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105화
27. 헌터의 생존방송(4)
곳곳에서 하울링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알기로 붉은 늑대의 움직임은 기민하고 조용하다.
그들이 울부짖을 때는 이유가 있다.
경계의 대상이 있을 때 혹은 사냥감을 발견했을 때, 소리를 내어 주변에 있는 동료들을 끌어모은다.
“빨리 피해야 해.”
신예지는 다급하게 움직였다.
이 조용한 동네에 놈들의 사냥감이 될만한 존재라 하면, 그녀와 사내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저 사내는 어떡해야 하지? 이대로 두고 가면 분명 죽을 텐데.
분명 미치기 전 헌터였다 하더라도 고등급일 리는 없었다. 많아 봐야 D급 정도겠지.
C급 이상은 ‘종말의 날’ 이후 전부 비상소집되었고, 혹여 죽거나 다친 자들은 국가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거로 알고 있다.
그녀는 잠깐 멈춰 뒤를 돌아다 봤다.
사내는 아직도 쓰레기 더미에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한층 여유로워 보이는 게 누가 보면 S급 헌터라도 되는 줄 알겠다.
짜증이 터져 나왔다.
이성은 저런 노숙자 같은 거 무시하고 서둘러 도망가라고 말하는데, 자꾸 본능적으로 몸이 멈칫거린다.
솔직히 신경 쓰였다.
분명 저 미친 사내도 누군가에게는 사랑받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지구를 침공한 외계종족들만 아니었으면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겠지.
“아오. 미치겠네.”
결국, 신예지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사내가 있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그녀도 알았다.
저런 사내를 목숨 걸고 구하기엔 이유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하지만 가끔은 그럴 때가 있다.
이성은 하지 말라고 하는데, 몸이 저절로 움직일 때 말이다.
그게 하필 오늘이라는 게 서글펐지만, 별수 없었다. 그저 마음을 모질게 먹지 못하는 자신을 스스로 다그치는 것밖에는.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후회했다. 남자가 이상한 고집을 부리며 뻐팅겼기 때문이다.
“빨리 가야 한다니까요. 여긴 위험하다구요!”
“……안 간다니까.”
“도대체 왜요?”
“말하지 않았나. 문어를 찾아야 한다고.”
“그렇다고 여기 앉아 있으면 문어가 나와요? 일단 살아야 문어도 맛보고 하는 거지.”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곳보다는 낫다.”
“그곳이요?”
“아까 역까지 데려다준다고 하지 않았나. ‘건대입구역’을 말하는 것 아닌가?”
“아, 가본 적 있으셨구나.”
“그래.”
사내가 쓸쓸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노숙자 주제에 분위기 잡는 것 하나는 일품이었다.
“……그곳에서도 문어를 찾았었지. 처음엔 몇몇 사람들이 선의를 가지고 도와줬어. 당신처럼 말이야.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 불편해하기 시작하더군. 나중엔 대놓고 미친 사람 취급했지.”
“그거야 진짜 댁이 미쳤으니까……!”
신예지는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을 급히 삼켰다. 그렇지만 실수했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사실이지 않은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현 시국에 야외에서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앉아 있지 않는다.
게다가 개인 벙커가 없는 대피자들은 역 내에서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한다.
각자 맡은 업무를 처리하며 함께 생존해야 하는데, 분명히 이 사내는 씻지도 않고 문어만 찾겠다며 고집을 부렸을 거다.
도움도 여유가 있을 때 나오는 거지, 다들 힘든 상황에서 남자의 괴상한 행동은 사람들을 더욱 지치게 했을 것이다.
“……정말 미친 걸까? 그저 머릿속이 꽉 막혀 있는 것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 것뿐인데.”
“에휴-미안하네요.”
신예지는 한숨을 쉬며 성의 없이 사과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곳까지 다시 달려왔는데, 가지 않겠다니……. 힘이 약하면 강제로라도 끌고 갈 텐데 그럴 수도 없으니 답답했다.
그녀의 생각은 오로지 붉은 늑대들로 가득 찼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보니 이젠 정말 늦었다. 이미 포위가 끝난 상태에서 좁혀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사내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한 번 털더니 천천히 일어났다.
“괜찮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이제 타인의 반응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
그녀는 말을 전부 끝내지 못했다.
골목 사이사이로 슬렁슬렁 들어오는 붉은 늑대들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크르륵.”
“쿠륵.”
당장 보이는 것은 전방에 3마리, 그리고 후방에 2마리다. 그리고 소리를 들어보니 적어도 10마리는 더 있다.
