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113화
30. 신입단원(1)
차륜전(車輪戰).
다른 말로는 지구전(持久戰).
상대가 강한 소수일 때 다수의 병력이 차바퀴 굴러가듯 병력을 교체해가며 힘을 빼는 전술이다.
어찌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말도 안 되게 무식한 방법이다.
생각해 봐라. 교대할 병력이 있다면 그냥 총공격으로 밀어붙이는 게 훨씬 더 위협적이지 않겠는가?
괜히 지치게 한답시고 병력을 조금씩 보내다간 강력한 적에게 하나하나 각개격파 당할 뿐이다.
하지만 강원도 북부.
커다란 철벽을 향해 불의 종족은 끊임없이 차륜전을 펼치고 있었다.
아마 총사령관이 선소연에게 봉인되지 않은 채 그 광경을 봤다면 분노했을 거다.
전 세계에 펼쳐진 불의 종족은 조금씩 사라져가는데, 인류는 끊임없이 자신들의 결정체를 모으며 힘을 기르고 있었으니까.
“하이고, 오늘도 끝도 없이 밀려오는데요?”
KH 홍보팀 여직원 한 명이 CCTV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개미 떼를 방불케 할 만큼 수많은 놈을 보면서도 한층 여유로워 보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느 기점 이후로, 부상자는 있어도 절대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피터 잭슨의 전술.
철저한 교대시스템.
체계적인 휴식관리.
조금 피로했다뿐이지, 단원들은 이제 압도적으로 놈들을 막아내고 있었다. 이제는 완벽하게 적응한 것이다.
문제는 홍보팀이었다.
“오늘도 꽝이야?”
“네, 이거 결정체는 쌓여만 가는데…….”
공고를 올리고 올려도 일반인들이 지원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추적꾼을 고용한 몇몇 기자들이 몰래 이곳 상황을 취재해 갔던 이후였을 거다.
대중들은 두려워했다.
영상에 담긴 KH 단원들의 모습을…….
아무리 그들의 표정이 침착하고 여유롭다 해도 피로 범벅된 모습들이 괜찮아 보일 리가 없었다.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는 괴물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사납게 포효하며 짐승처럼 싸우는 헌터들.
평화에 익숙했던 인류가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후우……. 자, 홍보팀 다들 모여봐.”
“네!”
“팀장님께서 오늘부터 전 직원 다 인터넷 개인방송 보래. 헌터들 하는 거로.”
“바, 방송이요?”
직원들이 놀랐다.
몰려오는 업무량 때문에 바빠죽겠는데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란 말인가.
“갑자기 방송은 왜요?”
“이제 굳이 일반인들 안 뽑아도 된대. 전국에 있는 헌터들 상대로 모집 공고를 내고, 방송 보다가 괜찮아 보이는 사람 있으면 특별채용해서 고등급 결정체 먹이라는 게 상부 지시야.”
“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데도 특별한 사람들은 있게 마련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공포에 떨어야 할 괴물들을 상대로 오히려 사냥하며 방송까지 찍는 자들.
KH는 그런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금 괴물들을 여유롭게 막는다고 끝이 아니니까.
6개월 후, ’진짜’ 전쟁에 대비해야 하니까.
“자, 빨리빨리 시작들 해. 겹치면 안 되니까 각자 방 정해서 보고하고, 특이사항 있으면 바로 나한테 알려줘.”
홍보팀 박 과장의 통제 아래 사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아까 그 여직원은 자리에 앉아 평소 즐겨보던 방송 플랫폼을 열었다.
‘뭐, 우리야 좋지. 편하게 일하고. 그나저나 헌터방송은 처음인데…….’
매일 S급 헌터들을 보는 게 일상이다.
그러니 평소 헌터방송을 즐겨볼 리 없었다. 시시했으니까.
‘음? 이건 뭐지?’
그리고 눈길 가는 방송 하나를 찾았다.
「BJ 엘리트 ”F급 헌터 예지 님이랑 괴물 사냥, 그리고 여행방송” -역대급 미션 : 놓치면 후회!」
‘오, 한 번 들어가 볼까?’
그녀는 홀리듯 손가락을 움직여 화면을 클릭했다.
***
-ㄷㄷ 시작한다.
-엘리트 잘해라. 이기면 후원간다잉~!
-드디어 ㄱㄴㅇ?
막 하이라이트 장면에 접속했던 건지 채팅창의 상황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화면에 보이는 것은 웬 미남 하나와 가면 쓴 남자였다.
‘어라? 저건 「범룡」이잖아?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아~ 저 망토가 있었구나.’
홍보팀 여직원은 흥미롭게 쳐다봤다.
그가 뭘 하려는지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KH 직원들은 단원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불의 종족’에 대한 교육을 이수한다.
