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115화
30. 신입단원(3)
투다다다-
헬기 위.
강원도 북부로 향하는 길.
신예지와 사내는 우글거리는 불의 종족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평화롭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직원이 말문을 열었다. 가만히 앉아 앞으로의 계획을 차근차근 정리하던 신예지가 뒤늦게 반응했다.
“네, 네?”
“저놈들이요.”
여직원이 가리키는 곳에는 수백 마리의 괴물들이 대열을 갖춘 채로 무언가 홀린 듯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괴성을 지르는 놈.
침을 질질 흘리는 놈.
배고프다는 듯 이빨을 부딪치는 놈.
어디 하나 끔찍하지 않은 놈이 없었다.
“저게 평화롭다고요? 어딜 봐서?”
“적어도 무언가 부수려고 하진 않잖아요. 철벽에서 일주일만 지내보면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평화로운지 알 거예요.”
“허, 그래요? 그것참 기만적인 평화네요.”
“……기만이요?”
정희윤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아,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다면 정정할게요. ‘폭풍의 눈’과 같은 평화라고.”
“……폭풍?”
“네. 곧 광기와 피로 물들일 혈투에 대비한 잠깐의 고요함이겠죠.”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신예지는 다시 대답 없이 시선을 놈들에게 고정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뭘까.
새로운 신입에게 겁을 주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적막함을 참을 수 없었던 걸까.
“하지만, 반년이 지나면 또 다를 거예요.”
그녀는 꿋꿋이 말을 이어갔다.
“철벽에서 벌어지는 혈투마저 평화로웠다고 생각할 날이 오겠죠.”
“네? 그건 또 무슨…….”
여직원은 분명 ‘반년’이라는 정확한 시간을 명시했다. 그렇다는 건 또 무언가 일어난다는 말인가?
그 ‘종말의 날’ 때처럼? 이들은 무언갈 알고 있다는 건가?
“아, 모르셨어요? 저들을 봉인하고 있는 선소연이…….”
“이봐요. 정대리.”
순간, 가만히 듣고 있던 S급 헌터 하나가 끼어들었다.
“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들도 단원이 되면 다 알게 될 내용입니다.”
“아, 그게…….”
“게다가 저분들은 이제 곧 직접 피부로 체감하실 분들이에요. 현장에 한 번도 나와보지 않는 그대가 평화니 뭐니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네? 뭐라고요? 저도 나름…….”
그녀가 발끈하자 S급 헌터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조용히 하시고 다들 손잡이 꽉 잡아주세요.”
“제 말 아직 안 끝났어요.”
“꽉 잡으시라 했습니다!”
순간-
헬기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조종사의 무전이 바쁠새 없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헬기 접근 중! 방호 시스템 가동요청!]
[수신 완료. 잠깐 대기 하라.]
[괴생물체 접근 중이다. 위급하다! 2팀 긴급 사격 지원 바란다!]
[확인.]
신예지는 온몸에 힘을 꽉 주고 유리창을 통해 바깥 상황을 쳐다봤다.
그러고는 말을 잊었다.
아까 봤던 놈들의 대열이 시냇물이었다면, 지금 보이는 것은 광활한 바다였다.
철벽 하나를 둘러싼 채로 바글거리는 놈들의 수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다.
방송 매체에 나왔던 KH의 상황은 이곳 정경의 10%도 담지 못했다.
“키아아아악!”
“크르르르”
사방이 놈들로 가득했다.
아까 봤던 놈들을 보고 평화롭다 했던 여직원의 말이 너무도 정확해서 미안할 정도였다.
아직 F급 헌터인 그녀로선 이 지옥 같은 광경에 자연스럽게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린 저 공간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는 거지?
“꺄악! 저…… 저기 보세요!”
순간, 여직원이 어딘가를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익룡 세 마리가 있었다.
헬기를 인식한 듯 시퍼렇게 눈을 뜨며 다가오는 놈의 모습은 어딘가 익숙했다.
“저건, 파이어 드래곤이에요!”
「파이어 드래곤」
A급 괴물로서, 굉장히 속도가 빠른 놈이다.
시속 700㎞의 비행기와 비슷한 속도를 낼 수 있으며 그들의 부리는 강철마저 찢어버린다고 한다.
게다가 몸은 어찌나 단단한지 웬만한 공격으로는 생채기 하나 내기 힘들다. 그야말로 「레프」를 제외한 하늘의 지배자라 불릴 만하다.
“어떻게 좀 해보세요. 헌터님들!”
