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50화 (50/178)

050/  텔레스코프 (Telescope; 동시대사) (2)

클럽 입구부터 일렉트로닉 음악이 시끌벅적하게 울리고 있었다. 입장하기 전 긴 줄이 있었지만 돈을 걷어 테이블을 예약했기 때문에 VIP 줄에 서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도원과 동창들은 가드에게 주민등록증을 제시했다. 그 뒤 클럽 입장용 손목 띠를 두르고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평소에도 클럽을 즐겨 찾는 동창들은 벌써부터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일행은 일 층의 스테이지로 내려가지 않고, 이 층의 테이블로 갔다. 각자 오만 원 씩 걷어 무려 칠십만 원을 지불하고 잡은 테이블 위에 양주가 세팅돼 있었다.

고작 한 병.

‘역시 돈 지랄이야.’

이도원은 내심 생각하며 빠질 궁리를 했다.

그때 클럽을 가자고 주장했던 남자 동창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다 같이 앉기는 테이블이 좁으니까, 스테이지랑 왔다 갔다 하면서 술이나 먹고 놀자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이도원은 내심 생각했다.

‘스테이지로 내려가면 빠지기가 수월하지.’

곧이어 선발대가 일 층으로 떠났다. 그중에는 이도원도 있었다.

이도원은 인파를 헤치며 화장실로 가서 박서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먼저 간다. 재밌게 놀아.]

섭섭해도 할 수 없다.

옛날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사람 많은 곳이 조금 불편했다. 동창회 자리 내내 대중에게 노출되었다는 실감이 났다. 영화 <우리의 심장> 상업화는 흥행성적은 50만으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 했으나 좋은 평을 받으며 막을 내렸다. 물론 동창들이니까 알아본 거겠지만, 이도원은 이곳에 자신을 알아볼 만 한 50만 관객 중 하나가 없으리라 장담 할 수도 없었다. 그는 클럽 화장실로 갔다.

공교롭게도, 그때 마침 한 남자가 이도원을 힐긋거렸다. 클럽 화장실에 조차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다는 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혹시, 이도원 씨 아니에요?”

훤칠한 키에 셔츠와 슬랙스를 입은 이십 대 남자였다. 전형적인 강남 클럽 죽돌이 이미지.

이도원은 멋쩍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닮았단 소리 자주 들어요.”

그럼에도 남자는 의심쩍은 듯 재차 물었다.

“맞는 것 같은데… <우리의 심장> 영화 봤는데, 사진 한 장만 찍어주세요.”

이도원은 고개를 저었다. 군 제대한 날 바로 클럽에 갔다는 사실이 이미지에 도움될 일은 아니었다.

“이도원 아니에요. 좀 나갑시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지만 남자는 결국 비켜주었다. 남자가 술 기운에 진상을 부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때 상대방이 공인인 걸 이용해 시비를 거는 악질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던 적이 있다.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질 정도로 유명한 기성 배우가 아니라면 이런 더러운 꼴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리도. 공인 입징에선 괜히 사건에 휘말렸다가 그 자체만으로 나중까지 이미지에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애매한 유명세를 타니까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네.’

이도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휴대폰으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러자 영화 <우리의 심장>이란 수식어가 꼭 붙은 기사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블로그, 카페, 웹 사이트에 대중들이 반응이 날것 그대로 나와 있었다. 게시물을 등재한 대부분이 전문가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기에 악담은 보기 힘들었다.

‘이제 시작이군.’

이도원은 인터넷을 보며 설렘과 부담감이 동시에 들었다. 앞으로의 행보에 따라 어떤 이미지가 될지 결정될 것이다. 그는 인터넷 기사들을 골고루 훑으며 클럽 통로를 지나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얼굴과 마주쳤다.

*

김진우는 클럽 입구 앞 대로변에서 검은색 마이를 받아 입었다. 이미 화장실에서 와인색 니트와 진청바지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는 왁스를 묻힌 양손을 들어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정차돼 있는 차량의 사이드미러로 상태를 확인했다.

김진우가 중얼거렸다.

“쓸 만 하시고.”

바로 옆, 김진우가 갈아입을 옷을 들고 마중 나왔던 삐쩍 마른 이십 대 초반의 남자가 서있었다. 머리도 노랗게 물들이고 튀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힐끔 거리며 수근거렸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선후배로 친해진 사이였다.

