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세, 양날의 칼 (8) >
뜻밖의 유명세는 부담이 돼 이도원을 짓눌렀다. 그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스타의 숙명이었다.
한편 이도원은 무술감독과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무술감독이 그를 보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반응이나 습득이 굉장히 빠릅니다. 본인이 워낙 열심히 하고요.”
유태일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영화가 주는 전달력이 사실적인 연출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대역은 쓰지 않기로 했다. 모든 액션 연기를 배우들이 직접 소화해야 하는 셈이다.
“훅, 훅-.”
이도원은 지난 한 달 동안 무술감독과 수도 없이 연습해 왔던 움직임을 해보았다. 상대의 뒤로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이며 손목시계의 기어(조절나사)와 연결된 줄로 상대의 목을 조르는 동작이었다.
트레이닝 시간만이 아니었다. 이도원은 손목시계를 개조한 이 소품을 항상 차고 다니며 연습을 했다. 시계에 연결된 줄은 실제로 위험하지 않았지만 영화상에서는 목의 경동맥을 자를 만큼 날카롭다는 설정이었다.
오준식은 이도원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요즘 밥도 잘 못 먹고, 살도 많이 빠진 것 같은데…….’
이도원은 한 달 새 얼굴이 핼쑥해졌다. 원래도 약간 마른 감이 있는 체형이었기 때문에 지금와선 퀭하다는 느낌마저 주었다. 여기서 문제는 먹는 식사량 역시 부쩍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말수도 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통 말을 안 하니 이유를 알 수가 있나.’
오준식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도원은 연습에 집중했다.
두 시간 뒤 무술감독에게 트레이닝을 받는 시간이 끝났다.
두 사람은 밴을 타고 움직였다.
그때 불쑥 이도원이 말했다.
“오늘은 피곤한데, 약속된 스케줄 없으면 들어갈게.”
“요새 뭘 하고 다니는 거야?”
이런 일이 잦았기에 답답해진 오준식이 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이도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체…….”
말끝을 흐린 오준식은 이도원을 집 근처에 내려주었다.
이도원이 차문을 닫으며 짤막하게 말했다.
“고마워.”
오준식을 보낸 이도원은 막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방향을 꺾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예전 연습실로 이용했던 컨테이너박스로 갔다.
끼이이이-.
문이 열리자 컨테이너박스 안의 전경이 드러났다.
곳곳에는 누가 봐도 핏자국으로 오해할 만한 자국이 나있었다. 뿐만아니라 사람모형들도 이곳저곳 쓰러져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살해당한 사람들의 시체구덩이라고 착각할 만큼 사실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이도원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발을 들여놨다.
끼이이- 쿵.
문이 닫혔다.
이도원이 저벅저벅 걸어가 사람 모형을 하나 씩 일으켜 세웠다. 다섯 개의 모형을 모두 일으켜 세운 이도원은 후우- 나직이 숨을 뱉고, 오늘 배웠던 동작을 시작했다.
다른 모형들 틈으로 은밀하게 접근한 이도원은 시계 줄을 늘어트리며 표적의 모형 뒤로 돌아갔다. 목을 감아 경동맥을 끊을 때까지 삼 초가 채 안 걸렸다.
파아앗!
약한 자극에도 찢어진 모형이 색소를 뿜었다. 분수처럼 뿜어진 색소가 벽면을 흠뻑 적셨지만 이도원은 이미 색소가 튀지 않는 곳까지 몸을 피한 후였다.
“헉, 헉.”
심박 수는 가빠졌고 격하게 숨이 차올랐다.
괴이한 감정이 이도원의 머릿속을 간질였다.
미처 느끼지 못했지만 입 꼬리 또한 비틀려 올라가 있었다.
이도원은 멈추지 않고 한쪽에 버려져있는 식칼을 손에 잡았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투명비닐을 뒤집어쓰고 모형을 푹 푹 푹- 찔렀다.
피가 튀었다.
뼈나 근육은 실제보다 무른 재질이었지만 정교하게 제작된 모형이었다. 손으로 사람을 찌르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비릿한 피냄새까지 풍기진 않지만 상상력과 행위가 더해지자 역한 느낌이 들었다.
“우웨웩!”
이도원은 비정상과 정상의 경계의 외줄에서 곤두박질치며 헛구역질을 했다. 뜨거운 신물이 식도를 타고 역류해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결국 이도원은 식칼을 집어던지며 주저앉았다.
휴대폰 불빛을 비추자 온통 피투성이 시체들이 널브러진 것만 같은 컨테이너 박스 안 전경이 드러났다.
추운 날씨에 입김이 나왔고, 끈적이는 핏빛 색소의 느낌이 질펀하게 전해졌다.
‘씨발.’
이도원은 속으로 욕을 질겅질겅 씹었다.
아무도 없는 휑한 공사장 부지의 컨테이너 박스.
