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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100화 (100/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100화

26. 레비아탄(5)

[사탄, 당신이 여기엔 어떻게?]

[그대와 인사를 못 나눈 것 같아 아쉬워서 몰래 왔단다. 발록이 힘을 써줬지.]

[정말 잘 오셨습니다! 저도 많이 아쉬웠거든요.]

[그럼 세이렌에겐…….]

[물론, 말하지 않겠습니다.]

접근금지령이 떨어진 그녀가 이곳에 있단 게 밝혀지면, ‘세이렌’은 그녀를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난 그 당시 그녀에게 불순한 의도를 못 느꼈었다. 솔직히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는 게 맞을 거다.

다시는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그녀를 만났으니까.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좋았다.

그렇게 사탄은 균열을 통해 주기적으로 동쪽 바다에 찾아왔고, 난 항상 그녀를 반겼다.

[그대가 만든 「인간」이란 존재가 흥미롭구나. 내 모습을 본뜬 것이냐?]

[물의 종족 중 그대의 창조능력이 최상 아니더냐. 다른 놈들은 별 볼 일 없던데…….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녀는 날 칭찬했고-

[‘세이렌’은 외골수다. 한가지 면만 생각하는 융통성이 없는 친구지.]

[알다시피 세상은 항상 바뀌어 왔단다. 우린 오래 살기에 그 변화를 빨리 느끼지. 그렇기에 언제나 시류의 흐름을 몸에 익히고 있어야 해. 안 그러면 누구처럼 과거에 묻혀 사는 거야.]

[‘세이렌’이 무언가 결정할 때, 네 의견을 물은 적 있니? 아마 없을걸?]

은근히, ‘세이렌’을 깎아내렸다. 아니 대놓고 인가? 어쨌든,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

당연히 그녀에 대한 경계심은 전혀 없었다.

[이번에 우리가 지낼 만한 행성을 찾았단다.]

[정말입니까?]

[지구보단 못하지만 나름 괜찮아. 다만 이미 살고 있는 거주자가 있어.]

[그럼 어떡합니까?]

[가축으로 키워야지. 우리 애들 식량도 필요했는데 다행이야.]

그녀는 가끔 불의 종족에 대한 상황도 전달했다. 걱정했었는데, 그래도 살 만한 곳이 있다니 다행이었다.

[레비아탄. 할 말이 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열 번째 만남이었나? 그녀가 새로운 주제를 꺼냈었다. 내 마음속엔 있지만 차마 꺼낼 수 없었던 주제였다.

[너도 느끼고 있을 테지만,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 내일이라도 튀어나올 수 있어.]

[……테르미노 말입니까?]

[그래.]

나도 알고 있었다.

이제 1년쯤 남았을까?

정확하게 계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10년 내외일 것이다. 느낌이 알려줬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하지만, 이제는 정말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찾았던 방법은 지구의 내핵을 이용하는 방법이었고, 그 입구를 ‘세이렌’이 완벽하게 틀어막은 채 수호하고 있었으니까.

그저 눈 뜨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셀 수 없이 오랜 기간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리기 힘들었다. 다른 이유보단 그녀의 존재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보다, 그녀를 알게 된 후의 삶이 더 소중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더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레비아탄. 다른 방법을 찾았으니까.]

[그게 정말입니까?!]

난 솔깃했다.

그리고 기대했다.

그녀는 항상 그렇듯 해답을 가져왔다. 과거 테르미노를 봉인하는 방법 또한 그녀가 찾지 않았는가.

[꼭, 지구의 핵을 이용할 필요가 없었어. 다른 행성에도 핵은 있거든.]

[그…… 그렇겠네요?]

간단한 방법이었다.

나야, 그 당시 지구 밖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지만 불의 종족은 우주를 거닐며 행성 점령을 막 시작한 상태. 당연히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세이렌’이 알면 경을 치겠지만, 다르게 생각도 해봤다. 지구도 아닌 다른 행성의 핵을 이용하는 걸, 세이렌이 막을 권리가 있을까? 본인이 테르미노의 대행자도 아닌데 말이다.

[다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그…… 그게 뭡니까.]

나는 다급해졌다.

