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세, 양날의 칼 (7) >
이도원은 피식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짬밥이 있는데.’
자신감을 품었지만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그를 보며 김수려가 다독였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해. 어차피 연기잖아?”
“네.”
이도원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때 정용주가 두 사람에게 말했다.
“배우들 위치. 스태프 세팅 완료 됐습니다.”
두 사람은 레스토랑에 마주 앉았다.
촛불과 요리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봤다.
마침내 정용주가 사인을 보냈다.
“레디- 액션!”
이도원은 빙긋 웃으며 마이 안주머니를 더듬었다.
김수려가 그를 보며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에요? 선물?”
물어본 그녀가 클러치를 열어 결혼기념일 선물을 꺼내 올려놨다.
“짜잔!”
김수려가 밝게 웃으며 오픈한 선물은 시계였다.
이도원은 주머니를 뒤지며 연신 찾는 척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는 듯 밝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잠깐 이리와 봐.”
“왜? 뭔데 그래요?”
김수려가 얼굴을 가져가자 이도원은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점점 딥 키스로 접어듦과 동시에 안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내 그녀의 목에 걸어주었다.
‘뭐야?’
너무도 능숙한 이도원의 리드에 김수려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당황한 바람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풉!”
이도원과 스태프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정용주가 장난을 쳤다.
“수려 씨,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야?”
“감독님!”
김수려가 빽 외쳤고 스태프들은 다시 한 번 웃었다.
키스신을 찍을 땐 대부분 배우들이 긴장하기 때문에 촬영 분위기를 풀기 마련이었다.
웃음바다가 잔잔해지자 정용주가 촬영을 재개했다.
“다시 준비해주세요.”
이도원이 김수려에게 여러 각도로 얼굴을 가져다대며 물었다. 촬영감독이 바짝 붙어서 지시를 내렸다. 바로 전 테이크에서 카메라 구도와 얼굴의 각도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요?”
이도원이 묻자 촬영감독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가만히 보고있던 민영기가 덧붙였다.
“도원이가 목걸이를 다 걸고 손을 내리는 것보다 수려 뒷목을 잡아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정용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놀렸다.
“해보셨나봐?”
다시 웃음이 터지고, 자세를 정했다.
이도원이 몇 번 시늉을 해본 뒤 고개를 끄덕이자 정용주가 신호를 보냈다.
“두 배우 키스하는 컷만 다시 갈게요. 레디- 액션!”
김수려가 다가오자 이도원은 그녀에게 목걸이를 둘러주고 키스를 했다. 이번에는 이도원도, 김수려도 눈을 감고 감정을 끌고 갔다.
잠시 시간이 지난 뒤 정용주가 외쳤다.
“오케이, 컷! 목걸이 해주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보지도 않고 잘 걸어줘.”
“많이 해봐서 그렇죠.”
민영기가 넬름 말을 받았다.
김수려는 웃으며 이도원의 입가를 손으로 닦아준 뒤 도로 앉았다.
“도원이 잘하는데요?”
그녀의 말에 모두가 떠들썩하게 웃었다.
이도원도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감이 죽지 않았나 보네요.”
“어머, 많이 해봤나봐?”
“비밀입니다.”
말한 이도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수려도 덩달아 일어나 모니터로 갔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키스신을 보며 얼굴이 화끈해졌다. 찍을 땐 미처 못느꼈는데 꽤 진한 장면이 연출됐다.
“인터넷에 또 한 번 난리가 나겠군.”
정용주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스캔들 안 터지게 조심하고. 아마 내 생각에 조만간 두 사람 세트로 CF 섭외제의 많이 들어올 거야.”
*
정용주의 말은 현실이 됐다.
2월 13일, 드라마 <시간아! 돌아와>는 15회 차까지 방송이 나간 상태였다. 시청률은 14%를 넘어서며 계속해 고공행진을 달리고 있었고, 광고 섭외제의가 줄을 이었다. 이번에는 지난번처럼 지면광고가 아닌 TV광고였다.
반면 영화 <악마의 재능>은 크랭크 인 날짜는 연기됐다. 여러 요건이 충족되어야만 하는 영화제작에선 비일비재한 일이었기 때문에 대수로울 건 없었다. 오히려 지금도 스케줄이 빡빡한 이도원의 입장에선 반길 일이었다.
오준식이 말했다.
“개런티 들으면 놀랠걸?”
“마음 단단히 먹었어. 얘기해봐.”
이도원은 가슴을 움켜쥐는 척하며 물었다.
오준식은 잠깐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2억.”
