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8화 (8/178)

독백대회 (1)

연극부 선배들은 이도원이 독백대회 우승으로 선빵을 날리기도 전에 강압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점심시간을 틈타, 연극부 선배 셋이 교실 문을 부술 듯이 열고 그를 지목한 것이다.

“이도원!”

가장 앞에 서있는 선배는 중학교 때까지 지역에서 싸움 좀 한다고 이름을 날렸던 유희찬이었다. 달고 온 두 명은 그와 중학교 동창이자 전형적인 양아치인 송건규, 박상민.

‘애들은 애들이야.’

이도원은 그들의 발상에 동감할 수 없었다. 심지어 건들대는 걸음걸이조차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저렇게 걷지?’

조폭영화를 봐도 좀 멋진 걸 따라 하지, 꼭 저런 날라리의 겉멋만 배운다. 마치 자신이 싸구려라고 자랑하듯이 수준 이하의 것들을 멋으로 착각하고 따라 한다.

그들은 이도원의 이런 생각을 알 수 없었다.

“미친 새끼야. 죽고 싶어?”

유희찬은 그의 멱살을 확 잡아끌었다.

앉아있던 이도원이 딸려 일어나며 책상이 넘어졌다.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송건규, 박상민은 상대가 가능했다.

영화처럼 이길 수는 없겠지만 개판 오 분 전으로 붙으면 이긴다. 매일같이 체력단련을 하고 있고, 타임 슬립 하기 전 군대까지 갔다 온 이도원이 담배만 피우던 그들에게 깡과 체력에서 뒤질 리 없으니까.

문제는 꽤 오랫동안 복싱을 배웠다는 유희찬이었다. 아이들의 말을 빌리면 요즘에는 이종격투기까지 배우고 있다고 했다. 유희찬의 자신감의 밑바탕에는 이길 수 있다는 근거가 깔려있었다. 그러든 말든, 붙어보면 알 일.

몇 대 맞는다고 안 죽는다.

“후.”

짧게 심호흡 한 이도원이 유희찬의 콧대를 겨냥해 박치기를 날렸다. 기습적인 공격에도 유희찬은 팔로 막으며 그의 배를 발로 찼다.

우당탕!

중심을 잃은 이도원이 의자들을 넘어트리며 쓰러졌다.

“개새끼가 뒤지려고.”

유희찬이 그를 밟으려 할 때, 반 아이들이 들러붙어 말렸다.

“안 놔?”

아이들이 주춤거리며 그를 놔주었다. 하지만 이도원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는 청소 도구함에서 밀대 걸레를 꺼내 발로 몇 번 힘껏 걷어차서 걸레 자루를 부러트렸다.

“뭐 들면 이길 것 같냐?”

유희찬이 피식 웃었다.

이도원도 똑같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이기면 넌 오늘 죽는다.”

그는 들고 있던 걸레 자루를 거꾸로 들었다. 부러지면서 갈라진 날카로운 나뭇조각이 이를 드러냈다.

“이런 씨…….”

유희찬은 말을 잇지 못했다.

이도원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다. 단숨에 걸레 자루로 유희찬을 찌를 기세였다.

깜짝 놀란 유희찬이 되는대로 의자를 들어 막았다.

쾅!

‘이 미친 새끼, 진짜 날 죽이려고 했어.’

유희찬은 간담이 서늘했다. 그가 막지 못했다면 날카로운 나뭇조각이 목이나 얼굴을 꿰뚫었을 터였다.

반면 이도원은 다 머리를 굴리며 계산한 바였다. 만약 유희찬이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걸레 자루를 멈췄을 것이다. 그는 아슬아슬하게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자존심이 목숨보다 중요할 유희찬에게 탈출구를 만들어 줄 차례였다.

“나중에 제대로 붙자. 비겁한 새끼야. 선배라는 새끼가 비겁하게 셋이나 끌고 와서 꼴값 떨지 말고.”

“이거 완전 상도라이 아니야?”

유희찬은 의자를 던져버린 뒤 죽일 듯이 노려봤다. 하지만 오 분 후면 수업 종이 울릴 테고, 방금 막 죽을 뻔했다는 공포감이 더 컸다. 겁만 주러 온 건데 괜히 미친놈을 잘못 건드렸다가 정말 생사결전을 벌여야 할지도 몰랐다.

이도원의 노림수였다.

그의 뜻대로 유희찬의 호흡이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넌 나중에 뒤졌어. 새끼야.”

“그래. 나중에 연락해라. 그때 박살낼 준비해서 갈게.”

물론 이도원은 그때 가서 박살내거나 박살 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유희찬이 유치하게 완력을 썼으니, 마찬가지로 유치하게 나가는 것이다. 싸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면 공갈협박을 해서라도 유혈사태를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죽기로 싸워봐야 서로 손해지.’

타임 슬립 전 이도원은 서른일곱 살이었다. 그것도 연기를 하는 배우였다. 감정 하나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해서 학생들과 치고받아서 돈은 돈대로 물고, 어머니 속을 썩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괜히 싸움질을 했다간 독백대회 참가나 연극 동아리 창립도 고스란히 물 건너갈 터였다.