김진우가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쌍욱. 너 알아보는 사람이 있긴 있나 보다?”

“형. 나 졸업하고 바로 데뷔했어요. 왜 이래요? 아직 가요뱅크 일 위는 못해봤어도, 팬카페도 있다고요.”

“가요뱅크 좋아하시네.”

김진우는 피식 웃고는 클럽 입구로 향하며 말했다.

“애들 상태는?”

“형님. 요새는 부잣집 누나들이 최고에요. 돈 잘 쓰지, 부티 나지, 얼굴 예쁘지, 몸매 에스라인도 기본이라니까요?”

“돈은 관심 없고.”

김진우가 이어 물었다.

“오늘 생일자가 KAS 국장 딸내미라고 했지?”

“네. 형 엄청 보고 싶어 하더라고요. 완전 팬이더라니까?”

남자 아이돌, 윤상욱이 답했다.

김진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고교시절 독백대회를 제외하고 따로 활동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소속된 기획사는 있었지만 아직 데뷔 전이었다. 비록 배우 준비생의 일상을 보여주는 케이블 방송 <나는 배우다>에 출연하고 있었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날 안다고?”

“내가 그래서 형 보고 그렇게 부탁을 한 거잖아. 형, 근데 줄타기 하려면 이차까지 생각해둬야 할 텐데.”

“그년 몇 살 이랬지?”

“스물여덟!”

윤상욱의 대답에 김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가자. 춥다.”

두 사람이 클럽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도원이 나오고 있었다.

이도원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김진우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요 근래 TV에서 지나가듯 한두 번 봤지만 그 정도로 기억에 남지 않은 것이다.

‘어디서 낯이 익은데. 왜 표정이 저따위야?’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가는 건 잠깐이었다.

김진우를 그냥 보낸 이도원은 대로변으로 나갔다.

‘다시 보는 일이 없길 바랐는데.’

이도원은 김진우랑 같이 있던 아이돌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있다는 건 김진우가 앞으로 활동을 할 예정이라는 의미였다. 그는 김진우가 프로그램을 하나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는 미처 몰랐다.

“운명도 참 얄궂군.”

이도원은 싸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무리 현재 시점의 김진우가 저지른 일은 아니라도, 타임 슬립 전 자신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

이도원은 김진우에 대해 검색해 보기로 했다. 그는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을 꺼냈다.

막 액정을 켜는데, 박서진에게 답장이 와있었다.

[나도 금방 나왔어. 그건 그렇고 우리 아빠가 KAS 방송국 카메라 감독이잖아. KAS 국장님 딸이 김진우랑 같이 있던데? 둘이 사귀나봐.]

이도원이 문자를 보냈다.

[김진우?]

[응. E-Net <나는 배우다>에 나오는 신인.]

이도원은 그 내용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었다.

전생에서 김진우에게 늘상 따라다니던 스폰서 의혹.

‘전생에서처럼 뻘짓을 한다면, 그땐 내가 먼저 치워주마.’

이도원은 눈을 빛내며 손목시계를 보았다.

새벽 1시. 새하얀 입김을 뱉으며 집으로 가기 위한 택시를 잡았다. 다음 날 이상백과 점심 약속, 유태일 감독과 저녁 약속이 잡혀있기 때문이었다.

*

따르르르릉-.

알람 소리가 모기 울음처럼 귓가를 맴돌았다. 이도원은 신경질적으로 손을 뻗어 알람시계를 끄고 상체를 일으켰다.

“후.”

한숨을 쉰 이도원은 이불을 걷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체력단련에 들어갔다. 이등병 시절에는 잠시 군 생활에 집중하느라 쉬었지만 수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오던 일상이었다.

두 시간의 웜 업(warm up) 후 바로 화술훈련에 들어갔다. 이것 역시 매일같이 해왔던 훈련이라 아주 익숙하고 자연스러웠다. 이도원은 이제 일상생활에조차 화술을 응용하는 수준이었다. 그 과정에서 평소 쓰는 목소리도 또렷하고 멋들어지게 변했다. 외모가 달라지면 바로 눈에 띄지만 음성의 변화는 쉽게 눈치채기 힘들다. 따라서 이도원 자신은 물론 남들도 이 점을 지목해서 말하진 않았다.