남아도는 결정체 때문에 언제 현장에 투입될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위급할 시엔 젖을 못 뗀 아기든, 다 죽어가는 노인이든 무조건 결정체를 먹어야 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예지야, 중계 안 함?
-해설 좀. 헌터로서 누가 이길 거 같음?
-ㅋㅋ 가면남이 이긴다고 하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다.
카메라를 잡고 있는 여성 역시 비제이라 그런지 시청자들의 관심이 쏟아졌다. 여직원은 화면과 채팅창을 보면서 쓱 미소 지었다.
이곳 짬밥만 벌써 1년째.
누가 이길지 뻔했기 때문이었다.
저 망토는 KH에서 보급하는 물품.
특히, 저 「범룡」을 상대할 때 쓴다면, 등급이 낮은 헌터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그에 비해 가면 쓴 사내는 그냥 맨몸에 맨손. 그가 S급 헌터가 아닌 이상 어림도 없는 일이다.
“누가 이길 것 같냐고요?”
본래 본인의 방송에선 반말이 컨셉이지만, 오늘은 엘리트의 방송이기에 존댓말을 하는 신예지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물어볼 것도 없이, 가면 쓰신 분이 이길 겁니다. 이건 100%에요.”
-오, 그 이유는?
-ㅋㅋ 단언하네.
-얘는 그냥 엘리트를 싫어하는 거 아냐?
-222 그거 맞는 듯. ㅋㅋㅋ
“이유? 그냥 보시면 알아요. 지금 말해줘 봐야 여러분은 못 믿을 거거든요.”
그녀의 단언에 여직원은 코웃음 쳤다.
‘헹, 저렇게 안목이 없어서야. 하긴, 일반 F급 헌터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
그 시각-
생수로 온몸을 적신 그는 대담하게 「범룡」을 향해 걸었다.
500만 원의 후원과 자존심이 걸린 맞대결. 베테랑 헌터 BJ인 엘리트의 집중력은 그야말로 절정에 달한 상태였다.
“차앗!”
「버서커」 모드를 발동한 후, 그는 자신이 골랐던 범룡의 반대편 방향으로 뛰었다.
놈이 브레스를 썼을 때 한강 쪽으로 발사해야 신예지가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반대편으로 이동했고, 역시나 놈은 물을 꺼리는지 다가오지 않았다. 그냥 시선을 계속 따라오며 몸통만 돌려댈 뿐이었다.
‘그래. 이거지. 이제 곧이어.’
「범룡」의 본체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브레스를 쏘겠다는 신호였다. 역시 간단하고도 뻔한 패턴. 항상 그렇듯 알고만 있으면 참 쉽다.
‘좋아. 여기까진 예상대로야.’
그는 재빨리 망토를 뒤집어쓰며 몸을 숙였다. 조금이라도 늦게 뒤집어썼다간 온몸이 녹아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품속에 준비한 칼을 꺼내 들었다. 브레스를 다 품어내고 힘이 빠진 놈에게 달려가 치명타를 넣기 위한 비장의 단검이다.
‘그나저나, 놈은 뭐하지?’
가면남의 상황이 궁금했던 그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사내는 아직도 제자리에 멀뚱히 서 있는 상태.
오히려 웅크려 있는 나를 보고 ‘저게 뭐 하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크큭, 내 승리로군.’
그는 꿈에도 모를 것이다.
이런 획기적인 사냥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가면 쓴 사내가 움직였다.
아니, 사라졌다.
“응?”
슉-
이윽고, 공간을 찢어발기는 소리가 울렸다. 사격장에서 들리는 총알 소리처럼, 아니, 확실히 그것보다는 더 컸다.
굳이 따지자면, 창공을 가로지르는 제트기의 소리에 더 가까웠다. 하여간 확실한 건, 인간의 몸에서 날 수 있는 소리는 아니었다.
콰아앙-
곧이어 들려오는 천둥소리에 엘리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뭐, 뭐야. 갑자기.’
갑작스레 융단폭격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느낌에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그는 살며시 눈을 떠 다시 한번 전방을 확인했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가면남이 상대하기로 했었던 「범룡」이 어느새 피떡이 된 채 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X발?”
그 시각, 카메라를 들고 있던 신예지도 돌처럼 굳어버렸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보니 사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괴물인지 깨달아 버린 것이다.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시청자들 역시 난리도 아니었다.
-……?
-지금 내가 본 거 실화?
-뭐야, 저 사람 무서워.
-저거, 가면 벗겨봐야 하는 거 아님?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장면이기도 한데?
-222 나도 방금 그 생각함.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현 유튜브 조회 수 1위를 달리고 있는 강 현의 백화점 CCTV 영상과 소름 끼치도록 닮았기 때문이었다.
‘싸이클롭스 베어’를 맨손으로 터뜨려 버렸던 그 화제의 영상 말이다.
-에이. 그래도 그거랑은 다르지…….