신예지는 눈 앞에 펼쳐진 암담한 상황에 절망했다.
세상에, 이 정도 규모의 무리라니.
이 정도면 A급 헌터가 온다 해도 간당간당할 것이다.
“흠…… 당신이 급했던 이유가 저들 때문인가?”
굶주린 늑대들의 저릿저릿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런데도 사내는 태연했다.
그래서 묘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자신이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맞아요. 이제 다 끝났어요. 아저씨 고집 때문에 비참하게 죽을 일만 남았네요.”
신예지의 뇌리에 죽음이라는 두 글자가 스쳐 지나갔다. 말은 그렇게 했다지만, 딱히 사내가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누군가 멍청하다 욕해도 할 말 없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짧은 순간 저 사내를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은 그녀가 져야 한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맑고 청명한 날이다.
어차피 매일 목숨 연명하기도 지치는 세상. 조금 빨리 뜬다 해서 달라질 건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아씨-이거 죽기 딱 좋은 날이네. 이럴 줄 알았으면 방송이나 끄지 말걸. 이것만큼 대박 콘텐츠가 없는데.”
“죽긴 왜 죽나. 저런 거에.”
그녀의 말에 사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전방에 있는 늑대들을 향하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깍지를 끼우고 손가락 관절을 푸는 게 싸울 생각인 것 같았다.
“어쩌시려고요.”
“저기…… 난 말이야.”
“네?”
“기억은 안 나는데……. 저것들이 이상하게 친숙하면서도 증오스럽더라고.”
신예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증오스러운 것은 이해가 간다.
이 세상에 저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친숙하다고?
“크르르륵-”
“쿠륵.”
조금 이상했지만,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포위한 채 경계하던 늑대들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사내는 그런 놈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번에 한 놈을 잡아다 죽기 직전까지 만들어 놓은 다음, 문어를 찾아오라고 보내줬거든. 그런데 문어가 아니라 저렇게 동료들을 데리고 왔네?”
“네?”
신예지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노숙자가 C급 괴물인 붉은 늑대를 이겼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잡은 걸 다시 풀어줬다고?
그것도 고작 문어를 찾으라고? 아니, 애초에 늑대가 문어를 어떻게 알아. 서로 사는 곳이 다른데.
그리고, 사내는 마치 저들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듯이 말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군단장급 괴물 이상이 아니면 인간과 소통할 수 없다.
“허어, 저 자식들 봐라? 문어 같은 게 뭔진 모르고 두목 데려왔으니 우리보고 다 죽었다는데?”
역시, 저 남자는 미친놈이 틀림없었다. 그래. 세상이 미쳤는데 사람이 미치지 않을 리가 없다.
사실 그녀도 살짝 미친 것 같았다.
왠지는 모르지만, 저 남자의 말이 진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쟤들이랑 대화가 돼요?”
“응. 다 되는 거 아니었어? 아까 당신이 잡은 지능 낮은 놈들은 말이 안 통해서 답답했는데, 쟤들은 제법 의사 표현을 하더라고. 자, 지금도 말하네. 들어봐. 응? 먹을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고 좋아하는데?”
신예지는 늑대를 바라봤다.
그러나 그냥 크르릉 거리며 침을 흘리고 있는 늑대가 보일 뿐이었다.
“저렇게 주제도 모르는 놈들에겐 매가 약이지.”
그렇게 남자가 앞으로 나섬과 동시에, 늑대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꺄악!”
그녀는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죽음에 초연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달려오는 놈들을 보니 오금이 저려왔다.
무서웠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제 곧 날카로운 발톱이 살갗을 파고들 것이다. 많이 아프겠지.
그다음 흐르는 피와 살, 장기를 놈들이 정신없이 파먹을 것이고, 의식을 잃을 때까지 온몸의 신경세포들이 비명을 지를 것이다.
“으…… 싫어.”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감각이 없다.
아니, 소리가 들렸다.
마치 복날 개 잡는 소리처럼 깨갱 되는 소리와 퍽퍽 거리는 소리.
신예지는 슬며시 눈을 떴다.
“……뭐, 뭐야.”
그리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봤다.
육안으로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사내는 이곳저곳을 누비며 늑대들을 손바닥으로 패고 있었고, 놈들은 도망가기 바빴다.
그러나 도망갈 수도 없었다.
홍길동이 살아 돌아온 듯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도망가는 놈들의 꼬리를 잡아다 다시 가운데 내던졌으니까.
놈들을 패는 동작은 절도 있었다.
수만 번은 사냥해 본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마치 끊임없는 한 호흡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순간, 아쉬웠다.
