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108화
28. 기억의 행방(3)
1년 6개월 전.
KH가 ‘종말의 날’을 선언하면서 개인 벙커 붐이 일었다.
그에 따라 국내에 존재하는 모든 건축 공사 업체들은 각 광역시 일대 지하철 철로 주변을 확장하면서 대규모 공사에 들어갔다.
처음엔 말이 많았다.
왜 땅값이 비싼 광역시 일대 위주로만 공사하냐고…….
시골에 사는 사람이나, 돈 없는 사람은 무시하냐고…….
그에 어느 한 유명한 건축업체 관계자가 방송에 나와 말했다.
-저희는 시장경제에 따라 일할 뿐입니다.
물론, 땅값이 싼 시골이나 산기슭에 벙커를 짓는 자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자금에 여유가 있는 자들은 죄다 광역시에 분양을 받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홀로는 절대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종말의 날’ 이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잠깐 지낼 곳이 아닌, 오랫동안 어쩌면 평생을 지낼 수도 있는 곳을 찾았다.
당연히, 제일 걱정했던 것은 식량이었다.
그거 아는가? 라면을 포함한 대다수 식품의 소비기한이 1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거.
참치 캔이야 10년 동안 먹을 수 있다지만, 사람이 통조림만 먹으며 살 수는 없다.
그 말인즉슨, 혼자 구석에 갇혀 지내면 아무리 준비가 잘 되어 있다 해도 10년 이상을 살 수 없다는 거다.
인공 밭이나 지하목장을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부자들은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비싼 시설들을 모든 사람이 갖추기엔 너무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광역시는 다르다.
식품기업을 비롯한 각종 제조기업들은 공장을 광역시 근교 지하로 옮기기 시작했다.
소, 닭, 돼지 등을 키우는 업체들 또한 임시방편으로 지하 우리를 만들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기업의 제1 목표는 이윤 극대화니까.
정말 KH의 주장대로 ‘종말의 날’이 닥쳐온다면 회사가 망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기업은 위험회피전략에 따라 지하에, 그것도 인구가 밀집된 곳에 보험을 들어놔야 했다.
정부도 발 빠르게 대처했다.
각종 전문가들이 방송에 출연해 서울 근교 벙커 분양을 권했으며, 시장은 각 지하철역 대피소마다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공 밭과 아늑한 숙식시설들을 대대적으로 광고했다.
사실, 정부가 지방이 아닌 대도시 위주로 공사지원을 해준 것은 시간 때문이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 모든 지역을 공사하기엔 금전적으로, 그리고 인력적으로 너무나 부족했다.
제일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지하철로 인해 지하개통이 편리한 지역, 특히 서울·경기 위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가장 많은 사람을 살리는 길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서울은 꼭 지하철로를 통하지 않아도 알게 모르게 전부 길이 뚫려 있었다.
몇몇 호사가(好事家)들은 그걸 보고 인류를 개미에 비유하기도 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땅속에 도시를 지어놓고 칸을 지은 채 살고 있었으니.
“따라오세요.”
떠날 채비를 모두 갖춘 신예지가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방송 장비는 일단 모두 사내의 가방 속에 넣어뒀다. 그녀는 이 신기한 가방이 뭔지 궁금했지만, 알 도리가 없었다.
사내에게 물어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원래 모든 가방이 이렇게 사용하는 거 아니었냐고 되물었으니까.
“일단, 건대로 갈 거예요.”
사실 신예지의 개인 벙커는 ‘성수역’과 더 가깝다. 천천히 걸었을 경우, 약 1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런가?”
“네, 살 게 있거든요.”
하지만 무언갈 사려면 ‘건대입구역’으로 가는 게 더 편하다.
나름 2호선과 7호선이 맞물린 환승역이기에 상권이 더 발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뭘 사려고?”
“그쪽 가면이요.”
“가면?”
역 내에는 장터가 존재한다.
그곳에선 전문 상인뿐만 아니라, 개개인들 또한 돗자리 펴고 장사를 할 수 있다.
여유가 있는 자들에게 집 안에 있는 애물단지들을 처분하고 식량을 구하는 것이다.
신예지는 그곳에서 예전에 봐두었던 가면을 구할 생각이었다.
“네. 방송 같이 찍어도 좋다 했잖아요.”
그녀는 출발 전 사내에게 조심스레 허락을 구했었다.
