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텔레스코프 (telescope; 동시대사) (7)
오준식이 백미러로 이도원을 힐끔거렸다.
“이야, 완전 부럽다. 요즘 완전 핫한 애들이잖아?”
“글쎄.”
이도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스케줄만 해도 빡빡한데 광고 촬영까지 소화할 수 있을까?
또한 앞으로 성인 역할을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괜히 교복 광고를 찍게 되면 고등학생 이미지를 얻어서 ‘미스캐스팅’이라는 선입견을 줄 수도 있다.
그 심정을 모르는 오준식이 말했다.
“이번 기회에 경험 삼아 광고 촬영을 해보는 것도 좋잖아?”
“뭐, 그것도 그렇지.”
말마따나 이도원은 광고를 찍어 본 적이 없었다.
더 고민해보기로 한 이도원은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연기 트레이닝 해주는 분은 누구셔?”
오준식이 시익 웃으며 대답했다.
“신용운 선생님이라고, 연극계의 전설과 같은 분이시지.”
전생에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연극 판에서 은퇴하고 많은 연기파 배우들을 지도한 경력이 있는 인물로, 유명 배우들 사이에서도 훌륭한 지도자로 정평이 나있었다.
대학에서 무대연기를 주로 가르친다면, 정작 연극배우 출신인 신용운 트레이너는 영화연기나 방송연기를 가르쳤다. 새로운 가르침을 받을 생각을 하자 이도원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서 현장으로 가고 싶군. 나도 이런데, 준식이는 어떨까?’
이도원은 내심 궁금증이 들었다. 그가 아는 오준식은 배우로서 성공하고 싶은 열망이 큰 사람이었다. 그런데 다른 배우 매니저를 하고 있다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지 않을까?
“준식아.”
이도원은 오준식을 부르고는 물었다.
“일 하다 보면 연기할 시간도 없을 텐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오준식은 백미러로 이도원을 힐끔거리며 대답했다.
“나중에 소주 한잔하면서 얘기하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얘기니까.”
씁쓸한 미소가 매달렸다.
이도원은 더 묻지 않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평소에는 하늘을 보는 일이 많지 않은데 자동차만 타면 자연스레 하늘로 눈길이 간다.
“도착했어.”
오준식이 말했다.
청담동에서 논현동은 고작 십 분 거리.
이도원은 여유를 즐길 시간도 없이 차에서 내렸다.
대로변, [신용운 연기아카데미]라는 간판이 달린 삼 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오준식이 앞 좌석의 창문을 내리더니 말했다.
“차 대고 기다릴게. 잘 하고 와!”
“그래.”
짧게 대답한 이도원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가자 미술품이 여러 점 걸려있는 갤러리 비슷한 공간이 나왔다. 원형의 거실이 있고 사방에 하나씩, [연습실]이라고 표시된 방이 보였다. 흰 벽지에 단조로운 인테리어를 갖춘 아담한 학원이었다.
그때 거실에 배치된 푹신한 소파에 앉아있던 잘생긴 남자가 굵직하면서도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오셨죠?”
이도원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배우다.’
호흡과 발성만 봐도 알 수 있다. 연기를 하는 사람치고 이도원이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통해 본 기억이 없다면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 정도 짐작한 이도원이 대답했다.
“신용운 선생님을 뵈러 왔는데요. 저는 이도원이라고 합니다.”
“아, 그분. 연락은 받았습니다.”
빙긋 웃은 남자가 일어났다. 그렇잖아도 굵직한 인상에 후리후리한 키가 멋들어졌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빈티지한 청바지에 티 한 장 입었을 뿐인데, 느낌이 산다. 더불어 작은 얼굴에 콧수염을 기른 남자는 연습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낯선 음성이 들려오자 남자가 문을 열었다. 큰 체구 덕분에 문 안쪽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연습실 안에 있는 사람에게 말했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선생님.”
“오 분 후에 들여보내.”
“예. 알겠습니다.”
남자는 문을 닫고 돌아와 이도원에게 물었다.
“소파에 앉아계세요. 믹스커피 한 잔 드릴까요?”
“감사합니다.”
이도원이 소파로 가서 앉았다.
남자는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한 잔 타왔다. 그가 커피를 내려놓고, 앉으며 물었다.