이제 10년도 남지 않았는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첫 번째는 일단, 급한 불을 끄는 정도라는 것이다. 타 행성 에너지의 핵들은 지구만큼 풍부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 않아.]

갈색 흙. 녹색의 산.

흰색 구름. 푸른색 바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행성 지구.

그녀는 지구 밖으로 나간 후, 2군단장과 함께 전 은하계를 이 잡듯 뒤졌다 했다.

그런데도 지구와 비슷한 조건의 행성은 단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둘째는 ‘행성 에너지 추출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녀는 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눈빛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던 것 같다.

[네 도움이 필요하다. 레비아탄.]

***

물의 종족.

고유능력 「창조」.

언뜻 보면 ‘신’의 권능 같지만, 그건 아니었다.

신이란 전지전능한 존재.

우리는 수명이 3억 년밖에 안 되고, 테르미노를 막을 힘도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지도 못한다.

[설계도는 이미 다 만들어놨다. 「창조」 능력을 갖춘 그대의 힘이 필요해.]

그녀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그냥 간단한 내 손짓 한 번이면 삶을 늘릴 수 있었다.

몇 번 고민하는 척했지만 사실, 답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그녀가 설계도를 가져왔을 때 구원의 빛이 내려오는 느낌이었으니까.

설계 또한 복잡하긴 했지만 확실해 보였다. 결함이나, 오류는 발견되지 않았다.

난 결국 ‘행성 에너지 추출기’를 창조해냈고, 그녀는 호리병의 입구를 에너지로 틀어막았다.

테르미노는 그렇게 「아베르노」 속에 봉인됐다.

효과는 확실했다.

분명, 육체가 알려주는 소멸시간은 지났는데, 죽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걸 ‘세이렌’은 왜 안 하려 한 것일까.

그렇게 5,000년 정도 흘렀을까, 왕이 걱정하던 상황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별자리가 점점 달라지고 있었고, 은하계들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불의 종족은 폭주했다.

번식력은 더 왕성해지기 시작했고, 우주의 자원은 급속도로 고갈되기 시작했다.

다른 행성의 핵은 근본적인 테르미노의 봉인 방법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수많은 행성을 부숴 에너지를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세이렌’의 아집(我執)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저 ‘지구’ 하나만 내어주면 되는 건데, 그걸 못해서 우주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레비아탄. 잘 지내고 있느냐.]

그녀는 바쁜 와중에도 10년에 한 번씩은 꼭 날 만나러 왔다.

확실히 힘들어 보였다.

그녀는 집착증 환자처럼 행성들을 찾았다.

우주는 넓고, 자원은 무한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에너지를 품은 행성은 정말 희귀했다. 특수 조건이 맞춰지지 않으면 그저 돌덩이일 뿐이었다.

[그대와 만날 시간이 부족하다는 게 아쉽구나.]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테르미노를 봉인하기 위해서인데요.]

[그래서 말인데…….]

그녀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행성으로 잠깐 놀러 오겠느냐? 한 100년 정도만 함께 지낸다면 원이 없을 것 같구나.]

달콤한 유혹이었다.

그동안 10년에 한 번씩 밖에 못 본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으니까. 한 번쯤은, 질릴 때까지 함께 있어 보고도 싶었다.

그래서 잊었던 것 같다.

내가 그곳으로 가고 2군단장이 균열을 닫아버리면 다신 이곳으로 못 돌아온다는 것을.

그렇게 되면 종족 시너지 효과가 깨진다는 것을.

아니지, 몰랐다기보단 그저 그녀를 믿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눴던 총사령관이 배신할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으니까.

[좋습니다. 저도 궁금했거든요. 지구 밖 환경이 어떨지…….]

[지구에 있는 바다도, 육지도 신기하고 아름답지만, 우주도 그 못지않게 대단하단다.]

나는 깔끔하게 놈들의 본거지로 넘어갔다. 그러나 불의 종족은 이미 총공격 준비를 맞춘 상태였고, 정신을 차려봐도 이미 늦었다.

놈들의 왕부터, 커다란 군단장들, 그리고 처음 보는 이계 종족까지…….

거대한 균열 앞에 전열을 갖춘 채 서 있었다.

[고생했다. 총사령관. 네 공이 크다.]