가끔, 이렇게 목소리가 좋았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도.

“후우-.”

이도원은 두 시간의 화술훈련을 마치고 거실에서 야채주스를 마셨다.

군에 있을 땐 아침 대용으로 야채주스를 갈아 마시진 못했지만, 이제 식단 관리를 철저히 해서 신체 밸런스를 되찾을 때였다. 아침 밥 대신 맛없는 야채주스를 원 샷 한 이도원은 샤워를 하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그가 홀로 분주한 아침 아홉 시 정각.

어머니와 누나 이다원이 막 일어난 시각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운동하는 건 여전하네.”

이다원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이도원이 물었다.

“누난 학교 안가?”

“일, 이 교시 공강이네요.”

이다원이 대답했다.

어머니가 싱크대에 설거지되어 있는 믹서기를 발견하고 물었다.

“아침밥은 그거 먹고 되겠니?”

“네. 충분해요!”

이도원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베이지 니트와 슬림한 청바지. 위에는 네이비 오버 핏 코트를 걸쳤다.

이다원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물었다.

“이 아침부터 어디 가시나?”

“관계자들 만나러 갑니다, 누님.”

“넌 매니저도 없어?”

“글쎄요. 아무리 무명이라도 기획사에서 붙여주지 않을까?”

이도원이 너스레를 떨며 피식 웃었다. 타임 슬립 전 모든 걸 스스로 하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매니저라. 호사 누리겠네.”

이도원이 홀로 중얼거렸지만 누구도 듣지 못했다.

“잘 다녀와~.”

이다원이 말하며 우유에 시리얼을 부었다.

어머니 역시 이도원의 건투를 빌어주었다.

“어련히 잘하겠냐만 꼼꼼하게, 확실하게 판단하고! 알겠지?”

“암요, 암요. 다녀오겠습니다.”

이도원은 현관문을 나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이도원의 집은 십삼 층.

엘리베이터가 중간 팔 층에서 멈췄다.

그때 여고생 하나가 탔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을 보자 이도원은 덜컥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 번 살든 두 번 살든,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구나. 고등학교 생활도 좀 즐기고 할 걸 그랬나.’

한편 고등학생 여자아이는 다른 생각을 하며 이도원을 힐끔거렸다.

그러다 어렵게 말을 붙였다.

“저… 혹시, <우리의 심장> 주인공 아니세요?”

이도원은 머쓱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대박!”

여자아이가 꺅꺅 거렸다.

“이웃이었어! 오빠, 저 연기하는 학생인데요. 영화 진짜 재밌게 봤는데 사인 좀 해주세요.”

여자아이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공책과 펜을 꺼내서 건넸다.

엘리베이터가 일 층에 도착했고, 이도원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인을 해주었다.

‘군대에서 사인 연습을 해두길 잘했네.’

이도원은 그런 생각을 하며 가장 흔한 멘트를 날렸다.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여자아이가 꾸벅 인사하고 제 갈 길을 갔다.

이도원은 아리송한 기분으로 아파트 단지 밖에서 택시를 탔다.

마침 이상백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오고 있니?

“네.”

-밥은?

“아침 먹었어요.”

-주소 다시 한 번 문자로 찍어줄 테니까, 사무실로 오면 된다. 곧 제대하고 처음으로 보겠구나.

“그러게요. 조금 이따 뵙겠습니다.”

이도원은 전화를 끊고 차창에 기댔다. 푸른 하늘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밝은 햇살이 인도를 걷는 사람들을 비추었다. 저마다의 삶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도원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다시 찾아온 기회를 헛되게 만들지 않을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택시기사는 이도원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단번에 알아봤던 여고생의 눈썰미가 대단한 것이었다.

이도원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택시는 이상백의 사무실인 청담동 백 프로덕션 건물에 도착했다.

이도원은 계산을 하고 차에서 내려 삼 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그럴싸한데?’

아직 설립 초기였기에 어디 오피스텔부터 시작할 줄 알았는데 땅값도 비싼 곳에 번듯한 건물을 지은 것이다.

간판에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白 Production>이라는 영문이 있었다.

자신의 보금자리가 될 건물의 외관을 감상하던 이도원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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