“몇 살이에요?”
“스물한 살입니다.”
“나도 그때쯤 연기를 시작했는데.”
남자는 이도원을 모르는 게 분명했다. 잘생긴 외모만 보고 상담예약이 되어있는 학생쯤으로 아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가 물었다.
“원장님이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여길 아는 사람은 드문데?”
“그게…….”
이도원은 조금 난처해졌다. 설명하자면 복잡한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여보내!”
남자는 악동처럼 시익 웃으며 말했다.
“들어가요. 첫 수업부터 너무 충격 먹지 말고.”
이도원은 그 말뜻을 모른 채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면에는 백칠십이 조금 넘는 키임에도 탄탄하고 다부진 몸매를 가진 중년인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딱 마주친 첫인상은,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진 남자라는 것.
“내 나이가 올해 오십이니 반말로 하지.”
많아봐야 사십 대 초반이라고 여겼던 짐작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탄력 있는 피부와 잘빠진 몸매, 젊고 잘생긴 얼굴을 가진 그가 말했다.
“내가 신용운이다. 내가 지도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기성배우들이지. 폭발적인 연기력을 보여준다는 애송이가 있다고 해서 트레이닝 제안을 수락했는데, 기대되는군.”
그, 신용운은 두 눈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며 옆에 세워둔 카메라의 삼각대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렸다.
“준비된 연기 한두 개쯤은 있겠지? 뭐든 관계없으니 한 번 해봐라. 권명섭!”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곧 부름을 받은 남자가 들어왔다. 일전 거실에서 대화를 나눴던 남자였다. 남자, 권명석은 연습실 안으로 들어와 카메라를 잡았다.
이어 신용운이 지시했다.
“준비되면 시작해.”
이도원은 분위기에 말려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무례하다면 무례한 신용운의 태도가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도원은 날숨으로 부담감을 떨쳐냈다.
“후우.”
연이어 들숨으로 호흡을 끌어당겼다.
“스읍.”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 이도원이 말했다.
“영화 <약속>의 ‘공상두’ 독백입니다.”
영화 <약속>에서 조폭 공상두가 살인죄로 자수하러 들어가기 전, 자신의 연인이자 여의사인 채희주와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며 하는 대사였다.
이도원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연기를 시작했다.
무릎을 꿇으며 입을 열길 몇 차례, 주저하던 그가 간신히 말했다.
“신부 채희주는 우선 총명합니다. 심청이 못지않은 효녀입니다. 또한 미국까지 가서 공부하고 온 꽤 괜찮은 의삽니다. 푸른 들판과 같은 미래가 있습니다. 곧장 가면 그걸로 만사형통입니다.”
호흡이 가빠졌다.
이도원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벼락을 맞죠. 구덩이에 빠집니다. 나오라 해도 안 나옵니다…….”
이도원은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을 다잡으려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미친개한테 물린 거죠.”
눈물이 흘렀다.
이도원이 말을 이었다.
“당신께서 저한테… ‘네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셨을 때… 이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홀로 남겨두고 떠난다는 것이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 제 자신이 그렇게 미운 거 있죠.”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흐르는 눈물로 범벅이 된 이도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있어서만큼은… 정말… 이지… 인간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연기가 끝났다.
카메라를 잡고 있던 남자는 놀란 표정이었다.
반면 신용운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도원을 볼 뿐, 표정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신용운이 입을 열었다.
“감정은 좋은데, 왜 그걸 모두 드러내지 않지?”
질문을 던진 그가 이어 말했다.
“<약속>에서 ‘공상두’의 이미지가 네 머릿속에 너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다. 그건 ‘공상두’를 연기한 배우의 스타일일 뿐이야.”
신용운이 다시 물었다.
“왜 그 배우를 따라 하려 하지? 네가 연기하는 공상두는 같은 감정을 가진, 다른 인물인데 말이다.”
신용운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 결혼식이 끝나면 넌 평생을,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 다 네놈이 저지른 일 때문이지. 넌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지만, 나쁜 직업을 갖고 있다. 너 자신도 네가 하류인생이란 걸 알아. 네 옆에 있는 끔찍이 사랑하는 여자가! 너에게 과분하단 걸 알고 있지. 그래서 떠나려 했다. 근데 다시 찾아와서 널 사랑한다고 해. 네 인생은 이미 끝났는데! 그녀는 널 사랑한다고, 결혼서약을 하자고 한다. 씨발! 가장 행복한 지금 이 순간, 넌 네 바로 벼랑 끝에 서서 몸을 던져야 한단 말이다.”
