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ction (3) >
“레디-!”
이도원의 심장이 격하게 뛰었다. 고삐에 묶인 말이 투레질을 했다.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은 엔지도, 부상도 많이 일어나는 촬영이었다. 따라서 모든 배우들이 하나같이 굳은 표정으로 임했다.
“액션!”
마침내 확성기를 통해 신호가 떨어졌다.
이도원이 탄 말이 가장 먼저 달려 나갔다. 약속된 신호를 알아듣는 영리한 놈이었다. 동시에 양옆으로 백 마리의 기마가 모래구름을 일으키며 일제히 따라붙었다. 일반적인 승마용 말이었으면 놀라서 뒤죽박죽 뒤엉켜 난리가 났을 터였다.
요동치던 말안장 위가 안정되자 이도원은 호흡을 끌어올리며 외쳤다.
“전군-나를 따르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평원을 울렸다.
와아아아!
백 마리의 기마가 땅을 흔드는 소리. 그리고 달려가는 배우들의 함성소리가 한데 섞였다. 말과 한 몸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 이도원은 신이 났다.
“철통 같이 뭉쳐라! 나를 따르라!”
꽤 먼 거리의 적군 진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빠른 속도와 승마감을 즐기려던 이도원이 천천히 멈췄다. 기마병 역할의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확성기에서 컷 사인이 들려왔다.
“컷! 오케이!”
단번에 오케이가 났다. 다행히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가슴을 졸이던 스태프들이 박수를 쳤다.
정윤욱 감독은 가슴을 쓸며 촬영을 속개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그는 거듭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기마병 역할의 배우들은 모두 액션배우들을 썼고, 적군 진영은 갑옷을 입힌 인형으로 대체했지만, 그래도 결코 안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 액션 씬이었고 동작이 커지면 자칫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양측 진영의 군사들이 충돌하는 장면을 담아야 했다.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주의하고, 엔지를 겁내지 마십시오.”
단단히 주의를 준 정윤욱 감독이 지시했다.
“배우들은 흰색 줄을 그어놓은 곳에 서세요.”
그곳이 출발선이었다. 이제 원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일만 남았다.
정윤욱 감독이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지시했다.
“레디-!”
그들은 눈짓이나 고갯짓으로 신호를 주고받았다.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정윤욱 감독이 외쳤다.
“액션!”
백 마리의 기마가 다시 돌진했다.
와아아아아-!
이도원이 모든 함성을 뒤덮는 발성을 냈다.
“검을 뽑아라! 적들을 쓸어버려라-!”
배우들이 말안장에 달린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그들은 그대로 인형을 후려치며 지나쳤다. 동시에 모든 인형들이 무차별적으로 쓰러졌다. 인간의 근육과 고무줄로 설계되어 있는 인형들은 실감나게 넘어지고 고꾸라졌다.
한편 이도원은 자신의 검에 맞고 쓰러지는 인형을 보며 저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엄청 리얼한데?’
일대는 폭풍이 지나간 듯 먼지구름에 휩싸였다.
정윤욱 감독이 확성기를 통해 사인했다.
“컷. 오케이! 배우들 다시 원위치로 집결해주세요.”
흙먼지가 날리자 눈을 찌푸리던 배우들은 일사분란하게 지시에 따랐다. 그들이 모여들자 정윤욱 감독이 입을 열었다.
“영화로 보면 한 장면에 불과하지만 어려운 부분은 지금부터입니다. 배우들의 액션을 하나하나 딸 겁니다.”
스태프들이 너도나도 외쳤다.
“시체놀이 시작이다!”
“시체놀이 시작!”
보조출연자들이 무더기로 몰려나가 땅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지만 웃고 떠드는 것도 잠깐이었다.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누인 이들은 바로 얼굴을 찌푸리는 변덕을 보여줬다.
진풍경을 바라보던 정윤욱 감독은 이도원을 따로 손짓해 불렀다.
“액션연기를 보일 때가 왔다. 배우들과 합 맞춘 건 잊지 않고 있지?”
이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술감독 임천수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충고했다.
“액션연기 전에 낙마 말입니다. 반복해서 쓰러지면 마체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기회는 단 세 번뿐입니다. 리허설을 할 수도 없습니다. 지난 기간 동안 무수히 낙마 연습을 했었죠? 잘 알겠지만, 자칫하면 다칩니다.”