사실, 아무리 콘텐츠가 궁하다지만 기억 잃은 사람을 방송에 출연시키는 것은 좀 꺼림칙했다.
결국은 사람들 앞에서 광대놀음 하는 짓이니까.
그런데도 방송욕심이 더 컸다.
요즘 마땅히 할만한 콘텐츠도 없었고, 사내를 담보로 더 활발한 야외방송도 하고 싶었다.
그녀는 양심과 욕심 사이에서 밤새 고민했다. 그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가면이다.
“그랬지.”
사내가 답했다.
예상외로 그는 쿨했다.
문어에게 안내만 해주면 뭐든 해도 좋다고 했다.
“근데, 그게 왜?”
“그래도 얼굴 나오면 좀 그렇잖아요.”
“뭐, 난 괜찮다.”
“아니요. 전 상관있어요.”
사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자, 신예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예상 못 했던 반응이었는지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그쪽 정체가 뭔지 그쪽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렇지.”
“악덕 집단에 쫓기다 기억을 잃으셨을 수도 있고, 원래 얼굴 팔리기를 좋아하지 않으셨던 분일 수도 있어요. 전자라면 그쪽이 위험해지겠고, 후자라면 그쪽과 제가 나중에 얼굴을 붉히겠죠. 혹시 기억을 찾으셨을 때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보단 확실하게 안전장치를 하고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음…… 초상권이 있기도 하구요.”
게다가 사내에게 말은 안 했지만, 그의 얼굴이 그대로 나올 시 저번에 올렸던 ‘인증샷’이 조작이라고 욕먹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그때 모습이 전형적인 ‘노숙자’의 모습이었다지만, 그래도 맨얼굴이 나왔었다.
지금 사내의 얼굴을 방송에 비춘다면 아무리 변했다 해도 눈썰미 좋은 사람들은 곧바로 알아챌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반응은 뻔했다.
괜히 이미지 관리하려고 헌터 하나 매수해 노숙자인 척 분장한 후, 조작했다고 매도하겠지.
분명 선동자 몇 명이 사진 비교분석부터 해서 말도 안 되는 추측성 댓글까지 써 올릴 것이다.
그런 걸 전문적으로 ‘물타기’라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시청자들은 그걸 보고 갑론을박 떠들어대겠지. 아마 대부분 그들에게 동조할 테고, 방송은 뒷전이 될 거다.
소름 끼치는 상황을 떠올린 그녀가 고개를 부르르-떨자, 사내가 답했다.
“맘대로 해라.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기억을 잃은 내가 뭘 알겠는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담담하게 말하는 그를 보고 신예지는 생각했다.
사실 그는 그냥 쿨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고…….
그냥 그녀가 보내는 선의에 맹목적인 믿음으로 답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
“여러분들 안녕! BJ 신예지 인사 올릴게!”
-신하!
-응? 웬일로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일 있나?
-잘됐네ㅋㅋ. 심심했는뎅.
신예지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방송을 시작하자, 알람을 받고 들어온 시청자들의 문의와 인사말이 빗발쳤다.
본래 같았으면 일하느라 시청하지 못했을 시간임에도 시청자들이 쑥쑥 오르기 시작했다.
“헤헤, 무슨 일이게. 빨리 맞춰봐요. 오빠들.”
-맞추긴 뭘 맞춰. 그냥 알려주셈.
-?? 지금 벌써 야외 아님? 오늘도 야외방송인가?
-저번 인증샷 공지 때, 분명 ‘대박’ 콘텐츠 들고 온다고 했다. 오빠 기대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약속은 지킬 테니까. 오늘은 진짜 기대해도 좋아.”
신예지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한껏 자극시켰다.
사내는 가면을 쓴 채로 그런 그녀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왜 가방을 안 메고 있지? 야외방송인데 그런 적 있었나?.
-혹시, 누가 들어주고 있는 거 아냐?
-오 예리한데? ㅋㅋ
-뭐, 그럼 누구랑 합방하는 거야?
-에이, 설마;;
“어? 어떻게 알았어? 맞아요!”
아무 정보 없이 오직 가방만으로 거기까지 유추해 내다니. 역시, 시청자들의 눈치는 대단했다.
“오늘은 특별한 게스트가 있어. 그분과 함께 이번 주 일주일 동안 야외 여행을 떠날 거야! 어때?”
신예지의 선언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불타올랐다.
-와, 대박 미쳤다. 일주일 풀로?
