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123화
32. 재회(1)
“휘우-이제야 좀 조용하네.”
4군단장을 개 패듯 때려잡은 사내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 모든 사람들이 침을 꼴깍-삼켰다.
“거, 참……. 이상하단 말이야.”
그의 밑에 깔린 티라노 킹의 상태는 거의 초주검이라 봐도 좋을 정도로 몹시 심각했다.
그 거대하고 무지막지한 존재가 벌레보다 못하게 여겼던 인간에게 깔려 반항도 못 한 채로 누워 있는 것이다.
주먹질에 얼마나 많이 맞은 건지 푸르게 달아오른 표피 곳곳이 움푹-꺼져 있었고,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내부 장기가 다 뒤흔들렸는지 아가리에선 걸쭉한 핏물이 꿀럭꿀럭-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아마 그의 고유능력 「단단한 피부」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 온몸이 터져나갔을 것이다.
“아무것도 기억은 안 나는데 너희에 대한 증오심이 너무 커서 견딜 수 없을 정도야.”
가면 밑 드러나는 사내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공간을 장악하는 거센 기운과 놈들에 대한 적의가 형형하게 퍼져나가 좌중을 압도했다.
[크흐흐……. 크흑, 도대체 세이렌. 그년이 무얼 만들어 낸 것인가.]
티라노 킹은 땅에 누운 채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개미 같은 존재를 표독스럽게 노려봤다.
처음 느껴보는 엄청난 폭력에 절로 몸서리가 쳐질 만큼 무서운 인간이었다.
그가 내뿜는 기세에 그냥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본인의 힘으로는 절대로,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상대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놈이란 것을.
그래서 계획을 바꿔야 했다.
철벽 내부를 수복하는 일은 포기한다.
자신 있었던 신체 능력으로 놈에게 완벽히 밀려버린 상태에서, 이제 놈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총사령관의 정신계 공격뿐이라 생각했다.
결국, 그는 결정을 내렸다.
[위대한 불의 군단이여 들어라…….]
4군단장의 의념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응?”
그 모습을 본 사내가 눈썹을 치켰다.
그래서 티라노 킹은 더 급해졌다.
일단, 총사령관께서 오실 때까지 불의 종족을 최대한 보존시켜 놔야 했다.
지금처럼 무의미한 철벽 박치기는 인간의 힘을 더 키워줄 뿐이었다.
[때가 올 때까지 전부 흩어져라! 철저하게 숨어 대비하라!]
처절한 외침.
티라노 킹은 불의 종족 전체에게 후퇴를 명했다.
당장의 자존심보다는 확실한 승리를 위해 잠깐 물러나는 것을 택한 것이다.
“뭐 하는 수작이지?”
수상함을 느낀 사내가 다시금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마치 융단 폭격처럼 쏟아지는 주먹세례에 찢어질 듯한 쇳소리가 또 한 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놈의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사내는 눈살을 찌푸렸다.
때려도 때려도 고통스러워만 할 뿐, 절대 파괴되지 않는 놈의 육체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주먹만으로 놈을 처리하는 건 한계가 있어 보였다. 무언가 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두근-
그러자 그의 심장이 한번 뛰었다.
심장에 자리 잡은 정체 모를 기운이 사내의 의지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사내는 요동치는 심장의 기운을 그대로 느끼며 팔을 서서히 티라노 킹의 방향으로 들어 올렸다.
본능적으로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렇게 하면 되나?”
순간, 무시무시한 기운을 품은 불줄기가 그의 손에서 사방으로 뽑혀 나왔다.
제어되지 않은, 세상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은 열기가 온 공간을 가득 덮기 시작했다.
[……이, 이 기운은?]
그 폭력적인 기운을 감지한 티라노 킹의 입이 경악해 벌어졌다.
[네놈이 왕의 기운을 가져갔었던……. 그놈? 설마, 너는 분명 「아베르노」에…….]
총사령관께서 말했었다.
지구에 있는 가장 큰 변수.
왕의 힘을 가져간 인간을 가볍게 처리했다고. 절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 호리병의 성좌에 가두어 놓았다고.
[네놈이 어찌?]
그곳은 왕의 힘을 가졌다 해도 돌아올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 강력했던 전 1군단장을 비롯해 실로 많은 이들이 도전했지만, 아무도 복귀하지 못했던 곳.
