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69화 (69/178)

< 유명세, 양날의 칼 (1) >

이도원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드라마 촬영에 매달렸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주연이었기 때문에 좀처럼 쉴 수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유태일 감독의 <악마의 재능> 크랭크 인이 다가올수록 슬슬 시간적인 부담이 커져갔다.

한편 드라마 제작진은 신년 행사로 돼지 머리를 앞에 두고 제를 올렸다. 그렇게 새해가 됐고, 드라마 <시간아! 돌아와> 는 시기적인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1월 25일 토요일 <악마의 재능> 대본 리딩 당일.

20부작 <시간아 ! 돌아와> 는 현재 10회 분이 방송으로 나간 상태였다. 이도원은 리딩 장소로 가는 밴 안에서 <시간아 ! 돌아와>에 대한 기사들을 훑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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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대를 아우르는 마음 따뜻한 ‘시돌’… 자체 최고 시청률 경신의 비밀]

(서울 = 시네마 24) 김흥수 기자 = 지금 방송가는 시돌(시간아 ! 돌아와) 열풍이다. TBT 수목드라마 <시간아! 돌아와>는 매회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23일 방송된 ‘시돌’ 10회는 평균시청률 9.3%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달 종영한 ‘꿈의 비상’ 이 20 회에서 기록한 평균 8.7%를 단 10회 만에 뛰어넘은 수치다. 초반부터 연말, 신년 시즌이라는 악조건을 이겨내며 대박조짐이 보이던 ‘시돌’ 은 지금까지 승승장구 중이다.

이에 독보적인 시청률의 비밀은 무엇일지 파헤쳐봤다.

◆ 김미정 작가의 대본, ‘신의 한수’ 로 불리는 섭외, 배우들의 열연이 만든 환상적인 삼박자.

TBT의 히트작 <시간아 ! 돌아와> 는 예상치 못했던 인물들을 스타 반열에 올리며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겨울 안방을 뜨겁게 달구는 대본의 호소력과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이나 성장 가능성을 점치기 힘들었던 배우들을 섭외해 스타로 만드는 섭외 능력이 얻어낸 결과는 놀라웠다.

드라마 초반 배우 이도원의 캐스팅은 외부에서 봤을 때 납득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우리의 심장> 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직후이긴 하다. 하지만 달랑 한 번의 독립장편 경험으로 주연을 맡았으니 ‘스타 캐스팅이 힘들어 이런 선택을 한 게 아니냐’ 는 말을 듣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이도원은 그 의심을 비웃듯이 훌륭하게 역할을 소화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오랜만에 재기한 김수려 역시 그동안의 공백이 무색하게 환상적인 케미를 보여준다. 또한 유석연, 정인아, 김진구, 정상준 등 조연들도 방영 전 우려를 뒤집으며 호연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

과연 <시간아 ! 돌아와> 일명 ‘시돌’ 이 케이블 드라마의 한계인 10%의 장벽을 허물 수 있을지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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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 가기’ 를 누르자 인터넷에 등록된 기사들이 주르륵 나열됐다.

[<시간아! 돌아와> 10회, 마침내 시작된 ‘도원앓이’]

[시간아! 돌아와 10화-이도원, 김수려 머리 쓰다듬으며 ‘여심 저격’]

[<시간아!돌아와> 이도원, 살인 미소로 심장 어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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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원의 입가에 웃음기가 맺혔다. 근래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기사에는 대부분 최근 모습인 교복광고 사진이 실렸다. 화제가 되는 자신의 사진을 보는 일은 묘한 기분을 선사했다.

백미러를 통해 그를 본 오준식이 물었다.

“뭐 봐? 기사?”

“응. 조만간 김흥수 기자를 만나서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했다고?”

“아직 영화 스케줄이 안 나와서 날짜는 못 정했지만 그런 걸로 알고 있어.”

이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슬슬 여러 각도에서 얼굴을 비춰야할 때였다.

