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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107화 (107/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107화

28. 기억의 행방(2)

“의사도 안 통하면서 주제도 모르고 덤비는 놈들만 처리한 거다. 쓸모 있을 거 같아 모아두긴 했는데, 좋아하는 거 보니 다행이군.”

“무, 무슨.”

대략 100여 개 정도 되어 보이는 결정체 더미.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정신없이 그것들을 세기 시작했다.

“히엑-? 이건 딱 봐도 B급인데?”

정확한 감정은 어려웠지만 어림잡아봤을 때 그렇단 것이다.

신예지는 빠른 손놀림으로 보석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대충 색의 명도에 따라 나누니 금방이었다.

“와…… 총 120개나……. B급 하나, 그리고 나머지는 다 E급 아니면 F급이네요?”

“그게 뭔지 모른다.”

“어, 어쨌든, 이걸 저 주신다고요?”

그녀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금액이었다. 아무리 요즘 F급 결정체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해도 적어도 1억 이상이다.

그렇다면 최소 120억.

게다가 E급과 B급도 섞여 있으니 사실상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인 것이다.

로또 당첨금 따위와 비교할 수 없는 가치였다.

“주겠다. 단, 네가 내 기억을 찾는 것을 성실히 돕겠다고 약속한다면. 이 정도 얻는 건 일도 아니니.”

“…….”

“부족한가? 원한다면 더 줄 수도 있다.”

“아, 아니에요!”

그녀는 순간, 눈앞의 사내가 두려워졌다.

그는 분명히 이 결정체의 가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괜히 기억 찾는 걸 도와줬다가, 눈탱이 맞은 걸 알게 된다면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도 모르는 일.

게다가 저 가방도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이지 않는가.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무서운 집단에 소속된 자일수도 있다. 결국, 그녀는 큰마음을 먹었다.

“됐어요. 아저씨 걸 제가 왜 가져요. 그냥. 여기서 지내는 비용만 가져다 쓸게요. 넣어두세요.”

“그 말의 뜻은 날 도울 수 없다는 말인가?”

“아뇨. 그건 별개에요.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아저씨가 제 통제에 잘 따라주기만 한다면 성심껏 도와드릴게요.”

“……그런가? 그렇다니 별수 없군.”

사내는 칼 같았다.

한 번 더 권유하지도 않고 곧바로 쭈그려 앉아 보석을 담는 그를 보며 신예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과연 이게 잘한 선택일까? 눈앞에 B급 결정체 하나만 먹어도 완전히 신분 상승인데.

“후우, 일단 빨리 씻으세요. 자리 정리해놓을 테니.”

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괜한 욕심을 큰 화를 부른다. 지금 방송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만큼의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그러지. 어쨌든…… 고맙다.”

“네……. 네? 뭐가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선의로 대해줘서. 이런 건……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야.”

정리한 가방을 내려놓고 세면도구를 들은 사내가 쑥스러운 듯 한마디 툭 던진 후,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 모습에 어색하게 웃은 신예지는 곧바로 방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책상에 늘어져 있는 컵라면과 통조림, 그리고 탄산음료들을 쓸어 담아 한쪽 구석에 숨겨두었고 작은 침대에 이부자리를 폈다.

‘……이불은 새로 사야겠네.’

씻으라고는 했지만 사실 큰 기대는 안 했다. 사내의 찌든 때는 한순간에 벗겨져 나갈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C급 결정체에서 충당하지 뭐. 아주 비싼 걸로다가.’

어차피 준다는 결정체도 거절한 마당에 생활비 조금 썼다고 해코지하지는 않으리라.

한바탕 정리를 끝낸 그녀는 냉장고에 모셔둔 과일을 꺼냈다. 비싸서 아껴먹던 거지만 이젠 그럴 필요 없어졌으니까.

그녀는 사과와 배를 깎으며 사내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게 기대와 달리 제대로 씻고 있는 것 같았다.

‘흐음…… 문어라…….’

신예지는 고민했다.

내일부터 사내가 원하는 문어를 구해볼 생각이었다.

사실, 구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농사와 다르게, 어업은 그래도 나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을 꺼리는 불의 종족의 특성답게 바다에는 놈들이 얼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각종 바닷가에서 잡힌 어종들은 지하철을 통해 빠르게 유통되며, 각 환승역에는 시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정말 불티나게 잘 팔린다. 인공 밭에서 자라는 곡물이나 과일의 가격대에 비하면 무척 저렴했기 때문이다.

‘바닷가를 가야 하나, 수산시장을 가야 하나……. 아니면 식당?’

사실 고민이었다.

문어를 보고 싶다는 건지, 먹고 싶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 그건 차후 물어보기로 하고.’

문제는 방송이다.

내일부터 새로운 콘텐츠를 시작해야 한다. 그녀의 시간을 오로지 저 노숙자에게 쓸 수는 없으니까.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

뭐로 해야 하지?

문어 먹방? 바닷가 나들이? 아니면 인천 앞바다까지 육지로 이동하기? 오, 그거 괜찮은데?

