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114화
30. 신입단원(2)
쾅!
괴물에게 달려든 사내의 주먹이 억세게 틀어박혔다.
-크으, 시원하고~
-쟤는 몇 급 괴물이었음?
-ㅋㅋ. 여기서 그거 본 사람 없음.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터져나가는 불의 종족들.
사내의 호쾌한 사냥방법은 시청자들의 묵힌 가슴을 시원하게 풀어줬다.
자신들의 터전을 앗아간 적이자 원수.
그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을 간단하게 아작낼 때마다, 그들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사실, 어찌 보면 별 내용 없는 방송이었다. 그저, 이동하면서 놈들이 보이면 주먹으로 때려잡는 방송.
그런데도 시청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갔고, 소문은 날개를 타고 퍼져나갔다. 그 간단한 방송임에도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간간이 이루어지는 가방 속 먹방(먹는 방송)과 해지고 야외에서 펼쳐지는 잠방(잠자는 방송)이 의외로 인기 있었다.
젊은 여자와 신비한 사내가 단둘이서 멸망한 세계를 거닌다는 게 무언가 색다른 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요즘 이 방송 때문에 심심할 날이 없네요.
-저도, 이거 보는 재미로 삼.
-확실히 엘리트 방송이랑은 또 다른 매력인 듯. 엘리트는 설명충인데 얘는 그냥 전술이고 뭐고 걍 다 한방에 때려잡자너. ㅋㅋ
-ㄹㅇ 속이 다 시원함.
엘리트는 내기에 진 후 깔끔히 물러났다.
아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더 확실하겠다.
그나 신예지나 프로방송인으로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시청자의 민심. 즉, 시청자와의 약속이었으니까.
거기서 행패를 부렸다면 오히려 더 망신이었을 거다.
-근데, 이제 곧 끝이 보이구나.
-벌써 인천임? 시간 참 빠르네요.
-아…… 안 돼 ㅠㅠ.
내기 이후, 야외방송을 진행한 지도 어느덧 6일이나 흘렀다.
시청자들은 안타까워했지만, 사실 사내도 신예지도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무려 24시간 풀로 진행하는 방송이다.
잠을 잘 때도, 식사를 할 때도, 사냥을 할 때도 항상 시청자들과 함께해야 했다.
자기만의 시간이 하나도 없는 방송.
당연히 심리적으로 지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바다에요.”
신예지가 퀭한 눈빛으로 사내에게 말했다.
“……그런가?”
“……네.”
“이제, 그 지겨운 카메라, 안 들고 다녀도 되겠구나.”
“흐엑? 지…… 지겹다뇨! 아니에요.”
그녀가 듣고 있는 시청자를 의식했는지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사내를 바라보며 제발 살려달라는 필사적인 눈짓을 보냈다. 그들의 빈정이 상하면 당분간, 그리고 앞으로도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그들은 가면남 홀릭에 빠진 상태.
-ㅋㅋ 지칠 만하지. 인정한다.
-우리 가면남 하고 싶은 대로 해. 방송 끄고 좀 쉬어라.
-일주일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정말 후련했습니다.
-얘들아. 잘 생각하자. 지금 물러나야 다음도 있는 거다.
-예지야. 의뢰비 따블로 줘라. 후원 더 해줄게.
신예지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녀가 아는 시청자들은 이렇게 착한 존재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왜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마무리할 각. 그 기회를 놓칠 그녀가 아니었다. 이 흐름이 바뀌기 전에 냉큼 다시 물어야 한다.
“잉? 다들 웬일이셔? 진짜 그래도 돼?”
-ㅇㅇ.
-너 때문이 아니라 게스트가 힘들어하잖아.
-수고했어.
-고생했다~ 다음에 또 보자.
-바~~~ 이~
“고, 고마워. 나 그럼 여기까지만 하고, 집에 복귀할게. 진짜 고마워!”
그녀는 시청자들의 반응에 마음이 따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무리 인사와 막간을 이용해 후원하는 그들을 보며 조심스레 방종 버튼을 눌렀다.
띠링-
[BJ 신예지 님이 방송을 종료하셨습니다.]
기분 좋은 울림.
그토록 간절했던 안내음.
그녀는 후련한 마음과 함께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폐 속 깊은 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남들이 할 땐 쉬워 보였는데, 직접 해보니까 정말 중노동, 그리고 감정노동이 따로 없었다.
“흐아아~”
기지개가 절로 펴졌다.
“고생하셨어요.”
