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118화
31. 4군단장(2)
“책임?”
사내가 물었다.
“그래. 그 오만한 발언에 대한 책임 말이다.”
“……오만이라. 그래. 그럼 뭘 어떻게 책임지면 되겠는가.”
그의 당돌한 되물음에 유성휘의 낯이 있는 대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거 온종일 무슨 마가 꼈나…….’
수업을 진행하자니 웬 주제도 모르는 미친놈 하나가 자꾸 심기를 거슬리게 했고, 그에 정신교육을 하자니 보호자로 보이는 년이 마치 자기 아들이라도 보호하듯이 따져왔다.
주변은 이미 구경거리라도 난 듯 힐끔거리며 보고 있고, 그 미친놈은 이제 책임까지 지겠단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었다.
여기서 이대로 넘어가면 차후 6기 단원들에게 끝도 없이 회자될 것이다.
저놈의 시건방도 하늘을 찌르겠지. 역시 본보기를 보여줘야겠다.
“그럼 붙어보자.”
“붙는다?”
“왜. 네놈이 말하지 않았나. 나 같은 거 수십 트럭이 있어도 상대할 수 있다고.”
그의 발언에 주변 예비 팀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혹시나 목소리가 크면 눈 밖에 나기라도 할까 조용히 속삭이기도 했다.
“뭐, 뭐야 지금?”
“……저 사람 누구야? 왜 이렇게 당당해?”
“모르겠어요. 들어보니 좀 유명한 사람인 거 같던데. BJ인가?”
“그래도 방금 말은 좀 허풍이 심하지 않았어요? 다른 집단도 아니고 KH에서.”
“그건 그렇죠. 저 남자 새됐네요. 이제.”
숙덕이는 사람들은 당연히 유성휘의 우세를 점쳤다. 사내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KH의 헌터들은 최상급 결정체를 무려 다섯 개나 먹은 괴물들의 집단이다.
아무리 비전투 각성능력을 가진 유성휘라 하더라도, 결정체 다섯 개의 격차는 어마무시하다.
어쨌든, 유성휘는 작정이라도 한 듯 단원 복을 풀기 시작했고, 사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별것도 아닌 것 같고, 그대와 싸우긴 싫은데.”
“왜, 막상 쫄리나? 그럼 약속하지. 날 이긴다면 다시는 네놈에게 전술을 권하지 않겠다. 다른 교육으로도 귀찮게 하지도 않고, 곧바로 입단시켜주도록 하지. 어떤가.”
“…….”
“단! 네놈이 지면 이곳에서 즉시 떠나는 거다.”
그의 단언에 사내는 옆에 있는 신예지를 쳐다봤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얼굴이었다.
신예지는 고민했다.
사실,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그녀는 사내가 이길 것을 확신했다.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사내가 하는 말을 전부 믿기로 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가 했던 말도 안 되는 말들 중 진실이 아닌 것이 없었다.
가방에서 나오는 음식들도 진짜였고, BJ 엘리트를 대신해 고층 건물에 데려다준단 것도 사실이었다.
사냥을 했을 때도, 그가 잡을 수 있다고 확신했던 괴물들은 모조리 곤죽이 되어 터져나갔었다.
“후우…….”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기웃한다.
“왜 그러는가.”
“그쪽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아마 범상치 않은 사람일 거예요.”
“……그런가?”
“네. 세상이 그쪽을 가만 놔둘 생각이 없는 걸 봐서는요.”
“…….”
어쩌다 이 일에 휘말리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책임지고 싶었다. 조금 무리해서라도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물었다.
“아까, 저분 수십 명이 와도 상대할 수 있다 하셨죠?”
“그랬지.”
“수백 명은요?”
“음……. 그래도 나한텐 안될 거야.”
“그럼 수천 명이 와도요?”
“……아마도?”
정말 말도 안 되는 허풍이었다.