지상 철로를 이용하는 기차나 일부 지하철 노선은 이미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서울에 유통되는 모든 어류는 인천이나 오이도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

다른 바다는 교통수단이 활발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수급이 힘들다.

사람들은 각 역을 이동할 때 지하철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화물열차들이 많아 시간대가 자주 있지는 않고, 가격대가 비싸긴 했지만, 육지에 나갈 수 없으니 별수 없었다.

‘역시, 시청자들에겐 그냥 육지에 오래 있는 콘텐츠가 최고야.’

그간의 야외방송은 태연한 척했지만, 항상 가슴이 쫄렸었다.

하지만 저 사내가 옆에 있다면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그가 만약 S급 헌터라도 된다면 ‘싸이클롭스 베어’가 나타나도 문제없을 테니까.

덜컹-

그렇게 잡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

샤워실 문이 벌컥 열렸다.

사내의 세신이 끝난 것이다.

“다 씻으셨어요?”

신예지의 질문에 남자가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히엑? 누…… 누구세요?”

면도로 인한 깔끔한 턱선.

짧고 터프하게 잘린 헤어.

터질 것 같은 근육과 매끈한 바디라인.

분명 지저분한 노숙자 아저씨가 들어갔었는데, 방송에서나 볼법한 미남이 나왔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씻으래서 씻었더니.”

“……그쪽이 아까…… 그, 그 아저씨?”

충격적이었다.

영화 ‘식스센스’를 봤을 때 느꼈던 쇼크보다 더 큰 반전이었다.

게다가 그의 훤칠하고 사내다운 모습은 확실히 그녀의 이상형과 가까웠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임에도 말이다.

아니, 아무래도 오늘부터 이상형이 저 사내로 바뀌어 버린 것 같았다.

벌써 세 번째다.

처음 늑대를 처리해줬을 때.

가방에서 결정체를 쏟아냈을 때.

그리고 이런 핸섬한 모습까지.

그녀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반전 매력에 그녀는 완전히 빠져버렸다.

‘뭐…… 야. 정말.’

신예지의 얼굴이 급격하게 붉어졌다.

웃기게도 지금껏 느꼈던 불쾌감이 너무도 쉽게 증발해버렸다.

순간, 몸에 수건을 두르고 있는 사내가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녀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얼굴에 피가 쏠리고 열이 가득 차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자…… 잠깐만요. 왜.”

“여기.”

사내가 신예지의 손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피나는데. 도대체 왜 그러고 있는 건가?”

“그…… 그게 무슨?”

그녀는 신속히 손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꺄악!”

철철 흐르는 피.

정신없이 사내를 쳐다보느라 과일이 아닌 본인의 손가락을 깎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아무리 각성자라지만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팔고 있었다니…….

“쯧.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군. 줘봐라.”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은 이미 벌겋게 물들어 있었고 상처가 깊게 나 있었다.

“미, 미쳤나 봐. 이걸 왜.”

“고쳐주지.”

사내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녀는 손을 슬쩍 내밀었다.

이걸 치료해 주겠다고? 상처를 치유하려면 물의 능력을 각성해야 한다.

그것도 고등급으로.

아무리 봐도 사내는 물의 능력과 관련 없어 보였다.

게다가 아까 물에 닿는 것도 꺼림칙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도 기대했다.

이 신비로운 남자는 항상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줬으니까.

“리스토어.”

사내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쓸며 조용히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신비한 변화가 시작됐다.

마치 시간이라도 돌리듯 흘렀던 피들이 다시 상처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갈라졌던 부분이 봉합되기 시작했다.

1분이 지나자, 그야말로 ‘완벽하게’ 치유됐다. 조금의 흉터 하나 남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그녀가 알기로, 이 정도 치유능력을 가진 능력자는 선소연뿐이다.

물의 능력을 각성한 A급 헌터가 와도 흉터는 남는다고 들었으니까.

“뭐가 말이 안 되는가.”

“……이건 물의 능력자만이 가능한……. 그것도 적어도 S급 이상의…….”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할 줄 아는 거다. 숨 쉬는 것처럼 편하게.”

신예지는 넋이 나간 상태로 깔끔해진 본인의 손을 쳐다봤다. 도대체 이 사내의 정체는 뭘까? 추측할 수조차 없었다.

놈들에게 당해 죽었다던 강 현?

그는 절대 아니다.

괴물들을 맨손으로 때려잡았다던 그 모습은 지금 이 사내와 비슷할 수도 있으나, 그는 불의 능력이라 했다.

게다가 치유능력은 전혀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얼굴은 모르지만 적잖은 시간 동안 강 현의 팬이었던 그녀는 확실히 알았다.

“어, 어쨌든. 고마워요.”

“고맙긴. 그럼 문어는…….”

“문어는! 내일 찾을 거예요. 여기 있는 과일 드시고, 어……. 잠은 저 침대에서 주무시면 돼요!”

“아……. 그렇군. 고맙다.”

신예지는 이불을 바꾸겠단 계획을 철회했다. 그리고, 잠깐 집에도 가지 말까 생각했으나, 곧이어 고개를 저었다.

