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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101화 (101/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101화

26. 레비아탄(6)

무한한 공간.

무수히 많은 영혼들의 종착지.

끝이 없는 평야와 풍요로운 자원으로 충만한 호리병의 성좌 「아베르노」에는 이중성이 있다.

영혼들의 편안한 안식처이기도 하지만, 그곳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들의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즉, 누군가는 희생해야만 하는 구조다.

「아베르노」의 구조는 간단하다.

밑바닥, 하층부, 상층부, 꼭대기.

먼저, 밑바닥에는 「아베르노」의 핵이 존재한다. 그것은 이곳에서 소멸하는 영혼을 빨아들여 에너지로 전환하는 거대한 기관장치다.

그곳에서 만들어진 에너지는 50%는 상층부에, 30%는 하층부에 뿌려진다.

나머지 20%는 깨끗하게 정화되어 새로운 영혼으로 만들어져 지구로 뿌려진다고 한다.

기관 주변에는 테르미노가 관리하는 병력들 중 가장 강한 놈이 상주하고 있다.

그다음, 하층부.

내가 처음 왔을 때 떨어진 곳이 바로 이곳. 하층부다.

하층부 곳곳엔 작은 소환진들이 배치되어 있고, 그곳을 통해 죽은 이들이 소환된다.

죽은 이후, 생전에 모았던 힘이 다 증발하는 바람에 한동안은 그곳에서 나타나는 불의 종족들을 잡아먹으며 힘을 길렀었다.

그다음, 상층부.

상층부는 본래, 테르미노의 거주지다.

밀도 높은 에너지가 모이고, 그 에너지로 원하는 것을 뭐든 만들어낼 수 있는 곳.

어떤 의미에서는 진짜 「유토피아」라고 불릴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 테르미노는 없다.

현재 그 존재는 꼭대기 층에 봉인된 상태.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내가 만들었던 에너지의 막이 형성되어 있는 것 보니 아직까지 총사령관이 꾸준히 에너지를 보급하고 있나 보다.

이곳에 떨어진 지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다.

처음 몇백 년 동안은 오로지 이 공간에 대한 조사를 위해 시간을 할애했다.

아마 약 800년쯤 흘렀을 때, 마지막 꼭대기 층을 조사했던 것 같다.

그곳은 호리병 성좌의 출구.

난 그곳에 봉인되어 있는 테르미노와 직접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존재의 첫인상은 끔찍하고 위험했다. 살면서 그토록 숨 막히고 소름 끼치는 존재는 처음이었다.

「아베르노」의 주인이자, 종족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신 테르미노.

그리고 그 존재를 옭아매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

만약 봉인되어 있지 않았다면, 대화를 시도해 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시선이 닿는 즉시 소멸해 버렸을 테니까. 그만큼 그는 나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난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때의 대화를 상기해봤다.

***

[드디어 왔는가.]

그 존재가 내뱉은 단 한마디.

그 한마디에 오장육부가 뒤흔들리는 느낌을 받았었다.

[크흑…… 다, 당신이 테르미노입니까?]

[그렇다. 이 어리석고 오만한 존재여.]

전율스러웠다.

세이렌이나 크라켄과는 비교과 안 되는 강력한 괴물이었다. 자존심 강한 나마저도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 앞에서 800년 동안 다시 쌓아온 힘은 부질없고 연약했다.

아니, 수억 년 동안 쌓아왔던 힘을 가진 상태로 만났다 해도, 역시 한낱 등불 앞에 반딧불이였을 것이다.

이런 존재니까 타 행성 전체의 핵을 가져다 쓰는데도, 봉인 기간이 이토록 짧은 거겠지.

그렇다면, 지구의 핵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난 테르미노 위쪽에 있는 거대한 검은 홀을 쳐다봤다.

[이…… 곳이 나가는 곳입니까?]

[그렇다. 지금 당장에라도 내 허가만 있으면 나갈 수 있지. 육체는 재구성될 것이며, 곧바로 지구로 갈 수 있다.]

테르미노가 봉인된 것과 별개로, 출구는 활성화되어 있었다.

이때, 잠깐이나마 희망을 품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찾아도 오지 않는 총사령관.

그녀를 만나 변명이라도 들어보고 싶었으니까.

[저도 후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나가서 모든 것을 바로잡겠으니…….]

[헛소리!]

쿨럭…….

이번엔 진짜였다.

오장육부가 정말 뒤틀려버렸다. 입으로 피가 터져 나온 것을 보니 확실했다.

[그대의 선택이 지금 어떤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보아라! 훌륭한 삶의 터전인 지구는 지속되는 전쟁으로 초토화되고 있으며, 우주에 존재하는 행성들과 에너지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게다가 그대가 「창조」한 무기 때문에 난 이곳 출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 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놈들이 지구의 핵을 사용하기라도 하는 날엔, 「아베르노」의 입구가 영원히 막혀 세상에 종말이 오고 말 것이다.]

