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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128화 (128/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128화

33. 최후의 전쟁(2)

쉬이이잉!

기류의 폭풍이 더욱 거세지기 시작했다.

사내는 힘없이 쓰러져 있는 선소연을 품에 안은 채 주먹을 꽉 쥐었다.

4군단장이라는 강력한 놈을 잡았을 때도 끄떡없던 몸에 슬슬 무리가 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SS급 헌터에게 부담을 줄 정도의 힘.

그녀가 지금껏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에너지를 몸에 담아내고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광경이었다.

“……선소연! 괜찮아?”

선소연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는지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찡그린 인상과 부들부들 떨리는 사지.

마지막 이 순간까지도 그녀는 지독한 고통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사내는 답답했다.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다.

「리스토어」도 사용했고, 「물의 치유」도 사용해 봤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그녀의 몸 안에 있는 핵에너지들의 발광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제기랄.”

강렬한 바람 소리가 정신을 어지럽혔다.

그럼에도 안구에 힘을 줘 봉인지역 방향을 쳐다봤다.

역시 이미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그녀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할 때다.

“오빠…….”

미약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호흡이 작으면서도 거칠고 빠른 게 죽기 직전의 강아지를 보는 듯했다.

“응, 말해.”

“쿨럭, 쿨럭.”

“아니, 말하지 마. 고통스러우면 말하지 않아도 돼.”

“으…… 아…….”

고개를 저으며 입을 벌리려 하는 그녀를 보며 사내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선소연의 입술을 주시하고 집중했다.

무언가 말하려 하는 것 같았는데 빌어먹을 바람 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 사백…….”

“뭐, 뭐라고?”

“사백삼십오…….”

435.

그녀가 간신히 외친 세 마디의 숫자였다. 그리고 사내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아냈다.

“435구역을 말하는 건가? 네가 말했던 「아베르노」의 435 area?”

“……네. 맞…… 아요. 흐윽.”

고개를 끄덕이며 힘겹게 대답하는 그녀.

“그곳에 있겠다는 거야? 기다릴 테니 해결하든 못하든 찾아오라는 말이지?”

“…….”

이제 대답 없이 눈만 깜빡인다. 성대와 허파의 기능이 다 한 것이다.

그리고 눈을 깜빡인다는 건 긍정의 의미겠지.

“걱정하지 마라. 그건 절대 까먹지 않을 테니…….”

파앗-

순간, 근처에서 붉은빛이 터져 나왔다.

하늘이 검붉게 물들었고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봉인지역의 틈이 완전히 벌어져 개어지고 있었다.

곧이어 픽- 하며 고개를 떨구는 선소연.

어느새 얼굴은 핏기가 전부 사라진 상태로 창백해져 있었다. 사내가 바보도 아니고 눈앞의 현상을 모를 리가 없다. 단지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을 뿐…….

“선…… 소연.”

사내는 분노했다.

이 여자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이게 다 저 가운데 봉인되어 있는 놈들 때문이다. 이제 곧 풀려나와 인류를 깡그리 몰살시킬 악마 새끼들.

“……내가 복수해 주마.”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사내의 기억을 앗아간 놈들. 그의 정상적인 삶을 뺏어간 그 원흉이 분명 저놈들일 테니까.

사내는 천천히 그녀 목에 걸린 목걸이를 빼냈다. 크라켄을 부를 수 있는 목걸이였다.

마리아나 해구에 박혀 있는 문어는 현재 힘을 다 잃은 상태로, 패밀리어 마법을 쓸 정도의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역 소환되어 있는 상태.

“…….”

그는 말없이 검붉어진 하늘을 바라다봤다.

선소연이 죽고 난 후, 기류는 완전히 사라졌다.

무슨 일 있었느냐는 듯 조용해진 중앙과 반대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듯 시끄러운 봉인지역.

시커먼 하늘에서 참혹한 미래가 보였다.

솔직히 이번엔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봉인지역 안에 소름 돋는 존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상황이 참 웃기고도 야속했다.

그간 인류가 얻어낸 승리가 몇 번인데, 이번에 지면 모든 게 다 끝나버리는 상황이라니.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싸워온 것일까.

단, 한 번의 전투.

그 전투에 선소연의 고통과 기억을 잃기 전 강 현의 여정들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막중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가야지.”

이제 시간이 다 됐다.