낙마 사고로 다친 배우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액션연기를 직접 하겠다고 자처한 이도원이었지만 낙마에 관한 것까진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정윤욱 감독의 바람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장면은 모두에게 부담인 것이다.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도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연기란 두려움과 즐거움을 반반 씩 갖고 간다. 두려움을 피하고자 즐거움을 포기하는 사람이라면 연기를 하면 안 된다.
‘무조건 한다. 그리고 해낸다.’
이도원은 속으로 최면을 걸며 공포심을 내쫓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정윤욱 감독이 말했다.
“액션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유일하게 주춤거리던 게 낙마였어. 엔지 세 번이면 촬영은 내일로 미뤄진다.”
정윤욱 감독은 촬영 전부터 이 장면만큼은 대역을 쓰지 않겠다고 못 박았었다. 이도원이 낙마하는 순간의 관객들도 아찔한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가까이서 촬영할 계획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조심해서 무사히 끝낸다.’
이도원은 속으로 다짐하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오준식은 못내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이도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꼭 멋지게 보여줘. 지금까지처럼.”
“내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다들 너무 비장한데?”
이도원이 씨익 웃으며 말에 올라서 갈기를 쓸었다.
“잘 부탁한다.”
중얼거린 이도원이 낙마하는 위치로 빠르게 달려갔다.
뒷모습을 바라보던 임천수가 물었다.
“괜찮을까요? 연습 때도 계속 헤맸는데.”
정윤욱 감독은 편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것 봐. 승마 배운지 얼마나 됐다고 지금은 자유자재로 멈추고 서고 달리고 다 하잖아? 잘 할 거야.”
그들이 뭐라 하든 오준식만은 속이 타들어갔다.
‘뭔가 등 떠밀리는 느낌인데.’
한편 대기하고 있는 액션배우들은 곧 창을 내질러서 이도원을 낙마시키고 공격할 예정이었다. 이도원은 그들과 인사를 나누더니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말갈기를 쓸었다. 이윽고 이도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정윤욱 감독이 싸인을 주었다.
“레디-액션!”
이도원이 오십 미터 쯤 떨어진 액션배우들을 향해 달렸다. 이내 그가 매트리스 안으로 들어가자, 상대 액션배우 중 하나가 창을 내질렀다.
리듬을 맞춘 이도원은 상체를 이용해 고삐를 왼쪽으로 틀었다. 훈련된 말에게 주는 신호였다.
히히히힝-!
말이 앞발을 번쩍 들더니 왼쪽으로 쓰러졌다. 이도원은 넘어지는 반동으로 안장에서 벗어나며 몸을 한 바퀴 굴렸다.
‘성공!’
하지만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이도원은 자신에게 향하는 공격을 보지도 않고 정해진 동선과 감각에 몸을 맡겼다. 순간 어깨를 아슬아슬하게 빗나간 상대방의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퍽!
피했다 싶은 순간 쉬지 않고 창이 날아들었다.
이도원은 옆구리로 창대를 붙잡으며 검을 휘둘렀다.
“크아악!”
창을 내지른 액션배우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이도원은 다시 땅을 굴렀다. 동시에 다른 액션배우가 휘두른 검이 볼을 스치며 땅을 쳤다.
“후-.”
이도원은 날숨을 뱉으며 벌떡 일어나 달려들었다. 그는 액션배우를 붙잡고 쓰러지며 흙바닥을 뒹굴었다.
그때 사고가 터졌다. 흥분한 액션배우가 무심코 팔을 휘둘렀고, 이도원이 그대로 얻어맞은 것이다.
“큭!”
입술이 터진 듯 했다. 침에 비릿한 피 냄새가 뒤섞였다.
예정에 없던 부상이었다.
‘이대로 엔지를 낼 순 없다.’
이도원은 그대로 밀어붙이는 쪽을 택했다.
‘동선이 엉켰다. 최대한 단순한 동작으로 원래 흐름을 되찾는다.’
계획된 동선으로 돌려놔야 했다. 엔지인 줄 알고 그냥 일어나려는 액션배우가 보였다. 그 모습을 포착한 이도원은 액션배우를 막기 위해 쓰러진 상태에서 냅다 발로 걷어찼다.
퍽!
배를 얻어맞은 액션배우가 몸을 비틀거렸다. 얼굴에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도원은 멈추지 않고 자세를 낮추며 발목을 베는 척 시늉했다. 그 동작을 보고 촬영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액션배우가 몸을 한쪽으로 무너트렸다.
“큭.”
