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117화
31. 4군단장(1)
크라켄의 봉인 마법.
그 속에는 다섯 존재가 각각의 핵에너지를 감당해내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그저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었다.
힘을 써보기도 했고, 심지어 고유능력도 사용해 봤다.
그러나 각 군단장의 고유능력을 꿰고 있는 문어의 「창조」능력은 세밀했다. 절대 틈을 내어주지 않았다.
곧이어 총사령관은 깨달았다.
이 마법의 내구성이 과거 물의 왕이 펼쳤던 것처럼 길지 않다는 것을.
고작해야 인간을 매체로 펼친 마법이었다. 세이렌의 힘을 가졌다지만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는 그 연약한 인간 말이다.
그래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가 예상한 시간은 약 1년.
지구에서 도망친 이후 재침공 계획을 수립한 지 무려 수천만 년이 흘렀다.
그런 그들에게 1년 정도의 시간은 인간이 느끼는 찰나(刹那)와 비슷할 것이다.
[……위대하신 총사령관이시여.]
적막 속-
누군가가 총사령관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인가. 4군단장.]
마치 티라노사우루스를 100배 정도 불려놓은 크기의 괴물, 4군단장이었다.
과거 레비아탄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던 전적이 있는 그의 고유능력은 바로 「단단한 피부」.
이제 발전하고 발전해, 세상에 있는 어떤 물질로도 그의 가죽을 뚫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해졌다.
[아무래도 놈들이 보내는 힘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제 쪽에 있는 기둥에 틈이 생겼습니다.]
[……틈이라.]
[네. 조금만 비집으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문어가 핵에너지를 줄여 발생하게 된 틈이 4군단장 쪽에 나타났다.
인류에겐 불행 중 다행이었다.
누구든 감당하기 힘든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현 불의 종족 간부 중 가장 막내 쪽에 틈이 생겼으니까.
순간, 1군단장 「피닉스」가 나섰다.
[그냥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기다린다?]
[네. 이제 반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벌써 틈이 보인다는 건 놈들의 힘이 떨어져 간다는 소리. 기다렸다가 확실하게 에너지를 회수하는 게 나을 거란 판단입니다.]
그러자 2군단장 「발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놈들이 그 기간 동안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일입니다. 반년 전 깜짝 놀랐던 거 잊으셨습니까. 다들 놈들이 그때처럼 다시 핵에너지를 이용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지 않았습니까.]
[동의합니다. 어차피 힘 빠진 문어와 인간 계집 하나일 뿐입니다. 4군단장이 나가 확실하게 정리하고, 봉인이 풀리면 그때 제대로 핵에너지를 회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3군단장 「레드 드래곤」 역시 동조했다.
[흐음…….]
총사령관은 고민했다.
4군단장을 제외하면 1:2의 조언이었다. 그리고 그녀 역시 후자의 마음이 쏠렸다.
[1군단장, 그대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우리는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 무시무시한 「테르미노」가 어쩌다가 봉인되었는지. 바로, 여유를 부렸기 때문이다. 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거다. 내가 뱀을 꼬셔낼 줄은…… 그리고 본인을 봉인할 무기를 만들어 낼 줄은…….]
담담히 읊조린 총사령관이 계속 말을 이었다.
[변수는 최대한 없애는 게 좋다. 그러니 4군단장이여.]
[명해주십시오.]
[틈 밖으로 나가라. 후에, 곧바로 불의 종족들을 통합하여 놈들이 펼쳐놓은 철벽을 수복하라. 다음에, 문어를 죽이고 봉인을 해제하라. 그대는 뱀을 잡아본 경력이 있을 터. 믿어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
그 시각-
유성휘는 그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설명했음에도 교육에 대한 의지가 아예 없어 보이는 사내.
이곳이 고등학교나 대학교 교양수업도 아니고, 멀찍이 앉아 참관만 하고 있었던 주제에 반말까지 지껄인다?
그것도 본인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얼굴을 가지고 말이다.
게다가 표정은 어떠한가.
