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99화 (99/178)

< Action (1) >

<투사> 크랭크 인을 앞두고 배우들은 승마와 액션연기에 대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트레이닝 장소는 경기도 파주 탄현면 헤이리마을에 소재한 대한액션스쿨.

정윤욱 감독과 무술감독 임천수가 액션배우들의 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불쑥, 곁에 있던 이도원이 말했다.

“감독님.”

정윤욱의 고개가 돌아갔다.

“응?”

“액션 장면도 직접 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정윤욱 감독은 미간을 찌푸렸다.

“크랭크 인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해. 부상 위험도 있고. 지금도 충분히 편집 가능한 분량을 직접 소화하는 셈이야. 굳이 무리할 필요 없어.”

이도원은 그 말을 수긍하지 않았다. 그가 정윤욱 감독에게 제안을 한 이유는 스스로 액션 연기를 소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액션배우들 보단 부족해도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도원이 고집을 부렸다.

그러자 계획을 짤 때부터 반대했던 무술감독 임천수가 고개를 내저었다.

“보기에는 쉬워보일지 몰라도 매우 위험한 작업입니다. 액션배우들이 괜히 액션배우가 아니지요. 지금은 다들 부드러운 매트 위에서 연습을 하고 있지만, 실전으로 들어가면 거친 흙바닥에서 연기를 펼쳐야 해요. 더구나 자연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가깝게 붙어서 합을 맞춰야합니다.”

“그럼 한 번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죠.”

이도원이 끝끝내 고집을 꺾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무술감독은 배우의 역량을 계산에 넣지 않고 있다.’

임천수는 촬영 전부터 스스로 기준으로 정한 액션 이상은 일반배우가 소화할 수 없다고 단정지었다. 본인도 액션스쿨 출신인 임천수는 액션배우라는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인물이었다. 그건 말 몇 마디만 해봐도 알 수 있었다. 임천수는 말끝 마다 ‘일반배우’라고 지칭하며 액션배우와 호칭부터 차이를 두었던 것이다. 그 점을 잘 알고 있는 정윤욱 감독이 이도원의 제안을 거들었다.

“그렇게 합시다. 임 감독.”

“…알겠습니다.”

임천수는 마지못해 불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편 이도원은 얼른 준비를 했다. 액션배우의 도움으로 호구를 입은 뒤 팔과 다리에 보호대를 차고 소품용 검을 들었다.

“후-.”

절로 긴장이 되었다.

마치 스파링을 하기 전과 흡사했다.

이도원은 이런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악마의 재능> 촬영 때 무술감독과 여러 번 합을 맞췄었지.’

카메라의 시점전환이 이루어지면서 관객들은 자세히 알 수 없었겠지만, 촬영당시 유태일 감독은 모든 액션 장면에서 이도원 스스로 소화할 것을 주문했다. 지금 이도원의 자신감 속에는 그 당시의 고된 훈련들이 내포돼 있었다.

반면 정윤욱 감독과 임천수는 <악마의 재능>을 모니터링 하며, 설마 이도원이 모든 액션을 소화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연출이었던 유태일 감독의 촬영기법에만 감탄한 상태였다.

“화이팅!”

보호대 착용을 도와준 액션배우가 이도원의 호구를 툭 쳤다. 등 떠밀린 이도원이 장내로 들어서자 액션배우들이 바짝 긴장했다. 혹시나 이도원이 다칠까봐 절로 민감해지는 것이다.

이도원은 아랑곳 않고 팔다리를 쭉쭉 늘여 몸을 푼 뒤에 넓게 퍼진 액션배우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도원 하나를 장정 열 명이 포위한 그림이 만들어졌다.

“일단 슬로모션으로 맞춰보겠습니다-.”

최고참 액션배우가 말하며 천천히 들어갔다.

이도원은 일전에 보고 있던 장면을 생생히 기억하며 자신의 대역이 했던 동선을 그대로 따라갔다. 자연스러운 모방을 본 액션배우들이 저마다 조금씩 놀랐다.

‘기억력 좋은데?’

‘움직임도 자연스러워.’

