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세, 양날의 칼 (5) >
이도원은 <신용운 아카데미>로 가는 길에 장례식장에 입고 갈 정장을 빌렸다. 오준식이 대충 사이즈를 골라왔는데도 몸에 착 감겼다.
그를 보며 오준식이 감탄했다.
“축복받았네, 축복받았어. 넌 부모님께 감사해야겠다.”
이도원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출발한 밴은 이십 분 정도 소요돼 <신용운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평일인데다 저녁 열 시가 다 된 시간이었기에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이도원은 오준식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권명섭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신용운이 두 사람을 반겼다.
“오랜만이구나.”
“예. 선생님.”
이도원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었다.
“명섭이 형은 안 계시네요?”
“오늘 연극 공연이 있어서.”
신용운은 연습실 문을 열고 두 사람을 초대했다.
한 공간에 세 명의 남자가 조촐하게 앉았다.
신용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곧 영화 촬영도 들어가지?”
“예.”
“하필이면 살인범 역할을 맡았다고?”
“예. 사이코패스죠.”
이도원이 부연하자 신용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 않겠구나. 그 역할을 한 번 해볼까?”
“알겠습니다.”
대답한 그는 망설이지 않고 일어났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이도원이 눈을 떴다.
점차 호흡이 가빠졌다.
“하-. 하아-. 그러게 왜 설치고 지랄이야? 사람은 누구나 죽어.”
이도원이 집중하자 그의 눈에만 보이는 상대역의 형상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상대의 대사를 받는 사이를 두고 이도원이 대답했다.
“모두 빌어먹을 욕심 때문이지. 네 여자도 날 잡겠다는 네 욕심 때문에 죽은 거고. 내가 경고했지? 너나 너의 가족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이야.”
그는 머리를 뒤로 쓸며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꽁꽁 묶인 상태로 무릎 꿇고 있는 상대의 형상을 빤히 바라봤다.
“인간을 사냥할 때의 맛을 아나? 날 두려워하는 모습을 봤을 때, 신이 된 것 같은 짜릿한 쾌감을 말이야. 특히 사냥감의 목을 따는 순간 그 맛은 장난이 아니지.”
이도원은 입맛을 다시며 음미하듯 물었다.
“결국 너나 나나, 우리 모두가 남이 날 볼 때의 공포나 경외를 즐기는 변태일 뿐이야. 방법이 다를 뿐이지.”
그는 손목시계의 용두(조절 나사)를 풀어 길게 뺐다. 그 사이로 얇고 날카로운 줄이 빛에 반사돼 보였다.
이도원의 표정에서 점점 웃음기가 가셨다.
“넌 날 너무 쉽게 봤어. 그 결과가 이거다.”
독백은 여기까지였다.
신용운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느낌은 좋은데 조금 미흡해. 화술이 움직임을 못 따라간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말을 이었다.
“호흡과 화술, 움직임은 부족한 감정을 커버해주기도 한다. 이런 기술적인 부분을 충족시키면 감정은 저절로 따라가기 때문인데, 네가 연기할 사이코패스는 경우가 좀 다르다. 배우가 감정을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연기 자체가 표면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관객 입장에서 ‘뻔하고 통속적인’ 살인범이 되는 거야.”
여기까진 이도원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신용운은 그에 대한 해답을 덧붙였다.
“직접경험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간접경험을 해야겠지.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휴대폰으로 소품 구매 사이트를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사람과 흡사한 크기와 형태를 가진 인형들이 있었다.
신용운이 말했다.
“이 인형들 중에는 실제 사람의 피처럼 붉은 색소가 뿜어지는 것도 있지.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폐해질 수도,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선택과 책임은 모두 네게 달렸어.”
이도원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민에 잠겼다.
그를 보며 오준식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냐?’
그렇게 묻고 싶었다.
주변에선 박수를 보내는데 정작 연기를 하는 이도원은 전혀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우는 관객들에게 전달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스스로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고 느껴도 관객들이 몰라주면 소용없다. 별개로 배우에게는 연기에 대해 본인 스스로 느끼는 갈증이 있었다. 그 갈증은 누구도 대신 풀어주지 못한다.
곰곰이 생각하던 이도원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
이도원은 밴을 타고 한 대학병원의 장례식장으로 갔다.
차안에서 정장으로 갈아입고 장례식장에 들어갔을 땐 많은 취재진들과 인파가 몰려있었다.
