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61화 (61/178)

061/  군계일학 (3)

어머니와 이다원, 이도원 세 식구는 식탁에 둘러앉았다.

간단히 시켜먹기로 하고, 치킨과 맥주가 도착하자 이도원이 말문을 열었다.

“사실 엄마한테 부탁드릴 일이 있어요.”

운을 뗀 이도원은 그동안 생각하고 있던 계획을 말했다.

“백 프로덕션 주식을 매수해주세요. 이번에 배우 계약조건이 공표되면서 장외 주식을 매도하려는 소액주주들이 많은 상태죠. 아직 비상장 회사라 상장되는 즉시 수익이 불어날 거예요.”

“주식은 위험한데.”

이다원이 끼어들었다. 그녀 역시 주식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누누이 위험성에 대해 들어왔던 것이다.

반면 어머니는 진지한 얼굴로 물어보았다.

“꽤 자세히 알고 있구나. 따로 공부를 한 거니?”

“네. 관심이 생겨서요.”

이도원은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괜히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놔봐야 의심을 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조금 놀란 듯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결정을 내렸겠지? 네 이름으로 투자하지 않는 이유가 있니?”

이도원은 지난 번 동창회 이후 남몰래 공부했던 부분에 대해 공개했다.

“기획사는 배우들에게 스톡옵션(stock option; 자회사 주식매수선택권)을 거는 경우가 많아요. 만약 나중에 제게 스톡옵션이 부여되면 제 이름으로도 회사 주식이 생기겠죠. 하지만 이런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가 직접 회사 주식을 매수하긴 힘들어요. 이 경우 자칫 내부자거래(자회사 내부 정보를 이용해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는 것)로 조사를 받을 수 있다네요. 무엇보다 대표님이 가장 먼저 반대하실 거고요.”

“대표님이 반대하신다고?”

“예. 회사 사정이 나빠지면 자칫 제가 큰 손해를 볼 수 있으니까요.”

이상백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이도원이었기에, 주식매수에 대한 의사를 밝혔을 때 반응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이도원의 요구사항을 확인했다.

“그러니까 백 프로덕션 주식을 매수해서 나중에 양도를 해달란 소리니?”

“예. 지금부터 조금씩 매수해 둘 생각이에요.”

“세금은? 양도세를 생각하면 스톡옵션이 생기고 그때 매수해도 늦지 않잖아?”

그 말대로 이 경우 양도세를 포함한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지만 이도원은 따로 조사해 둔 묘수가 있었다.

백 프로덕션은 초기부터 많은 투자를 받아 설립되었다. 하지만 앞으로 모종의 이유와 함께 내리막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급경사일지 점차 하락하게 될지는 알 수는 없지만 이익이 적거나 결선이 많아졌을 때 양도나 증여를 하게되면 최대한 절세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을 어머니 앞에서 늘어놓을 수는 없었다.

이도원은 핑계를 정리한 뒤 대답했다.

“앞으로 회사가 얼만큼  성장하게 될 거다 장담하진 못하죠. 즉 언제 상장되고 스톡옵션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확실한 건 그때까지 계속 수익이 난다는 거예요.”

혼자 활동하는 것만으로 백 프로덕션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지 미지수지만, 미래를 알고 있는 그였기에 장래성이 밝은 배우들과 작품들을 알아보고 투자할 수 있었다. 다만 그런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힘을 실어줄 지분이 필요했다. 회사의 위기를 지분을 얻는 기회로 만들고,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순식간에 도약하자는 것이 이도원의 목표였다.

그 의중을 알 리 없는 어머니가 물었다.

“큰 수익이 날 거라고 장담하는 근거는?”

“지금도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고, 제가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 더 활기를 띠겠죠. 비록 한 치 앞을 모른다고 하지만 당분간 크게 손해 볼 일도 없을 테고요. 무엇보다 백 프로덕션과 제가 공동운명체가 됐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에요.”

실제로 회사에서 임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일 할 여건을 만들기 위해 스톡옵션을 걸고 자회사 주식 매수를 권유하는 경우가 있었다. 다만 자칫 회사의 사정이 나빠지면 그 부담 역시 나눠가져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기피 여기는 추세였다. 단, 연예계에서 스톡옵션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달랐다. 이도원은 그 점을 설명했다.

