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36화 (36/178)

036/  프로덕션 (production; 촬영기간) (1)

촬영을 마친 이도원은 한국예술대학교에서 이상백과 만나 그의 낡은 차에 탑승했다.

‘교수가 연봉이 짠가?’

이도원은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예술대학교는 국내 최고 명문 예술대학 중 한 곳이었다. 그것도 가장 입김이 센 연기과 학과장의 연봉이 적을 리 없었다. 이도원은 이상백이 자신의 연봉을 모조리, 찍는 족족 말아먹는 영화 제작비로 쏟아붓는다는 사실까진 미처 알지 못했다.

이상백이 운전을 하며 물었다.

“영화 촬영은 잘 했나 보구나.”

“어떻게 아셨어요?”

“얼굴이 활짝 피었다.”

두 사람은 멀지 않은 낚시터로 갔다.

서울에서 수원으로 가기 전 금정역에 위치한 곳이었다.

“내가 종종 오는 곳이다.”

‘이곳에는 왜 데려오신 거지?’

이도원은 그 의도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연기 수업 대신 갑작스러운 낚시라니.

이상백은 낚시터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리를 잡았다.

이도원도 얼결에 그를 따라갔다.

“거기 앉아라.”

이상백이 자신의 곁에 있는 휴대용 접이식 의자를 눈짓했다.

그 말에 따라 이도원이 의자에 엉거주춤하게 앉으며 물었다.

“교수님. 갑자기 낚시터는 왜 오자고 하신 거예요?”

이상백은 동문서답하며 되물었다.

“오늘도 화술 훈련은 했겠지? 촬영한다고 빼먹진 않았냐는 말이다.”

“예.”

이도원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다. 안 했으면 혼자 집에 가라고 하려 했다. 그만큼 중요한 거니까.”

“중요하죠. 그런데 내일모레가 다시 촬영입니다. 그런데 한가하게 낚시라니…….”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저수지는 안 보고, 전전긍긍하는 얼굴로 날 본 거냐?”

이상백은 미소 지으며 호숫가로 고개를 돌렸다.

“보통 낚시터를 오면 풍경을 먼저 보기 마련인데 말이야. 항상 넌 무언가에 쫓기는 표정을 하고 있다. 연기할 때만 빼고.”

“제가 그랬습니까?”

이도원은 헛웃음을 흘리며 저수지로 눈길을 돌렸다.

“고요하군요.”

“그래서 불렀다. 고요한 곳이라서.”

이상백은 낚싯대를 드리운 채로 말했다.

“연기자는 감정 폭이 큰 직업이지. 배우는 마음 둘 곳 없는 사람들이다. 너만 해도 독백대회가 끝나자마자 영화판에 불러가지 않았냐? 얼마나 피곤하고 소란스러운 삶이냔 말이야. 앞으로 갈 길에 비하면 아직 그리 바쁜 삶을 살고 있지도 않은데, 네 녀석은 여유가 없어 보인다.”

“제가 그렇게 보였나요? 언제요?”

“늘, 항상, 언제나.”

대답한 이상백이 말을 이었다.

“너 자신의 마음조차 여유가 없는데 어떻게 다른 인물을 이해한단 말이냐? 짧게 이해하는 척할 수는 있겠지. 빠져드는 척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인물을 깊게 이해하려면, 너부터 마음의 여유를 갖고 넉넉한 마음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한다.”

“마음의 여유…….”

“연애와도 비슷하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진심이 없으면, 요즘 애들 말로 엔조이일 뿐이야. 절대 감동을 줄 수 없다. 그건 사기꾼이지, 배우가 아니잖니.”

이도원의 눈이 저수지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이상백은 생각에 잠겨있는 그를 곁눈질하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배우는 수많은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너 자신을 잃으면 안 된다. 캐릭터가 네 안으로 들어가야지, 네가 캐릭터 안으로 들어가면 안 돼. 캐릭터에게 잡아먹히면 그건 연기가 아니란 소리다. 그래서 어떤 캐릭터가 들어와도 자신을 잃지 않을 정도의 공간을 마음 한구석에 갖고 있어야 하지. 그래야만 캐릭터의 단면을 벗어나서, 캐릭터의 삶 자체의 복합적인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다.”

“어렵네요.”

이도원이 어렵게 입술을 뗐다.