*

유희찬은 생각할수록 분했다. 하지만 심장은 아직도 쿵쾅대고 있었다.

눈이 벌게져서 달려드는 이도원은 미치광이 같았다. 그가 연기를 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유희찬으로서는 마치 살인마를 본 것처럼 공포심이 드는 것이다.

‘그놈, 정상이 아니야.’

그는 수업에 들어가는 대신 연극부실로 갔다.

그곳에는 연극부장인 이태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냐?”

“그 새끼, 도라이야.”

“뭐?”

유희찬이 대답 대신 송건규와 박상민을 보며 말했다.

“너네가 말해봐.”

그들은 한 마디 씩 거들었다.

“대걸레 부수더니 뾰족한 곳으로 찌르려고 했다니까?”

“희찬이 안 막았으면 지금쯤 죽었을 걸. 그 새끼 표정 봤냐?”

이태곤은 기가 막혔다. 세 명이나 몰려가서는 후배한테 잔뜩 쫄아서 온 것이다.

“야. 그 새끼도 생각이 있는데 진짜 죽이려고 했을라고?”

“아니. 생각이 없다고. 그냥 미친놈이라니까? 씨발, 수틀리니까 바로 무기 들고 덤비더라.”

“일 커질까 봐 몸 사린 건 아니고?”

“아니라고. 왜 말을 못 믿냐. 빡치게.”

이태곤도 유희찬의 깡다구는 잘 알고 있었기에 더 묻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일이 커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연극부 해체는 물론이고 순식간에 상황이 심각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

“태양이한테 말해볼게.”

“한태양?”

유희찬도 아는 이름이었다.

이태곤의 중학교 동창으로 아직 철이 덜 든 놈이었다. 좋게 말해서 철이 덜 든 놈이고, 나쁘게 말하면 방금 전에 마주쳤던 이도원과 용호상박 수준으로 미친놈이었다.

“걔, 소년원에서 나왔냐? 도와줄까?”

“돈 좀 쥐여줘야지.”

이태곤이 시익 웃었다.

“그 새끼 나서면 이도원 같은 놈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야. 괜히 일 커지면 안 되니까 카메라 없는데서 어디 한 군데 부러트리고 째라고 해야지.”

“얼마나 줄 건데?”

“합의금 나오면 전부 물어준다고 해야지. 따로 한 이십 만 원 쥐여주고. 그 새끼 요즘 학교에서 괴롭히던 애들 보고 집에서 돈 훔쳐오라고 시킨다더라.”

한태양은 중학교 때부터 지역에서 가장 싸움을 잘한다고 소문이 났었다. 뿐만 아니라 성질도 더럽기로 유명했는데, 약자에게 특히 강했다. 후배들의 돈을 갈취하고 동급생을 심하게 괴롭혀 학교 잘리고 소년원까지 갔다 왔다.

이태곤이 살벌하게 말했다.

“그 일 학년 새끼, 운 좋게 내일 예선 통과한다고 해도 절대 상 못 받는다. 그전에 팔다리 한 군데는 부러질 테니까.”

“미친 새끼. 넌 악마야.”

이희찬의 감탄 섞인 말에 이태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주거니 받거니, 수업도 재끼고 이도원을 씹었다.

*

이도원은 예선 날 아침인 토요일에도 여느 때처럼 체력단련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이완시키고 간단하게 호흡, 발성, 발음 연습, 동선 체크를 한 뒤 대사까지 검토했다. 그동안의 성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전날 준비해 뒀던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벚꽃동산>의 시대적 배경에 어울리도록 검은색 정장에 흰색 셔츠, 검은 보타이(나비넥타이)를 했다. 왁스를 발라 머리를 올백으로 넘기고 스프레이로 고정시켰다.

한 명의 신사가 거울 속에 있었다.

“나는 로빠힌이다.”

스스로에게 말한 이도원은 턱을 조금 치켜들고 가슴을 활짝 편 다음 느긋하게 걸었다.

“주말인데 그러고 어디 가?”

거실 소파 위에 아빠다리를 앉아,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던 이다원이 물었다. 다림질을 하는 어머니의 시선도 함께 이도원을 향했다.

“오늘 대회라고 했나?”

물어본 어머니가 말했다.

“파이팅! 그렇게 입으니까 진짜 잘났네, 우리 아들. 바로 뽑아주겠다.”

“아니야. 엄마. 요새는 연기를 잘해야 돼, 연기를. 내가 쟤 매일 집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 낼 때 딱 들었는데 한참 멀었어요.”

이다원이 부정했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이도원이 매섭게 답했다.

“누난 평소 목소리가 돼지 멱따는 소리에요. 그리고 그만 좀 먹어. 돼지가 돼지 타령이야. 대회 날 아침부터.”

“네 대회지 내 대회니?”

이도원은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현관문을 열고 외쳤다.

“박살내고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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