내가 무슨 잘못이냐도 했냐는 듯 지나치게 당당하다. 모지리 아니면 미친놈이 분명한 행동에 그는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 어이가 없군.”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아침에 홍보팀 김 대리가 태블릿 PC를 통해 보여줬던 영상.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신경 쓰지 않았는데 왠지 이 사내 같았다.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은 제대로 확인 못 했지만, 대충 체형이나 분위기를 보아하니 확실했다.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별다른 전술도 없이 그것도 건방지게 주먹으로만 불의 종족을 해결하는 영상을 당당하게 찍어 올린 자.
그의 눈엔 난 강하니까 시중에 있는 교본 따윈 무시해도 돼! 라고 어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우연히 얻은 능력에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다. 본인이 우물 안의 개구리인 것도 모르고 겉멋만 부리는 애송이가 틀림없었다.
“……네놈은 우리 KH가 그렇게도 우습게 보이나?”
유성휘가 사내를 씹어먹을 기세로 읊조렸다.
급격히 내려가는 분위기에 주변 사람들은 먼발치에서 기웃거리며 이곳 상황을 곁눈질하기 시작했다.
“아…….”
“아?”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다.”
“…….”
뜬금없는 소리에 인상이 찡그려졌다.
이 분위기에도 반말을 지속한다? 그것도 동네 친구한테 사과하는 식으로. 역시 미친놈이 틀림없다.
“나는 기억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솔직히 그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다. 머릿속이 뭔가 뿌옇게 낀 것같이 괴롭고 답답한데, 교본은 복잡하고 전술은 어렵다. 게다가 난 내 능력이 뭔지도 정확하게 모르…….”
“그만!”
유성휘가 사내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끊었다.
김 대리에게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했는데, 그런 건 그의 알 바가 아니다.
“이곳이 무슨 동네 놀이터인가? 아니면 아픈 자들을 케어해주는 요양원라도 되나? 아니다. 이곳은 서로의 목숨을 담보로 적과 싸우는 전쟁터다. 그런 곳에 지원했다는 놈이 고작 한다는 변명이 그건가?”
“…….”
“아프면 집에 가고, 미쳤으면 정신병원에 가라. KH엔 너 같은 자가 필요하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팔푼이에게 우리들의 목숨을 맡길 순 없는 법이다.”
유성휘는 사실 이번 신입들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반인이 아닌, 원래부터 헌터였던 자들. 돈이 많거나, 운이 타고난 자들이었다.
그가 KH에 자부심을 느꼈던 이유는 운이 아니라 실력으로 인원을 뽑았기 때문이었다.
일반인만 모집해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가려 뽑는 시스템.
비록 1기나 2기급의 경쟁률은 아니었지만, 본인도 이곳에 합격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한데, 이들은 이번에도 운이다.
그저, 결정체가 남아돈다는 이유로, 지원자가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노력도 없이 뽑힌 자들이란 것이다.
특히 눈앞에 있는 사내는 더했다.
E급이나 F급도 아닌, 적어도 A급 이상의 헌터. 아마 재벌 집 자제, 그 이상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그만큼의 결정체를 구할 수 있는 개인은 없을 테니까.
대충 보니까, 어디서 부모 잘 만난 머저리가 그냥 가벼운 유희 삼아 놀러 온 것 같은데 그렇게 내버려 둘 유성휘가 아니다.
“그리고, 기억상실? 솔직히 난 그 말 안 믿어. 기억 잃은 놈이 괴물들을 그렇게 때려잡을 수 있단 것도 말도 안 될뿐더러, 교육받을 수준도 안 되면서 입단 신청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보통은 기억을 잃으면, 기억을 찾으려고 노력하겠지. 난 너 같은 놈들을 잘 알아. 실력은 있는데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놈. 그러니까 그딴 저급한 영상이나 찍고 있겠지. 근데 그거 아나? 이곳 정식 단원 중 너 정도 하지 못하는 헌터는 없다. 아니, 너 같은 건 수십 명이 몰려와도 우리 단원 하나한테 안될 거다. 왜 지금 이 자리에서 직접 보여줄…….”