그는 보조석에 있던 태블릿을 건넸다.
이도원은 좀처럼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태블릿을 받아 기사를 읽었다.
[‘시간아! 돌아와’ 이도원, 쏟아지는 러브콜]
(서울 = OUS) 윤태원 기자 = <시간아! 돌아와>는 연일 시청률 상승 가도를 달리며 파죽지세로 ‘뜨고’ 있다.
이전까지 광고료 책정표에 이름조차 없었던 이도원은 이번 ‘시간아! 돌아와> 이후 ’대세 스타‘로 급부상했다. 현재 논의 중인 광고만 8~9개 된다는 풍문이다. 특히나 주인공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어 몸값은 1년 기준 약 2억 원대로 올랐으며, 차후 같은 품목의 경쟁사끼리 서로 이도원을 광고모델로 데려가기 위해 경쟁이 붙을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이도원의 몸값은 또 오르게 된다.
이도원과 백 프로덕션 입장에선 하이웨이 진입이겠지만 보이지 않게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제작사와 투자사의 표정은 썩 밝지 않다. 한두 달 만에 팬덤이 만들어진 이도원을 기용해 또 다른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경쟁 역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배우들의 출연료는 전적으로 시장이 판단해야 할 몫이다. 가끔 눈먼 돈이 떠도는 것처럼 보여도 연예계만큼 이익에 냉정한 동네도 드물다. 톱스타들에게 7억 원대의 몸값이 매겨지는 것도 그만큼의 상품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단숨에 떠오른 반짝 스타가 될지 롱런하는 배우가 될지, 이도원의 미래는 흥미진진하다.
[email protected]
기사를 모두 읽은 이도원이 물었다.
“이거 전부 사실이야? 광고제의만 여덟, 아홉 개?”
“그래. 믿기지 않지? 이해한다. 나도 안 믿기니까.”
“거 참.”
이도원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멍한 표정으로 창문을 봤다.
“그러니까 요 한 달 만에 내 몸값이 2억으로 뛰었다 이거지?”
“흐흐…….”
웃음을 흘리던 오준식이 빵 터져서 웃기 시작했다.
신들린 사람 같은 웃음에 이도원도 편승했다.
두 사람은 낄낄대며 환호를 함께 내질렀다.
어느 정도 진정된 오준식이 물었다.
“근데 그동안 왜 그렇게 무관심한 척 했던 거야? 이렇게 좋아할 거면서. 혼자 고고한 척, 선비처럼 폼을 잰 이유가 궁금합니다만?”
“준식아. 형이 한 마디 해줄게.”
이도원이 들뜬 기색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인생사란 게 말이야. 대부분 기대란 놈을 한가득 갖고 있으면 기대치만큼 결과가 안 나오는 법이야. 반대로 마음을 비우고 있으면 성과를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지.”
그는 말을 이었다.
“배우는 지금 이 순간을 사는 사람들이야. 연기란 걸 직업으로 택한 순간 미래를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게 내 개똥철학이거든. 무대에서, 현장에서, 삶조차도 지금 이 순간에 모든 걸 쏟아 붓고 즐기는 것. 난 그래서 연기가 좋다.”
“멋진 척 좀 했네.”
오준식의 말에 이도원이 시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항상 하지.”
*
김흥수 기자의 예상대로, 이도원은 광고를 찍으면서 또 몸값이 불어났다. 그의 승승장구로 인해 백 프로덕션도 급한 불을 끌 수 있게 되었다.
이상백은 사무실에서 이도원과 마주앉아 이전에 섭외가 들어왔던 작품들의 파일을 내려놨다.
이상백은 전보다 안색이 좋아져 있었다.
“이건 작년 말부터 네게 들어왔던 조건들이다. 함께 들어있는 서류는 새로 제시된 조건들이고. <시간아! 돌아와>가 터지기 전 긍정적으로 출연 이야기가 오갔던 작품들도 점프한 출연료 때문에 두 손 두 발 들고 네 뒷모습을 쓸쓸히 쳐다봐야 하는 상황이지.”
그는 시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한번 올라간 출연료는 웬만해선 내려가지 않아. 직장인들이야 해마다 인사고과로 연봉이 재조정되고, 연령과 직급이 높아질수록 월급이 줄어드는 임금 피크제의 테두리 안에서 살지만 배우는 아니지. 작품이 처참하게 망해도 출연료는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올라가는 기현상을 보인다.”
“그렇군요.”
이도원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상백이 덧붙였다.