그래도 이젠 믿기로 했으니까 믿는 거다. 믿는다고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기껏해야 불화를 조장했단 이유로 이곳에서 쫓겨나겠지. 그냥 사고 한번 제대로 쳐보는 거야.
“그럼 싸우세요.”
“싸우라고?”
“네. 죽이진 말고 제압만 하세요.”
혹시나 해서 제약도 걸었다.
그가 괴물들을 주먹으로 한 방에 터뜨리고 다녔던 게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냥 싸우면 합의하고 겨루는 거지만, 사람을 터뜨리게 되면 살인이다.
“뭐, 그러지.”
사내가 간단히 대답했고, 신예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냥 입단을 포기하고 곧바로 ‘크라켄’을 찾을 생각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분명히 이 사방을 두른 철벽 내부 어딘가에 있을 테니까.
신예지와 사내의 만담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유성휘도 어처구니없는 표정이었다.
“……이것들이 정말 쌍으로 미쳤구나. 그래. 어디 한번 그 잘난 실력 좀 봐 보자.”
그가 전투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저런 애송이는 비전투 각성능력으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사내 역시 간단한 전투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후우, 미안하게 됐다. 하지만, 기억해라. 일을 키운 건 분명 그대다.”
그의 말에 유성휘의 이마가 찌그러졌다.
“하, 까고 있네. 안 되겠다. 니 새낀 오늘 좀 다져야겠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목표는 복부에 있는 간장. 제대로 맞으면 갈비뼈가 나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거다.
그러나…….
“어라?”
유성휘는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주먹을 뻗은 오른쪽 팔이 사내의 손에 간단하게 잡혀버렸다. 이어, 반대쪽 팔 역시 잡혀버렸다.
“……뭔데 이거.”
온몸에 힘을 가득 줘봐도 강철 수갑에 손이 채인 듯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사내의 눈을 쳐다봤다.
시뻘겋게 빛나는 그 눈에 등줄기에서 뭔가 쭈뼛하게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자, 잠깐.”
그리고 뭔가 잘못됐다 싶을 찰나, 복부에 묵직한 게 틀어박혔다.
“커, 커헉.”
뇌리에 경종을 울리는 고통이 발가락부터 정수리까지 훑고 지나갔다. 엄청난 통증에 정신이 없었다.
사내의 무릎이 그가 노렸었던 간장에 그대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이 뒤집혀 버렸다. 사내가 잡았던 팔을 빨래 짜듯이 뒤집으며 와사바리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
유성휘는 입을 벌렸다.
너무 아파서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S급 헌터가 된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었다.
내부의 뼈가 다 부서졌는지 식도에서부터 끓어 올라오는 핏물이 입에 가득 찼다.
자연스럽게 콧물과 눈물이 흘렀다.
“꺼억-”
온몸의 근육이 풍선처럼 떨려왔다.
그의 앞에서 본인이 마치 성냥개비가 된 느낌이었다.
뼈라는 게 이토록 수수깡처럼 연약했던 것이었던가. 몸이라는 게 이렇게 한없이 가벼웠던가.
내팽개쳐진 채로 하늘을 쳐다보는데 눈물이 맺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상황이 종료되는 데는 2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유성휘가 달려들었고, 사내가 그걸 양손으로 잡은 채 무릎으로 한 대 먹인 후 땅바닥에 던져버리는 데까지는…….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의 눈동자들이 휘둥그레졌다.
입을 벌린 채 다물지 못하는 자들도 있었고. 조용조용 떠드는 자들도 있었다.
“미, 미친.”
“우리가 방금 뭘 본 거죠?”
“저게 무슨 기술이지?”
“기술이랄 것까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냥 너무 간단하게 패버린 것 같은데.”
신예지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믿고 있었다지만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상호 공방은 오갈 줄 알았는데, 신체 건강한 성인이 동네 꼬마를 상대하듯이 처리해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대, 대박이야.’
신예지는 남자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
한국인 중에 저런 사람이 있었다고? S급 헌터를 저렇게 가볍게 이길 존재면, SS급 헌터라 불리어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SS급 헌터라 하면 세계에 단둘. 선소연과…… 설마?
