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104화
27. 헌터의 생존방송(3)
붉은 박쥐.
WHO에서 F급으로 지정한 외계생명체.
사람의 피를 흡혈하며, 체구가 작아 가끔씩 지하 벙커에도 흘러들어오는 놈이다.
각성한 헌터들에게는 손쉬운 사냥 거리지만 일반인에게는 이보다 더 공포스러운 괴물이 없었다.
큼지막한 놈들은 상위 헌터들이 제법 사냥하는 편이지만, 이놈들은 대부분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이다.
‘저걸 어째?’
신예지는 발을 동동 굴렀다.
붉은 박쥐가 날아드는데도 사내에게 미동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붕 떠 있는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을 뿐이었다.
느낌이 싸했다.
약 10초 후의 상황이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박쥐 이빨에 목이 뜯긴 채 서서히 죽어가는 사내의 모습이…….
사실, 사내는 누가 봐도 헌터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노숙자지.
적어도 헌터라면 저렇게 거지꼴을 하고 다닐 리 없었다.
일반인보다 높은 연봉은 물론이고, 어디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지상에 남아 있는 빈 매장에서 아무거나 주워입으면 되니까.
‘일단 구하자.’
신예지는 결정을 내렸다.
이제 잡생각 할 시간조차 없었다.
조금만 더 지나면 이런 생각조차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후회만 남겠지.
그녀는 곧바로「은신」을 제거한 후, 신발 옆에 끼워둔 단검을 뽑아 들었다.
제대로 된 기술을 배워 본 적은 없지만 ‘붉은 박쥐’라면 예전에 한 번 잡아본 적이 있었다.
그녀가 붉은 박쥐에게 달려들며 가볍게 손을 떨치자, 카메라가 삼각대가 자동으로 펼쳐져 땅 위에 고정됐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손기술이었다.
-와! 붉은 박쥐 잡는다!
-괜찮으려나?
-이거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님?
본의 아니게 오늘 방송의 난이도가 올라갔다. 그녀는 이번 외출 후 꼬박 2주는 휴식할 거라 다짐하며 내달렸다.
사내와 박쥐의 거리는 이제 약 2m 정도.
그녀와 박쥐의 거리는 아직 5m나 된다.
“흐아압!”
그녀는 힘찬 기합과 함께, 땅을 더 세게 밀어냈다.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짜내며 달렸다. 가슴이 뛰며 호흡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사람의 목숨이 달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리고 사내의 목에 박쥐의 이빨이 닿으려는 찰나-
푸욱-
간신히 괴수 뒷부분에 단검을 꽂아 넣을 수 있었다.
“키에에엑!”
박쥐는 단검에 꿰뚫린 채로 날개를 파닥거리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피가 사방으로 비산해 사내와 그녀의 얼굴에 튀었다.
“으윽.”
인상을 찌푸린 그녀는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꽉 잡아 고정해 땅바닥에 내리꽂았다.
그리고 놈의 힘이 빠지길 기다렸다.
이렇게 확실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골치 아파진다. 그 모습을 생중계로 지켜보던 시청자의 반응 역시 폭발적이었다.
-으윽, 징그러.
-와, 저렇게 빠르다고? 피지컬 미쳤네.
-어케했누.
-F급이라도 헌터는 헌터다. 웬만한 운동선수는 찜쪄먹지.
-확실히, 일반인은 아니네요.
대부분 시청자들은 일반인이다.
고등급 헌터들은 강원도 북부 대치상황 때문에 바빠서, 방송 같은 걸 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정도의 가벼운 사냥으로도 큰 호응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다.
붉은 박쥐는 곧이어 힘이 빠진 채로 축 늘어졌다. 죽은 것이다.
곧이어 옅은 붉은색의 결정체가 드러났다. 신예지 인생에 세 번째로 보는 F급 결정체였다.
“좋았어.”
그녀는 재빨리 결정체를 수거했다.
사실, 그것만으로 오늘 벌어들인 모든 후원을 가볍게 압살한다.
그러나 그것은 팔 때의 이야기. 그녀는 차라리 가족들에게 먹이면 먹였지 절대 결정체를 팔 생각이 없었다.
화폐의 가치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각종 해외 전문가들이 떠드는 내용을 본 적 있다.
KH가 그곳에서 버텨주고 있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서울인데도 가끔씩 땅이 울리고 마른하늘에 천둥이 치는 것을 보면, 강원도 북부가 지금 얼마나 치열한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은 달라($)도, 금도, 부동산도 아니다.
바로 결정체다.
지하에 유통되는 음식의 가치도 벌써 10배는 뛰었다.