하지만 그뿐이었다. 슬로 모션쯤이야 동작만 외면 어린아이도 합을 맞출 수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방금 아주 좋았습니다. 그대로 하시면 되요. 도원 씨의 움직임에 저희가 호흡을 맞출 겁니다. 좀 더 기민하게 움직이면서 방금처럼 자연스럽다면 좋은 롱 테이크가 나올 겁니다.”

이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참 액션배우는 바깥을 보며 외쳤다.

“종 울려!”

다들 자세를 낮추며 달려들 준비를 했다.

이도원은 우두커니 서서 검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정적이 흐르고, 딸랑- 종이 울렸다. 순간 사방팔방에서 함성을 지르며 열 명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이도원은 그들이 선 포지션에 의해 발생하는 약간의 시차를 이용해 한 명 씩 때려눕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윽고 상대 한 명이 코앞까지 들이닥쳤을 때, 이도원이 정해진 동선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피하고 찌른다.’

액션배우가 내지른 검이 가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는 순간 이도원의 검이 그의 옆구리를 두 번 찔렀다. 그러자 검에 찔린 액션배우가 무너졌다.

이도원이 연달아 몸을 돌리며 검을 횡으로 휘둘렀다. 그 일격에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던 또 한 명의 액션배우가 쓰러졌다.

둘을 해치운 이도원은 망설이지 않고 땅을 굴렀다. 동시에 머리 위로 액션배우들이 휘두른 검이 지나갔다. 동시에 이도원이 눈에 보이는 발목을 검으로 찔렀다.

퍽!

이도원은 비명을 주저앉는 액션배우의 호구를 잡아 던졌다.

그때 다른 액션배우 하나가 쉴 틈 없이 달려들며 기합과 함께 검을 내리 쳤다. 한껏 자세를 낮추어 피해낸 이도원이 액션배우의 손목을 잡아 비틀며 배를 찌르고 등 뒤로 돌아갔다.

“끄윽.”

액션배우가 신음을 뱉었다.

액션배우를 앞세운 이도원은 뒷걸음질을 치며 날카로운 눈빛을 했다. 그가 정면에 흉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섯 명을 노려보며 뒷걸음질 쳤다.

“후우-.”

한숨 돌린 이도원은 인질로 잡은 액션배우를 밀쳤다. 떠밀린 배우가 검을 겨누고 있던 배우와 뒤엉켰다.

그들이 당황한 표정연기를 하는 사이.

이도원이 재빠르게 접근해 검을 휘둘렀다. 한바탕 칼부림에 액션배우 다섯 명이 쓰러지고 겨우 살아남은 한 사람만이 이도원의 옆구리를 벴다.

“큭.”

이도원은 허리를 잡는 척하며 균형을 무너트렸다.

한쪽 다리를 절며 사정권을 벗어난 이도원이 몸을 돌렸다.

한편 지켜보고 있던 정윤욱 감독과 임천수는 엔지를 외치려다 멈췄다.

‘애드리브?’

원래는 부상없이 승리하는 장면이었다. 보통 같으면 찔려도 모른 척 연기를 할 텐데 이도원은 실수를 애드리브로 승화시킨 것이다.

연기를 끊는 신호가 없자 액션배우는 짐짓 두려움에 절은 표정연기를 했다. 그는 이도원 주위를 맴돌며 물 흐르듯 장면을 이어갔다.

“으아아아!”

유일하게 살아남은 액션배우가 달려들었다. 혼신의 힘이 담긴 액션배우의 일격을 어깨 아래로 흘려 보낸 이도원은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털썩.

마지막 액션배우가 쓰러졌다. 모든 연기가 끝나자 딸랑- 종이 울렸다.

시체처럼 널브러졌던 열 명의 액션배우들이 좀비처럼 일어났다.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이도원은 웃음을 터트릴 뻔 했다.

“수고했습니다. 직접 한 번 보시죠.”

최고참 액션배우는 빙긋 웃으며 한쪽을 가리켰다. 그쪽에는 아직 몇 년차 안 된 액션스쿨 훈련생이 방금 전 장면을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눈길을 받고 카메라에서 눈을 뗀 훈련생이 활짝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정윤욱 감독과 임천수는 이도원이 직접 액션장면을 모두 소화할 수 있도록 승낙했다. 직접 보기도 했을 뿐더러 함께 합을 맞춘 액션배우들이 모두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이도원은 밴을 타고 인근 승마장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정윤욱 감독은 자가 차량을 이용했으며 액션스쿨은 봉고차를 타고 뒤따랐다.

