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42화 (42/178)

042/  디졸브 (dissolve; 장면전환) (3)

2015년 10월.

유태일 감독 작품의 촬영을 끝낸 지도 두 달이 흘렀다. 학교가 개학하고 9월에 유태일 감독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리고 10월 1일, 이도원은 부산으로 향했다. 담임은 자신의 재량으로 학교 공문을 끊어 이도원의 출석일수를 빼지 않았다.

1일부터 10일까지 열흘간 진행되는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이도원은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부터 설레는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꼭 심장 위로 장난꾸러기들이 뛰어다니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부국제에 배우로서 참석하게 되다니…….’

전생에서는 영화제 출품작을 작업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누려본 적이 없는 호사였다.

부산역에는 유태일 감독이 직접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도원은 두 달 만에 만나는 그를 향해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오랜만입니다.”

유태일 감독이 미소 지으며 덧붙였다.

“차지은 배우님과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광고 촬영 때문에 오 일 차 때나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군요.”

이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지은은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나 보다. 그녀를 떠올리자 이도원은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유태일 감독은 자신이 묶고 있는 그랜드호텔로 안내했다. 고급 호텔답게 평수도 널찍하고 시설도 고급스러웠다.

이도원과 유태일 감독, 조감독은 한 방에서 묶기로 했다.

*

부산국제영화제 첫날은 개막작을 상영했다. 이튿날부터는 부산에 있는 위치한 극장들에서 각각 다른 영화제 출품작들이 상영됐다. 동시에 해운대 백사장에서는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기도 했다. 다만 이는 유명 배우들과 상업영화들의 향연이었기 때문에 이도원 일행과는 관련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 일 째, 유태일 감독의 영화가 상영되는 날이 왔다.

“떨리네요.”

일행은 택시를 타고 CNM극장으로 갔다. 그리고 상영 시간 전부터 미리 2층 관계자 석에 입장해 앉았다.

영화 팸플릿에는 촬영할 때 썼던 가제가 아닌, <우리의 심장>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유태일 감독을 비롯해 이도원과 차수희의 얼굴이 찍혀있었다. 따로 포스터 촬영을 한 건 아니었고, 모두 영화 속 장면들이었다.

이도원은 기분이 묘했다.

“잘 나왔네요.”

“뭐, 인물이 좋으니까요.”

유태일 감독이 현장에선 볼 수 없었던 너스레를 떨었다.

막 영화가 시작되기 전, 차지은이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늦지 않기 위해 서둘렀는지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늦지 않았어요!”

차지은이 이도원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다음 유태일 감독과 조감독에게도 인사를 한 뒤 이도원에게 작게 물었다.

“오빠, 잘 지내셨어요?”

“덕분에.”

이도원이 미소를 머금고 가볍게 답했다.

2층 관계자석으로 심사위원과 시네마 기자, 서포터스들이 들어섰고 1층 객석도 일반 관객으로 점차 메워졌다. 상업영화에 비해서 턱 없이 적은 숫자였지만 유태일 감독과 조감독, 이도원, 차수희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머지않아 잔잔한 음악과 함께 오프닝 크레디트가 나왔다. 스크린을 가득 메운 가족사진 앞으로 제작진과 배우들의 이름이 하나씩 나타났다 사라졌다.

“우리 이름이에요!”

차지은은 기쁜 마음으로 속삭였다. 그녀는 여러 작품 활동을 해왔음에도 이런 광경이 처음인 양 기뻐했다.

그건 타임 슬립 전 작품 활동을 했던 이도원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을 벗어나 스크린으로 자신의 이름을 볼 때 드는 느낌은 한결같이 각별했다.

영화 초반부는 남매인 상태와 상희의 갈등을 다루고 있었다.

‘저 때 많이 친해졌지.’

이도원과 차지은은 같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들은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스크린을 보며 드는 생각은 비슷했다. 촬영 당시 두 사람은 매번 함께 들어가는 씬을 찍느라, 스태프들이 의붓남매로 부를 만큼 친해졌었다. 영화 속 역할은 사이가 나쁜 남매였지만.

‘재밌었는데.’

차지은은 현장을 떠나기가 아쉬울 만큼 이도원과 잘 맞았던 추억을 떠올렸다.

두 사람이 갈등을 겪는 장면들이 지나가고 상희 역할의 차지은이 쓰러지면서, 이도원 파트의 씬들이 이어졌다.