곁에서 오준식이 말했다.
“돌아서 들어가자.”
고개를 끄덕인 이도원은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입장했다. 회사에서 조의금을 냈기 때문에 이도원은 따로 돈을 내지 않았다.
입구에는 고급화환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도원이 문상을 하기 위해 외투와 신발을 벗고 상청 안으로 들어갔다. 상주 장남 차기열은 영좌의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위치해 있고 차녀, 삼녀가 반대쪽에 마주본 채 문상객을 맞고 있었다. 상복을 입은 차녀, 삼녀의 얼굴을 확인한 이도원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 예상이 맞다니…….’
두 사람은 바로 차수희와 차지은이었다.
물론 반갑게 인사할 상황은 아니었다.
차수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차지은은 고개를 떨군 채로 이도원을 마주볼 생각도 못하고 펑펑 울었다.
이도원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상주인 차기열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장남이라 그런지 차기열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상주의 얼굴을 살핀 이도원은 영정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선향을 집어 촛불에 불을 붙이고 가볍게 흔들어 불을 껐다. 그 뒤 오른손으로 향을 집고 왼손으로 손목을 받친 뒤 공손히 향로에 꽂았다.
이도원은 묵념한 뒤 영좌 앞에 일어나 절을 두 번 올리고 다시금 상주에게 목례를 올렸다. 상주와는 안면이 없었기에 따로 인사말을 건네진 않았다. 그는 차수희에게도 목례를 하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난 뒤 몸을 돌려 상청을 나왔다.
상청 밖에는 이상백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헬쓱한 얼굴로 이도원에게 말했다.
“차광열 회장님은 우리 회사 설립 당시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셨던 분이다. 거금의 당신 사비로 우리 회사에 필요한 초기비용을 모두 부담하셨었지.”
“그렇군요.”
이도원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손수건으로 손을 닦는 이도원에게 이상백이 말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던 인물의 죽음은 슬픔보다 많은 의미를 가진다. 직접적인 안면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조의금을 내서라도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이 많지.”
“왜죠?”
“안면을 트면 덕 볼 상대들이 있으니까.”
“거물의 경조사는 비즈니스의 장이라 이거군요.”
이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씁쓸하지만 그런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구나.”
말을 마친 이상백이 이도원의 등뒤를 보며 말했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너라.”
이도원의 뒤에는 레드 엔터테인먼트 이로빈 대표가 서있었다.
이상백의 말뜻을 알아차린 이도원은 일어나 이로빈에게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
“자네가 이도원인가? 몇 년 만에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되다니. 사람 인연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저도 TV에서만 보던 분을 직접 뵈니 신기하네요.”
이도원이 화장실로 가자 이로빈은 피식 웃었다.
‘건방진 놈.’
그는 이도원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못했다. 이도원이 군 입대하기 전부터 군 생활을 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냈었다. 그 대답은 거절로 돌아왔고, 백 프로덕션으로 갔다는 결과만 덩그러니 들어야했다.
자리에 앉은 이로빈이 이상백에게 물었다.
“요새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이 대표께서 신경써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상백이 술잔을 채우며 대답했다.
그 앞에 앉은 이로빈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요. 동종업계 종사자들 끼리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긴답니까? 제가 대표님께 대화를 청하는 건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실 수 있도록 손을 내밀기 위해서입니다.”
이상백은 묵묵부답 술잔을 비웠다.
이로빈의 말은 정확했다. 이도원이 군대에 있을 때까지만 해도 승승장구하던 백 프로덕션은 서서히 침몰해가고 있었다. 진행하던 투자 사업의 성과가 부진해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배우들도 섭외가 안됐다. 이도원이 열심히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한 손으로 내리는 비를 막을 수는 없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이상백이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우리 회사에서 백 프로덕션을 인수하게 해주십시오. 대표님은 이사직으로 지금과 크게 다름없는 영향력을 행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백 프로덕션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대해서도 웬만하면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투자자문을 구한다, 이 정도로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 바닥도 정보가 생명인데 백 프로덕션 보다야 이쪽 계통에서 오래한 레드 엔터테인먼트가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이상백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리에 어울리는 주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시 시일을 잡도록 하지요.”
