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연기의 신-6화 (6/178)

20년 전으로 (3)

집으로 귀가한 이도원은 볼에 난 여드름을 정성스럽게 소독한 뒤 습윤 밴드를 붙였다. 그는 전생에 여드름이 나는 족족 손으로 짜는 바람에 자국이 남았던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다.

“역시 젊음이 최고야.”

이도원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흡족해했다. 새 삶을 얻은 뒤 규칙적인 생활로 살이 많이 빠져서 날렵한 턱 선이 눈에 들어왔다.

남들은 다이어트가 최고의 성형이라고 하지만 그건 젊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20년 전 모습으로 돌아온 이도원은 가장 뛰어난 미용이 젊음이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젊어진 첫날을 떠올렸다.

*

“으아아아악!”

열일곱 살의 자신을 본 서른일곱의 이도원. 그가 뱉은 첫 감상은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얼굴을 잡아뜯어보며 이차, 삼차로 확인했다. 꼬집었을 때 느껴지는 고통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시켜 주었다.

영화에서도 타임 슬립은 자주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 실제로 즉흥연기 오디션 때면 ‘타임 슬립 직후를 표현하라’는 주제로 테스트를 보기도 한다.

“침착하자.”

이도원은 죽음의 순간을 떠올렸다. 그가 있던 곳은 공교롭게도 <시간과 운명의 신> 전시회. 무언가 연관이 있을 터였다. 하물며 그는 정신을 잃은 다음 신들 앞에서 연기를 펼치기까지 했다. 비록 단 두 마디뿐이었지만 소리를 되찾고 첫 무대연기를 선보이던 희열이 선명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 자리에 있던 신들께 감사해야겠군.”

이도원은 일부러 소리 내서 말했다.

그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신체기능이 문제없다는 것을 먼저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가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불현 듯 방문이 열렸다. 이도원도, 이도원의 표정을 본 어머니도 흠칫했다.

“뭐니? 귀신이라도 본 사람같이.”

이도원의 기억 속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그러니 어머니의 질문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셈이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차올랐다.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도원은 반사적으로 어머니가 볼 수 없는 각도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금방 나갈게요.”

“아들. 설마 우는 거 아니지?”

짧은 심호흡을 사이에 두고 이도원이 말했다.

“안 울어요.”

어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을 떠나자 이도원은 시계부터 찾았다. 침대 옆, 책상 위에 세워진 알람시계는 2015년 3월 2일 월요일 오전 7시 30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가 죽은 것이 2035년이었으니 정확히 20년의 시간이 되감긴 셈이었다.

이도원은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어디서부터 받아들여야 하나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 직면한 문제는 확실했다. 돌아가신 어머니, 20년 전의 누나와 마주 앉아 아침식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보이면 안 돼.’

본능적인 방어기제처럼 생각한 이도원은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서는 어머니와 연년생인 열여덟 살의 누나 이다원이 밥술을 뜨고 있었다.

“교복은?”

이다원이 던진 물음에 목석처럼 서있던 이도원의 상념이 확 깨졌다. 팬티바람으로 나간 것이다.

죽었다 살아났는데 능숙하게 학교 갈 준비를 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는 교복을 입기 위해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한편 어머니나 이다원이 보기에는 상당히 수상했다.

“엄마, 쟤 왜 저래? 얼굴은 하얗게 질려서.”

“우리 딸,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더니 그래도 동생이라고 걱정은 되는가 보네. 모르겠다. 아까부터 이상한 게, 어디 아픈가…….”

모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이도원은 교복을 입고 볼 따귀를 짝 소리 나게 후려친 뒤 거실로 나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별 효과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만큼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이 정리도 안 된 상태에서 평소처럼 행동하려니 더욱 어색했다. 애초에 열일곱 살의 어느 날이 기억날 리 없다.

“마미! 나 먼저 학교 갈게요.”

이다원이 후다닥 일어나며 현관문 앞에서 외쳤다. 그녀는 얼이 빠진 동생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학교로 등교했다.

한편 어머니는 기계적으로 수저를 움직이는 이도원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니? 어디 아파?”

이도원은 무기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픈 척을 해서라도 학교는 쉬어야지.’

이대로 학교 친구들을 보았다가는 누가 누군지도 모를 판이었다. 가족도 적응이 안 되는데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오늘은 좀 쉬고 싶어요. 학교에는 어머니… 아니, 엄마가 잘 말씀해 주세요.”

“병원 가야지?”

걱정 가득한 어조에 또 한 번 울컥했다.

울보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이도원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좀 자다가 오후에 가든지 할게요.”

“그래. 엄만 출근해야 하니까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하고.”

“네.”

이도원은 더 이상의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밥을 억지로 다 먹고 일어났다. 방으로 돌아간 그는 방문을 잠그기 무섭게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일기장, 일기장…….”

이도원은 중얼거리며 일기장을 찾았다. 그의 기억에는 분명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썼었다. 책장과 서랍을 모두 뒤져도 보이지 않던 일기장이 침대 밑에 숨겨져 있었다.

이도원은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이마에 흥건한 땀을 닦으며 자기 위안을 했다.

“그래. 어쨌든 좋은 거야.”

곧이어 그는 일기장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곳에는 친구도 공부도 멀리했던 일상이 낱낱이 적혀있었다. 연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이도원은 영화와 독서만을 즐기던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조금 뚱뚱한 체형과 백칠십팔 센티미터의 키를 가진 평범한 열일곱 살의 고등학생.

‘이제는 평범한 삶이랑 거리가 멀겠지만.’

대략 두 시간이 지난 뒤 이도원은 일기장을 덮으며 한 가닥 미소를 지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20년 전 과거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이 기회가 주어진 이유는 단 한 가지라고 생각했다.

“최고의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된다.”

이도원은 책장에 있는 빈 공책을 펴서 기억하는 모든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그다음 앞으로의 계획들을 나열했다. 새로운 삶을 얻게 된 이상 단 한순간도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

회상에 잠겼던 이도원은 컴퓨터 앞에 앉아 청소년 독백대회를 검색했다. 가장 빠른 대회는 오늘까지 접수 마감한 뒤 일주일 후 열리는 <한국예술대학교>의 청소년 독백연기 경연대회였다.

“쉽지 않겠어.”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좋은 성적을 거두면 입시 때 가산 점 혜택이 주어진다. 그리고 주최 측이 명문대학교라서 전국의 연기 좀 한다는 중, 고등학교의 청소년들이 모두 몰려들 것이다. 그중에도 연극연기를 모태로 하는, 입시연기를 배운 입시생들이 주축이 된다는 뜻이었다.

‘입시생들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독백에 필요한 발성과 호흡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꾸준한 훈련만이 답이었다. 그런데 열일곱 살의 이도원은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한 상태였다.

“시간은 내 편이 아냐.”

현재 수준의 호흡과 발성을 일주일 만에 대회 상위권까지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호흡이야 연습량으로 극복한다 쳐도 발성은 하루 종일 연습할 수도 없었다. 자칫 성대 결절이나 다른 문제들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움직임이나 연기적인 부분으로 뛰어넘어야 한다는 건데.’

이도원은 전생에 소리를 잃고 오랫동안 무대에서 마임연기를 했다. 말 한 마디 없이 감정과 상황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의 밀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건 소리를 빼면 이도원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의미기도 했다. 그런 반면, 부족한 소리를 연기적인 부분으로 채울 수 있을지가 우승의 관건이 될 터였다. 그의 장점이 약점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못 먹어도 고!”

짧게 외친 이도원은 참가신청을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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