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43화 (43/178)

043/  디졸브 (dissolve; 장면전환) (4)

대한민국 최대의 영화잡지 <시네마 24>의 기자 고건수와 김흥수. 두 사람은 카페에 마주 보고 앉아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고건수가 기사에 올릴 사진을 편집하며 말했다.

“얼마 전 최정음 인터뷰했는데, 옷을 개떡같이 입고 와서… 다른 기자들도 다 뭔 옷을 저렇게 입었냐고 했다니까?”

“요새 나오는 드라마에서 이슈 된 패션 아니에요? 패션의 아이콘 최정음!”

고건수의 말에 김흥수가 고개를 저었다.

“옷은 주동원이 잘 입지. 비주얼도 찍으면 화보고. 인터뷰하기 편하다.”

“주동원이 잘하긴 하죠. 그건 그렇고, 전 얼마 전에 차지은 인터뷰했어요. 한복 입으니까 예쁘던데요?”

“윤예리가 제일 예쁠 것 같은데. 원래 한복은 외꺼풀 있는 애들이 예뻐.”

그 말에 고건수가 노트북 너머로 김흥수를 보았다.

“선배. 한소담도 외꺼풀이죠?”

“응. 한소담 매력 있지. 연기도 잘하고.”

“선배 취향인 것 같은데.”

둘은 잠깐 낄낄댔다.

고건수가 말을 이었다.

“부국제 다녀오신 건 어땠어요?”

“마침 인터뷰 기사 올리고 있다. 한 번 봐.”

김흥수가 노트북을 돌렸다.

그곳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유태일 감독이 있었다.

고건수는 기사를 죽 훑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유태일 감독 작품이 이번 영화제 키워드에요?”

“차지은이 연기력을 좀 보여줬고. 너 차지은 인터뷰 갔다 왔다며 영화 얘긴 안 했어?”

“영화제 전이에요. 안 그래도 내일 차지은 인터뷰 있는데 선배가 좀 가주세요.”

“넌?”

“전 내일 목포가요. 전라도지사가 주최한 도민 영화제? 그거 때문에. 새벽 여섯시 차에요.”

“알겠다. 근데 이번 영화제 핵심은 차지은이 아니야.”

김흥수는 유태일 감독 인터뷰의 스크롤을 내렸다. 내용을 유심히 읽어보면, 이십대 중반으로 특수 분장을 하고 연기를 펼친 십대 남주인공에 대해 적혀있었다.

“…향후 충무로의 블루칩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그 깐깐한 유태일 감독이 극찬했네요?”

“그래. 이도원이 태풍의 눈이다. 이미 레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침 발라둔 눈치야.”

“차지은 소속사요? 이로빈이 대표죠? 거기 배우들 막 돌리잖아요. 배우로 몸값 떨어지면 바로 아이돌 그룹 만들어서 내보내고.”

“그래도 대형 기획사 아니냐. 대놓고 침 발라뒀다고 소문 내놨는데 어느 기획사에서 거슬러? 그렇다고 이도원 한테 더 좋은 조건을 제안할 수도 없을 텐데.”

“이건 어때요?”

고건수가 자신의 모니터를 돌렸다.

이번에는 이상백 교수의 인터뷰 내용이 있었다.

“연극계의 대부 이상백. 프로덕션 창립 예고! 소문으로는 기획사도 같이 한다던데? 이도원이 제자라면서요?”

“두 사람이 아는 사이라고? 누가 그래?”

“이상백 교수가 직접 그러더라고요. 기사에 싣지 말아달라고 챙기는 걸 보면 꽤 친한 사이인 것 같던데……, 두 사람이 스승과 제자라면 그림 나오잖아요?”

“재밌게 돌아가네. 안 그래도 오늘 이도원 인터뷰 때 물어봐야겠다.”

“그럼 선배, 인터뷰 잘 하시고… 전 갑니다! 여기 카페 좋네요. 저도 인터뷰 장소로 자주 써먹어야겠어요.”

“그래, 일찍 들어가서 좀 자둬라. 새벽부터 바쁠 텐데.”

김흥수가 인사했고 고건수가 카페를 나갔다.

혼자 남은 김흥수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이도원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며 인터뷰를 준비했다.

*

이도원은 교복을 입은 채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김흥수가 손을 흔들자 이도원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통화로 말씀드렸듯이 전 <시네마 24>의 김흥수 기자라고 합니다.”

김흥수가 능숙하게 명함을 건넸다. 명함을 챙긴 이도원이 앉자, 그가 물었다.

“음료는 뭘로 하시겠습니까?”

“전 자몽 생과일주스요.”

김흥수는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는 노트북을 옆으로 치우고 목이 기다란 사진기를 꺼내들었다. 전문가용 앵글만 봐도 가격대가 높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 몇 장 찍고 시작하시죠. 편하게 계시면 됩니다.”

“아, 예.”