“관건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건가, 이거야. 만약 네가 선택한 작품이 연달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면 제작사 측에서 기피하게 된다. 그럼 배우 쪽에서 먼저 자존심을 내려놓고 ‘네고 됩니다’라고 말하기 전까진 섭외가 들어오지 않아. 그런데 현재까진 네가 작품을 선택하고 있지. 전략기획팀에게 선택권을 넘기는 편이 어떻겠니?”
“아니요.”
이도원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전략기획팀에 의지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물론 속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이상백은 이도원이 뜨기 시작하자 공 든 탑이 무너질까 불안할 만도 했다. 이도원이 <시간아! 돌아와>를 선택했다지만 그 보다 이 바닥의 전문가들로 만든 전략기획팀이 더 신뢰가 갈 것이다.
‘조금 불쾌하시더라도, 강하게 거절해야 한다.’
이도원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그는 미래를 알고 있고, 이제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그 점을 활용해야 한다.
당연히 신인감독이 연출하는 영화보다 스타감독이 연출하는 영화 중에 흥행작이 많았다. 이제부터는 그런 대작들의 섭외가 줄을 이을 터였다. 정신 바짝 차리고, 될 만한 작품을 골라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곰곰이 생각하던 이도원이 대답했다.
“원래 계약대로 유지해주십시오.”
“도원아. 네가 우리 회사에 지원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부분을 포기하는 건 아깝지 않니?”
이상백은 쉽게 굽히지 않았다.
그건 이도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지못해 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 제가 백 프로덕션으로 들어온 건, 제가 제안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승낙해주셨기 때문이에요. 제게 건방지다고 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입장이 변한 건 백 프로덕션이지 제가 아닙니다. 물론 대표님만의 의견이 아닌, 전략기획팀에서 제안했을 거라는 예상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회사의 룰 밖에서 계약을 했으니까요. 회사와 운명공동체가 된 제가 이 중요한 시기에 혼자 판단하고, 혼자 결정하려 하니까요. 난처하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약속을 지켜주십시오.”
“네가 이렇게까지 의견을 표했는데, 전략기획팀도 더는 강권하지 못할 게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네가 있어 서서히 기울던 회사가 침몰을 멈추게 됐으니까.”
“죄송합니다.”
이도원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대신 드라마, 영화를 제외한 광고출연은 지금처럼 최대한 회사의 제안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이상백은 더 욕심부리지 않고 수긍했다.
이 문제에 대해 대화를 끝낸 이도원은 책상에 펼쳐둔 파일을 하나 씩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안에는 <시간아! 돌아와> 흥행 이후 새로 제시된 출연료 금액이 적힌 서류도 함께 있었다.
좀처럼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없었다. 한참을 찾고 있는데 개중 유독 파격적인 개런티의 작품이 보였다.
그 작품에 대해 자세히 읽기 시작하자 이상백이 부연했다.
“나도 그 작품은 의외였다. 정윤욱 감독의 작품이야. 워낙 유명 감독이라 내심 네가 선택하길 바라고 있었다. 사극이고, 수백 억 짜리 영화지. 정윤욱 감독이 널 좋게 봤는지 출연료도 현재 들어온 작품 중 가장 높다.”
무려 3억이다. 광고 개런티와 영화 개런티의 책정방식이 다르다지만 파격적인 조건인 건 확실했다.
문제는 이도원의 기억에 이 영화가 망했다는 점이었다.
시나리오도 탄탄하고 조연들의 연기도 좋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여자주인공이 최악의 연기를 보여줬다. 단 한 명이 작품 전체의 몰입을 깨고 처참한 실패를 가져올 만큼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물론 당시 주연들 간의 호흡이 엉망이었을 수도, 여배우의 컨디션 난조였을 수도 있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현장만 안다. 그 내막을 외부에서 알기란 요원했다.
‘일단 섭외가 된 걸 보면 여배우의 연기력 자체가 문제가 됐을 가능성은 적다.’
과연 극복할 수 있는 실패 요소일까?
고민하던 이도원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타임 슬립 전에는 실패했던 작품이라도 아직까지 정해진 건 없다. 더구나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사극연기란 것만으로도 도전할 가치는 충분해. 미래를 안다는 사실을 잘 활용하되, 실패 확률이 있다고 해서 겁장이처럼 굴어서는 안 된다.’
도전을 두려워하는 순간 발전은 멈춘다.
안주하려는 태도는 일견 안전해보이지만, 결코 안전한 것이 아니다.
결정을 내린 이도원은 이상백에게 파일을 내밀었다.
“<악마의 재능> 차기작은 이 작품이 좋겠습니다.”
< 유명세, 양날의 칼 (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