“무리를 해서라도 빠른 시일 내로 잡아줘.”

“알았어.”

밴은 배급사 CM 엔터테인먼트 건물을 향했다.

한 시간 후 CM 엔터테인먼트 주차장에 도착한 이도원과 오준식은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탔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겠군.’

이도원은 차갑게 웃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데 멀리서 두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김진우와 그의 매니저였다.

“잠깐.”

이도원이 말했고 오준식이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

가까이 온 김진우의 매니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

“감사합니다.”

김진우는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탔다 .

김진우와 이도원,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

‘어디서 본 얼굴인데.’

김진우는 쉽사리 이도원을 기억하지 못했다. 전날 클럽에서 만난 적이 있었지만 워낙 찰나지간이라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반면 이도원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김진우 씨?”

“네. 그런데요.”

“반갑습니다.”

이도원이 악수를 청했다 .

“처음 뵙겠습니다. 전 <악마의 재능>에서 ‘윤도강’ 역할을 맡은 이도원입니다.”

‘이도원.’

김진우는 속으로 낯익은 이름을 되새기며 말했다.

“김진우입니다.”

그는 건성으로 악수를 받았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3층 대회의실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오준식이 말했다.

“A룸으로 가면 돼.”

네 사람은 대회의실로 들어갔다.

유태일 감독의 종이명패가 중앙 상석에 있고, 양쪽으로 배우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김진우와 이도원은 양쪽 중앙의 마주보게 되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적대관계의 두 주인공이 시선교환을 편하게 하도록 신경쓴 자리배치였다.

연이어 다른 배우들이 입장했다. 김진우의 아내 역할을 맡은 박아현은 그의 옆에 앉아 이도원에게 눈인사를 했다. 이도원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그 외의 조연배우들은 모두 나이대가 높았다. 따라서 이도원과 김진우, 박아현은 조연들이 들어올 때마다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배우들이 모두 착석하자 <악마의 재능> 연출인 유태일 감독이 들어왔다. 사진기를 든 조연출을 비롯해 몇 명의 스태프들이 뒤따라 들어와 벽 쪽에 배치된 철제의자에 앉았다.

유태일이 상석에 앉으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악마의 재능> 유태일 감독입니다.”

배우들이 하나되어 박수갈채를 보냈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유태일 감독은 운을 뗐다.

“바쁜 스케줄에도 모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리딩이 되길 바랍니다. 왼쪽에서 오른쪽 순으로 돌아가며 소개부터 하시죠.”

배우들은 한 사람 씩 소개를 했고 자리배치도에 따라 이도원의 차례가 왔다.

“신인배우 이도원입니다. <우리의 심장>에서 ‘상태’를 연기했고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시간아 ! 돌아와>에서 ‘최정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었기에 따로 대화를 청하진 않았지만 몇몇 배우들이 아는 체를 했다. 영화나 드라마를 봤거나, 요즘 뜨는 기사들을 본 적이 있는 배우들이었다. 한편 이도원의 이름을 들었을 땐 알아보지 못했던 김진우는 드라마 제목을 듣고 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가다 봤나보군.’

그는 평소 드라마를 보는 편이 아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잠깐 주목받았던 이도원의 차례가 지나자 또 순탄하게 순서가 흘러갔다. 대부분 얼굴을 알고 있는 조연배우들이었으므로 자세한 소개가 필요치 않았다.

마침내 김진우의 차례가 오자 그가 말했다.

“김진우입니다. 이번 영화가 첫 작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특유의 냉기 어린 목소리였다. 그러나 태도만은 정중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박아현 역시 자기소개를 했다. 이인조 걸 그룹 <레드오션>이란 말이 떨어지자 배우들은 반갑게 인사했다. 그녀는 걸 그룹에 들기 전 배우로서도 잠깐 씩 활동을 해왔던 것이다. 연예계 경력은 이도원과 김진우 보다 선배였다.

모든 배우들의 차례가 돌아가자 유태일이 말했다.