“배우든 가수든 연예인들은 자회사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엔터테인먼트나 프로덕션의 수익 폭이 크고, 연예인들로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수입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 말대로 잘 나가는 연예기획사들은 소속 연예인들에게 자회사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스톡옵션을 부여해줌으로서 의욕증진을 꿰하고 애사심을 높였다. 회사 입장에선 소속 연예인이 주주가 되면 회사를 옮길 가능성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즉 이런 같은 방식은 회사의 성장에 따른 수익을 보장해주면서 보이지 않는 족쇄 역할도 겸하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네가 번 돈이다. 네 말에 따르마.”

“엄마!”

이다원이 질색했다.

“얘가 뭘 안다고요? 그러다 다 휴지조각돼요.”

“그럼 어떠니? 모두 도원이 거잖아.”

어머니가 이도원을 보며 말했다.

“신중하게 판단했길 바란다.”

이도원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 수입은 둘로 나눌 생각이에요. 팔십 퍼센트는 백 프로덕션 주식을 매수해 주세요. 나머지 이십 퍼센트는 생활비에 보태고, 누나랑 이것저것 쓰시고요.”

“넌?”

이다원이 물었다.

이도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난 비상금만 갖고 있지 뭐. 어디 돈 쓸 시간이 있어야 쓸 텐데 당분간은 그럴 여유가 없을 것 같거든.”

자신의 계획을 발표한 이도원은 후련한 기분으로 치킨을 뜯었다. 그는 못내 걱정스러운 표정의 이다원에게 못 박아 말했다.

“걱정 마. 내가 대책도 없이 피땀 흘려 번 돈을 투자하려고?”

*

이틀 뒤 드라마 촬영 날 아침.

이도원의 계좌로 <우리의 심장>이 상업화되고 5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지급된 출연료 오백만 원, 유태일 감독의 차기작 <악마의 재능> 선 지급 출연료 오백만 원이 각각 입금됐다. 백 프로덕션에 들어가기 전 금액은 100%로 책정됐고, 백 프로덕션과 계약하고 들어간 작품은 50%를 받았으니 군대 전후로 개런티가 두 배나 오른 셈이었다.

이도원은 자신이 쓸 비상금 백만 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구백만 원을 모두 어머니 계좌로 송금했다. 구백만 원의 20%인 백팔십만 원은 생활비 겸 용돈으로, 나머지 80%에 해당하는 칠백이십만 원은 주식투자자금으로 통장 내역에 표시해 뒀다.

‘지난 삶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입이군.’

이도원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상했다.

<시간아! 돌아와> 촬영이 시작되면 회당 출연료 백만 원이 매 회마다 또 들어오게 된다. 이도원의 드라마 출연료 등급(성인 6~18등급)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신인배우 치고는 높게 측정됐고, 주연 급 촬영 분량으로 치면 낮은 개런티였다. 또한 아직 교복 광고의 경우 출연료가 정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도원은 ATM기기에서 계좌이체를 한 뒤 은행 앞 대로변에 세워져있는 벤에 탑승했다.

그에게 오준식이 말했다.

“어머님이 좋아하시겠다. 난 군대 가기 전에 프로필 돌리면서 다닐 때 단역 촬영은 회당 십만 원, 영화 조연 삼십만 원까지 받아봤는데. 정말 대우가 다르긴 다르구나.”

이도원 역시 타임 슬립 전, 목소리를 잃기 전까지 밑바닥부터 조단역 생활을 전전했었다. 이도원은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화제를 돌렸다.

“첫 촬영장소가 어디라고 했지?”

“인천국제공항. 오늘 공항 씬 먼저 촬영하고, 내일은 내레이션 나올 때 넣을 장면 촬영하러 동탄 신도시 밤송고등학교로 갈 거야.”

“나이트(night) 촬영은 없고?”

“밤에는 다른 배우들 촬영 있다나봐.”

“그렇군.”

이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준식이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그럼 공항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이 배우님.”

벤이 출발했다.

이도원은 약 한 시간 거리의 인천국제공항까지 가는 내내 대본을 보며 당일 촬영 분을 연습했다.

다행히 공항 씬 하나였기 때문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밖에서 종일 촬영하는 날에는 꼼짝없이 추위에 떨겠군.’

아직 날이 추웠지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보단 나았다.

이도원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여유롭게 대사 연습과 화술훈련을 병행했다.

어느덧 벤은 내부순환도로와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를 지나 촬영장소 코앞에 도착해 있었다.

오준식이 먼저 내려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 능청스러운 모습에 이도원이 피식 웃었다.

“과잉친절이야.”

그는 내려서 대본을 들고 공항건물 내부로 움직였다. 건물 안에는 이미 촬영 팀이 도착해 장비를 세팅하고 줄을 치며 인원 통제를 하고 있었다.