이도원은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혀 긴장하지 않고 자세와 표정을 교정하는 유연한 모습을 본 김흥수는 내심 감탄했다.

‘싹수가 보이는군. 이러니 연기도 잘하지.’

인터뷰를 하면서, 사진촬영 할 때 편하게 만들어주는 배우들은 대부분 연기할 때에도 영리하다. 그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다.

찰칵, 찰칵, 찰칵- 몇 번의 셔터 소리가 들리고, 화면을 확인한 김흥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물이 좋아서 그냥 찍어도 화보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이도원이 멋쩍게 웃었다.

마주 미소를 보인 김흥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노트북을 세팅했다.

“자. 그럼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해 볼까요? 오늘은 따로 스케줄 없으시죠?”

“네.”

이도원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아르바이트생이 주문한 커피를 가져왔다.

김흥수는 이도원의 앞에 자몽 주스를 놔주었다.

‘긴장도 풀어줄 겸 첫 질문은 소프트하게.’

생각한 김흥수가 물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유태일 감독의 작품을 함께 작업했는데요. 여배우인 차지은 양과도 세 살 차이로 알고 있습니다. 재밌는 일들도 많았을 것 같아요.”

“차지은 양이 빠른 년생인 걸 감안하면 네 살 차이죠. 많이 친해졌어요. 워낙 애초부터 활동을 했던 친구라 현장에서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대답을 들은 김흥수는 물 흐르듯 질문을 이어갔다.

“그렇군요. 저도 영화제에 관계자로 참석했었습니다. <우리의 심장>도 보았고요. 주인공 상태가 ‘동생에게 제 심장을 주세요’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 모든 관객들이 울었죠. 아마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이도원 군의 연기력에 이의를 달 관객은 없을 텐데요. 그렇게 사실적인 연기를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었나요?”

이도원은 마치 인터뷰를 준비한 사람처럼 능숙하게 대답했다.

“제 스승님은 이상백 교수님입니다. 독백대회에서 심사위원과 참가자로 처음 뵌 후 지금까지 은혜를 입고 있죠. 그분의 조언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에서 유태일 감독님과 차지은 양이 잘 이끌어주었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좋은 장면이 나온 거죠.”

김흥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옳거니! 이상백 교수와 같은 라인이다?’

이제 히든카드를 꺼낼 차례였다.

“이도원 군의 연기를 본 관객들이나 관계자들은 극찬 일색입니다. 따라서 기획사 쪽에서도 많은 러브콜이 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실력은 수준급인데 나이가 어리다는 건 강점이죠. 장래가 밝은 신인은 기획사 입장에서 탐이 날 수밖에 없고요. 어쩌면 도원 군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혹시 어디 어디서 러브콜이 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소문으로는 레드 엔터테인먼트 쪽에도 러브콜이 갔고, 도원 군의 연기 스승이신 이상백 교수님도 기획사 겸 프로덕션을 창업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도원은 이상백 교수가 창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김흥수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를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도원을 놓고 기획사 경쟁이 벌어진다! 이런 주제는 확실히 이슈 감이었다.

‘사제 간의 의리를 택할 것이냐, 대형 기획사를 선택할 것이냐?’

이도원이 기획사 이름을 자세히 거론하면 기획사들한테야 입이 가볍다고 눈치를 받겠지만, 인지도는 천정부지로 솟을 터였다. 대중에게 주목받고 오름세를 타는 순간 인기는 복리 이자처럼 곱으로 붙기 마련이다.

물론 영리한 배우는 이런 반짝 인기 보다 업계의 사랑을 받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이도원은 영리한 배우였다.

“그 부분은 아직 결정한 바가 없어서요. 나중에 결정하게 되면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김흥수는 내심 감탄했다. 보통 어린 배우들은 자랑하길 좋아하고, 조급한 마음에 반짝 인기라도 얻고 싶어 한다. 그래서 조금만 띄워줘도 이런저런 정보들을 술술 분다.

반면 이도원은 노련한 배우들만큼이나 신중했다.

김흥수는 이런 스타일을 더 자극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깨끗이 포기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하하. 대신 꼭 저한테 가장 먼저 제보해주셔야 합니다? 그럼 약속 믿고, <우리의 심장>에서 분장을 하고 무려 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연기를 펼친 거라고 하는데요. <대부>에서의 말론 브란도를 연상시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사실상 삼십 대가 칠십 대 연기를 하는 것보다도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저도 지금껏 십 대 중반에 이십 대 중반의 연기를 하는 배우를 본 적이 없는데요. 아역의 한계랄까요? 인물 이해도 힘들뿐더러 화술 자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성인과 미성년자는 목소리 자체가 다르니까요.”

“어떻게 감히 세계적인 대배우에게 비교되겠습니까? 하지만 제가 존경하는 배우긴 합니다. 꼭 그런 배우가 되고 싶기도 하고요.”

이도원은 적당히 겸손한 선에서 대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김흥수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도원 군의 향후 진로가 궁금합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이도원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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