-근데 게스트면 누구 다른 BJ라도 섭외했나? 나름 실력 좋은데 인기 없는 놈들 많잖아.
-그러겠지. 실력 없이 풀로 야외방송하다가 골로간다.
[‘야외좋아’님이 30,000원 후원!]
[‘불빠따’님이 10,000원 후원!]
-어쨌든 우린 개꿀.
-ㅇㅈ. 후원받아라!
일자리가 부족한 지하사회에서 헌터 방송의 경쟁률은 나름 치열하다.
물론, 대부분의 D급 이하 헌터들이야 각 역의 보안요원이나 집단 용병으로 쉽게 취업할 수 있다지만, 사실상 그게 3D업종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애초에 이미 지상을 뺏긴 상황이다.
그러기에 지하를 지키면 될 뿐, 굳이 나가서 괴물들을 소탕할 필요가 없어졌다.
어차피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으니까.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역전에서 피난민 뒤치다꺼리나 하는 일로 바뀌어 있었다.
덩치가 있다 보니 놈들이 지하로 잘 내려오지 않는 것이다.
그에 따라 BJ가 최근 굉장히 매력 있는 직종으로 떠올랐다.
특히 나서길 좋아하고, 주도적인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그러나 헌터 BJ는 실력보단 재미다.
오직 재미!
그것만이 시청자들의 반응을 이끈다.
예를 들어, 신예지는 실력이 없지만 시청자에게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는 편한 입담과 뛰어난 외모, 그리고 다양한 콘텐츠 때문에 적지 않은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실력이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실력이 되어야 헌터 방송의 꽃인 ‘야외방송’이 더 자유로워지니까.
그래서 그녀의 팬들은 가끔 실력 좋은데 재미없는 BJ들을 탐색해 그녀와 엮으려 했었다.
서로 Win-Win 시키기 위해서.
-그나저나 게스트는 누굴까?
-BJ 엘리트 아냐? 걔가 예지 눈독 들이지 않음?
-그럴 수도. ㅋㅋ 실력은 걔가 비제이 탑이지. 이제 C급이란 말도 있을걸?
-ㅇㅇ 저번에 D급 사냥 성공한 거 결정체 섭취함.
-매니저 : 직접적인 타 비제이 언급 금지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이제 준비됐음을 직감했다.
채팅창에 불쾌한 닉네임이 잠깐 스쳐 지나간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자! 일단 게스트 소개를 해야겠죠?”
그와 동시에 사내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가 눈치를 채고 카메라 앞, 그녀의 옆으로 이동한다.
-웬 가면 맨?
-BJ 아님?
-ㅎㅇ
-처음 보는데……. 몸은 좋은 것 같고.
-어? 어디서 본 체형인데?
“인사해, 여러분! 반가운 손님이셔! 이분은 비제이는 아니고 일반 헌터신데, 그냥 방송 중 내 안전을 책임지실 분이라고 보면 돼. 실력은 확실하니 기대해도 좋아.”
-와, 예지 님 돈 좀 썼나 보네요.
-본격적 괴물 사냥방송 시작되나?
-사냥해서 얻은 결정체 추첨해서 나눔 해주시면 안 돼요?
-ㅋㅋ BJ가 미쳤냐. 그걸 나누게.
“으……. 아쉽게도 사냥 중 나오는 결정체는 내 것이 아니야. 미안해.”
-하긴, 결정체는 괴물 잡는 사람 거지.
-ㅇㅈㅇㅈ
-그래서 여행은 어디로?
“약, 일주일간 우리 목적지는 ‘인천’이야! 거기서 문어 먹고 오기!”
-엥? 거의 6~70㎞ 되는 거리를 걸어간다고?
-잠은 어디서 잠?
-미친, 개빡셈;;
“너무 걱정하지들 마. 다 생각 있으니까. 자, 그럼 떠나볼까?”
그렇게 출발하려 할 때였다.
띠링-
[‘BJ엘리트’님이 입장하셨습니다.]
[‘BJ엘리트’님이 ‘100,000원 후원!]
-오, 10만 원.
-ㄷㄷ 그가 왔다. 탐방인가?
-엘하!
-엘리트업!
방송 음과 함께 채팅창에 불쾌한 누군가가 후원을 남겼다.
‘아씨, 또 왔어. 저 사람.’
신예지가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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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웹소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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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BJ 엘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