이곳은 죽은 자들의 세계.

「아베르노」가 막힌다면, 세상에 죽음은 사라질 것이고 영혼이 만들어지지도 않으니 탄생도 사라질 것이다.

혼란의 시대가 도래하겠지.

[난 그대를 믿을 수 없다. 이 봉인이 풀리는 날, 그대는 합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만 물러가거라.]

하긴, 테르미노에게 밖으로 내보내 달라 부탁하기엔 한 짓이 너무 많았다. 결국은 나 때문에 모든 것이 틀어졌으니까.

***

그렇게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불의 종족에게 복수하며 살던 중, 어느 순간부터 인간들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항상 나를 피해 도망만 치던 불의 종족이 살판난 것은 그때부터였다.

일부러 약하게 만든 「인간」.

그들을 잡아먹으며 힘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불의 종족을 먹어 힘을 키운 것처럼 말이다.

난 어미의 마음으로 인간을 도왔다.

그들을 볼 때마다 총사령관이 떠올랐지만 참았다. 외형은 내 선택이었을 뿐, 이들과 그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까.

그러나, 도와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 넓은 공간에서 그들을 전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인간의 영혼 에너지가 미약하다 해도, 쏟아지는 수량이 수억이 넘다 보니 점점 불의 종족과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인간을 잡아먹지 않는 이상 놈들을 이길 수가 없는 것이다.

놈들을 자제시키기 위해서는 종족 시너지 효과가 필요했다.

[딱 물의 종족이 전쟁을 끝내고 이곳으로 올 때까지만 기다리자.]

결국, 난 숨는 것을 선택했다.

난 상층부의 에너지를 이용, 나만의 아공간을 창조해 스스로를 봉인했다.

그 속에서 불쌍한 인간들을 위한 최소한의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초창기 ‘상점’이었다.

난 ‘패밀리어’를 통해 작은 뱀의 모습으로 하층부 이곳저곳을 누볐다.

인간과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각 소환진 옆에 ‘상점’을 「창조」했다.

들어오는 인간들의 기억을 읽고, 들어오는 수준에 맞추어 상점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인간의 신체 수준을 높이거나,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그들이 지불하는 영혼석으로 충당했다.

테르미노가 관리하는 병력들에게도 분명히 에너지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상점’이 결국은 독이 되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불의 종족들 중 누군가가 발견한 것이다. ‘상점’을 이용한 인간의 영혼이 더욱 강한 에너지를 뿜어낸다는 사실을…….

불의 종족들은 더 이상 개미만큼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사냥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은 더 성장한 인간의 영혼을 원했다. 어차피 인간이 들어온 이후 상층부에 에너지가 넘쳐나는 상황.

그들은 상층부를 차지했다.

그곳의 문을 걸어 잠그고 ‘상점’을 입맛대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편하게, 인간의 영혼을 재배할 수 있도록 말이다.

강해진 그들을 말릴 수 있는 자는 없었다.

‘기록사’라는 것을 만들어 인간들을 속이기도 했고, 가끔 내려가 가지고 놀기도 했다.

테르미노도 꼭대기 층에 봉인된 상태.

놈들의 행패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분노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 역시 물의 종족이 전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괜히 대책 없이 혼자 날뛰다 죽게 되면 후일을 도모할 수조차 없게 된다.

다만, 불의 종족들이 다루는 「창조」는 본래 본인의 것이 아니었다.

단지 상층부에서 할 수 있는 테르미노의 「창조」 권한을 훔쳐 흉내만 내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제대로 다룰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난 상점에 VIP 상점을 추가했다. 그리고 불의 종족이 절대 확인할 수 없게끔 했다.

나는 각 ‘상점’들을 상층부와 몰래 연결해 놓았고, 그 통로의 열쇠로 「아베르노 초대권」을 팔았다.

적어도 날 만날 정도의 인간이라면, 그 정도는 살 수 있을 정도로 강해야 한다고 봤다. 왜냐? 이곳 밖으로 내보낼 계획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나 내보낼 수 없었다.

밖에서 물의 종족과 대화라도 시도해 볼 정도의 힘은 있어야 했다. 그 최소한의 기준을 「아베르노 초대권」으로 본 것이다.

또한, 테르미노를 설득해야 했다.

현재 테르미노는 나에게만 분노한 상태. 그에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을 1%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아마 그는 허락할 것이다.

물론, 이곳까지 왔던 대다수 인간들은 형편없었다.

그들이 「아베르노」에 도착하면 내 아공간으로 소환시키는데, 어느 정도 딜레이가 생긴다.

그러나 대부분은 빼돌릴 시간도 없이 오자마자 불의 종족에게 통구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의미 없고 외로운 생활에 서서히 지쳐가던 찰나-

콰아아앙!