이도원은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신용운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연기는 흉내 내기가 아니야. 넌 이미 <약속>이란 영화를 봤겠지만, 틀 안의 ‘공상두’가 될 필요는 없다. 네 심장부에 있는 감정을 모조리 끌어올려서 보여줘야 돼. 그래야만 사랑하는 여자를 잃는 고통을, 인생을 던져버리려는 남자의 심정을, 카메라 밖의 사람들이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다.”
말을 마친 신용운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도원을 지나쳤다. 그는 문을 열며 한마디를 던지고 나갔다.
“똑같은 대사를 다시 연습해서 십 분 후에 본다.”
*
권명섭은 카메라를 두고 따라 나갔다. 그는 연습실 문을 닫자마자 물었다.
“선생님. 어떠셨습니까?”
신용운은 소파에 몸을 묻으며 담뱃불을 붙였다.
“괴물이 될 재목이다.”
“그 정도입니까?”
권명섭은 믿기 힘든 표정으로 물었다. 그가 아는 신용운은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이도원이 잘하긴 했지만, 단 한 번의 연기를 보여주고 그런 칭찬을 듣는다는 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 신용운이 물었다.
“네가 칠 년 째 내 밑에서 연기를 배우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조단역 이상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뭔 줄 알아?”
자존심 상하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신용운의 화법은 늘 이랬다. 이미 칠 년 째 그의 밑에서 지낸 권명섭은 당장의 불쾌감 보다, 그 입에서 나올 충고에 더 집중했다.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너한테, 뜨고 싶으면 연기를 그만두라고 수없이 말했었지? 쟤는 네가 없는 걸 갖고 있어.”
“그게 뭡니까?”
“집중력, 투지, 독기.”
신용운은 연습실을 뚫어져라 보며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난 쟤한테 십 분을 줬다. 십 분 후 들어가 보면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거야.”
*
십 분 뒤.
신용운과 권명섭이 다시 들어왔다. 신용운은 그전처럼 의자에 앉았고, 권명섭은 카메라를 잡았다.
신용운이 물었다.
“준비됐나?”
이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도원은 그들 앞에 서서 호흡을 다스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시작하겠습니다.”
이도원의 마음가짐은 그 전과 달랐다.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뜨겁게 태웠다.
이도원은 온 몸의 에너지를 모두 연소시키는 기분으로 시작했다.
“신부 채희주는 총명합니다. 심청이 못지않은 효녀입니다.”
이도원은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 절절하게 말했다.
“또한 미국까지 가서 공부하고 온 꽤 괜찮은 의삽니다. 푸른 들판과 같은 미래가 있습니다. 곧장 가면 그걸로 만사형통입니다.”
목소리가 떨려서 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 벼락을 맞죠. 구덩이에 빠집니다. 나오라 해도 안 나옵니다.”
이도원은 고개를 떨구었다. 말을 잇는 대신, 한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한참 호흡과 표정연기가 지속됐다.
연기에서 ‘사이’라고 부르는 대사 사이의 순간이 밀도 높은 감정으로 들어찼다.
“…미친개한테 물린 거죠. 당신께서 저한테… ‘네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이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홀로 남겨두고 떠난다는 것이 가장 큰 죄일 것입니다.”
이도원은 울음 섞인 숨소리를 죽이려 애썼다. 그럴수록 심장을 옥죄는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주르륵 흘렀던 눈물은 홍수라도 난 듯 펑펑 쏟아졌다.
“제 자신이 그렇게 미운 거 있죠? 하지만 이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정말이지, 인간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흐느끼는 소리가 연습실 안을 가득 채웠다.
뜨거운 불화살이 관객들의 심장을 관통했다. 가슴이 불타오르고,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 재가 되었다.
카메라를 통해 이도원을 바라보던 권명섭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신용운은 앉은 채 덤덤한 얼굴로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크고 짧은 세 번의 박수 끝에 그가 말했다.
“하나를 알려주면 둘을 깨우치는군. 당분간 아주 재밌어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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