“저기, 잠깐만요?”
뒤에서 누군가가 유성휘의 말을 끊었다.
헐레벌떡 달려온 신예지였다. 그녀는 단단히 열이 올랐는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거,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닌가요?”
“……넌 또 뭐야?”
“아까부터 들었는데 좀 그렇잖아요. 그쪽이 꼰대 짓 하면서 교육 진행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해요. 각 집단마다 문화가 다르고,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근데 그런 인신공격은 좀 아니지 않나요? 그것도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가지고. 아픈 사람한테 말이에요.”
그녀가 끼어들자 유성휘는 작게 코웃음 쳤다. 역시 이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 신입들은…….
“하-, 아픈 사람? 기억상실을 말하는 건가? 그래. 그게 진실이라 해도, 그걸 내가 신경 써줘야 할 이유가 있나? 내가 자원봉사단체도, 의사도 아닌데?”
그러자 신예지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그럴 거면 애초에 왜 받았나요? 우리는 분명 KH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았어요. 직접 찾아오시기까지 했구요. 직원에게 기억상실에 대한 정보까지 말했는데도 허가된 사항이에요. 승인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이렇게 나 몰라라 대우해도 되는 건가요? KH가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집단이었나요? 게다가 들어보니까 그쪽은 5기.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 같던데, 입단을 시킬지 말지 결정할 권한은 있는 거 맞아요?”
“……뭐라?”
날카로운 목소리로 따박따박 따져 묻는 그녀의 어조에 유성휘의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사실, 그녀의 말대로 그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은 아니었다.
그는 불의 종족 패턴 분석하느라 바쁜 피터 잭슨의 임무를 잠깐 맡아 수행하는 것일 뿐…….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 신입들의 군기를 잡고 싶어 살짝 부풀려 말한 거였다.
그는 고개를 까딱거리며 주위를 슬쩍 훑었다.
모두 안색들이 신예지의 말에 긴가민가하며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물론, 그녀는 그걸로 끝내지 않고 계속 그의 신경을 긁었다.
“그리고, 기억을 잃으면 괴물을 잡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는데 그쪽, 기억상실증에 걸려봤어요?”
“…….”
“아니겠죠. 그런데 왜 이렇게 말을 함부로 하시나요? 저분의 태도에 대해 뭐라 하는 거였으면 몰라도, 팔푼이니 놈이니 하는 인신공격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신예지는 대답 없는 유성휘를 가만히 노려보다 곧바로 앉아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실, 그녀가 이렇게 용기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별거 없었다.
KH 같은 커다란 집단에서 힘없는 사람을 상대로 해코지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라 봐야, 불화로 인한 입단 실패겠지. 그러나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사내를 ‘크라켄’에게 데려다 줘야 하기는 하는데, 그 방법이 꼭 입단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왔어?”
사내가 쓸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왜, 왜 그걸 그냥 듣고만 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데.”
“네가 괜한 문제 일으키지 말라고 충고했지 않느냐.”
“그래도 저런 말까지 들어가며 참으라고는 말 안 했어요!”
“……아니.”
신예지의 분노에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 다소 과격하긴 했지만, 그가 틀린 말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들에겐 목숨이 달려 있는 문제. 당연히 내가 불안할 수밖에 없겠지. 나도 내가 불안한데 별수 있겠느냐. 전부 이해한다, 다만…….”
그가 갑자기 바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유성휘의 앞으로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한가지는 정정하고 넘어가고 싶군.”
“……?”
유성휘는 어디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만약 이곳 단원들의 수준이 그대와 같다면, 그대들 수십 트럭이 몰려와도 내 상대는 아니야……. 그대는 너무 약해.”
“……뭐?”
사내의 충격적인 발언에 주변 사람들이 경악했다. 신예지 역시 눈이 휘둥그레졌고, 유성휘의 눈썹 또한 꿈틀거렸다.
과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지만 자타공인 전 세계 최강 집단 KH의 단원들을 상대로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었다.
이내 안색을 회복한 유성휘가 한쪽 눈을 살짝 치뜨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그 말 책임질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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