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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106화 (106/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106화

28. 기억의 행방(1)

[왔는가. 세이렌.]

「아베르노」 꼭대기.

가히 세상을 뒤덮을 만한 기세를 가진 존재, 테르미노의 낮은 음성이 나직이 울렸다.

[테르미노.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견딜 만 하신가요?]

[아직까진 괜찮다.]

[봉인은 얼마쯤 남은 건가요?]

[이제 약 100년밖에 남지 않았다.]

수천 년 동안 은하계를 점령하고, 에너지가 깃든 행성을 찾아 테르미노를 봉인하는 데 사용해 왔던 총사령관.

믿을 수 없게도 우주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었고, 이제 그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딱, 100년.

100년만 버티면 더 이상 그를 옭아맬 에너지가 세상에 남지 않는 것이다.

[아니죠. 100년이나 남은 거예요.]

세이렌이 반박하자 테르미노가 코웃음 쳤다.

[웃기는군. 억겁의 세월을 존재해왔던 자가 겨우 100년을 못 기다리는가?]

[그 말이 아니잖아요. 아직 남아 있는 변수가 있어요.]

[지구 말인가? 걱정하지 마라. 그 힘은 다루고 싶다고 다룰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레비아탄의 배신도, 당신이 불의 종족에게 봉인 당한 것도, 전부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였잖아요. 그리고…….]

세이렌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물의 종족은 이미 그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았답니다. 불의 종족들이 환장하면서 제 힘을 가진 아이를 치려는데는 이유가 있지요.]

[……그 힘을 말인가?]

[네. ‘크라켄’이 지키고 있는 마리아나 해구 끝자락에 핵으로 향하는 통로를 만들어 놨어요. 입구를 튼튼하게 봉인시켜놓긴 했는데, 놈들이 만약 제 힘을 얻은 채로 그곳에 간다면…….]

세이렌이 말끝을 흐리자 테르미노의 낯이 이지러졌다.

[네 힘이 그곳을 여는 열쇠겠군.]

[네……. 맞아요. 제 힘에 반응하게끔 만들어 놨다는 것이 문제예요.]

우드드드-

순간, 꼭대기 층의 공간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결국, 너희들의 손으로 이 모든 걸…….]

종말의 신, 테르미노가 분노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세이렌이 다급히 외쳤다.

[어쩔 수 없었어요! 대전쟁 당시, 시너지도 없는 상태에서 지구의 핵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놈들에게 당했을 거예요! 만약 그랬다면 놈들에게 핵을 뺏긴 채 당신도 영원히 이곳에 봉인되어 있었겠죠!]

[크으……. 그래서 놈들이 그 인간 여자 하나를 잡기 위해 그 총력을 다하는 거로군.]

호리병 꼭대기는 우주 내 모든 행성을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의 역할도 한다.

강원도 북부.

현 지구 내에서 가장 시끄럽고 치열한 곳. 그들은 커다란 화면을 통해 그곳의 상황을 전달받고 있었다.

고지 일대 커다랗게 세워진 철벽.

그곳을 향해 수없이 몰려오는 레프, 레다.

그리고 그에 맞서 맹렬하게 싸우는 KH 단원들.

그 외에도 의료를 담당하는 헌터, 결정체를 수거하는 헌터, 상황을 중계하는 기자 등등…… 많은 인력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진짜는 따로 있었다.

불의 종족 총사령관과 어마어마하게 큰 군단장 넷. 그 막강한 존재를 고작 인간 여자와 그 옆에 있는 작은 문어 한 마리가 봉인해내고 있었다.

SS급 헌터 선소연.

아무리 물의 왕의 힘을 가지고 있다지만, 지금껏 3차 탈피까지밖에 하지 못한 그녀가 저 막대한 병력을 막아내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본래의 그녀라면 총사령관 혼자 나서도 정리될 수준이었으니까.

그러나 약 5개월 전, 위기를 느낀 ‘크라켄’의 제안 덕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문어는 선소연의 힘을 이용했다. 목걸이를 통해 그녀의 힘을 전달받았고 봉인시켜놓은 지구의 핵에너지를 이용했다.

하지만 한낱 생물의 육체로 그 막대한 에너지를 전부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

간신히 일부 에너지를 끌어내 불의 종족 간부들을 봉인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저것도 길어봐야 1년이에요. 계속 힘을 저렇게 가져다 쓰게 되면 크라켄도, 힘의 통로인 그녀도…….]