‘에이, 말도 안 돼.’
강현은 ‘종말의 날’ 이후 공식 사망 발표되었다.
원인은 불의 종족 총사령관의 습격. 그때 전 국민이 함께 안타까워했으니 분명 그는 아닐 거다.
게다가 KH 본진에 떡하니 있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지 않는가.
‘도대체 누굴까?’
그녀가 고민하고 있을 때, 사내는 꺽꺽거리는 유성휘에게 다가가 쪼그려 앉았다.
“그대가 목표했던 부위에 똑같이 갚아줬을 뿐이니 너무 원망친 말아라.”
그에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지 계속 고통스러워하며 입에 거품을 내뿜고 있는 유성휘.
그런 그를 담담하게 바라보던 사내가 갑자기 손을 뻗었다.
“그러니 했던 약속은 꼭 지켰으면 좋겠구나……. 리스토어.”
「리스토어」
등급 : Lv. 10 (MAX)
유형 : 액티브 (영혼 각인)
기간 : 하루에 한 번.
설명 : 상점 제작자가 심혈까지는 아니고 제법 성의를 들여서 제작한 스킬이다. 타인에게만 사용 가능하다. 대상자의 신체상태를 1분 전으로 되돌린다.
사내의 기억엔 없지만, 「의사소통」처럼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기술, 「리스토어」가 펼쳐졌다.
‘레비아탄’이 「창조」해 낸 최고급 기술 중 하나가 처음으로 지구에 등장한 것이다.
사내의 손이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화려한 빛이 흘러나왔고, 유성휘의 전신을 감쌌다.
그리고 천천히 뒤로 흘러가는 시간-
흘렀던 피가 다시 그의 몸속으로 흡수됐고, 조각조각 부러졌던 뼈들이 다시 맞춰졌다.
고통에 펄떡이던 신체가 다시 안정을 취하기 시작했으며, 빠르게 뛰었던 심박 수 또한 정상으로 복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분이 지나자 온몸이 완치된 유성휘가 의식을 잃은 채 잠들어 있었다.
“저, 저게 무슨?!”
“말도 안 돼!”
“뭐, 뭐예요?”
그 마법 같은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 역시 경악했다.
신예지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달려와 물을 정도였다.
“이, 이건 회복계 각성능력이잖아요! 세상에. 이렇게 완벽하게 치유하는 각성능력은 제 인생에서 처음 봐요. 듣기로는 선소연 쯤 되어야 이렇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신예지는 흥분했다.
까도 까도 항상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는 양파 같은 사내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신체능력계인줄 알았는데 회복도 시킨다? 그녀가 알기론 세상에 각성 능력을 두 개나 가진 자는 없다.
“도, 도대체 뭐에요? 당신, 누구예요?”
“나도 그게 궁금하다.”
“방금 건 어떻게 한 건데요? 기억 안 나신다면서요.”
“그냥 갑자기 떠오르더군.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도 안 돼요!”
그녀도 주변 사람들도 눈앞의 장면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녀야 지인이기에 용기 내 말을 걸 수 있었지, 이미 다른 사람들은 사내를 괴물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약 1분 정도의 소란이 있었을까-
삐이이잉-삐이이잉-
삐이이잉-삐이이잉-
갑자기, 철벽 내부 전 곳에 커다란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갑자기 이건 또.”
“이거 비상벨 아니에요?”
“저, 저! 이거 배운 적 있습니다! 4번씩 울리는 건, KH 내부에서 1급 비상시 때만 발생하는 소리에요! 거의 ‘종말의 날’에 준할 때만 발동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무슨 일이 터졌나 봐요.”
“네에-? 그럼 저흰 어떡하죠?”
예비 단원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자, 신예지가 사내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응?”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m.joara.com /viewer
조아라: 웹소설의 시작
5-7 minutes
31. 4군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