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수정/ 빠졌던 화) 크랭크 인 (crank in; 촬영개시) (7)
“오케이 컷!”
오케이 사인을 내린 유태일 감독은 이어서 주문했다.
“상태 미디엄 샷(MS; 인물의 허리 위를 잡는 샷) 한 번 더 갈게요.”
이도원이 표정에 좀 더 신경 쓰며 똑같은 연기를 했다.
다시 들어도 이도원의 음성은 나직하고 확고했다.
유태일 감독은 헛웃음을 뱉었다.
‘영락없는 양아치군.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고.’
그는 컷 사인을 보냈다.
“오케이, 컷.”
“휴우. 이제 맞아야 하네.”
이도원 맞은편에서 남학생이 울상을 지었다.
그를 보며 이도원이 말했다.
“미리 사과할게요. 빨리 끝내죠.”
“아이고. 말씀 놓으세요. 형.”
남학생은 친근하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연기인데요, 뭘. 근데 형 진짜 일진이에요?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보다가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아니요. 일진 아닌데요.”
이도원이 피식 웃었다.
그를 보며 차지은이 눈을 흘겼다.
“이상하다. 일진 맞는 것 같은데. 하는 행동이나 말투나…….”
“무슨 근거로?”
이도원이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그렇잖아요. 초면에 대놓고 연기 못한다고 하고, 안하무인이고.”
“초면에 대놓고 말한 건 맞지만 안하무인은 아닌데.”
그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일진 뭐 이런 거랑 거리가 멀다. 약한 애들 괴롭히지도 않고.”
그 말에 다른 학생들이 한 마디씩 했다.
“형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그런 거죠.”
“오빠, 분장했는데도 잘생겼어요.”
“몇 살이에요?”
이도원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열일곱.”
여학생들이 깜짝 놀랐다.
“어? 다 동갑이네?”
“우리 동갑한테 존댓말 한 거임?”
남학생들도 표정을 구겼다.
“분장 때문에 몰라봤네.”
“동갑한테 형이라고 했어. 개웃겨.”
그들이 낄낄 웃었다.
이도원은 학생들이 귀여웠다.
‘애들은 웃음이 많단 말이야. 좋겠어.’
타임 슬립 전 학생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며 추억을 그리기도 하고, 한편으로 부러웠던 이도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추억 속에 와있는 것이다.
‘행복하군.’
타임 슬립 하기 전 이도원의 나이는 서른일곱, 아이들은 열일곱 살이었다. 그 괴리감은 전적으로 어울리는 데에 장애가 되었다.
그들이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스태프들이 장비를 모두 옮겨서 배치했다. 그 작업이 끝나자 유태일 감독이 말했다.
“촬영 재개합니다. 배우들 위치해 주세요.”
잇따라 조감독이 크게 외쳤다.
“모두 조용해 주세요!”
스태프들은 한결 바빠졌다. 영화 촬영을 구경하러 온 주민들 몇몇을 통제해야 했던 것이다. 실내 보다 외부 촬영은 좀 덜했지만, 아주 작은 소리만 내도 엔지가 날 수 있는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를 주었다.
유태일 감독은 그쪽은 신경 쓰지 않고 소음이 가라앉자 사인을 보냈다.
“카메라 롤-.”
쥐 죽은 듯 조용해진 상황에서 그가 말했다.
“레디, 액션!”
이도원이 손찌검을 했다. 그의 손바닥에 따귀를 맞은 남학생은 그만 주저앉았다.
짝 소리가 크게 났다.
‘겁나 세게 때리네! 나한테 감정 있나?’
남학생은 쓰러지자마자 반사적으로 이도원에게 눈을 부라렸다. 저절로 자연스러운 연기가 나온 것이다.
유태일 감독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좋아. 촬영을 할 줄 아는군.’
상대방에게 미안해서 어물쩍거리다간 오히려 많은 엔지가 날 수 있었다. 그런 일이 초래되지 않도록 이도원은 첫 연기 때부터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때 개가 짖었다.
왈 왈 왈!
동네 주민이 데려온 애완견이었다.
“엔지! 컷!”
유태일 감독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에 고조됐던 긴장감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는 오디오 스태프에게 물었다.
“살릴 수 있겠어?”