수술비와 입원비를 구하러 백방으로 뛰는 상태. 병원 측에서 뒷돈을 받고 상희를 심장이식 명단에서 제외했다는 걸 알게 된 상태. 상태와 주치의 사이의 갈등, 그를 궁지로 모는 상희의 냉담한 태도들이 고스란히 나왔다.

‘도원 오빠가 연기를 정말 잘하긴 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차지은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도원의 단독 씬들이 나오자 새로웠다. 진작 유태일 감독에게 편집 본을 받았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지금껏 확인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와.”

차지은은 감탄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성인 연기자들 대부분이 연극판에서 유명한 배우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도원은 조금도 부족하지 않은 연기력으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남매의 갈등이 파국을 불러왔다. 궁지에 몰린 상태는 의사를 협박했다. 여론을 등에 업으려 인질극을 벌이며 자신을 신고했다. 경찰과 기자들이 병원을 둘러쌌다. 천천히 흐르던 영화의 호흡이 스릴러처럼 급박하게 변했다.

‘정말 신의 편집이군.’

이도원은 거듭 감탄하고 있었다. 대학생의 졸업 작품이라고 믿기 힘든 편집과 연출이었다.

스크린 속에서 인질극을 벌이던 상태는 주치의 오민식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다. 인질극이 계속되는 동안, 상태를 이해하게 된 오민식은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상태가 자살하면 그의 심장을 여동생 상희에게 이식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상태는 영화 도중 경찰에게 빼앗았던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겨누었다.

숨 막히는 장면이 이어졌다.

-내 동생에게 심장을 주세요.

대사에는 깊은 울림이 있었다. 떨리는 음성은 불안정한 심리를 그대로 드러냈다.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관객들의 심장도 함께 떨렸다. 객석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옆에 앉은 차지은도 작게 감탄했다.

“와! 오빠, 연기 진짜 잘한다.”

몇 번을 말하는지. 하지만 그것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긴장으로 굳은 상태의 표정, 흥건한 땀과 눈물 맺힌 눈빛이 심장을 움켜쥐는 느낌이었다.

-탕!

한 발의 총성과 함께 카메라는 하늘을 담았다. 장면이 점점 흐려지며 다음 씬으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이도원이 못 봤던 현장을 스크린을 통해 보고 있었다.

수술이 끝나고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뜬 상희의 시각으로 시작된 장면이, 멍하니 누워있는 상희를 풀 샷으로 비추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상희의 시선도 문 쪽을 향했다. 의사들이 들어오고 그녀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객석은 이미 눈물바다였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은 바로 일어나지 않았다.

“스크린으로 보니까 너도 잘 하는데? 현장에서도 엔지 안 냈어?”

이도원은 차지은에게 특유의 장난을 걸었다. 그런 장난에 제법 익숙해진 차지은은 걸려들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스크린의 힘이죠, 오빠.”

여우처럼 웃는 그녈 보며 이도원은 입맛을 다셨다.

‘요것 봐라.’

발끈하는 모습이 귀여워서 도발을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도원은 포기하고 유태일에게 말했다.

“어떻게 보셨어요?”

“상영 도중 아무도 나가지 않은 걸 보면 반응이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한 번 결과를 기대해 봐도 좋겠어요. 촬영 때 변변한 식사도 함께 못했는데, 오늘 저녁에 하죠.”

그는 미성년자인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덧붙였다.

“술을 못하니 아쉽군요.”

*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10일 폐막했다.

차지은은 상영 당일 날 저녁을 함께 먹고, 먼저 서울로 올라간 상태였다.

유태일 감독과 조감독, 이도원은 부산에 남아 모처럼의 여유를 즐겼다.

<우리의 심장>은 뉴커런츠상과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했다.

그 일로 전문가들 사이에선 신인감독 유태일과 호연을 펼친 주연 이도원과 차지은이 조명을 받았다. 유태일 감독은 충무로의 떠오르는 신예감독으로 급부상했다. 또한 차지은은 연기력 논란을 어느 정도 벗으며 주가를 올렸다.

한편 이도원은 유태일 감독이나 차지은의 그늘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뿐, 독립영화기 때문에 일단 본 사람이 적었다. 그리고 첫 작품이라서 섣불리 연기력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평가였다. 유태일 감독의 연출력이라면 충분히 부족한 연기력도 메울 수 있다는 내용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이도원이 신인 치고 충분히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었다. 잇따라 특수 분장을 하고 참여했던 이도원의 나이가 공개되면서, 그에게도 몇몇 영화 전문잡지사의 인텨뷰 요청과 기획사의 미팅 제안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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