻힌 이유도요. 웬만하면 무례하게 대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 손 좀 치워줄래요?”

“하. 그쪽?”

김진우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이도원’이란 이름은 그에게는 아킬레스건이었다.

“내가 이도원 보다 못하다고?”

“비교 대상이 아닌 것 같네요.”

한 마디도 지지 않는 차지은을 보며 김진우는 참기 힘들만큼 기분이 상했다. 이미 심사가 꼬인 김진우는 자신을 노려보는 차지은의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기분 나빴다.

욱하는 감정에 김진우가 차지은의 팔을 밀치며 놓았다.

턱.

이도원이 넘어지려는 차지은의 어깨를 단단히 잡아주었다.

“이도원?”

김진우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불렀다.

스폰서들과 마련했던 자리 이후 처음 보는 자리였다.

이도원은 차지은을 놓아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얼마 전 재밌는 기사를 하나 봤는데… 서로 만난 적도 없는 남녀가 열애를 한다는 쓰레기 기사였지. 우습지 않나?”

물은 그가 차지은을 비켜서게 하고 김진우에게 똑바로 걸어갔다.

김진우는 입술을 깨물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이도원을 노려봤다. 지난 번 스폰서들과 마련한 자리에서 느꼈던 치욕감이 생생히 떠올랐다.

저벅 저벅.

천천히 다가온 이도원이 김진우의 팔을 잡았다.

김진우가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하지만 이도원의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도원은 오히려 빨래를 쥐어짜듯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경고했지? 헛짓거리 하지 말라고. 공 든 탑 무너지는 건 순간이라고.”

나직한 음성은 서늘했다.

“레드 엔터 대표야 내가 어쩌지 못하겠지만, 네가 공들인 계획 정도는 충분히 방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피차 라이벌 구도를 만들지 말자고.”

이도원은 차지은을 눈짓하며 덧붙였다.

“자꾸 나랑 엮이지마. 내 주변 사람도 건들지 말고.”

그는 마음 깊숙이 분노했다. 언뜻 감정적으로 나선 것 같지만 머릿속은 차분했다.

이도원은 상황파악을 하고 있었다.

‘김진우는 문제가 아니야. 치부를 드러낸 적이 있고, 날 껄끄러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진우를 이용해 레드 엔터 대표를 멈춘다. 그래야만 열애설을 막을 수가 있어.’

찰나의 순간 결단을 내린 이도원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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