그곳에서 사람처럼 피까지 흘리는 모형들과 밤새도록 함께 갇혀있는 기분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이러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은데.’
극기 훈련과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짓을 꼭 해야만 할까?
뭐하고 있나 싶기도 했고, 미친 짓 같기도 했다.
머릿속에 드는 여러 잡음과는 반대로 이도원은 자신이 집어던진 식칼이 있는 곳까지 갔다.
*
2월 27일 <시간아! 돌아와> 마지막 회는 평균 15.4%의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케이블드라마의 최고기록을 깨며 신기록을 갱신한 것이다.
대성공도 그런 대성공이 없었다.
지난 20일, 16회차가 나갔을 당시부터 이미 마지막 촬영까지 끝난 상태였다. 배우들은 촬영이 마무리되자 한 층 널널해진 스케줄을 소화하며 최종회까지 여유를 즐겼다.
원래 드라마 하나를 끝내면 개운한 성취감과 함께 힘이 쭉 빠지기 마련이지만 이도원은 그럴 수 없었다.
<악마의 재능> 촬영현장으로 가는 밴 안에서 오준식이 물었다.
“이번 달 말일에 종방연 한다는데 참석할 거야?”
“시간만 맞으면.”
이도원은 대본에 고개를 처박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오준식은 백미러로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배우나 스태프들이 널 보면 깜짝 놀랄 거다. 그렇잖아도 마지막 촬영 때부터 분위기가 좀 달라진 것 같다는 말이 나왔어. <악마의 재능> 배역에 몰입하는 것도 좋지만 <시간아! 돌아와> 식구들도 생각 좀 해줘. 그 사람들, 네 걱정 많이 하더라. 물론 나도 그렇고.”
“알겠다. 명심할게.”
이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신도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욕심을 멈출 수 없기에 인물대입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이도원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창한 하늘 아래 잿빛 아스팔트가 펼쳐져 있었다.
‘윤도강 보다 내가 더 크다.’
‘윤도강’은 이도원이 <악마의 재능>에서 맡은 배역의 이름이다.
‘윤도강’이 아스팔트라면 이도원은 아스팔트를 내리쬐는 하늘이다.
결코 캐릭터에 잡아먹히지 않겠다.
이도원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도원과 오준식이 동상이몽에 빠져있는 사이 밴은 경기도의 낡은 창고 앞에 도착했다. 영화 내용으로 봤을 때 이도원이 증거인멸을 하는 과정에서 이용하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먼저 도착한 스태프들이 창고를 점령한 뒤 촬영 장비를 들여놓고 있었다.
이도원은 차에서 내려 스태프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몇 차례 인사를 거듭하며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유태일 감독이 현장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는 이도원을 발견하고 말을 붙였다.
“일찍 왔구나. 마침 예정보다 빨리 세팅이 됐다. 생각했던 것보다 먼저 끝나겠어.”
“다행이네요. 그럼 준비하고 나오겠습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이도원은 분장 차로 가서 앉았다.
거울에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 그는 점점 살인범으로서의 ‘윤도강’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새까만 머리칼을 헝클이자 창백한 얼굴이 대조됐다.
입술은 당장에라도 피를 빨아들일 듯 붉었고, 눈동자는 무저갱 같이 깊었다.
“후.”
이도원은 심호흡을 했다.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도 남을 보는듯했기 때문이다. 의식이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때 문을 연 촬영 스태프가 말했다.
“분장 마치는 대로 바로 촬영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답한 이도원은 분장을 마치는 대로 분장 차에서 나갔다.
이도원에게 살해당하는 역할의 단역배우가 웃옷을 벗고 포박된 채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추웠기에 이도원은 서둘러 감정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보던 유태일 감독이 지시했다.
“풀 샷, 롱 테이크로 갑니다. 배우들 레디.”
확성기에서 신호가 떨어졌다.
“액션!”
이도원은 단역배우를 소름끼칠 만큼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 봤다.
잠시 서있던 그는 한쪽 모퉁이에서 철제의자를 들고 와 앉았다.
이도원이 남자를 마주보며 말했다.
“내가 일을 지저분하게 벌이는 스타일이 아닌데 말이야. 보통 먹이가 자신이 표적이 되었다는 걸 알고 공포에 떨다가 두려움이 정점에 이르러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 순간… 잡아먹거든. 그게 사냥의 맛이지.”
그는 덤덤하게 중얼거리며 모형 칼을 꺼냈다.
시체 구덩이 같은 컨테이너 박스 안에 갇혀 연습을 하고 잠을 청하던 이도원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단역배우가 몸을 흔들며 발악했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있고 그 위로 청 테이프가 겹겹이 붙어있었다.
“으읍, 읍! 읍!”
이도원의 눈빛이 번들거렸다.
“지랄하네.”