-ㅇㅇ 싸베는 S급이고, 저건 C급이니까.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함 ㄷㄷ;;
-그나저나, 저 벌게진 「범룡」은 뭐야? 엘리트 앞에 있는 저거.
“아! 저건……. 위험!”
신예지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녀도 짧게나마 공부해서 안다.
저 조짐은 「범룡」 최고의 무기.
돌까지 녹여 용암을 만들어 버린다는 무시무시한 화염브레스였으니까.
곧이어, 놈의 입가에서 불줄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
“엘리트 씨. 피해요!”
그때였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내가 곧바로 움직여, 놈을 가볍게 툭-건드려 찼다.
뻐엉-
“크케에에엑!”
「범룡」이 찢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공중에 붕-뜨더니 곧이어, 풍덩- 소리를 내며 한강 물에 그대로 빠져버렸다.
물을 싫어하는 놈은 꼬르륵-소리와 함께 거품 몇 방울을 남기고 그대로 수장당해버렸다.
‘지상의 악귀’라는 「범룡」의 이름이 무색한 순간이었다.
-와, 방금 봄?
-ㅇㅇ. 그냥 축구공 차는 줄 알았어.
-ㄷㄷ. 「범룡」 축구공 되다.
-미쵸따;; 나 오늘부터 가면남 팬함.
-이 정도면 엘리트 완벽한 능욕 아니냐? 내기에서 이기고 진 걸 떠나;;
-ㅇㅈ. 그냥 개 발렸네.
“참나, 하-, 참…… 하-”
그 모습을 넋 나간 표정으로 쳐다보던 엘리트가 곧이어 정신 차리더니 말을 못 이었다.
이렇다 할 멘트를 찾지 못한 채로 당황해 버린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있었으니.
게다가 그 브레스.
맞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건데, 어떻게 그걸 그렇게 간단하게…….
“진짜, 그걸 건들면 어쩌자는 겁니까?”
결국, 엘리트는 답답한 마음에 성질을 낼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브레스를 그대로 맞은 다음에 한 마리라도 잡았으면 내기에 졌더라도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거다.
지금은 체면이고 뭐고, 다 구겨진 상태였다. 생수 뿌리고, 자빠지고, 망토 두르고 했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으니까.
지금에 와서 말로 설명해 봐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실제 장면으로 보여줘야 멋이 있는걸.
“아, 잡으려던 거였나? 네가 그냥 가만히 멍 때리고 있길래. 살리려 그랬을 뿐이다.”
사내가 툭-던지듯 하는 말에 엘리트는 말을 잃었다.
어쨌든, 더 이상의 변명은 시청자가 말했던 대로 진짜 추해질 수 있었다. 가면남은 진짜였고 엘리트는 그걸 몰라 본채로 덤볐으니까.
“후우……”
“왜. 내가 잘못한 건가?”
“아닙니다. 제가 졌습니다.”
나름대로 실력 방송을 표방하던 엘리트에게,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굴욕이었다.
***
“꺅! 과장님!”
방송을 보던 여직원이 책상을 쾅-치며 소리쳤다.
그러자 파티션에 앉아 일하던 직원들이 고개를 빼꼼했다. 무슨 일이라도 터진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인마, 여기가 네 안방이야?”
박과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으르렁거림에도 여직원은 한걸음에 내달려갔다.
“이, 이거 보세요!”
“아씨, 뭔데 그래?”
“세상에. 「범룡」을 맨손으로 잡았다고 하면 믿겨 지세요?”
“응, 믿어지는데? 그런 사람 이곳에 한 둘 있니?”
“아뇨. 전혀~ 달라요!”
여직원이 떨리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저도 나름 이곳에서 오래 지냈다면 오래 지냈잖아요. 근데, 확실히 달랐어요. S급 헌터. 그 이상이었어요. 분명해요.”
“한국인?”
“네, 한국인.”
“허어, 한국인 중에 아직도 그런 사람이 남아 있단 말야?”
‘종말의 날’ 이후, KH를 제외한 국내 모든 집단은 해체됐다. 밀려드는 불의 종족에 부담감을 느껴 다들 자체적으로 해산한 것이다.
물론, S급 이상의 능력자들은 연합 차원에서 관리했다.
기존에 있었던 헌터든, ‘종말의 날’ 이후 생긴 헌터든 간에.
“근데 가면을 쓰고 있어서 잘 모르겠어요. 어떡할까요?”
“뭘 어떻게. 당장 스카웃 요청해야지.”
“네? 제…… 제가요?”
“그래. 헌터 지원해줄 테니까 어떻게든 정중히 모셔와. 세 분 모두.”
여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엥? 세 명 다요?”
“아씨, 아까 회의 말 못 들었어? 써도 써도 남아도는 결정체 때문에 사용할 사람이 없단 말이야! 사용할 사람이! 일단, 밖에서 싸울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면 다 입단 제안해!”
“아,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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