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적인 배우, 기술적인 배우 (1)
퍼억!
이도원은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 기습이었다지만, 정면으로 붙었어도 얻어맞았을 터였다.
눈앞이 아찔했는데 깨어보니 누워있었다.
‘이 새끼는 뭐야?’
이도원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으며 일어나는 척 휴대폰 녹음기를 켰다. 연기하면서 녹음 기능을 많이 썼기 때문에 들어가기 편하도록 휴대폰 첫 화면에 설정해 놓았고, 상대방의 눈을 속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당하더라도 증거는 남겨야지.’
이도원의 생각이었다.
녹음기의 존재를 꿈에도 모르는 남자가 말했다.
“괜히 저항하다 옥수수 다 털리지 말고 깨끗하게 팔, 다리 하나만 부러지자. 나 한태양이야.”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자신 있는 말투나 모양새를 보면 꽤 유명한 양아치인 것 같았다. 보자마자 주먹을 날리는 것만 봐도, 타임 슬립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는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군다나 일기장에 조차 언급되어 있지 않았던 이름이다.
“그게 누군데?”
“너 이사 왔냐?”
남자, 한태양이 기가 막힌다는 듯 말했다.
“날 모른다고? 그럼 좆나 더 억울하겠네. 모르는 사람한테 처맞는 거니까.”
그는 능숙하게 이도원의 멱살을 잡으며 다리를 걸었다. 순간 이도원의 몸이 공중으로 붕 떠서 곤두박질쳤다.
“컥!”
이도원은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느꼈다. 동시에 살아나갈 방법을 떠올리고, 일부러 머리를 벽돌 쪽으로 갖다 대며 넘어졌다.
“일어나라. 너 오늘 집에 못 가.”
한태양은 어깨를 돌리고 있었다.
워낙 외진 골목이라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을 확률은 극히 적었다. 그리고 누군가 우연히 비명을 들었을 때 와줄 가능성 보다, 한태양이란 미친놈이 더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이도원은 소리를 지르는 대신 크게 다친 척 연기를 했다.
“뭐야?”
한태양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다가와서 이도원의 뺨을 쳤다. 하지만 이도원은 미동도 않고, 가늘게 숨을 쉴 뿐이었다.
“아, 씨발. 좆 됐네.”
안절부절못하던 한태양이 이도원의 발목을 세게 밟았다. 그럼에도 이도원은 어떤 신음도 내지 않았을뿐더러 미동조차 없었다. 머리에 벼락을 맞은 듯 솜털이 뾰족 서는 고통이었지만, 이도원은 이를 악물고 참아낸 것이다.
‘심하게 삐어서 인대가 늘어났거나, 뼈에 금이 갔다.’
퍽 소리가 나고 발목이 돌아갔다. 즉, 당분간 절룩여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도원의 발목을 무참히 짓밟은 한태양은 담벼락에 기대 담뱃불을 붙였다. 그는 담배를 피우며 이도원을 향해 말했다.
“그냥 똥 밟았다고 생각해라. 그러게 왜 연극부는 건드려서 지랄이야? 다리 한 짝 아작 내놨으니까 당분간 연기는 못하겠지. 야, 진짜 뒤졌냐? 일어나봐.”
한태양은 이도원의 발목을 툭툭 찼다. 그럼에도 이도원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는 이도원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대며 심장이 뛰는지, 숨은 쉬는지 모두 확인했다.
‘귀라도 물어뜯을까?’
이도원은 잠시 생각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한 짝 발목이 날아간 상태로 기습했다가 실패하면, 자칫 더 크게 다칠 우려가 있었다.
“하여간 또 쓸데없는 짓 했다간 내 얼굴 다시 볼 일 있을 거다. 알겠지?”
한태양은 그 말을 남기고 골목을 나갔다. 완벽히 혼자가 되자 이도원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으으.”
화끈한 통증이 발목을 난도질했다. 당분간은 똑바로 걷기도 힘들 것 같았다.
‘가만 안 둔다.’
이도원은 으드득 이를 갈며 골목을 나가 대로변에서 택시를 탔다. 비틀대는 그를 보며 택시기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학생. 다친 것 같은데, 병원으로 갈까?”
“예. 한대병원 응급실로 가주세요.”
한국대학교 부속병원 응급실로 향하며 이도원은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일단 연극을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다 계단에서 넘어진 것으로 핑계를 댔다. 그리고는 이어폰을 끼고 녹음기를 틀었다.
한태양의 말이 모두 녹음되어 있었다.
‘연극부는 이제 내 손바닥 안이다.’
