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30화 (30/178)

030/  크랭크 인 (crank in; 촬영개시) (5)

이도원과 이윤식이 촬영할 장면은 롱테이크(long take; 1~2분 이상의 쇼트가 편집 없이 길게 진행되는 것)였다. 롱테이크는 많은 대사를 소화해야 하고 보다 길게 배우 간의 호흡이 맞아떨어져야 했기 때문에 고난도 작업이었다. 어려운 만큼 편집 없이 내보낼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자연스러운 연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카메라는 두 사람을 풀 샷(FS; 인물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프레임 안에 담은 샷)으로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이도원의 연기가 시작됐다.

그의 눈으로 눈물이 그득 차올랐다.

“도와주십시오! 제발 한 번만……. 많은 환자들 중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사람을 살리는 일 아닙니까?”

감정이 듬뿍 들어가 있는 연기에 이윤식은 평가할 틈도 없이 몰입했다.

“제게 말씀하지 마시고, 원무과에 말씀해 보시죠. 여기서 이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절로 기분이 나빠질 만큼 사실적인 표정연기를 선보였다. 이내 이윤식이 자리를 피하려는 듯 걸음을 옮겼다.

이도원이 이윤식의 뒤통수를 노려보다 쫓아갔다.

그는 이윤식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동생이 입원하는 동안만이라도,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이윤식이 불쾌한 표정으로 이도원을 보았다.

“이거 안 치워요? 부탁이 뭡니까?”

안 치우냐고 불쾌한 티를 낸 것은 적절한 애드리브였다.

이도원이 그를 잡아끌며 마주 대사를 쳤다.

“잠시… 이쪽으로 오시죠.”

두 사람은 복도 문을 열고 나갔다. 그 후 문이 닫히는 것까지 카메라에 담은 뒤, 유태일 감독이 외쳤다.

“컷. 오케이!”

그는 콘티를 훑으며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다음 미디엄 클로즈 업(MCU; 가슴이나 어깨 위를 잡는 샷)해서 상태랑 민식 각각 하나씩 딸게요.”

이는 드라마에서는 바스트 샷이라고도 부르는 촬영 기법이었다.

상태 역의 이도원과 민식 역의 이윤식은 아까와 똑같은 자리에 마주 서서 연기를 펼쳤다. 다만 상대역은 카메라에 어깨만 걸리도록 위치를 이동했다. 오버 숄더 숏(oSS; 한 사람의 어깨너머로 다른 사람을 촬영하는 기법)이었다.

배우들이 그대로 대사를 반복한 뒤 다음 씬으로 넘어갔다. 스태프들이 복도에서 문 뒤편 계단으로 장비를 모두 옮긴 뒤 촬영에 돌입했다. 이전의 롱테이크와 이어지는 장면이었다. 스크립터가 슬레이트를 치자 유태일 감독이 지시를 했다.

“액션!”

이도원이 간절한 눈빛으로 이윤식을 보며 연기했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부탁합니다. 제발… 다시 한 번만 재고해 주십시오.”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이윤식의 답변은 더할 나위 없이 매정했다.

“미안하지만 원무과에 이야기하시오. 난 권한이 없다니까요.”

기계음처럼 내뱉는 딱딱한 말투가 비수가 되어 이도원의 가슴을 헤집었다. 두 사람의 연기 호흡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무섭게 몰입한 이도원이 입을 앙다물며 호흡을 거칠게 바꾸었다. 분노를 가득 품고, 이윤식을 벽으로 밀쳤다.

“난 당신에게 분명 기회를 줬어. 마지막 부탁라고 했지? 이제 더는 부탁하지 않아.”

그 눈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이윤식은 실제로 간담이 서늘했다.

“이거 왜 이러시오? 이거 놔요!”

그는 저도 모르게 겁에 질려 발버둥 쳤다.

장면을 지켜보던 유태일 감독은 내심 감탄했다.

‘열일곱 살이 삼십 대 중반을 겁에 질리게 만들었어. 이도원은 궁지에 몰린 인간의 광기를 내고 있다.’