[붕괴되겠지……. 저 에너지는 나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힘이니.]

[맞아요. 그러니까 100년이 턱없이 긴 시간이란 거예요.]

요동치던 공간이 점차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와 대화하던 세이렌이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정한다. 그렇다면 그때는 왜 그랬던 것이냐. 세이렌.]

[강 현 말씀이신가요?]

[그렇다. 왜 굳이 ‘대가’를 논해가며 그의 기억을 봉인하라 한 것이냐.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이유까지 붙여가면서……. 나야 100년만 버티면 되는 줄 알고 네 제안을 받아들였다지만 이상하구나. 네 말대로라면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 않느냐?]

놀랍게도 그의 기억을 봉인한 것은 세이렌의 요청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었어요.]

[……어쩔 수 없었다?]

[네. 총사령관, 그녀도 수천만 년 동안 능력을 발전시켜온 상태에요. 강 현이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지금 상태로는 현재의 그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거와 ‘기억’이 무슨 상관이지?]

[우리 종족이 ‘종족의 순례길’에서 마지막 탈피를 위해 하던 수련방법이 있어요.]

[수련이라…….]

[강 현은 홀로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찾았을 때 비로소 왕의 힘을 완벽하게 다스릴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완전한 탈피 조건이에요.]

마지막 5차 탈피.

불의 종족으로서의 완전한 각성.

놈들을 이기려면 놈들의 왕이 되는 수밖에 없다. 세이렌은 그것에 모든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그렇군. 그렇다면 문어를 찾으라는 건 무슨 말인가.]

[아, ‘기억의 목걸이’에 물의 종족만이 알 수 있는 표식을 남겨뒀어요. 강 현이 기억을 되찾기만을 태평하게 기다리기엔 상황이 많이 급박하잖아요. ‘크라켄’은 그 목걸이를 보는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강 현을 도울 겁니다.]

[만약, 그가 ‘크라켄’에게 닿지 못한다면 어찌하느냐.]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지만, 그는 강해요. 뾰족한 송곳은 가만히 있어도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법. 분명히 그는 KH로 향하게 될 겁니다.]

***

신예지와 사내는 다시 건대입구역으로 복귀했다. 그녀는 일단 사내를 데리고 본인의 개인벙커로 갈 생각이었다.

개인벙커의 가격은 비싸다.

‘종말의 날’ 이전에는 나름 적정수준의 가격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열 배는 뛰었을 거다.

원래 그녀는 가족들이 구해놓은 개인벙커에 끼어 살며 근근이 방송을 이어갔었다.

그러다 우연히 잡은 F급 붉은 박쥐.

그 결정체를 이용해 조그마한 개인벙커 하나를 장만할 수 있었다.

방송영상 편집실로 사용하기 위해 구매한 공간이었지만 샤워시설과 수면시설은 전부 갖춰진 알짜배기 원룸이었다.

“자, 여기 역 들어가시는 모습 한 장만 찍을게요.”

일단, 간간한 밥벌이는 해야 하니 방송은 계속할 생각이었다.

재밌기도 했고, 무엇보다 방송을 하지 않으면 할 게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청자와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분명 목 빠지게 소식을 기다리는 팬들이 있을 터이니. 그녀는 재빠르게 사진 한 장을 찍고 게시판에 업로드했다.

[BJ 신예지 무사 복귀했어요. 여기는 인증샷!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부터 대박 콘텐츠 진행할 예정이니 많은 기대 해주세요! 시청자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그녀가 올리자마자 팬들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터져 나왔다.

-? 방송 오늘은 안 함?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그래서 어떤 콘텐츠임?

-역시 예지 님, 얼굴도 예쁜 것처럼 마음도 착하시네요.

-그녀는 방송인 이전에 헌터였다. 앞으로도 승승장구하길.

방송을 킨 것이 아닌, 공지글만 올렸을 뿐인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반응해준다는 것은, 그만큼 할 게 없는 사람들이 지천에 널렸다는 것이리라.

물론 언제나처럼 좋은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응. 주작 방송. 니들 생각 없지? 이 시대에 바깥세상에 노숙자가 있다고? 말이 되는 컨셉이냐?

-ㅇㅈ. 일주일만 살아도 일반인은 그냥 뒤지는 거야. 근데 남자 꼴을 봐라. 적어도 반년은 노숙한 것 같은데.

-인간적으로 주작티 너무 많이 남 ㅜㅜ. 재미 개반감.