이 모습을 그녀의 눈에만 담는다는 것이. 이미 조금 전 느꼈던 공포는 싹 사라졌다.
오히려 희열감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정말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었는데 살아난 것이다.
“……대단해.”
정말 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벌써 열 마리 째 늑대가 기절한 채 던져졌다. 골목 벽에 부딪힌 놈은 두개골 부서지는 소리를 내며 축 늘어진다.
그동안 괴물을 이런 식으로 잡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간 방송에 나왔던 헌터들도 다 각성능력을 사용했지 손으로 직접 패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는 상상해 봤다.
이 광경이 개인 방송에 나와, 이슈가 되는 모습을.
사실 시청자들이 가장 원하는 장면은 이런 거다.
다소 과격하긴 하지만, 시원하게 놈들을 때려잡는 모습.
그들도 이 장면을 본다면 놈들로 인해 망가진 삶에 대해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느낌이 들 것이다.
방송심의규정에 걸리면 어쩌냐고?
그런 거 따질 사람 아무도 없었다. 아마 방통위 관계자들 다 지하 어딘가에 피신해 있을 거다.
뭐, 방송국 자체가 스무 명이서 운영하는 조그마한 사설 업체라 상관없기도 했고.
20마리의 늑대가 정리되는 데는 약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사내는 기절시켜 놓은 늑대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그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신예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대단? 이 정도는 아무나 하는 거 아닌가?”
“절대 아니에요. 아마 아저씨는 기억을 잃기 전 대단한 사람이었을 거예요.”
“글쎄. 겨우 이 정도로…….”
C급 늑대 20마리가 겨우 이 정도라고?
충분히 그렇게 말할 자격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 손쉽게 처리했으니까. 아마 A급 신체각성능력을 지닌 헌터였어도 이렇게는 못 할 거 같은데 그럼 설마 S급인가?
에이 그럴 리는 없다.
S급 한국인들은 6개월 전, 전부 KH로 편입했다. 그리고 KH는 세계에서 가장 복지로 유명한 집단.
사람이 미쳤다고 이런 식으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게다가 황금색 뱃지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그놈을 찾고 있어.”
“그놈이요?”
“저번에 대화했던 놈. 이제 확실한 실력 차를 보여줬으니 다시 협박하면 문어를 찾아오겠지.”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왜 안 죽이고 기절시키나 했더니, 놈들의 동료를 인질로 잡고 협박하기 위해서였다.
진짜 미친 것인지 괴짜인 것인지 도저히 분간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저건 결정체다.
그것도 C급 결정체 20개.
놈들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도 함께 날아가는 거다. 그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너무 아까우니까.
“아저씨. 저것들 안 죽일 거예요?”
“굳이……. 증오스럽긴 하지만 대화가 통하는 놈들을 죽이고 싶진 않다. 필요하다면 몰라도.”
“쟤들은 절대 문어가 뭔지 몰라요. 본 적도 없을걸요?”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둘은 사는 곳이 다르거든요.”
“……그럼 그대는 아는가?”
“물론이죠.”
순간, 남자의 눈빛이 간절하게 변했다.
“……부탁이다. 나를 문어에게 안내해다오.”
“음…… 표현이 이상하지만……. 좋아요.”
신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문어 구하기가 힘들긴 하지만, 방법은 충분히 있었다.
그녀의 긍정에 사내의 표정이 처음으로 밝아졌고, 그 모습을 쳐다보던 신예지는 곧바로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단! 조건이 있어요.”
“뭔가.”
“앞으로 안내할 동안 제 통제에 잘 따라주셔야 해요. 그러니까 제 말은…… 아까 같은 고집 부리시면 안 돼요.”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건가?”
“정확해요.”
문어를 구할 수 있는 그녀가 갑(甲).
그리고 문어가 간절한 사내가 을(乙).
저 미친 사내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했다.
방송 적으로도, 그리고 앞으로의 안전을 위해서도.
게다가 인건비도 싼 것 같았다.
문어 요리만 제공해 주면 뭐든 할 것 같았으니까. 좀 더럽다는 게 흠이긴 한데 씻기면 될 일이다.
“좋다. 믿겠다.”
사내의 대답에 그녀가 빙긋 웃었다.
그에게 다시 달려들 때만 해도 최악의 선택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로또 당첨이었다. 벌써부터 떼돈 벌 생각에 기분이 급상승했다.
“그럼, 일단 저 늑대부터 처리할까요?”
=====================
m.joara.com /viewer
조아라: 웹소설의 시작
6-7 minutes
28. 기억의 행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