이로빈은 별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원래 레드 엔터테인먼트는 계열사로 프로덕션을 병행하려는 생각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제안을 드리는 이유는 이도원이란 배우의 스타성과 백 프로덕션의 자본이 아직까진 탐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더 악화된다면 저 역시 제안을 철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신중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그는 자신의 명함을 지갑에서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로빈이 떠나자 근처 아무 자리에나 앉아있던 이도원이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연히 들었습니다.”
이도원은 덧붙여 물었다.
“어떡하실 거예요?”
“교수직을 했을 때와는 달리 보람보단 부담을 느끼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지. 실제로 성과도 따라주지 않고 있고.”
이도원은 이상백이 취기가 조금 올랐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따라서 이도원은 말없이 잔을 다시 채우며 들어주었다.
이상백이 말했다.
“하지만 날 보고, 날 믿고 투자한 차 회장님을 생각하면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럼 받아들이지 마세요.”
이도원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대표님 말씀처럼 끝까지 해본 것도 아닌데 회사를 통째로 넘길 수는 없죠.”
이상백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창업 초기 때와 달리 십 년은 더 늙은 듯한 모습이었다.
이도원은 문득 마음이 아파왔다.
‘내게 아버지가 계셨다면, 정정하던 아버지가 나이를 드셨다는 걸 느꼈을 때 심정이 이렇겠지.’
그는 몸을 일으켰다.
“돌아올게요. 기다리고 계세요.”
워낙 많은 문상객이 몰렸기에 이로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던 이도원은 잠시 화장실을 들르기로 했다.
화장실 바로 앞, 그나마 조용한 통로.
애타게 찾던 이로빈과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이로빈이 공공연하게 말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인수가 힘들 것 같습니다. 좀 도와주셔야겠어요.”
백 프로덕션 인수 건에 대한 대화인 듯 했다.
이도원은 통로로 꺾어 나가지 않고 모서리에 기대서 내용을 엿들었다.
이로빈의 맞은편에 있는 남자가 잠시 시간을 두고 대답했다.
“물론 우리 키스톤월드도 요즘 주가가 하락세라 사유재산을 처분하고는 있습니다만… 아버지를 생각하면 백 프로덕션에 있는 지분은 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남도 아니고 제게 매도하시는 건데요. 게다가 회장님께서도 평생 동안 이루신 키스톤월드가 중요하지, 백 프로덕션 이상백 대표와 의리가 더 중하셨을까요?”
이도원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차기열?’
차광열 회장의 장남이 백 프로덕션의 지분을 처분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지분이 이로빈의 손에 들어가면 백 프로덕션 인수는 그야말로 초읽기가 될 터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나머지 한 사람이 말했다.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보겠소. 내 목표는 오직 하나, 내 아들의 활동중지요. 유태일 감독이 내 제안을 승낙한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
“유태일 감독이 의원님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제안을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이로빈이 묻자 중년인 목소리가 대답했다.
“그렇소. 대신 이 대표도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겁니다. 언제고 내칠 수 있도록 하려고 당신에게 내 아들을 맡아두라고 했던 거니까.”
중년인이 말했다. 그 어조에는 은근한 압력이 실려있었다.
이로빈은 애써 태연한 척 대답했다.
“심려 마십시오. 김진우가 좋은 재원이긴 하지만 의원님과의 연을 끊을 정도는 아니니까요. 의원님이 이번에 도아주신다면 진우는 아예 해외로 나가서 활동하게 될 겁니다. 중국 쪽 협력사에 이미 언질을 해두었습니다.”
엿듣던 이도원은 헛바람이 나왔다.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결국 백 프로덕션을 인수하겠다는 소린데.’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가슴 속에서 커다란 불덩이가 솟구쳤다.
결국 이상백이 사업을 실패하고 소극장을 운영하게 된 데에는 그의 능력 외적인 원인이 적용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세 사람은 공공장소에서 대수롭지 않게 대화를 나눌 정도로 대담했다. 아무리 초대 받지 않은 문상객의 통제가 있다지만 그 외에도 자신들의 권한을 믿는 것이다.
‘내가 있는 이상, 이번에는 좀 다를 거다.’
이도원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이상백에게로 갔을 때, 이상백은 이미 식탁에 엎어져있었다. 원래 망가지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동안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왁자지껄한 작례식장 안.
이도원은 맞은편에 서서 이상백을 내려 보며 말했다.
“다신 그런 꼴 안 보게 해드릴게요.”
< 유명세, 양날의 칼 (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