여직원이 답답하다는 듯 헌터들을 바라봤다.
긴장했는지 손잡이를 잡고 있는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호들갑 떨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보시오. 곧 지원사격이 올 터이니.”
“아니, 무슨 지원사격을 찾아요! 당장에라도 부딪치게 생겼는데! 으씨- 분명 나올 땐 이런 일 없었는데. 왜 갑자기…….”
나름 위태로운 상황에 비해 헌터들은 담담해 보였다. 사내 또한 별 감흥 없다는 듯 앉아 있었다. 확실히 평범한 인물은 아니다.
그나저나 신예지는 살짝 의아했다.
여기서 보이는 철벽은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벽만 간신히 보이고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은 거의 안 보일 정도의 먼 거리.
“이 거리에서 지원사격이 가능하다구요?”
“매번 있던 일입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기다려주세요.”
하긴, 지원자들을 데리고 올 때마다 헬기를 띄웠을 테니까.
조종사 또한 다급해 보였지만 겁먹은 표정은 아닌 게, 아무래도 저 여직원만 처음 이곳에 나와 본 것 같았다.
그들이 장담한 대로,
위급상황은 빠르게 해결됐다.
퍼엉-
퍼엉-
퍼어엉-
다가오는 놈들의 순서대로 대가리가 하나씩 터져나갔으니까.
정말로 저 먼 철벽에서 이들을 하나하나 저격해낸 것이다.
“진짜…… 믿을 수 없네요.”
과연 KH의 저력은 위대했다.
그러니까 저 말도 안 되는 병력을 상대로 6개월 동안이나 막아내고 있는 거겠지.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는 건 또 달랐다.
그래서 신예지는 더 두려웠다. 아마, 이들이 막을 수 없는 무언가가 나타난다면 그야말로 인류는 끔찍한 종말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
S급 헌터 유성휘는 이곳에 온 지 세 달밖에 안 된 나름 신입이라면 신입이다.
본래 5기 멤버로, 문태준 팀장이 있는 1팀에서 현장에 참여하다 최근에 피터 잭슨의 제안으로 이곳으로 넘어왔다.
KH 신입 교육팀.
신규로 만들어진 곳으로 새로 들어온 신입을 일주일 동안 철저하게 교육시키는 부서다.
“성휘 씨. 오늘 맡을 인원은 총 50명이에요.”
내부 착륙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한 직원이 다가와 서류를 내밀었다.
“네, 보고 받았습니다. 김 대리님. 그나저나 이번엔 좀 특이하다죠?”
“그렇습니다. 기존처럼 일반인들이 아니라 50명 전원 다 헌터였던 자들입니다. 대다수가 F급이나 E급이지만요.”
“가르치기 좀 더 편하겠군요.”
피터 잭슨은 유성휘의 각성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의 능력은 전투보단 훈련에 더 안성맞춤이었다.
타인의 각성능력을 더 빠르게 안정화하고, 그에 더하여 숨은 능력까지 이끌어내게 할 수 있는 능력.
그야말로 새로 만들어진 신입교육팀에 딱 어울리는 인재였다.
“특이한 건 그것보단 이 사내에요.”
“사내요?”
“이걸 보세요.”
그가 태블릿 하나를 내밀어 영상을 틀었다.
화면에는 한 가면 쓴 사내가 각종 괴물을 주먹으로 때려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흐음…… 신체강화계인가요?”
“네. 몇 급인진 밝혀지지 않았고, 특이사항으로 기억이 없답니다. 이 정보는 방금 우리 쪽 직원한테서 들어온 거예요.”
“근데 이게 왜요?”
“대단하지 않나요? 이 정도면 이미 S급일 수도…….”
“아뇨. 별 볼 일 없는 것 같은데요.”
이 정도 사냥장면을 보고 감탄하기엔 그가 너무도 대단한 곳에 소속되어 있었다.
저런 저급한 놈들을 상대로 사냥하는 모습은 그가 보기엔 애들 장난처럼 보였다.
특히나 이렇다 한 전술도 없이 막무가내로 때려잡는 모습이라면…….
“그, 그렇습니까?”
“네. 김 대리님. 혹시 1 팀장님께서 싸우는 모습을 직접 보신 적 있으십니까?”
“지, 직접이요?”
“네.”
KH 1팀장 문태준의 각성능력은 「중력 조절」.
수백 마리의 괴물이 그의 손짓 앞에 움찔조차 하지 못하는 장면을 본다면 겨우 이런 걸 보고 대단하단 소리는 하지 못하리라.
4팀장 유현동은 어떤가.