그는 소름끼치도록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내가 하나 말해줄까? 네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하나는 ‘요리’가 되는 것. 난 개인적으로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만… 넌 좋아할지 모르겠단 말이야. 하지만 뭐, 그것도 나쁘지 않아. 요 근래 꼬리가 붙을까봐 느긋하게 죽인 적이 없었는데… 사실 그게 별미지.
나한테 즐거움을 준 대가로 너와 관계된 사람들을 찾아가서 죽일 거야.”
지나치게 태연한 연기.
혹시 진짜 사이코패스가 정체를 숨기고 배우 활동을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만큼 섬득했다.
이도원을 상대하는 단역배우는 무의식중에 연기가 아닌 진짜 공포를 느꼈다.
“으으으읍!”
발악하는 단역배우를 가만히 지켜보던 이도원이 짤막하게 물었다.
“입부터 도려낼까?”
단역배우의 신음소리가 뚝 끊겼다.
조용해진 뒤 이도원이 말을 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내가 원하는 걸 말하고 그냥 죽는 거야.”
이도원이 식칼을 단역배우의 얼굴에 들이밀더니 입에 물린 재갈과 청 테이프를 잡아다 끊었다. 재갈과 청 테이프가 약한 재질일 뿐 소품의 칼날에 끊긴 건 아니었다.
“누가 날 미행하라고 시켰어?”
주변 스태프들의 표정까지 굳을 만큼 거북한 음성.
스태프들조차 그럴진대 단역배우는 팔에 닭살이 돋을 만큼 소름끼치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이도원의 입에서 대사가 튀어나올 때마다 흠칫흠칫했다.
‘저 새낀 실제로도 좀 이상한 새끼일 거야.’
제정신으로 저토록 사실적인 느낌을 전달할 수는 없다.
단역배우는 스스로도 연기를 하고 있는 건지 아리송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대사를 쳤다.
“…정태가 시켰다.”
“아아. 오정태?”
물어본 이도원이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원래 귀찮게 일을 벌이는 걸 안 좋아하는데… 네가 살 수 있는 제안을 하나 하지.”
“마, 말씀하시면 뭐든 하겠습니다.”
단역배우는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덜덜 떠는 연기나 이도원을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이도원은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
“급했군, 급했어!”
그는 낄낄대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난 이 길로 네가 사는 곳으로 갈 생각이야.”
이도원은 주머니에서 자신의 지갑을 꺼내 주민등록증을 빼들고 주소지를 고쳐 읽었다.
“서울시 성북구 화랑로 243 영신아파트 1802호…….”
“약속했잖습니까? 가족들은 손대지 않기로…!”
“그래, 내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면 가족들과 넌 오순도순 살 수 있게 될 거야. 내가 시키면 뭐든 하겠다고 했지? 난 네 가족들에게 찾아가서 네 위치를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다. 그럼 넌 풀려날 거고 다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어.”
“…그게 뭡니까?”
“첫째는 날 신고해서 가족들을 모두 죽이는 것. 그것도 나름대로 재밌을 거야. 만약 신고한다고 해도 네가 보는 건 내가 떠나고 남겨진 가족들의 시신들뿐이겠지만.”
이도원은 시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또 하나는 오정태의 집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다가 놈을 죽이는 거다. 오정태만 죽이면 넌 가족들과 함께 한국을 떠날 수 있어. 알다시피 난 형사고 살인청부업을 함께 하지. 도피 작업 정도는 얼마든 해줄 수 있다는 뜻이야.”
씬이 끝났고 유태일 감독이 사인을 보냈다.
“컷, 오케이!”
어려운 장면에서 롱 테이크였음에도 단번에 오케이 받았다.
사실 이도원이 연기하는 ‘윤도강’의 분량 중 어렵지 않은 장면은 없었다.
유태일 감독은 촬영 지시를 내렸다.
“장비 이동합니다.”
메인 카메라와 보조 카메라를 통해 찍은 씬을 다른 여러 각도에서 촬영할 차례였다.
지시를 내리고 방금 장면을 모니터링 하던 유태일 감독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도원은 보는 것만도 불쾌해지는 강렬한 존재감으로 모니터를 꽉 채우고 있었다. 폭발적인 연기력이 상대배우의 호흡을 이끌어냈다.
‘리딩 때와는 전혀 달라진 모습이야. 연기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 정말 살인이라도 하고 온 사람 같이.’
이도원은 야욕만 가득한 사이코패스 무명 배우가 직접 살인을 해보면서 연기력을 인정받는다는 소재의 매체들이 떠오를 만큼 사실적인 연기를 보여준 것이다.
방금 전까지 호연을 펼쳤던 이도원과 단역배우는 모니터 근처로 와서 함께 모니터링을 했다.
두 배우는 썩 마음에 드는지 표정이 밝았다.
이번 장면에 대해 유태일 감독이 짧게 평했다.
“이대로만 갑시다.”
< 유명세, 양날의 칼 (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