“전 어쩌면 지금껏 연기하려는 인물에게 잡아먹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네가 더 강해지면 된다. 진짜 강자는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이지.”

이상백은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남자가 마음이 넓어야지 않겠냐?”

이도원은 느끼는 바가 많았다.

곧 해가 완전히 저물고 깜깜한 어둠이 저수지 위로 내려앉았다.

“낚시는 밤낚시가 묘미지.”

“저, 외박 안 되는데요.”

“집에 전화연결해라.”

이상백이 칼같이 말했다.

“쓸데없는 핑계 대지 말고. 앞 좀 봐봐, 이 녀석아.”

이도원은 궁시렁 대면서도 앞을 보았다.

“예. 봤습니다.”

“어디가 물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맞춰봐라.”

이상백의 말을 들은 이도원은 머리가 띵했다.

저수지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져있었다. 수평선이 자취를 감추자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형광 색 케미컬라이트(낚시할 때 찌에 끼우는 야광봉)만이 경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저 야광봉들 보이지? 너와 캐릭터 간의 저런 암묵적인 경계가 필요하다. 깊은 감정으로 연기하는 건 좋아. 메소드 연기라고 들어봤지? 많은 사람들이 ‘캐릭터 자체가 되는 감정적인 연기’로 오해하고 있지만, 메소드 연기의 창시자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Konstantin Stanislavskii; 러시아의 연출가·배우·연극이론가)는 ‘연기란 극 중 캐릭터와 배우가 경험한 어떤 감정을 연결 짓는 것 뿐’이라고 정의했다.”

이도원은 잠자코 들었다.

이상백이 말을 이었다.

“그의 연기법에 영향받은 대가들은 모두 끊임없는 훈련과 기술적인 연기를 강조하고 있다. 그 증거로 로버트 드니로의 스승이자 메소드 연기를 번영시킨 스텔라 애들러(Stella Adler; 미국의 영화배우)는 ‘배우는 평생 스스로를 편집해야 한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지. ‘배우에게 필요한 재능은 연기를 하고 싶다는 마음뿐이면 된다’는 말도.”

그 말을 모두 들은 이도원은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그는 타임 슬립을 하며 뛰어난 공감과 몰입 능력을 얻었다고 해서 무의식적으로 감정적으로만 연기를 해왔다. 그 동안  화술 훈련과 체력 훈련 모두 꾸준히 하고 있음에도 정작 연기를 할 때는 써먹지 않고 감정에 기대기만 하는 ‘편한 방법’을 따랐던 것이다.

이상백이 이도원의 얼어붙은 표정을 보며 덧붙였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길 했는지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한다.”

어둠을 밀어내며 새벽이 도래하기까지 이도원은 담담하게 생각에 잠겨 있었다.

전생에서 소리를 잃기 전까지 간단한 익스트림 스포츠나 충동적인 취미를 즐기던 그였다. 재능이 뒷받침되지 않아 완벽히 캐릭터를 소화하진 못했지만, 대학 때 배운 기술적인 면으로 대체했다. 제법 실력있는 조연까지가 한계였다. 주연급 배우의 카리스마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때까진 분명 조단역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무대를 서도 최고의 연기를 펼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지. 연기를 잘 끝내고도 항상 무언가 찝찝했다.’

이도원은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정말 실력이 늘었던 것은 소리를 잃고 절망한 끝에 마음의 평정을 찾았을 때였다. 그때부터 이도원의 연기력은 명배우의 반열에 올랐었다. 그랬으니 당시 탑이었던 유태일 감독이 단 한 번의 공연만 관람하고 주연으로 발탁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소리를 찾자 그의 연기는 다시 조단역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스텔라 애들러는 말했다. 신체와 소리의 단련도 중요하지만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의 단련이라고.’

이도원은 이상백이 이곳에 데려온 이유를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이도원이 깨달음을 얻길 바랐던 것이다. 무엇에도 미동하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갖길 바랐던 것이다.

‘또 은혜를 입는군요.’

이도원은 미소 지었다.

이상백은 그가 소리를 잃고 절망했을 때 기사회생하게 해준 가르침을 새 삶에서도 일러주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도원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곁눈질로 그를 본 이상백이 낚싯바늘을 회수하며 흐뭇한 웃음을 입에 걸었다. 두 사람은 긴 밤 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낚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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