아마 날이 갈수록 더 오를 것이다. 음식의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인 것도 있지만, 화폐의 가치가 알게 모르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역시 지금과 같은 난세에서 모아야 할 것은 바로 ‘결정체’지.’
신예지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하나다.
저 정체불명의 노숙자 사내.
“……흠. 저기요.”
그녀는 사내를 위아래로 스캔했다.
그는 신비해 보이는 주황색 목걸이와 배낭 하나를 메고 있었다.
그걸 떠나 얼굴에 피가 다 튀었는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게 뭔가 제정신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이봐요?”
그리고 곧이어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간 제대로 씻지도 않았는지 구릿하고 시큼한 냄새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바닥에서 노숙했는지 손톱과 옷 구석에 흙이 잔뜩 껴있었고, 퀭해 보이는 눈은 사람을 더 초췌해 보이게 했다.
‘그냥 갔어야 했나?’
사내는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신예지는 심한 냄새에 띵해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한번 말했다.
시청자들이 보고 있으니 최대한 선하고 예뻐 보이는 목소리로…….
“아저씨. 여긴 위험해요. 제가 역까지 모셔다드릴 테니 그곳에서 지내세요.”
꾹 참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사내가 반쯤 감긴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분위기에 맞지 않게, 왠지 무심해 보이는 눈이었다.
“……아저씨…… 라고?”
“네. 아저씨.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혹시, 헌터세요?”
“……헌터?”
“네. 혹시 뱃지 같은 거 있으세요?”
“……헌터가…… 뭐지?”
신예지는 남자의 느릿한 말투에 답답해져 가슴을 두드렸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녀가 감당하지 못할 괴물이 언제 어디서 출현할지 모르는 일이니까.
“혹시, 신분증 같은 거라도 있으세요?”
“신분……? 나?”
“네. 아저씨요.”
“내가…… 누구지?”
“……하아.”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은 것 같은데, 재수가 없어도 어지간히 없었다.
그녀에게 사회봉사나 대민지원 활동 같은 취미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이미지로 먹고살기에 별수 없었다. 그녀는 다시 세워뒀던 카메라로 가서 얼굴을 들이밀었다.
“오빠 언니들, 이거 어쩌지? 저분 상태가 살짝 안 좋으신 것 같아서 역까지 모셔다드려야 할 것 같은데?”
-그래, 그래.
-콘텐츠 각 나옴. ㅋㅋ
-주작이라니까.
-예지 이미지 관리 하니?
-무슨 주작을 목숨 걸고 하겠냐? ㅉㅉ
시청자들이 숙덕대기 시작했고, 채팅창이 재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대다수의 대화는 뻔했다.
주작이냐 아니냐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것. 채팅창이 한 번 이렇게 터지면 방송하기 참 힘들어진다.
‘에잇, 어차피 쫑난 거……!’
결국, 신예지는 초강수를 뒀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서 방종해야 할 것 같아. 카메라 들고 다니면 정말 위험하거든. 다들 미안해.”
-헐, 진짜야?
-그냥 가. 우리가 신고해 줄게.
-??? 뭘 그냥 가냐. 당연히 헌터가 데려다주는 게 맞지.
-그래서 방송은 또 언제 킴?
-데려다주고 인증샷 올려라.
***
신예지는 ‘방송종료’ 버튼을 누른 후,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 후원금의 반도 못 채웠는데 벌써 끝나버린 것이다. 웬 노숙자 놈 하나 때문에.
결정체를 벌긴 했지만, 그걸로 끼니를 해결하거나 생활용품을 살 수는 없는 법 아닌가.
그건 지상에서 구할 수 있다 쳐도, 요즘은 수도세도 톤당 가격을 매겨서 내야 하므로 웬만큼 벌지 못하는 사람은 씻지도 못한다.
나름 현금 또한 중요한 것이다.
“아저씨. 따라와요.”
그녀는 사내에게 다가가 팔목을 꽉 잡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강제로라도 역 안에 집어넣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역에 상주하는 공무원이 대처요령 가이드에 따라 알아서 해결해준다.
신예지는 돌발 방송종료를 했고,
시청자들에게 해명을 해야 한다.
방법은 ‘인증샷’.
사내가 역에 들어가는 사진을 찍을 예정이었다.
“난, 가지 않는다.”
“무슨 애도 아니고 떼쓰지 마세요.”
그녀는 사내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힘을 주어 끌어당겼다. 만약 그가 일반인이라면 어쩔 수 없이 끌려올 것이다.
“……이게 무슨.”
그러나 사내의 힘은 대단했다.
아니, 제대로 힘을 주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딸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꺄…… 꺄악!”
몸에 중심을 잃고, 꼴사납게 사내의 가슴에 얼굴을 들이박았다.