“일부러 섭외할 때부터 친분이 없는 분들끼리 합을 맞출 수 있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자세히 조사한 건 아니라서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처음 보는 얼굴들이 많을 겁니다. 모쪼록 영화 촬영이 끝날 때까지 화기애애하게 지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럼 리딩을 시작하죠.”

이도원은 진즉 받아둔 시나리오를 꺼냈다.

다른 배우들도 시나리오를 앞에 두고 펼쳤다.

시나리오의 초반부는 김진우를 비롯한 조연들이 채우고 있었다. 130씬으로 이루어진 영화에서 이도원은 30씬부터 등장한다. 따라서 리딩이 진행되는 동안 이도원은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먼저 보게 됐다.

수정된 시나리오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경찰대 출신의 형사를 다루고 있었다. 따라서 영화는 김진우가 안정제를 한 움큼 집어먹고 독한 술을 벌컥벌컥 마시는 장면 속에서 시작된다. 시나리오를 보고 있던 김진우가 입을 열어 영화의 첫 독백을 뱉었다.

“여보, 여보 어디 있어?”

두려움으로 떨리는 음성.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죽은 아내를 찾는다.

“하 - 씨발.”

한숨을 뱉은 김진우가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속이 썩어 뭉그러질 것 같네. 뭉그러질 것 같아…….”

리딩 땐 대사만 나눴기 때문에 그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다음 대사를 쳤다. 감시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이 벽에 한가득 붙어있고 하나 같이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진 속 인물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장면이었다.

“반드시 죽여주마. 하하하! 반드시 죽여주겠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게 해주겠어. 하하…….”

허탈하게 눈물을 쏟는다.

물론 리딩이었기에 김진우는 진짜 울지 않았다.

‘별로 발전하지 않았군.’

이도원이 연기를 본 소감이었다.

두림고등학교 독백대회에서 당시 삼 학년이었던 김진우의 연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이후 김진우는 큰 변화가 없었다. 물론 김진우가 서자이고, 당시 서자인 에드먼드의 연기를 함으로서 기존보다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한 것뿐이었지만 이도원이 그런 속사정까지 알 리 없었다.

그는 책장을 따라 넘기며 다른 조연배우들에게 주목했다. 오히려 큰 분량을 차지하는 조연, 중견배우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첨예한 연기력이야. 역시 연륜과 경험은 무시할 수 없다. 마치 원래 자기 것인 것 마냥 자연스러워.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는 관객의 눈과 귀를 편하게 만든다. 마치 사진의 배경이 되는 풍경처럼 피사체를 돋보이게 만들어 줄 뿐이었다.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연기인 줄도 잊어먹을 만큼 작품에 몰입시키는 연기.’

이도원은 그런 연기를 저처럼 능숙하게 해 본 기억이 없었다. 그건 타임 슬립 전 조단역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중견배우들과 대본 리딩을 할 때도 이런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은 작품에 완벽히 흡수되고 있다 . 그럼에도 굳이 자기 자신을 캐릭터에 맞추려하지 않아. 그 동안 연기했던 가락이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캐릭터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어.’

이도원은 감탄했다.

영화, 연극이나 드라마를 보는 재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매체 자체를 즐기는 것과 배우의 연기를 동시에 즐기는 것.

‘작품에 흡수돼 자연스러운 연기를 펼치는 것과 강렬한 연기로 관객들을 감탄하게 만드는 것. 두 가지가 다른 스타일의 연기일까?’

그는 고민했다. 그리고 이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주연은 인상적인 연기를 한다. 조연은 주연을 잘 살려주는 연기를 한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도원이 중견배우들과 처음 작업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30씬이 모두 흘러갔다.

유태일은 중간 중간 서슴없이 원하는 바를 말하며 배우들이 표현하는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그가 시선을 돌려 이도원을 보았다.

이윽고, 그 눈길을 받은 이도원이 입을 열었다.

< 유명세, 양날의 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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