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122화
31. 4군단장(6)
-저, 정말요? 정말 그쪽이 군단장을 잡을 수 있다구요?
-헉, 저기 보세요. 당신 말대로 KH가 밀리고 있어요! 어떡하죠?
-……도와주실 수 있나요?
-네, 아무래도 지금 ’문어’보단 저놈이 더 큰 문제 같아요. KH가 무너지면 인류가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봉우리에 한 발 걸쳐 티라노 킹과 KH의 전투를 지켜보던 신예지가 사내에게 했던 말들이다.
옆에서 같이 구경하던 3기 단원이 무슨 정신 나간 소리들 하는 거냐고 외쳤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보아하니 놈들의 목적지는 이곳 중앙.
사방을 포위한 상태로 공격해 오는 바람에 도망칠 곳도 없다.
그 말인즉슨, KH가 뚫리게 되면 이곳 내부에 있는 모든 인간들이 다 죽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다.
지금은 기억을 찾는 것보다 KH를 돕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기억을 찾아봐야 죽으면 모든 게 말짱 꽝이니까.
사내가 정말 군단장에게 비빌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성벽 밖으로 뛰쳐나간 KH 정예들과 함께 싸우는 게 그나마 승산이 있을 것이다.
-일단, 혹시 모르니까 가방 속에 있는 방송용 가면도 쓰고 가주세요.
집단 간부들과 좋지 않은 관계일 수도 있으니 혹시 모를 대처도 해뒀다.
그런데…….
‘뭐, 오빠? 형님? 그리고 단장님?’
처음엔 무슨 상황이지 싶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얼굴들.
각종 매체에서 끊임없이 다뤄지는 이들. 그 대단하다는 KH의 팀장들이 한 사내를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니…….
게다가 지금은 이렇게 한가로이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뒤에 있는 무시무시한 티라노 킹이 언제 다시 공격해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도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내의 등장이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어디 보자.’
신예지는 당황해서 굳어 있던 뇌를 다시 빠르게 회전시켰다.
현시점에서 선소연을 제외하고 단장님이라 불릴 수 있는 존재.
3팀장 강설아가 오빠라 부르고, 4팀장 유현동이 형님이라 부르는 존재.
그리고 세계 헌터계의 정점인 그들이 놀란 표정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존재.
그런 존재는 이 세상에 한 명밖에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없었’었’지……. 그는 놈들의 함정에 빠져 전사했다고 알려져 있으니까.
‘허- 정말 강 현이라고?’
혹시, 엄청난 우연으로 사내의 목소리가 과거 강 현의 목소리와 닮은 게 아닐까도 생각해 봤다. 그런데 그럴 가능성은 적었다.
무려 가면을 썼다.
그런 사내의 존재를 단박에, 그것도 셋이 동시에 언급했다. 평소 가까이 지냈다고 알려진 팀장들이니, 체형과 목소리 중에 어느 하나라도 이상하면 곧바로 캐치해냈을 것이다.
그리고 강 현이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세상에 어느 누가 군단장을 상대할 수 있다고 말하겠는가.
과거 5군단장을 한 주먹에 박살 냈던 남자. 그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오빠, 정말 오빠야?”
“형님. 맞지 않습니까?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들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낯으로 다가오자 사내가 고개를 기웃했다.
“……날 아는가?”
그의 대답에 멈칫하는 팀장들.
그러고는 다시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바뀐다. 희망에 가득 찼던 강설아의 표정도 다시 울적해졌다.
‘저분은 기억상실증이야. 본인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팀장들이 누군지 모를 수밖에 없어.’
신예지는 일단 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다. 지금 이대로 있다가 티라노 킹에게 공격받으면 어떻게 될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
이들의 재회도 물론 중요하다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전쟁 중이다.
즉,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할 말들이 많아 보이시는데, 지금은 우선 저놈에게 집중해야 할 것 같아요!”
신예지의 외침과 동시에 다시 티라노 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잡것들이 감히!]
4군단장이 이를 바득 갈았다.
엄청난 기운을 가진 자의 등장에 잠깐 혼란에 빠졌었다. 세상에 세이렌의 힘을 가진 인간보다 더한 놈이 또 있었다니.
그러나 잠깐 멈춰 생각해 본 결과, 어차피 인간이었다.
물의 종족이 일부러 약하게 「창조」한 한계가 명확한 존재.
위대한 군단장인 본인이 잠깐이나마 굳었다는 게 수치스러웠다.
[크아아아아!]
다시 한번 내지르는 포효에 대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까의 괴성은 지금에 비하면 약과였다. 4군단장이 전력을 다했기 때문이었다.
정체 모를 인간의 등장.
총사령관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한 ’변수’의 등장이었다. 즉, 여유 따위 부릴 때가 아니었다.
쿠그그그그-
대지진이라도 났던 것처럼 쩍쩍 갈라져 있던 땅이 더욱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으아악!”
“피해!”
어느새 마비가 풀린 단원들이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다치거나 죽은 자들은 옆 동료들이 챙겼다.
“일단 모두 후퇴한다!”
문태준이 힘차게 외쳤다.
이번 전쟁은 확실한 패배였다. 군단장에게는 상처하나 입히지 못했으며, 철벽의 상황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입맛이 썼다.
불의 종족에게 가족을 잃고서부터 증오심을 키워왔다. 비록 의사불명인 상태일 때, 강 현이 기회를 줬다지만, 놈들의 씨를 말리기 위해서 시작한 헌터 일이었다.
그런데 결국은 이렇게 아무 힘도 못 쓴 채, 놈들이 하는 파괴를 지켜봐야만 한다니…….
분노, 그리고 억울함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눈가가 점점 매워 오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너무도 분해서 나오는 눈물이었다.