한태양이란 놈은 어찌 처리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폭행으로 경찰에 신고하면 당연히 한태양은 소환조치 당한다. 녹음기와 목소리를 대조해서 처벌할 것이다. 게다가 폭행은 민법이 아닌 형법이라 합의를 안 봐주면 한태양은 소년원으로 직행할 것이다.
‘그 새낀 독백대회 끝나는 대로 조진다.’
독백대회는 예선 작품들 중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매기고, 본선으로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선결과는 아직 안 나왔지만 떨어졌을 경우를 굳이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이도원은 독백대회 본선에서 할 작품을 고민했다. 다행히 본선도 지정연기가 아닌 자유연기였다.
‘한쪽 다리를 절면서 할 수 있는 연기.’
무성극을 하며 누구보다 뛰어난 움직임 연기를 할 수 있는 이도원이었지만 실제로 다쳤다면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할 것이다. 그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셰익스피어 희곡의 외발 캐릭터를 찾았다.
이도원의 기억으로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가 외발에 꼽추였다. 리처드 3세는 실존인물이었다. 셰익스피어 희곡에서는 굉장히 악명 높은 군주로 묘사된다. 읽은 지 워낙 오래돼서 벚꽃동산처럼 생생히 기억나질 않았다.
‘아예 작품 분석부터 다시 해야겠군.’
충격적인 일을 당하고도, 이도원의 머릿속은 오로지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다.
*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택시가 병원 앞에 섰다.
병원에서는 통 깁스를 추천했지만, 이도원은 압박붕대만 감고 목발을 짚는 편을 선택했다. 이유인즉 독백대회 본선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서점에 들러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 희곡을 샀다.
이도원이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속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심 좀 하지……. 나이가 몇 살인데 계단에서 넘어지니?”
“긴장해서 그랬어요.”
그는 시익 웃어준 뒤 재빨리 방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얻어맞았던 얼굴이 빨갰기 때문이다. 아마 겨울이 아니었다면 직방으로 들통 났을 터였다.
“휴우.”
이도원은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방 정리를 하고 책상에 앉아 <리처드 3세>를 펼쳤다. 그리고 책장을 넘길수록 점점 작품에 빨려 들어갔다.
무대에서처럼, 머릿속에 다시 한 번 어떤 광경들이 펼쳐졌다. 상상보단 선명하고 실체보단 흐릿한 장면들이었다.
이도원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채로 책 속에 머물다 화들짝 깨어나며 책장을 덮었다.
“뭐야?”
입술을 비집고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연기만이 아니라 책을 보면서도 같은 현상을 경험한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인물들에 몰입됐다. 그들의 감정선들이 선명하게 이도원의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말도 안 돼.”
어떤 배우라도 이 사실을 안다면 하늘이 준 재능이라고 할 것이다.
배우에게 저절로 감정들이 떠오르는 건, 음악에 비유하면 모차르트요, 화가로 치면 모네를 뛰어넘는 재능이었으니까.
‘이건 원래 내 능력이 아니야.’
이도원은 확신했다.
배우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기술적인 배우와 감각적인 배우.
기술적인 배우는 큰 기복 없이 꾸준한 연기를 선보인다. 로버트 드니로나 리처드 해리스같이 꾸준하고 안정적인 연기를 보이는 배우들이 그들이었다.
반면 감각적인 배우는 타고난 몰입 능력이 뛰어난 대신 연기의 기복이 클 수밖에 없다. 히스 레저나 말론 브란도같이 폭발적인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그들이다.
이 양면을 모두 갖춘 메소드 연기의 대가라면 배우로서 완전체에 가깝겠지만, 두 가지 장점은 물과 기름과 같이 섞이기 힘든 성질의 것이었다. 따라서 평등한 균형을 이루기 힘들었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연기력이 증명된 대배우가 아닌 이상, 동료 배우나 관계자들은 대부분 감각적인 배우보다는 기술적인 배우를 선호한다.
물론 유태일 감독 같은 거장들은 감각적인 배우들도 충분히 컨트롤할 저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감각과 기술을 동시에 가진 천재라도 됐다는 거야?’
대개 한 쪽이 뛰어나면 다른 한 쪽이 죽는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죽었다가도 살아난 판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도원은 원래 기술적인 배우에 가까웠다.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까워지면 관객의 눈을 완벽히 속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신까지 속일 수는 없는 법. 독백대회 예선처럼 지금도 절제된 연기를 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느끼는 몰입도는 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병원에 한 번 가봐야겠어.’
연기적으로 성숙하는 건 반길 일이었지만, 이토록 비약적인 현상은 경계해야만 했다. 이도원은 뭐든 과하면 문제가 생긴다고 믿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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