FD 김춘식이 이도원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주연배우는 분장 차로 가셔서 헤어 메이크업 받으시면 됩니다.”

그 말에 따라 이도원은 분장 차로 갔다. 그곳에는 의상 팀과 미용 팀, 분장 팀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도원과 함께 촬영이 있는 김수려는 먼저 와서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어, 왔어요?”

“안녕하세요.”

이도원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미용 팀에게 헤어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동안 의상 팀이 이도원의 옷 치수를 재갔다.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이도원의 말에 김수려가 깔깔 웃었다.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네요? 리딩 땐 그렇게 노련하더니 지금 보니까 제 나이 같아요. 스물한 살이라고 했죠?”

“예.”

“누나라고 불러도 되는데. 난 스물여섯이니까.”

“괜찮습니다. 선배님.”

이도원은 사양했다.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괜히 앞서가다가 ‘실력 좀 있다고 위아래 구분 못하는 신인’이라는 구설수에 오르는 수가 있었다.

그 신중한 모습에 김수려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서운하긴 하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죠. 그나저나 분장 차는 처음이죠?”

물론 아니었다.

이도원은 전생에 한두 번 분장 차를 이용했다. 그땐 조단역이라 의상 팀 차에 있는 여러 벌의 의상들 중 사이즈 맞는 옷을 스스로 골라 입고 대충 분장을 받은 뒤 밖으로 내몰려 대기하곤 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안락한 곳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맞춤 의상을 제공받는 것이 처음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도원은 대충 얼버무렸다.

“이렇게 제대로 받는 건 처음이죠.”

“저도 <우리의 심장> 봤어요. 그땐 특수 분장을 했던데, 학생작품이라 환경도 열악했겠어요.”

“아무래도 그렇죠.”

이도원은 <우리의 심장> 촬영 당시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촬영장소에서 그때그때 분장을 받았었다. 더운 날씨였기에 두꺼운 특수 분장을 한 상태로 땀을 흘렸고 촬영 내내 찝찝한 느낌을 견뎌야 했다.

그나저나 김수려가 그 영화를 봤다는 건 조금 의외였다. 당시에는 그녀가 활동을 쉴 때였고 영화제에도 참석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십만 관객 중 한 명이 김수려였다니.’

묘한 기분이 든 이도원이 물었다.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으셨어요?”

“아주 감명 깊게 봤죠. 유태일 감독님의 제안이 들어오면 개런티 생각 안 하고 바로 작업하고 싶을 정도로요. 그리고 도원 씨의 연기도 인상적이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리딩 때 후배 연기자의 조언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겠어요?”

김수려가 웃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도원 씨는 신인이지만 저는 어려서부터 쭉 연예계 생활을 했죠. 물론 잠깐 쉬었지만 아마 도원 씨보단 많은 시간을 이쪽 세계에서 보냈을 거예요. 제가 해주고 싶은 말은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는 거예요. 난 이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그만뒀던 걸 지금까지 후회하고 있거든요.”

이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연예계에서 경력 보다 중요한 건 대중의 인지도였다.

한 순간에 그 동안 쌓아온 인기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자신을 향했던 박수가 칼날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는 세계. 오직 결과만으로 평가를 받는 냉혹한 업계인 것이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김수려가 덧붙여 말했다.

“워낙 어려서부터 활동을 해서 그런가? 어느 날부터 평범하게 지내고 싶더라고요.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흔한 아르바이트조차 못하게 돼버린 뒤더라고요. 그 어렸을 적, 내 얼굴이 대중에게 노출됐던 순간 이미 평범한 삶은 살수 없게 됐다는 걸 깨달았죠. 너무 늦게 알았지만.”

이도원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누군가는 유명세를 타고 싶어 발버둥 치고 누군가는 유명세를 버리고 싶어 한다. 발버둥 치다 보면 유명세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유명세를 얻고 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나한테까지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답답했나보군.’

이도원은 굳이 억지로 공감하지 않았다.

‘나는 김수려와는 달라.’

타임 슬립 전에도, 지금도 그의 목표는 최고의 배우였다. 어떤 가시밭길이라도 걸어갈 각오가 되어있었다.

그때 두 사람의 분위기를 깨며 분장 차의 문이 열렸다.

오준식과 김수려의 매니저가 들어온 것이다.

남들 앞이었기에 오준식은 존댓말로 알렸다.

“FD한테 연락 왔습니다. 촬영 시작입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