[어딜 도망가느냐!]
황급히 피하는 단원들을 향해 티라노 킹이 날뛰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끝이었다.
단원들도 빠르다지만 놈 역시 빨랐으니까.
아마 곧 있으면 파리 잡듯 휘두르는 꼬리에 모두들 터져나갈 거다.
놈은 철벽을 점령한 후, 선소연과 크라켄을 죽이겠지.
그리고 풀려난 군단장들과 함께 지구에 있는 모든 인간을 학살할 것이고, 그게 인류의 마지막 모습일 거다.
‘……X발.’
압도적인 힘 앞에 심적으로 굴복하려는 찰나, 문태준의 시야에 언뜻 무언가가 잡혔다.
티라노 킹에게서 멀어지는 다른 단원들과 다르게 그의 아가리를 향해 순식간에 점프하는 한 사내.
공기를 고속으로 찢는 소리와 함께 불시에 주먹을 내지른다.
‘저게 무슨?’
까아아아아앙-
순간, 공간 전체 울려 퍼지는 쇳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깜짝 놀란 티라노 킹이 목을 움츠리는 것 같았으나, 이미 내지른 사내의 주먹이 놈의 턱에 닿았다.
그리고 보이는 믿을 수 없는 장면에 문태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커다란 4군단장이 허공에 떠버린 것이다. 잠깐의 부양 후, 낙하하는 거대한 몸뚱어리.
쿵!
놈이 나자빠지자마자 산천초목이 비명을 내지르기 시작한다.
[크아아아아!]
찢어질 듯한 괴성과 피어오르는 먼지 역시 덤이었다.
“이거, 참. 생각보다 더 단단하군.”
가면 쓴 사내가 조용히 읊조리더니 다시 쓰러져 있는 놈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고는 놈의 머리를 향해 무차별적으로 주먹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까아아앙-
까아아아앙-
까아아앙-
무식한 기운이 요동치는 수십 번의 주먹질에 티라노 킹의 낯짝이 일그러졌다.
고유 능력 「단단한 피부」 덕분에 외부엔 문제가 없었지만, 내부에 점점 충격이 전달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느껴보는 제대로 된 고통이었다.
[……그만.]
티라노 킹이 크게 신음하며 말했다.
비록 협공이었지만 「창조」의 대가라는 레비아탄도 잡았던 자신이다.
그런데 한낱 그의 창조물인 인간 따위에게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것에 크게 분노했다.
[그만하란 말이다! 크아아!]
입을 부르르 떨며 포효한 4군단장이 꼬리를 사내에게 강하게 휘둘렀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눈을 부릅뜬 사내가 위로 슬쩍 피했다. 그 순간을 틈타, 4군단장이 다시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실로 크기에 맞지 않는 엄청난 속도였다.
“음? 이거 제법인데?”
티라노 킹은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처음 주먹질에 맞을 때부터 쓰나미를 동반한 6등급 태풍에 휩쓸린 느낌이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그냥 조금 더 기다렸다가, 총사령관님 그리고 다른 군단장들과 함께 나오면 될 것을. 괜히 변수를 줄이려 하다가 더 큰 변수를 만들어 버렸다.
놈에게 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이 세상에 「단단한 피부」를 뚫을 수 있는 물리적 공격은 존재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놈을 잡을 수도 없었다. 잠깐 상대해 본 결과 너무 빨라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고 힘 역시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티라노 킹은 도주를 선택했다.
몸체를 뒤로 돌려 철벽 남쪽을 향해 신속하게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을 벗어나 약 반년 정도만 버티면 동료들이 나온다. 특히, 저 무식한 인간은 총사령관께서 직접 상대해야 변수를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거다.
“어딜 가려고 그러나?”
그러나 사내가 곧바로 따라 들어가 뒷다리에 주먹을 먹였다.
이족 보행을 하는 티라노의 특성상 그대로 나자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 그 위에 다시금 아까와 같은 무차별 주먹질이 진행됐다.
[크아아아아!]
사내는 4군단장의 비명에도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 끊임없이 손을 놀렸다.
모르는 제3의 종족이 보면 「인간」이 더 악독한 종족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까아아아앙-
까아앙-
깡! 깡! 깡!
지속해서 들려오는 군단장 두들겨 패는 소리.
그 비현실적인 모습을 이 공간에 있는 대다수가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내,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이거 꿈이야?”
“저게 무슨 각성능력이야? 헌터들 나름 많이 봤다고 자부하는데 저런 건 처음 봐.”
“……한사람 있긴 했었지.”
“서, 설마…… 옛 단장님? 하지만 단장님께선 물의 능력 같은 거 못쓰잖아. 아까 그 물방울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
1기 단원들 역시 후퇴하는 것조차 까먹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고-
“비명 소리가 끔찍한데요?”
“과, 과연 1기는 1기네요.”
“저 무시무시한 군단장을 저런 식으로 잡고 있다니.”
철벽 위에서 여유롭게 잡 괴물들을 걷어내고 있는 단원들 역시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의 오해가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신예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 사내가 티라노 킹을 상대할 수 있다 했을 땐, 단원들과 함께 협공했을 때를 상정한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혼자 상대한다는 거였다니…….
‘역시, 진…… 짜였어. 그 더러웠던 노숙자가 정말 강 현이었어…….’
그녀의 마음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피어올랐다.
‘종말의 날’ 이후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불렸던 군단장을 맨손으로 잡는 사내가 귀환했다.
즉, 어둠만 있고 미래가 없던 인류에 마침내 밝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든 기억을 찾게 만들어야 해. 내 손으로.’
그리고 다짐했다.
크라켄이든, 선소연이든, 팀장들이든 모든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사내의 기억을 찾아줘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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