사내는 그녀를 땅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봉인지역을 향해 발을 굴렀다. 지든, 이기든 마지막 매듭을 지을 때가 왔다.

***

구그그그-

거대한 생명체의 모습이 안개가 걷히듯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공포스러운 모습에 단원들이 다급하게 외쳤다.

“팀장님! 대체 언제 공격하는 거랍니까!”

“이제 봉인이 거의 다 깨졌습니다. 놈들이 나오게 되면 우린 그냥 다 죽은 목숨이라구요!”

“맞습니다. 먼저 선공을 해야……!”

[아직, 아직이다! 전부 대기해라!]

직접적인 전투가 펼쳐진 것도 아니었는데 벌써부터 소란스러웠다.

지원 온 각국의 헌터들 또한 생전 처음 보는 놈들의 모습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통제실 내부에선 피터 잭슨이 땀을 쥐고 화면을 보는 중이었다.

“……미스터 강은 아직인가?”

“아직 화면에 잡히는 곳은 없습니다! 예지 씨, 은신 좀 걸어줘요.”

“알겠어요!”

한동엽은 눈을 감은 채로 감각을 집중해 「옵저버」의 수량을 점점 늘려갔다.

그때였다.

쿠구구궁-

봉인지역에서 뜨거운 바람이 몰아치며 어떤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누, 누군가 나온다!”

“으아아악!”

“방어! 보호막을 쳐라!”

“다들 피해!”

[멍청한 인간들. 죽여달라고 몰려 있나 보구나.]

틈 밖으로 나오고 있는 괴물은 불로 뒤덮여 타오르고 있는 거대한 새였다.

부리와 눈동자만 살짝 튀어나왔음에도 놈의 몸에서 발아하는 열기가 주변 공간을 후끈하게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굳건하게 막아놓은 벙커와 성벽의 구멍이 숭숭 뚫린 채 녹기 시작했다.

별다른 공격 없이 등장만으로도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1, 1군단장이다!”

“피닉스가 나타났다!”

‘종말의 날’ 당시 함께 싸운 경험으로 군단장의 존재를 알아본 몇몇 단원들이 신속하게 외쳤다.

1군단장 「피닉스」.

아직 제대로 상대해 본 적이 없기에 고유능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주변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녹을 것처럼 따가워지기에 까다로운 놈일 거라 추측하고 있을 뿐.

“다들 괜찮아?”

“무사합니다!”

“저희도 괜찮습니다!”

한차례 열기 폭풍 후, 인원 보고가 들어왔다.

다행히 대부분의 단원들은 무사했다. 이곳에 있는 인원 중 S급에 근접하지 않은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S급 헌터가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그 열기에 닿는 즉시 뼈도 남기지 않은 채로 녹아버렸을 거다.

[모든 헌터들은 방어 태세를 확립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방어계열 능력 헌터들은 각자 그룹을 보호한다!]

피터 잭슨은 끝끝내 대기를 명했다. 왜냐하면, 진짜 무서움은 이제부터이기 때문이다.

쿠구구궁-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기 시작했다.

반대쪽 틈으로 거대한 파충류의 머리가 보였고, 서쪽 하늘에서는 시뻘건 칼을 든 악마가 드러났다.

각각, 3군단장 「레드 드래곤」과 2군단장 「발록」이었다.

“X…… X발, 다 끝났어.”

“저런 것들을 어떻게 이겨…….”

단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놈들의 흉포한 모습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크흐흐, 숨어 있던 불의 종족들이여. 이제 모두 모여라. 이곳에 있는 인간들로 피의 축제를 벌여보자꾸나!]

2군단장 발록의 음성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와 동시에 하늘과 땅 곳곳에 붉은색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온 공간이 빽빽하게 채워질 정도로 바글바글 들끓는 균열들.

그의 고유능력인 균열을 통한 「공간 이동」이었다.

[다들 전투 준비! 발록이 놈들을 소환한다!]

피터 잭슨이 그 모습을 보고 재빨리 전파했다.

사실, 이들이 상대해야 할 건 군단장들이 아니라 ‘발록’이 소환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불의 종족들이었다.

숨어 있던 놈들은 발록의 명에 따라 연결된 균열을 통해 이곳으로 공간 이동하고 있었다.

“캬르르륵!”

“크르르르!”