균열 최전선에 있는 커다란 호랑이가 읊조렸다.

[감사합니다. 왕이시여.]

난 믿을 수 없었다.

[이…… 이게 무슨?]

그래서 급히 ‘사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그동안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싸늘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물의 종족에 바보가 하나 있다더니, 그게 저놈인가 보구나.]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그래도 우리 종족을 위해 많이 노력한 자입니다.]

[그래 봐야 ‘세이렌’의 하수인 아니겠느냐. 치워라.]

[그리하겠습니다.]

정신이 멍했다.

그래서 그녀와 왕의 대화를 가만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총사령관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4군단장에게 말했다.

[티라노. 이놈은 네가 맡아라. 우리는 전력을 다해 지구의 핵을 가져오겠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충격적이었다.

10년마다 찾아와서 나에게 해주었던 달콤한 말들. 불의 종족의 사항들 또한 가감 없이 말해줬던 그녀의 행동이 다 계획된 것이었다니.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크흐흐, 겨우 너 같은 괴물을 총사령관께서 사랑했을 것 같으냐.]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던 총사령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균열 속으로 들어갔다.

4군단은 날 포위하기 시작했고, 그들을 제외한 대다수는 모두 지구 총공격에 참여하는 것 같았다.

[닥쳐라……. 4군단장. 그 더러운 입을 찢어버리기 전에.]

[바보 같은 놈. 본인이 「정신 지배」에 걸렸단 사실도 모르고……. 넌 종족의 수치다.]

뭐…… 라고?

그녀에게 느꼈던 감정이 내 의지가 아니었다고?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수천 년 동안 다른 종족들을 노예로 삼았던 그녀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혼란스러웠다.

분명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부터 호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아니, 그전에 그녀의 고유능력은 분명 물의 종족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세이렌에게 들었던 것 같은데…….

한눈에 반했기 때문에 정신 착란에 더 쉽게 걸린 것일까? 그럼 그녀를 사랑했던 내 감정은 뭘까?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닌 것인가?

마치 내 존재가 부정당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티라노는 내 기분만큼 더러운 이빨을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크흐흐. 시너지 없는 물의 종족의 맛은 어떨지 궁금하군.]

열 받았다.

오랜만에 숨어 있는 포식의 본능이 일깨워졌다. 그녀, 그리고 불의 종족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배고픔으로 승화했다.

[시너지?]

[그래. 그 말도 안 되는 능력.]

[웃기는군. 그딴 거 없어도 난 강했다.]

난 곧바로 놈들을 향해 돌진했다.

피의 살육이었다.

난 그동안 감춰왔던 모든 전투 세포들을 일으켜 세웠다. 일 대 수천만 일지라도 절대 밀리지 않을 기세. 폭풍 같은 움직임. 그리고…….

[너희는 실수했다. 물의 종족이 겨우 시너지 때문에 강할 거라 생각했느냐?]

세이렌, 크라켄, 다곤, 메갈로돈까지…….

그들의 진정한 힘은 「창조」에 있었다. 그리고 총공격한 그들은 물의 종족의 무서움을 깨달을 것이다.

난 그렇게 확신했다.

그렇게 난 사흘 밤낮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놈들 하나하나 해봐야 겨우 수천 년밖에 살지 않은 존재. 거의 수억 년을 존재해 온 나에게는 그저 먹이일 뿐이었다.

그러나 변수가 많았다.

일단 티라노의 존재. 그 역시, 나와 같은 기간 존재해온 불의 종족 최상위 간부.

그뿐만 아니라 수천 년 동안 번식한 놈들의 수는 과하게 많았다. 죽이고 먹어도 끝이 없었다.

또한, 이곳이 바다가 아니라는 점.

뜨거운 용암이 존재하는 맨땅바닥에서의 결투는 나에겐 너무 힘들었다. 이동이 제한되고, 움직임도 매끄럽지 못했다.

[이제 정말…… 힘들군.]

그렇게 과거에 대한 회상이 끝났다.

난 눈을 떠 이빨을 들이미는 4군단장의 모습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바다의 진정한 포식자, 레비아탄의 공포를 뼛속 깊이 느끼게 해주겠다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태어났다. 그곳이 「아베르노」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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