정신이 없었다.
일반인이 아니었어? 아니 그전에…….
‘코가 마비될 것 같아.’
불쾌감이 올랐다.
그녀는 재빨리 남자의 가슴을 밀쳐내고 일어났다.
“뭐, 뭐야. 힘이 왜 이리 세. 헌터였잖아?”
“……아까도 말했지만 헌터가 도대체 뭐지?”
“괴물 잡는 사람이요!”
“다르군…….”
남자의 생뚱맞은 소리에 신예지는 입술을 짓씹었다. 아까부터, 대화하긴 하는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가요!”
“너.”
“저요?”
“저 물체 앞에 있을 때와 지금의 모습이 많이 다르군.”
“아…….”
그가 손가락으로 카메라를 가리키고 있었다. 방송을 말하는 거겠지.
확실히 카메라를 켜고 있을 땐 목소리에 애교를 가득 넣어 말했었으니까. 지금은 꾸밈없는 살짝 시크한 목소리다.
“어쨌든 가지 않겠다는 거죠?”
남자가 헌터인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더는 그에게 볼일이 없었다. 그것도 나름 높은 등급의 헌터인 것 같은데 어련히 알아서 잘하지 않겠는가.
‘인증샷’ 해명이 아쉽긴 했지만, 가지 않는다는데 별수 없었다.
정말 조작해달라고 부탁해 볼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그녀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
“그렇다.”
“왜요?”
그냥 예의상 묻는 말이었다.
아니 사실 1% 정도는 궁금하기도 했다. 이곳에 무슨 달콤한 꿀이 숨겨져 있길래 지키고 앉아 있는지.
“나는 찾아야 한다. 문어를…….”
문어?
신예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문어를 바다에서 찾아야지 왜 서울 한복판에서 찾는단 말인가.
벽에 기대앉아 있는 사내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는 문어가 뭔지 아는가?”
설마…… 이 남자.
기억상실증인 것 같은데, 문어라는 생물 자체를 까먹은 것일까? 그녀는 대충 생각나는 대로 답변해줬다.
“문어? 먹는 거잖아요. 바다에 사는……. 숙회로도 먹고, 찜으로도 먹는 거. 문어과의 연체동물로 다리는 여덟 개고……. 음, 또 뭐가 있지?”
순간, 사내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디 갔지? 하는 순간, 앞에 나타난 사내가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거세게 잡아 눌렀다.
“정말…… 정말로 아는가?!”
“꺄아악! 아파!”
신예지의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어깨에 느껴지는 고통보다는, 그의 움직임이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였기 때문이었다.
앉아 있던 그가 그녀의 앞에 도달하는데 분명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손 당장 안 떼요?!”
어쨌든, 그것과 별개로 그녀는 짜증이 났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사내였다.
아마 기억을 잃기 전 문어를 엄청나게 좋아했던 것 같은데……. 후우, 역시 말을 섞는 게 아니었다.
“아, 미, 미안하군. 나도 모르게.”
사내가 시커멓게 때 묻은 손을 들었다.
신예지는 그런 그에게 일침을 가했다.
“연합에 신고하기 전에 당장 꺼지세요.”
“……부탁한다. 문어에게 안내해다오. 내게 유일하게 남은 기억이다.”
그녀는 사내를 무시하고 등을 돌렸다.
그녀의 생각엔 이미 저 남자는 미쳐 있었다. 즉, 더 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었다. 욱신거리는 어깨에 동정심조차 들지 않았다.
신예지는 카메라 삼각대를 접고 떠날 채비를 갖췄다. 이제 다시 「은신」을 사용해 역으로 복귀할 생각이었다.
사실 많이 늦었다.
애초에 사전 조사도 안 한 지역 골목에서 이렇게 시간을 많이 보내다니, 평소 그녀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그렇게 떠나려는 찰나,
“크르르륵.”
“쿠르륵.”
골목 사이사이로 섬뜩한 울음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녀가 멈칫했다.
“잠깐, 이 소리는…….”
그녀의 심장이 다시 급하게 뛰기 시작했다.
분명 유튜브에서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소리. ‘생존 방송’을 시작하면서 괴물들에 대해 많이 공부했기에 나름 정확하다.
“C…… C급 괴물. 붉은 늑대?”
붉은 늑대.
C급이지만 위험도는 B급에 준하는 외계생명체다.
왜냐하면, 적어도 10마리 이상씩 무리를 지어 다니기 때문이었다. 물론, D급 이상부턴 F급 「은신」 따위는 먹히지 않는다.
“……이런, 제기랄.”
신예지의 온몸에 소름이 피어올랐다.
기어코 그녀가 우려하던 상황이 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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