놈들의 병력은 이곳에 방어선을 구축한 헌터들보다 몇백 배는 더 많았다. 그리고 끈질기며, 두려움이 없었다.

[공격! 집중 포격하라!]

물밀듯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는 불의 종족들 앞에서 마침내 ‘최후의 전쟁’이 시작 됐다.

“으아아악!”

“죽여어어!”

콰직!

콰즉!

불의 종족의 머리가 터져나가기도 했으며, 헌터들이 놈들에게 뼈 채 씹어 먹히기도 했다.

과거 철벽 위에서의 싸움과는 궤가 달랐다.

놈들은 총사령관의 통제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숨어 살았던 것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더 전략적이면서도 난폭해져 있었다.

그러나 헌터들 역시 독기 있게 싸웠다.

수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데도, 투기를 잃지 않았다.

압도적인 인해전술과 쉴새 없이 쏟아지는 공격에도 헌터들이 도저히 뚫릴 기세가 보이지 않자 3군단장이 조용히 읊조렸다.

[안 되겠군.]

이제 반 정도 나온 몸통 그대로 아가리를 벌렸다.

고오오오-

주변에 흩어져 있던 미미한 기운들, 그리고 놈의 심장에 있는 강력한 에너지가 입가로 모이기 시작했다.

파이어 드래곤 혹은 레프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고유능력, 「브레스」가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들 벙커 밑으로 피해!”

“소, 소용없지 않을까요!”

놈의 브레스는 모든 익룡 계열 브레스의 조상 격이다.

벙커에 숨어 있든, 물로 보호막을 두르든 그 에너지가 지나간 곳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소멸해 버리리라.

[모두 피하지 않고 싸운다! 군단장은 신경 쓰지 말고 눈앞에 있는 적에게만 집중해라!]

아비규환의 상황에서 피터 잭슨의 명령이 다시 하달됐다. 군단장들은 어차피 비대칭 전력. KH도 똑같은 무기로 상대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무기인 강 현이 저 멀리서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 신예지는 그 모습을 화면에서 찾아낸 후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강 현이 왔어요!”

“좋아! 이제 좀 해볼 만하겠어.”

피터 잭슨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쓔우우웅-

사내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주변을 응시했다.

일단 보이는 놈은 총 세 마리.

모두 그의 기준으로 수준 이하다.

“일단 저놈부터 한대 멕여야겠군.”

바로 앞에 꺼림칙한 기운을 모으고 있는 빨간 용가리. 놈의 아가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마음을 확실히 다잡으니 속도가 점차 빨라졌고, 놈의 머리 앞에 도달하는 데는 대략 1초도 걸리지 않았다.

한계에 달한 신체 능력의 힘이었다.

[……?]

무언가 불안함을 감지한 레드드래곤이 입을 다물려 했지만, 그전에 사내가 먼저 힘차게 주먹을 뻗어 올렸다. 어퍼컷이었다.

쾅!

엄청난 폭음이 사방을 때렸다. 어찌나 폭발이 컸는지 헌터들은 물론, 싸우고 있는 불의 종족마저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크아아아아!]

기운이 역류하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3군단장.

물론 그 한방으로 끝내는 건 무리였지만 암울했던 헌터들의 분위기를 바꾸기엔 충분했다.

“뭐, 뭐야!”

“레드드래곤이 당했다!”

“가, 강 현이다! 강 현이 왔다!”

“우와아아아!”

죽어가던 사기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제야 군단장들에게 시선을 완전히 돌린 채, 잡 괴물들을 잡는 데 집중했다.

강 현에게 완벽히 등을 맡긴 것이다.

[……너는.]

그 모습을 응시하던 1군단장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리고 이내 부리를 길게 찢으며 히죽 웃었다.

[역시, 네놈이었구나. 4군단장의 목숨을 앗아갔던 놈이…….]

사내는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방향을 꺾어 1군단장에게 달려갔다.

시간이 없었다.

아직 틈 안에서 나오지 않고 있는 그 끔찍한 존재. 놈이 나오기 전에 적어도 이 셋은 데려가야 했다.

그러나-

곧이어 질주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반갑구나. 왕의 힘을 훔친 아이야.]

틈 속에서 사내와 동일한 크기를 가진 그 존재가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인간」 여성과 동일한 모습.

그리고 등 뒤에 나 있는 기괴한 뼈 날개.

불의 종족 총사령관, ‘사탄’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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