그의 「백만 볼트」가 한번 펼쳐지면 그 공간에 괴물들은커녕 아군도 가기 꺼릴 정도다.
“아니요. 그분들은 정말 위험할 때 아니면 직접 나서는 적이 별로 없으시니…….”
“뭐, 그분들이랑 비교하자는 건 아니지만. 전 이런 스타일 정말 싫어합니다.”
“……그렇군요.”
“딱 봐도 가르치기 힘든 스타일이거든요.”
유성휘는 직원에게 태블릿을 돌려주고 뒷짐을 지었다. 그리고 이제야 저 멀리서 하나둘 다가오는 헬기를 쳐다봤다.
이제 맞아야 할 때가 된 것이다.
KH 6기. 50명의 신입을.
***
신예지와 사내를 태운 헬기는 우여곡절 끝에 착륙장 근처까지 잘 날아왔다.
여직원의 안색은 파리하게 질려 있었으며, 신예지 역시 손에 땀이 가득했다.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 스릴 넘치는 비행이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진짜 죽다 살아났네요.”
신예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정희윤이 격하게 동감했다.
“인정합니다. 이제 다시는 안 탈 거예요. 저거.”
“근데, 저희 말고도 많이들 왔나 보네요?”
산지에 있을 것 같지 않은 거대한 헬기 착륙장.
그곳에는 이미 많은 헬기들이 도착해 있었으며, 아직도 다 오지 않은 건지 멀리서도 로터 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으로 오세요. 안내해 드릴게요.”
당장에라도 토할 것 같은 표정임에도 정희윤은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그들을 안내했다.
“신입 단원들은 현장에 투입하기 전에 일주일의 기간을 가져요.”
“그래요?”
“네. 계약도 해야 하고, 결정체도 지급 받아야 하고, 이것저것 교육도 해야 하거든요. 사실 일주일도 엄청 짧죠.”
“그렇군요. 한시가 바쁠 테니까요.”
“교육이 끝나면 팀 배정이 시작될 겁니다. 음…… 아마 예지 씨는 여성분이시니까 3팀으로 갈 확률이 높겠네요.”
“3팀이요?”
“네. 강설아 팀장님이 계신 곳이죠. 조금 다혈질이시란 말은 들었지만 그만큼 믿음직스러운 분도 드물 겁니다.”
정희윤은 둘을 데리고 걸으며 이것저것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신예지는 관심을 가지며 들었지만, 사내는 말 없이 계속 걸을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헬기에서부터 쭉 사내는 말이 없었다. 무언가 깊게 생각하는 사람처럼 눈이 잠겨 있었다.
신예지는 그 모습이 걱정됐다.
본인의 판단으로 이곳에 데려왔는데 잘못될까 두렵기도 했다.
“아, 예지 씨. 다 왔네요. 저쪽이에요.”
여직원이 한쪽 공터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도착해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 대리님. 여기서부턴 저희가 알아서 갈게요.”
“알겠어요. 무운을 빌게요. 아마 이제 같은 식구니까 자주 볼 거예요.”
뒤돌아 가는 정희윤을 뒤로하고 신예지는 잠깐 사내를 불렀다. 신입 교육을 받기 전에 해줄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 괜찮죠?”
“응? 뭐가 말인가.”
“아까부터 말이 없으시길래.”
“아니, 그냥…… 이곳에 가까이 올수록 뭔가 친숙한 기운이 느껴진다. 알 듯 말 듯 한……. 그게 무슨 느낌인지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친숙한 느낌.
그게 뭘까?
아니, 그것보단 좋은 징조일까 나쁜 징조일까?
아니면 사내가 그렇게 찾던 문어, ‘크라켄’의 느낌을 벌써 받은 것일까?
“저기요. 이제부터 제 말 잘 들어요.”
“말해라.”
“괜히 눈에 띄는 짓 하지 마시고, 항상 사람 조심하셔야 해요. 제가 일단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은 해뒀어요. 그러니까, 괜히 문어 찾는답시고 혼자 여기저기 알아보러 간다거나 그러시면 안 돼요. 제가 다 알아볼 테니까.”
타이르듯 말하는 신예지.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사내가 갑자기 빙긋 웃었다.
하얗고 가지런한 이가 다 보이는 웃음.
처음으로 보는 그 환한 미소에 그녀는 잠깐 넋을 잃었다.
“고맙다, 신예지.”
“네, 네……? 아, 네.”
“그리고 믿겠다.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낯간지러운 말에 그녀의 심장도 놀라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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