이도원은 차에 올라서야 몸이 욱신거렸다.

“보호구를 차도 아프네.”

말이 소품용 검이지 쇠처럼 단단했다. 소품도 그렇고 동작자체가 <악마의 재능> 촬영 때보다 훨씬 고강도의 액션이었다. 지금도 피하지 못하고 가격당한 곳에 벌건 자국이 남은 게, 보호구 없이 촬영에 임하다 잘못 맞으면 퉁퉁 붓게 될 것만 같았다.

‘서로 합을 맞춘 부분은 힘 조절을 하기 때문에 상관없어. 문제는 실수로 못 피했을 때다.’

이도원은 내심 경각심을 가졌다. 실수가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은 것이다.

오준식이 그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아? 근데 왜 네가 직접 액션연기를 해? 아까 잠깐 자리 비운 사이에 직접 호구 입고 들어간 것 보고 심장 멎는 줄 알았다.”

계약조건을 보면 대부분의 실질적인 액션연기는 대역배우가 치른다고 되어있었다. 이도원이 그 점에 대해 해명했다.

“직접하는 게 더 잘 나올 것 같아서. 내가 부탁했어. 아마 곧 계약조항 변경 요청이 갈 거야.”

오준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 그러다 몸상하고 후회하면 늦는다. 뮤지컬까지 있는데 다치면 어떡하게?”

“교통사고 날 게 무서워서 인도로만 다닐 수는 없잖아? 다들 실력 있는 액션배우들이야. 무단횡단 하는 수준은 아니니까 걱정 마라. 위험하면 내가 먼저 빠질게.”

이도원이 간단히 일축했다.

나직이 한숨을 쉰 오준식이 대답했다.

“많은 배우들이 괜히 위험한 장면에서 연기 욕심을 내는 건 아니겠지만… 좋은 장면 만들려다가 골로 가는 수가 있으니까 조심해. 넌 홀몸이 아니잖아.”

“누가 들으면 애 딸린 유부남인 줄 알겠다.”

이도원은 피식 웃으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들은 이야기를 다 나눌 때 쯤 그들은 승마장에 도착했다.

마굿간의 말똥 냄새가 입구까지 퍼져있었다.

오준식이 코를 킁킁대며 말했다.

“아. 건강해지는 냄새.”

뒤를 이어 정윤욱 감독과 액션스쿨 배우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승마장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무술감독 임천수가 이도원을 불러놓고 승마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말이 편하게 걷고 뛰게 양보해주는 것이 기승자의 역할입니다. 교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기억하세요. 말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타는 일반적인 탈 것들과는 달라요. 계속 신호를 주고, 반응을 살펴서 움직여야 합니다. 승마는 크게 평보, 속보, 구보로 나뉩니다. 깊이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지만, 도원 씨는 영화촬영을 위해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실용적인 방법들만 배우게 될 겁니다.”

이도원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이도원은 타임 슬립 전 틈틈이 승마를 배웠다.

그 덕에 사극에서 조연 자리를 따냈던 적도 있었다. 물론 전문적인 수준은 아니고 무난하게 움직이는 정도였지만 사극에서 승마가 가능한 배우와, 그렇지 못한 배우는 섭외 대상에서 갈렸다.

‘주연이야 가르쳐서 태우지만.’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지났기 때문에 이도원은 임천수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승마에서 사람과 말이 교감하며 친해지는 과정은 배우가 배역과 친해지는 일이나, 상대역과 호흡을 주고받는 일과도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이도원이 교육을 받는 동안 오준식은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액션도 직접 소화하고, 말도 직접 타고.’

그는 매니저가 되기 전 여러 매체들에서 사극액션연기를 하면서 다치는 배우들을 여럿 보고 들어왔다. 그런데 당장 담당배우가 사극액션을 소화해야하는 상황이니 매니저로서 불안한 심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건 무슨, 내가 애인도 아니고…….”

동성의 안전에 이토록 신경을 써 본 기억이 없다.

구시렁댄 오준식은 고개를 저었다.

그때 헬맷과 보호대를 착용한 이도원이 승마장으로 나서고 있었다.

< Action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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