그 무시무시하다는 종말의 신 「테르미노」가 거주하는 곳.
그곳에서 한낱 인간 따위가 복귀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라는지 모르겠지만, 이만 죽어라.”
사내의 조용한 읊조림과 함께, 아름답게 빛나는 붉은 줄기가 우아한 궤적을 그리며 떨어져 내렸다.
화르르륵-
그리고 그 불빛들은 4군단장의 피부를 깡그리 녹이기 시작했다.
「단단한 피부」도 그 정제되지 않은 불줄기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크아아아아!]
희멀건 빛과 함께 티라노 킹이 불에 타오르기 시작했다. 땅이 울릴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는 괴성 소리와 함께 점점 육체가 소멸해갔다.
불의 종족 제4 군단장.
티라노 킹의 허무한 최후였다.
***
크르륵?
크르르륵-
철벽 위.
KH 단원들과 치열하게 싸우던 불의 종족들이 갑자기 뒤돌아섰다. 그러고는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노, 놈들이 도망친다!”
“우, 우리가 이긴 거야?”
처음이었다.
6개월 동안 제대로 된 휴식도 취하지 못하며 끝없이 이어진 전쟁에서 놈들이 먼저 등을 보인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정 나간 1기 멤버와 팀장들이 무슨 일을 벌인 것인지, 그 말도 안 되는 크기의 티라노 킹이 완벽하게 소멸하고 있었다.
그것도 산천초목이 흔들리는 끔찍한 비명을 질러가면서…….
“와아아아!”
“우와아아!”
그 모습을 본 단원들이 환호했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였기 때문에 그 감동도 배가되어 전달됐다.
공포의 대명사였던 군단장이 저렇게 소멸할 거라고 과연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생사를 도외시한 혈투였다.
오직 인류를 위해서 한 몸 불사질렀던 전쟁이었다.
이곳에 죽음을 각오하지 않은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강원도 지역. 불의 종족 첫 퇴각. KH 승전보!]
[KH, 4군단장 ‘티라노 킹’ 격퇴 완료.]
[사상자 14명, 중상자 120명. 인류를 위해 목숨 바친 영웅들의 넋을 기리며!]
“그, 그게 정말이야?”
“그때 봤었던 그 지옥 같은 전쟁이 끝났다고?”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이들이 내지른 함성은 인류 전 세계에 멀리멀리 퍼져나갔다. 소식을 받은 자들은 너도나도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종말의 날’ 이후, 얻어낸 값진 첫 승리였다. 인간의 힘으로 군단장을 상대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준 결과였다.
비록 아직 많은 군단장들이 남아 있다지만, 그들은 오늘의 압승에서 희망을 얻었다.
매일 두려움에 떨며 종말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은 것이다.
철벽 내부 단원들 역시 분위기가 흠뻑 달아올랐다. 안타깝게 희생한 14명의 사상자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
그 시각-
승전보와 비보를 동시에 전해 들은 최강수가 침음을 흘렸다.
그와 주유라는 세계 헌터 기구(WHO)에 해외 파견 갔다가 소식을 듣고 지금 막 복귀한 터라 참전하지 못했었다.
“세상에.”
“……14명이나 죽었단 말인가.”
“그건 안타깝지만, 그래도 다행이에요. 세상에 4군단장을 소멸시킬 줄이야.”
주유라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얼굴빛에는 안도와 흥분의 기색이 뒤섞여 있었다.
“아직 기뻐하긴 일러. 놈들이 언제 다시 공격할지 모르는 일이고, 소연이는 지금도 놈들을 봉인하기 위해 끔찍한 고통을 받고 있는 중이야.”
“그래도 6개월 만의 승리에요. 그동안 고생했던 단원들을 좀 위로해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물론, 그래야지.”
최강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우선 추모식이 먼저야. 오늘 하루는 그들의 넋을 기리고, 부상자 치료에 전념해. 가족들에게 위로금과 감사패도 전달해주고. 그리고 내일 가벼운 축제를 열어 보자꾸나. 남아 있는 자들의 피로도 중요한 법이니.”
“네.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그나저나, 팀장들은 언제 오기로 했지?”
“아마 지금쯤 정비를 끝냈을 텐…….”
쾅!
주유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강수 아저씨!”
“아저씨!”
헐레벌떡 뛰어온 강설아와 유현동이었다. 그리고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문태준까지.