그는 모니터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한편 이도원이 허리춤에 숨겨둔 소품 칼을 더듬으며 꺼냈다. 범행을 저질러 본 적 없는 어설픈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섬세한 묘사에 유태일 감독이 다시 한 번 놀랐다.

‘움직임이 좋군!’

이도원은 빼든 소품 칼을 이윤식의 아랫배로 가져다 대고 말했다.

“이젠 명령이야.”

목소리가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한 두려움이 물씬 풍겨났다.

이윤식은 소품이 아닌 차가운 칼이 아랫배에 닿아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식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그가 외쳤지만, 이도원은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닥쳐. 내가 모를 줄 알아? 뒷돈을 받고 심장이식 대기자 명단 일 순위였던 내 동생 보다 먼저 다른 놈에게 심장을 줬어. 그전에 뻔뻔하게 노골적으로 내게 돈을 요구해놓고 내가 두 손 놓고 당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씹어뱉는 대사가 똑똑히 전달됐다.

유태일 감독은 믿기 힘들었다.

‘첫 촬영 맞아? 감정이 폭발하는 씬을 롱테이크로 촬영하는데 엔지를 안내?’

노련한 배우들도 엔지를 낼 법한 촬영 방법에도 두 배우는 잘 적응했다. 오히려 상호 간에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윤식이 호흡을 맞췄다.

“그럼 경찰에 신고를 하세요! 나한테 이러지 말고!”

그가 언성을 높이기 무섭게 이도원이 칼끝을 밀었다. 그는 협박조로 말했다.

“닥치고 있어. 죽고 싶지 않으면.”

이도원은 이윤식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한 손을 뻗어 문을 더듬어 잠갔다.

“경찰도 방송국도, 증거가 없다고 묵살하더군. 돈을 구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했어. 내 동생을 위해서라면 당신을 죽일 수 있다.”

그는 이윤식의 가운을 뒤적여 휴대폰을 꺼낸 뒤 명령했다.

“신고해.”

“뭐요?”

“신고하라고. 언론에 이 사실을 알릴 테니까.”

“당신 미쳤군!”

거기까지 진행되자 유태일이 잘랐다.

“컷. 오케이! 배우님들 모니터링하세요.”

그의 말에 이도원과 이윤식이 모니터를 보았다. 원 테이크만에 오케이 사인을 받는, 믿기지 않을 만한 호연을 펼쳤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유태일 감독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말했다.

“일단 오케이. 킵 하고, 한 번 더 찍읍시다.”

“예.”

“알겠습니다.”

이윤식과 이도원이 대답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은 두 번 더 연기를 펼쳤지만 모두 엔지가 났다. 발음이 꼬이거나 밀치는 과정에서 호흡이 안 맞았다.

“컷. 엔지!”

외친 유태일 감독이 말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아까 오케이 난 걸로 가겠습니다. 아까처럼 클로즈업 하나씩 따고 넘어가죠.”

장면은 최대한 확보해 둘수록 좋았다. 그래야 편집으로 만들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좋은 작품으로 가는 중요한 밑거름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나오는 복도와 계단 씬 촬영이 끝나고, 이어서 이윤식이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를 하는 장면과 휴대폰을 건네받는 손을 부분적으로 찍었다.

유태일 감독 옆에서 이윤식의 연기를 모니터링하던 이도원은 속으로 생각했다.

‘관록이 그대로 묻어나는군. 저런 배우가 졸업 작품 조연을 하고 있다니…….’

그는 이윤식이 널리 알려지기까지 앞으로 이십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게 안타까웠다. 신고 장면과 휴대폰을 건네받는 장면은 모두 원 테이크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하지만 각도를 바꾸어 두 번 정도 더 찍고 마무리했다.

유태일 감독은 스태프들에게 지시했다.

“체크 더 게이트((check the gate; 렌즈에 이물질이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 그리고 그립 팀장은 장비 점검해주세요. 배우님들과 저는 다음 촬영장소로 먼저 이동하고, 카메라는 핸드헬드 샷(handheld stot; 혼란의 한가운데서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을 살려주는 샷)으로 병원 내부 정경 따고 다음 장소로 합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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