-주작충 나가 뒈져라. 어딜 시청자를 속이려고.

간혹가다 도 넘은 악플과 인신공격도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싱글벙글했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따끈따끈한 C급 결정체 20개 때문이었다.

결국, 늑대는 전부 처리했다.

그녀가 한 마리, 한 마리 직접 마무리했고, 떨어지는 결정체를 수거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내는 그 비싼 결정체를 그녀의 가방에 넣고 있는데도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순간, 욕심이 흘렀지만 절대 혼자 독식할 생각은 아니었다. 이럴 때일수록 시야를 넓게 가져야 한다.

사내는 강했다.

최소 A급, 잘하면 S급일 수도 있다.

그 정도 급 헌터의 가치는 고작 C급 결정체 20개와 견줄 수 없다.

만약, 그 결정체를 가지려면 적법한 계약과 약속으로 이루어져야지 무턱대고 속일 수는 없었다.

혹여나, 그가 기억이라도 찾는 날에 보복의 대상이 될 수도 있으니까.

어느새 그녀와 사내는 벙커에 도착했다.

“일단, 들어가기 전에 바로 씻으세요. 샤워실은 저기에요.”

아무리 강하다지만 저 냄새 나는 사내를 곧장 방 안에 들여보낼 순 없었다.

일단 그를 이곳에서 재우고, 그녀는 가족들이 있는 벙커로 갈 생각이었다.

남녀가 유별한데 함께 지낼 수는 없으니까.

“물에 닿는 거 꺼림칙한데…….”

“스읍-말 잘 듣기로 했잖아요. 씻지 않으면 문어도 없어요.”

“……알겠다.”

그녀는 그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협박법을 찾았다.

“그리고 여기 세면 백에 가위랑 면도기도 있으니 그 몰골 좀 어떻게 해봐요. 같이 다니기 무서우니까.”

“……면도라.”

“수도세 팍팍 쓰셔도 상관없어요. 이제부터 사용하는 생활비는 다 요기 결정체에서 나갈 거예요.”

일단, C급 결정체 1개를 간단하게 현금화할 생각이었다.

사내와 함께하면서 사용할 생활비가 필요했으니까.

또, 돈만 있으면 물은 얼마든지 가져다 써도 된다.

물 부족 국가?

요즘 시대에 사라진 말 중에 하나다.

D급 이하 소집되지 않는 헌터들 중에도 물의 능력을 가진 자들이 있다.

그들이 정수된 물을 계속 보급하고 있는 한, 절대 물이 부족할 일은 없을 거다.

“그 돌멩이를 참 소중히 여기는군.”

신예지가 손바닥으로 결정체를 모시듯 떠받치고 있자, 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비싸거든요. 이거.”

그뿐이랴. 먹으면 더 강해질 수 있다.

솔직히 지금도 하나 먹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중이다.

“그거 많은데. 가지고 싶나? 난 딱히 필요 없거든.”

“……?”

순간, 신예지의 심장이 쿵쿵대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뭐…… 뭐라고요?”

“잠깐 있어봐라.”

사내가 매고 있던 가방을 풀기 시작했다.

그래. 저 가방.

그녀는 그 잠깐의 만남 동안 궁금했었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것 같은 빈 백 팩을 왜 자꾸 들고 다니는지.

“뭐, 뭐 하시는 거예요?”

가방을 다 푼 사내는 본인의 얼굴을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마치 자기가 미쳤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용물을 확인한 그는 다시 얼굴을 꺼내더니 만족한 듯 미소를 짓는다.

“음……. 아직 음식들은 많이 남아 있군. 그 돌멩이들도 많아. 조금만 꺼내볼까?”

“……네?”

그리고 곧바로 가방을 뒤집었다.

빈 가방으로 뭐하는 짓인가 생각할 찰나-

우드드드-

그녀의 벙커 앞 바닥에 수많은 결정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옅은 것부터 딱 봐도 진해 보이는 것들까지.

믿을 수 없었다.

빈 가방에서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수량의 결정체가 떨어지다니,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 같았다.

대략 눈대중으로만 봐도, 이 정도 결정체면 개인벙커 수만 개를 살 수도 있을 거다.

그럼 여태껏 바깥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놈들을 죽여왔단 건가?

신예지는 입을 떡-벌린 채, 나오지 않는 말을 간신히 꺼냈다.

“다, 당신. 도대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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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라: 웹소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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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기억의 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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