상층부에 거대한 폭발음이 울렸다.

또 놈들이 무슨 일을 벌인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인간이라도 온 것일까?

나는 재빨리 패밀리어를 통해 상황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이어 보이는 광경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곳엔 누군가가 불의 종족의 공격을 힘겹게 피하며 도망치고 있었다.

몇천 년 만에 다시 보는 모습.

나의 형제 ‘다곤’과, ’메갈로돈’의 모습이었다.

***

[강 현, 괜찮으신가요?]

나는 들려오는 ‘세이렌’의 음성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다곤’과 ’메갈로돈’에 머물렀던 시야가 순식간에 멀어지며 다시 우주 한복판으로 올라왔다.

내가 정보주입을 거절한 적은 없으니, 푸른 새가 개입한 것이다.

[……왜 갑자기 끊은 겁니까?]

[그 이후의 정보는 그대가 굳이 알 필요 없어요. 지구에서 있었던 ‘대전쟁’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대전쟁?]

[네. ‘레비아탄’은 그곳에서 ‘다곤’과 ‘메갈로돈’을 구해내요. 재빠르게 아공간을 만들어 숨겨주죠. 그들도 죽은 지 얼마 안 된 터라 힘이 없었거든요. 그리고, 그들에게 지구에서 있었던 ‘대전쟁’에 대한 설명을 들어요.]

그렇다면 앞으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다곤’과 ‘메갈로돈’이 「아베르노」에 오기까지의 내용이라 끊었다는 거군.

난 더 봐도 상관없는데…… 혹시, 알면 안 되는 내용이라도 있는 걸까?

내가 집중하고 있자 세이렌이 쓸쓸하게 말을 이었다.

[별 이야기 없어요. 그냥 수천 년 동안 치고받고 싸웠던 이야기에요. 6,600만 년 전 유카탄반도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투에서 ‘다곤’과 ‘메갈로돈’의 희생으로 결국 그들의 왕과 부하들을 제 고유공간에 봉인할 수 있었죠. 총사령관과 5군단장을 제외한 군단장은 전부 도망갔지만요.]

순간, 일기장이 떠올랐다.

6,600만 년 전 유카탄반도에서 있었다던 거대한 폭발.

공룡을 멸종시켰다는 운석이 사실은 그 대전쟁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박물관에 있는 공룡 뼈가 실은 불의 종족?

궁금한 것이 많았다.

‘세이렌’이 고유공간에 그들을 가둔 것은 인간을 위함이었을까?

‘크라켄’은 왜 힘을 잃었고, 마리아나 해구에 틀어박혀 회복에만 전념해야 했을까?

그래서 더 보고 싶었다.

그들의 장면을…….

그들의 전쟁을…….

[혹시, 제가 못 보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네. 시간 때문이에요.]

시간?

그게 무슨 말일까?

[그대가 정보주입을 하는 동안 벌써 바깥은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요. ‘대전쟁’에 대해 정말 궁금하다면 후에 나가서 ‘크라켄’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죠.]

[네? 잠깐만요. 반년?]

[제 도움이 있어서 그 정도로 가능한 거예요. 본래는 그 기억 속에 잠겨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벌써 반년이 흘렀다면…….

이제 놈들의 총공격이 시작됐을 거다. 분명 이곳에 처음 떨어졌을 때 총공격이 1년 남았다고 했으니까.

세상에. 그럼 진짜 큰일이잖아? 이야기에 심취해서 시간을 낭비할 뻔했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빨리 나가야 합니다. 지구가 위험해요.]

[네. 레비아탄에게 말은 안 했지만, 사실 테르미노는 제가 설득해 뒀어요. 잠시 후, 그대의 의식을 꼭대기 층으로 보낼 거예요.]

내가 다급해 보이는지 ‘세이렌’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정시켰다.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아직 제 능력을 갖춘 아이가 지구에 남아 있잖아요. 그대가 갈 동안 충분히 버텨줄 거예요.]

[그럼, 제가 가서 뭘 하면 됩니까?]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아주세요.]

[……알고 있는 것.]

아마 테르미노는 종족을 종말시킬 생각이 아니었을 거다.

우주 보호 차원에서, 지구를 다음 세대인 「인간」에게 넘기고 그들에겐 사후세계를 관리하도록 할 생각이었겠지.

불의 종족의 욕심, 그리고 뱀의 바보 같은 행동으로 모든 게 삐뚤어졌지만…….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으라는 말.

놈들을 다 죽여달라는 말이다.

이곳으로 올 수 있도록.

[레비아탄의 말대로 바로 ‘크라켄’을 죽일 필요는 없어요. 그저 그에게 당신의 기억을 허락해 주세요. 그러면 아마 그쪽 상황을 같이 해결하고, 본인이 직접 이곳으로 올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되셨나요?]

[네. 빨리 가야죠. 지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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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헌터의 생존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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