“아뇨, 선배님. 진작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걸렸어요.”
“왜 진작 말 안한 거야?”
“죄송합니다.”
그는 배우들에게 외쳤다.
“죄송합니다! 한 번 더 갈게요.”
이도원은 자신에게 맞은 남학생을 일으켜주었다.
“괜찮아?”
“아, 예.”
얼굴 표정이 좋지 못했다. 이것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였다. 물론 프로도 프로 나름이었지만.
‘그나저나 큰일이군.’
유태일 감독은 스태프들이 애완견 주인과 얘기가 길어지는 걸 보며 현장을 통제했다.
“오 분만 쉬다 가겠습니다.”
그는 애완견 주인과 스태프가 실랑이 하는 곳으로 갔다.
“아니, 난 이곳 주민인데 내 마음대로 산책도 못해요? 촬영 때문에 시끄럽다고 주민신고 할까요?”
“아주머니. 그게 아니고… 금방 끝납니다. 그 정도는 이해 좀 해주세요.”
절체절명의 순간, 이제 갓 일 학년 스태프는 쩔쩔매며 대답하고 있었다.
민원이 발생하면 삼십 분 내 동사무소 직원이 나와 민원을 해결해 주기 마련이다. 그럼 최악의 경우 촬영을 중단하고 다신 이곳을 이용하지 못해 지금까지 촬영 분을 날려먹을 수도 있었다.
그때 유태일 감독이 나서며 물었다.
“조감독한테 못 들었어?”
그는 애완견 주인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촬영 전, 사전에 구청에 신고하고 진행하는 촬영입니다. 게다가 사유지가 아닌 도로는 구청 소유죠. 더구나 동 대표님께 미리 안내문도 돌렸고 양해도 구했습니다. 즉, 민원 제기하셔도 소음공해나 실생활에 불편을 주지 않는 한해서는 문제가 없단 뜻이죠.”
“뭐… 뭐라구요?”
애완견 주인은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녀에게서 눈을 뗀 유태일 감독이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다시 촬영 들어갈 준비합니다. 모니터링하는 오 분 동안 쉬겠습니다.”
그는 자리로 돌아가 앉아서 모니터를 보았다.
곁에서 조감독이 물었다.
“선배님이 직접 로케이션(location; 장소 섭외) 안 하셨잖아요? 언제 구청에 신고하셨어요?”
유태일 감독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이런 자잘한 촬영을 누가 일일이 신고하고 하냐? 당연히 뻥이지.”
“그러다 저 아줌마가 진짜 민원 넣으면요?”
“정확하게 설명했으니까 신고 안 해. 쓸데없는 거 신경 쓰지 말고 이것 좀 봐봐.”
그가 가리킨 장면은 이도원이 남학생의 뺨을 때리는 씬이었다.
“이게 왜요?”
“원래 풀 샷으로만 잡고 클로즈업해서 찍진 않으려고 했는데. 표정, 아깝지 않냐?”
“그래도 그걸 어디 넣습니까? 어차피 편집하면서 잘릴 텐데요.”
“때리고 상희한테 고개 돌리면서 클로즈업으로 표정 따자. 흥분한 표정이 너무 잘 나와서 버리기 아깝다.”
“괜히 이것저것 넣으려다 망가지는 거 아시잖아요?”
“과감한 편집 유태일, 몰라? 애들이 편집 다 나한테 맡긴다. 촬영한 장면 싹 다 잘려나가는 거 보면서 살점이 떨어지는 표정을 지어대지. 난 안 그래. 이건 건지는 컷이야.”
“으음… 알겠습니다. 틀리신 적 없으니까, 한 번 믿고 가보죠.”
“곧바로 줌 당겨서 클로즈업하고, 어색한 부분은 포스트포로덕션(post production; 촬영 후 편집) 때 잘라내자.”
“알겠습니다.”
어차피 영화는 편집이 반이었다. 따라서 촬영한 소스는 많을수록 좋았다. 다양한 소스들이 유태일 감독의 뛰어난 편집기술과 만나면 얼마든 좋은 장면을 만들어 낼 수가 있는 것이다. 쉽게 수긍한 조감독이 크게 외쳤다.
“촬영 들어갑니다. 배우들 위치해주세요!”
촬영이 재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