그래. 오바하지 말고 빨리 정신 차려야지.

***

다음 날 아침.

그녀는 빠르게 작업실로 출근했다.

밤새 설레어 잠도 잘 오지 않았다.

이상형인 사내와의 만남이 설렌 것도 분명 있지만, 주 원인은 오늘 있을 방송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문어 요리를 먹고 싶은 건 아니라고요?”

“그렇다. 그건 지금이라도 구할 수 있어.”

“네? 어떻게요?”

“그런 게 있다. 어쨌든 요리는 확실히 아니다. 나는 그저 그를 만나고 싶을 뿐이다.”

“문어를 만난다고요? 어감이 좀 이상한데……. 죽은 거 말고 산 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느낌이 그런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콘텐츠를 정했다.

직접 육지를 통해 인천 앞바다까지 가는 거로. 아마, 이번 출정은 지금껏 없었던 장기여행이 될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양해를 구해 촬영 동의를 얻어냈다.

사내는 흔쾌히 수락했다.

심지어 기억만 찾아준다면 뭐든 해도 좋다고 강조했다.

신예지는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커다란 삼각대를 챙기고, 접착식 LED 조명을 다리에 끼워 넣었다.

또 휴대용 무선 마이크 두 개를 책상 위에 올려둔 후, 밤새 충전해둔 이동식 충전기를 스마트폰 거치대에 달았다.

확실히 그녀의 손놀림은 빨랐다.

“흐음……. 세팅은 끝났고. 또, 뭘 챙겨야 하지? 화장 세트랑 헤어 세트는 챙겼고, 생활용품들도 가방에 넣어놨으니 됐고. 아, 밥!”

곧이어 그녀는 식량창고에 쌓아둔 컵라면과 통조림을 준비된 배낭에 욱여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슬쩍 바라보는 사내.

“오자마자 바빠 보이는군. 아침은 먹었나?”

“헉헉, 아니요. 준비 끝나면 먹으려구요. 그쪽은요?”

“이제 먹으려고. 혹시, 좋아하는 음식 있나?”

“네……? 그건 왜요?”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마치 엄청나게 괴롭다는 표정이었다.

“가방 안에 음식이 너무 많아. 선택 장애 걸릴 것 같군.”

“……음식이요?”

아마, 초코바나 통조림 같은 식량 거리겠지. 사내도 나름 오랫동안 육지 생활을 한 터, 비상식량이 있었을 것이다.

근데, 그 가방에 음식도 있다고?

그러고 보니 그때 결정체도 분명 빈 가방이었는데……. 도대체 용량이 어떻게 되는 거야?

“음……. 뭐, 뭐 있는데요? 선택지를 주세요.”

“잘 모르겠는데……. 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음식이 다 있다고 보면 될 거다.”

“무…… 슨 말도 안 돼요. 농담도 참.”

“진짜다.”

농담이라기엔 사내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신예지는 한숨을 한번 쉰 후, 그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어차피 미친 사람이란 건 어제부터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잘 지내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그럼 육회 한번 줘보세요. 요즘 해산물 위주로 먹었더니 육고기가 먹고 싶네요.”

“육회라……. 잠시만 기다려봐라.”

그는 싱긋 웃으며 가방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음……. 이걸 말하는 건가?”

그리고 그의 손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놀랍게도 진짜 육회였다. 그것도 계란 하나까지 방금 터뜨린 것처럼 생생해 보이는…….

“마……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럴 수가!”

“말하지 않았나. 다 있다고.”

어제 이후로 다시는 놀라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아침 만에 무너져 내렸다.

놀란 심장이 가라앉지 않았다. 혹시나 해 슬쩍 손으로 집어 먹어봤는데 진짜 육회였다. 그것도 최상급 한우로 만들어진…….

“그…… 그럼! 그 세계적인 라스베이거스 요리 ‘조엘 호뷔숑’도 있나요?”

그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금 무리한 주문을 해봤다. 그녀가 알기로 ‘조엘 호뷔숑’은 절대 나올 수 없는 요리다.

세계적인 프랑스 스타 쉐프인 그가 25명의 미슐랭 스타를 모아 만든 최고급 레스토랑에서만 맛볼 수 있는 고급 요리였으니까.

지금은 당연히 문 닫은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요리다.

“그게 뭔지 모르겠군. 혹시 이미지가 있나?”

“자, 잠시만요.”

그녀는 재빨리 스마트폰을 뒤적여 이미지를 찾았다.

“여, 여기요.”

“좋다. 잠시만 기다려봐라.”

“무슨……. 에이…… 설마.”

그가 다시 가방 안에 손을 직접 넣었고, 그녀는 곧이어 벌어진 말도 안 되는 마법에 기절할 듯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보여줬던 이미지와 똑같은 음식이 모락모락 김까지 풍겨가며 가방 안에서 나온 것이다.

“……이건 진짜 하……. 말도 안 나와.”

결국, 그녀는 챙겼던 통조림과 컵라면을 다시 진열장에 배치했다.

당분간 음식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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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웹소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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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기억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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