“다들 정말 고생했다.”
슬며시 미소 지으며 그들을 응시하던 최강수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들의 표정이 무언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군단장을 잡았다는 기쁨도, 단원들을 잃어버렸다는 슬픔도 아니었다.
뭔가 답답하면서도 영문 모르는 일을 겪었다는 듯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무슨 일 있는 거냐?”
“……아저씨.”
“괜찮으니 말해봐라.”
최강수는 일단 강설아를 다독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물기가 묻어나오고 있었으니까.
“그게…… 분명히 봤어요.”
“무얼?”
“……현동이도 그리고 태준 아저씨도 거의 90% 이상 확신했어요. 이게 참, 말이 안 되는 건데.”
“그니까 무얼 말이냐.”
최강수가 답답하다는 듯 되물었다.
얘가 도대체 왜 이러냐는 듯 시선을 문태준과 유현동에게 돌려봤지만, 그들 역시 묵묵히 서로 번갈아 보기만 할 뿐이었다.
“오빠를 봤어요.”
“응?”
“오빠였어요! 분명!”
“자, 잠깐. 그게 무슨 말이냐.”
최강수는 잠깐 어안이 벙벙했다.
강설아가 오빠라 부르는 존재는 구태경, 그리고 제 친오빠인 강 현뿐일 텐데. 여기서 구태경을 봤다고 이 소란을 피우진 않을 테고.
‘그렇다면 현이를?’
그러나 강 현은 이미 죽었다.
분명히 선소연과 함께 확인했었다. 비서였던 손나연과 같이 투명하게 사라지는 육체를…….
“……아저씨는 우리가 4군단장을 잡았다고 생각하세요?”
“그, 그럼?”
“천만에요. 1기 전 인원이랑 팀장들이 온 힘을 다해 싸워도 놈에겐 생채기 하나 못 냈어요. 그냥 간단하게 휘두를 꼬리 한 번에 그렇게 노력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터져나가 죽었다구요. 그냥…… 그냥 다 끝나버리는 줄 알았어요. 지금까지 헛된 꿈을 꾸고 있었구나. 우리는 백날천날 훈련해도 군단장 하나에 안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 순간을 회상했는지 강설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놈의 포효 때문에 온몸이 경직돼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죠. 속은 타오르고, 가슴은 답답하고…… 그런데.”
“그런데?”
“어떤 남자가 나타났어요.”
“남자?”
“네. 가면을 쓰고 있어서 확실하진 않은데 분명 오빠랑 체형이나 목소리가 동일했어요. 전투 스타일도 완전 판박이였어요. 좀 이상한 부분도 있지만 분명 불을 다뤘고, 주먹을 쓰기도 했고…….”
“그, 그게 정말이냐!”
불과 주먹.
둘을 동시에 쓰는 헌터는 최강수가 알기로 강 현뿐이다.
애초의 불의 능력은 전투 헌터 취급도 하지 않을뿐더러, 보통 신체강화계와 원소계가 중복되어 나오지는 않으니까.
“후우-어쨌든 그 사람 혼자서 티라노 킹을 소멸시킨 거예요.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구경만 하다 온 거구요.”
강설아의 말에 최강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들이 승전보에 취해서 몰래카메라라도 찍는 걸까 해서 문태준을 바라봤지만, 그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는 문태준은 이런 거로 장난칠 사람이 아니다.
“그, 그래서 그 사람은 어디 있는데.”
“몰라요.”
“뭐라?”
“옆에 어떤 여자가 뭐라 뭐라 말하더니 순식간에 시야에서 벗어났어요.”
최강수는 저도 모르게 팔짱을 꼈다.
앞으로의 전쟁보다 왠지 지금의 이 사안이 더 중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군단장을 잡아놓고 그냥 사라졌다?”
“네. 그리고, 분명 우리를 몰라봤어요.”
“흐음…….”
최강수가 눈을 감았다.
선소연을 제외하고 군단장을 잡을 수 있는 사내가 나타났다. 그게 강현이든 아니든, 일단 인류에 엄청나게 큰 도움이 될 사람일 수 있다는 거다.
‘그가 이곳을 벗어나서 갈 곳이 어디 있을까.’
순간, 그가 눈을 번뜩였다.
“중앙!”
“네?”
“아마 중앙으로 갔을 거다. 지금 당장 소연이가 있는 곳으로 가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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