액션배우는 볼품없이 넘어졌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호흡이 맞아떨어지자 이도원은 희열을 느꼈다. 그는 그대로 액션배우의 가슴팍에 올라타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딱 거기까지 했을 때 비로소 정윤욱 감독의 사인이 들려왔다.
“컷. 모니터링 하세요!”
이도원은 손을 뻗어 액션배우를 일으켜주었다.
“죄송합니다.”
액션배우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도원 씨도 입술 터졌는데요. 좋은 애드리브였습니다. 긴박한 상황에 그런 판단을 하다니, 연기하면서 굉장히 빠져드는 타입인가 봅니다.”
다른 액션배우도 벌떡 일어나 갑옷을 툭툭 털며 말했다.
“전 꼼짝없이 엔지 난 줄 알았습니다.”
이도원은 살아난 액션배우들과 함께 정윤욱 감독이 있는 곳까지 갔다.
정윤욱 감독은 턱을 괴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잘 나오긴 했는데. 카메라가 못 따라간 게 아쉬워. 배우들의 표정까지 땄으면 더 좋았을 텐데.”
모니터에선 꽤나 자연스러운 동작들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정작 연기를 펼친 이도원이나 액션배우들이 기대하던 것 보단 많이 약했다.
‘아쉽지만…….’
이도원은 미련을 지우고 말했다.
“한 번 더 가는 게 낫겠는데요.”
오준식이 질색하며 귀에다 속삭였다.
“낙마 장면을 또 하겠다고? 보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
이도원은 그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답했다.
“미안, 미안. 그래도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해야지.”
확고한 목소리로 말한 이도원이 정윤욱 감독에게 들리지 않도록 덧붙였다.
“내가 유태일 감독님이랑 작업하면서 배운 게 그거야.”
연출자는 배우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우는 감독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함께 작업하는 동료의 입장에서 서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왔을 때 오케이 컷으로 결정하는 것.
이도원은 기본에 충실할 생각이었다.
‘작품에 대한 욕심이 있는 감독과 배우가 만났을 때 비로소 좋은 작품이 나온다. 내 작품이라는 자부심과 애정이 있는 구성원들로 말미암아 현장 분위기가 결정된다. 이 바닥에서 적당히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어느새 영화에 대한 배우관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었다. 확고한 의지가 담긴 이도원을 보며 액션배우 누군가는 반성하고,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다.
‘적당히 만족하고 끝내려고 했던 내가 안일했구나.’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또 하자고? 왜 그걸 혼자 정해? 지는 얼굴 나온다, 이건가?’
또 일각에선 이 상황을 흥미로워하는 선배들이 있었다.
바로 ‘왕세자’ 역할의 정성우.
그리고 ‘왕’ 역할의 안유성이었다.
“선생님. 저 친구 어떠세요?”
“연기도 잘하고, 욕심도 있고, 의지도 강하고.”
간단히 평한 안유성이 덧붙였다.
“잘 될 것 같네. 자네가 보기에는 어떤가?”
“제가 뭘 알겠습니까마는…….”
정성우가 진한 미소를 그렸다.
“활력 넘치는 촬영이 될 것 같다는 정도의 예감은 있습니다. 지금 의욕이 많이 떨어져 보이는 윤지민에게도 자극이 될 것 같고요.”
그 말에 안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윤지민, 그 친구… 요새 많이 심란해 보이더군. 신인 땐 안 그랬는데 말이야. 자네랑 둘 중 누가 선배지?”
“예, 선생님. 제가 조금 더 일찍 데뷔했습니다.”
정성우의 대답을 들은 안유성이 말했다.
“가장 많은 분량을 함께하는 자네가 컨트롤을 좀 해줘야겠어. 저 이도원이란 친구는 존재 자체만으로 자극이 될 것 같고.”
안유성의 눈빛이 깊어졌다. 이 바닥 생활만 오십 년 가까이 됐다. 그만하면 구태여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훤히 다 보이는 나이다. 또 그만큼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애매해지는 시기였다.
‘정 감독이랑 잘 풀었으면 좋겠는 걸.’
물론 영화 한편의 흥행 성적이 안유성에게 영향을 주진 않는다. 그러나 매번 영화를 찍을 때마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똑같았다.
안유성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그가 망설이던 속내를 털어놨다.
“소문에 의하면 윤지민 그 친구 뱃속에 아이가 있다는 설이 있더군. 아직 아무것도 밝혀진 건 없지만 말이야. 촬영기간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할 자네가 맞춰주어야 해. 결혼도 앞두고 있고, 굉장히 예민한 시기지 않나.”
< Action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