신예지는 사내에게도 감사를 표시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그녀 인생에 이런 장기 야외방송은 꿈도 꾸지 못했을 거다.
방송수익도 대단했다.
일주일 동안 벌어들인 후원 수익만 1억이 넘는다. 결정체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수거했다지만, 그건 사내 것이니 그녀와 상관없는 일이고.
“덕분에, 진짜 좋은 경험 했어요.”
“후우, 사실 딴것보다, 이게 제일 답답하더군.”
그가 가면을 벗어내며 말했다.
“헉…… 그러셨겠구나.”
생각해 보니 약 일주일간 저 싸구려 가발을 제대로 벗지도 못한 채 쓰고 다녔다.
그러면서 사냥은 꾸준히 했다. 아마, 그냥 카메라만 들고 다녔던 그녀보다 배로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도…….’
신기했다.
‘어떻게 그간 피부 트러블 하나 없이 잘생길 수 있는 거지? 역시 헌터인가?’
그 오랜 시간을 가면과 피부가 밀착해 있었는데도 말이다.
신예지가 사내를 빤히 쳐다보자 그도 시선을 마주했다. 그녀는 그와의 눈 맞춤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했다.
“죄송해요. 미처 생각을 못 했어요. 답답하셨을 텐데 그 가면.”
“상관없다. 그럼 이제 바다로 가면 되는 건가?”
“네. 이제 거의 앞이에요. 여기서 한 5분 거리?”
“좋군. 답답했는데 어서 가지.”
“좋아요.”
***
그렇게 반나절이 흘렀다.
벌써 해가 졌고, 그와 그녀는 ‘인천역’에 있는 한 주점에 들어와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건대 입구’로 복귀하기 전에 잠깐 쉬어가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문어는 아무런 효용이 없었다.
어부를 데리고 직접 바다에 나가 잡아보기도 했고, 잡힌 문어들도 셀 수 없이 살펴봤다.
그러나 사내는 계속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무슨 문어를 쳐다본다고, 없던 기억이 돌아오겠는가. 그랬으면 가방 속에 있는 문어요리를 먹었을 때 돌아왔어야 했다.
아마 그냥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을 거다.
아무 기억은 나지 않는데, 머릿속 한켠에 ‘문어’라는 단어가 있으니, 그것을 찾으면 무언가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후우…….”
식탁에 걸터앉은 사내가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신예지는 그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괜찮으세요?”
“아니, 혼란스럽다. 분명히 머릿속엔 ‘문어를 찾아라’라는 말이 맴도는데, 막상 문어를 보니 그냥 문어다.”
“……저런.”
그녀는 기억상실증에 걸려본 적 없어서 모른다. 하지만 어렴풋이 짐작했다.
본인조차 기억 못 할 정도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울지…….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제가 말했잖아요. 이거 끝나고 어떻게든 기억 찾는 거 도와드리겠다고.”
그녀는 사내 덕분에 얻은 게 많은데, 사내는 그녀를 따라다니며 얻은 게 없다.
어느 정도의 도의적 책임감이라는 게 있다면 당연히 도와줘야 할 일이었다.
“말이라도 고맙군.”
“말뿐만이 아니에요! 사실,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구요.”
“뭐라?”
사내의 반응에 곰곰이 생각에 잠긴 신예지는 곧이어 결심한 듯 휴대폰을 내밀었다.
“사실 간밤에 문자로 연락이 닿은 게 있어요.”
“문자?”
“네. 보세요. KH에서 온 스카웃 제의에요. 우리 방송을 본 것 같은데.”
사실 방송 중 KH 홍보팀에서 연락이 왔었다. 최고의 대우와 복지, 그리고 최상급 결정체 5개를 보급해 줄 테니 KH에 입단해달라는 말이었다.
정신없기도 하고 진행하랴 바쁘게도 해서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막상 사내가 기억을 찾지 못하니 떠오른 것이다.
사내는 강했다.
분명 기억을 잃기 전 무언가 큰일을 하던 사람이었을 거다.
그리고 KH는 세계 최강의 집단.
그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꺼림칙했다.
누군가의 장난일 수도 있었고, 혹여 진짜라 하더라도 KH가 사내에게 호의적인 집단이란 보장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밤새 고민했던 것이다.
그에게 알릴지 말지.
“KH? 뭐 하는 곳인가.”
“세계 최강의 헌터 집단이에요. 그쪽 같은 괴물들이 모여 있는 곳.”
“근데 거기서 왜?”
“그쪽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거겠죠. 원래 헌터는 뽑지 않기로 유명한 곳인데 이상하게 저도 가입시켜준다네요. 많이 급한가?”
신예지의 말에 사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기 가서 뭐하냐는 말이었다.”
“뭐긴요. 거기도 문어가…… 잠깐, 문어…… 문어?”
순간 소름이 돋았다.
KH에도 문어와 비슷한 존재가 있단 말을 들은 적 있었으니까.
도면 한 번만 보고 서울에 수많은 지하벙커를 짓고, 강원도에 철벽을 올렸으며,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전설 속의 신수 ‘크라켄’
물론, 방송 매체에 오르내리지는 않아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지만, 그래도 알만한 사람들을 다 안다.
건축 관계자들이나 내부 인원들이나, 어쩔 수 없다 보니 보게 되고, 몇몇이 알면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니까.
“왜 그러지? 무슨 일 있나.”
“잠깐, 있어 봐요.”
신예지는 떨리는 손으로 급하게 KH 홍보팀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KH 홍보팀 대리 정희윤입니다. 문자 받고 연락 주신 건가요?
“아, 네. 그 다름이 아니라 혹시……. ‘크라켄’ 있잖아요?”
-크…… 크흠. 네?
순간, 여직원이 헛기침했다.
「크라켄」의 존재 여부는 사실상 극비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 각종 건물을 올릴 때, 몇몇 건축 관계자들이 본 것을 제외하곤 노출된 적도 없다.
“다 알고 전화한 거예요. 어차피 어제 보내주신 제안에 제가 승인만 하면 딱히 지킬 비밀도 아니지 않나요?”
-그, 그렇긴 하죠? 입단하기로 결정하신 거예요?
“그전에 질문 하나만 하죠.”
-말씀하세요.
“혹시, KH 내부에서 ‘크라켄’을 따로 부르는 말이 있나요?”
-으음……. 뭐, 간부님들이 대다수 ‘문어’라고 부르긴…… 하는데.
됐다. 이거다.
신예지는 마음속으로 빙고를 외쳤다.
***
다음날.
‘건대입구역’ 위에 개조해둔 비상 전투 헬기장에 그녀와 사내가 떠날 채비를 갖춘 상태로 나와 있었다.
신예지는 그에게 KH에 입단해야만 하는 이유를 밤새도록 설명했다.
그리고 충분히 주의도 줬다. 혹시 악의를 가진 자가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그래서 너도 간다는 말인가?”
“네. 그쪽 혼자 불안해서 어떻게 보내요. 말했잖아요.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방송은?”
“잠깐 쉬죠. 뭐. 어차피 이룰 것도 다 이뤘어요. 더 이상 야외방송할 자신도 없고.”
“……알겠다.”
사내의 대답을 끝으로 시간은 금방 흘렀다.
이윽고, 투다다다-소리가 들리더니 웬 전투 헬기가 착륙했고 한 여자가 그곳에서 내렸다.
그녀의 방송을 봤던 시청자. KH 홍보팀의 여직원이었다.
“아, 신예지 씨! 저는 정희윤 대립니다. 실물로 보니까 훨씬 더 예쁘시네요.”
“아니에요. 무슨. 반가워요.”
지금까지 강원도까지 갈 수 있는 교통편이 전무하기에 KH는 인재채용에 있어 헬기를 이용한다.
커다란 헬기 내부에는 S급 헌터로 보이는 인물 세 명이 호위하듯 앉아 있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음, 두 분 다 가입하시는 거죠? 예지 씨랑 옆에 남성분.”
“네. 맞아요.”
“남성분 실력이 대단하시던데, 혹시 헌터 등급이?”
“아, 그건 나중에 제가 따로 설명해 드려도 될까요? 신원은 제가 확실히 보증할게요.”
신예지는 곧바로 여직원의 질문을 차단했다.
KH 같은 큰 곳에서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해도 신원보증이 안 되는 사람을 뽑을 리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희윤의 반응은 달랐다.
“에이, 요즘 세상에 무슨 신원이에요. 다 망해서 전산시스템도 안 돌아가는 마당에.”
“그, 그래요?”
“그냥 실력이 신원인 거죠. 자, 빨리 갑시다! 뭐 하세요. 안 타시고!”
여직원이 다급하게 말했다.
오히려 그와 그녀가 뒤돌아서 안 간다 할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일단 가보지 뭐.’
신예지는 사내를 데리고 헬기에 올랐고, 그렇게 인천에 이어 강원도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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