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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99화 (99/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99화

26. 레비아탄(4)

갑자기 번뜩 정신을 차렸다.

레비아탄의 의식이 아닌, 내 의식이었다.

이번엔 그렇게 오래 걸린 것 같지 않은데 왜 벌써 튕겨 나온 거지?

[강 현, 무슨 일인가요?]

[당신이 내보낸 거 아닙니까?]

[이번엔 아니에요. 그대가 직접 나온 거예요.]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정보주입은 대상자가 거부감을 느낄 경우, 시전할 수 없어요. 아마 그대의 심리 상태가 많이 혼란스럽나 봐요.]

사실 그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청나게 많은 정보가 들어왔다.

첫 번째로, 불의 종족과 물의 종족이 사실 친구 사이였다는 것.

과거 ‘크라켄’이 골렘과 친구라 했을 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인제야 이해가 됐다.

두 번째로, 물의 종족이 함께 모여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

정황상, ‘총사령관’의 모습을 딴 것 같은데……. 그 후 레비아탄의 행보가 궁금했다.

세 번째로, 테르미노의 존재.

그는 「아베르노」에만 존재하는 것 아니었나? 이건 좀 더 봐야 정확히 알 것 같았다.

네 번째로, 종족 시너지.

드디어 레비아탄이 ‘크라켄’을 죽여달라 한 이유를 찾았다. 문어를 제외한 모든 물의 종족들이 「아베르노」에 모여 있다.

그만 이곳으로 온다면 다시 시너지를 갖추고, 후일을 도모해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총사령관이었다.

그녀가 사탄이라고?

게다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크라켄’에게 총사령관에 대한 존재만 들었을 뿐, 그게 인간 모습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사탄이라 하면…….

성경책에 나오는 태초의 악마다.

신자는 아니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레비아탄은 확실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음……. 세이렌. 이 부분은 위험할 것 같습니다.]

끔찍했다.

레비아탄과 감정을 공유하다 보니,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이 아직까지 느껴지고 있었다.

세상에, 내가 괴물을 좋아하다니.

‘총사령관’은 인류의 적.

그녀에게 불필요한 감정을 느껴서 좋을 게 없었다.

[맞아요. 안 그래도, 그 부분은 정보주입을 못할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그대가 무의식적으로 계속 튕겨내고 있거든요. 지금도 계속이요. 총사령관 때문이죠?]

[아마도 그럴 겁니다. 별로 느끼고 싶은 감정은 아니거든요.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합니까?]

[걱정 마세요. 곧 그녀에 대한 레비아탄의 감정이 증오로 바뀌거든요. 그때 시점으로 들어가서 그의 기억을 읽으면 될 거예요.]

레비아탄이 사탄을 증오한다고?

뻔한 그림이 그려졌다. 사랑에 빠져 물의 종족을 배신했고, 결국 이용만 당하다가 마지막에 그녀에게 버려졌겠지.

뭐, 그게 아닐 수도 있지만.

[그때가 언제입니까?]

[레비아탄과 저와 만난 후, 1억 년이 더 흐르고 나서예요.]

[……허어, 너무 텀이 긴 것 아닙니까?]

[그때, 대전쟁이 끝나고, 저와 ‘크라켄’이 마지막 방어선으로 균열을 만들거든요. 아시죠? 그 봉인 공간.]

마지막 방어선이라…….

아마 나와 선소연이 떨어졌던 그 균열을 말하는 걸 거다.

이해한 내가 시선을 상하로 흔들자, 푸른 새가 쓸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당시 크라켄과 저를 제외한 모든 물의 종족이 죽었었습니다. 참 안타까웠어요. 그때는 「아베르노」의 존재를 몰랐었거든요. 아마, 지금 총사령관도 이곳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겁니다. 알면 굳이 지구를 고집할 필요가 없거든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절 이곳으로 보낸 존재가 총사령관인데…….]

[아니에요. 그녀는 착각하고 있어요. 저도 그땐 그랬죠. 우주 한 공간에 떠 있는 호리병의 성좌. 「아베르노」. 그저 테르미노가 거주하는 성좌인 줄 알았는데, 사후세계였을 줄이야…….]

그렇다면…….

총사령관은 죽으면 이곳으로 올 거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건가?

그저, 차후 위협이 될 나를 테르미노에게 보내 죽이려 한 것일까?

[복잡하군요.]

[이제 곧 이해되실 거예요. 그럼 더 볼까요?]

[알겠습니다.]

난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제 다시 레비아탄의 의식으로 들어갈 타이밍이다.

동기는 충분했다.

막강한 고대 종족들도 두려워하는 테르미노의 존재.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전말을 알아야 한다고 했으니까.

1억 년 후로 간다고 했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이 더 빨라지면 나야 좋았다. 빨리 확인할 수 있으니…….

[준비가 된 것 같군요. 그럼 시작할게요.]

이윽고 세이렌의 음성 소리와 동시에,

팟!

다시 정보주입이 시작됐다.

***

[덤벼라. 이 간사한 종족들아.]

이곳은 타행성.

불의 종족 본거지.

나는 끝없이 밀려오는 불의 종족들을 바라봤다.

그들 하나하나의 힘은 미약했지만, 이제는 점점 버거워졌다. ‘시너지’를 받지 못한 육체는 생각보다 나약했다.

[우습구나. 레비아탄.]

후방에서 그들을 지휘하는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가 말했다.

[본인의 종족을 배신했던 자가 ‘간사하다’라는 말을 입에 담다니…….]

[닥쳐라. 이놈!]

나는 놈을 향해 「브레스」를 뿜어냈다.

콰아아-

힘찬 호흡과 함께 놈 앞에 직선으로 나열되어 있었던 모든 생명체가 소멸한다.

물론 측면에 있는 불의 종족들과 표적이었던 그놈은 멀쩡했다.

불의 종족 4군단장.

고유능력 「단단한 피부」

‘시너지’ 효과가 없으니 놈의 피부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

[크으으……. 결국은 이렇게…….]

난 온몸에 힘이 빠져가는 것을 느꼈다.

벌써 사흘 밤낮을 싸웠다.

죽이고 죽여도 끝이 없는 놈들. 들러붙은 놈들의 이빨과 쏘아대는 불덩이에 점점 생채기가 늘어갔다.

확실히 그들의 번식능력은 대단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공룡 무리들은 본적 없었으니까.

그것보다 더 대단한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지구에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외계종족들.

곰의 모양을 닮았는데, 뿔이 나 있고 나조차도 한 수 접어줄 정도로 흉포하게 생겼다.

물론 힘은 약했지만…….

문제는 수량이 바퀴벌레처럼 많다는 데 있었다.

지구에서 쫓겨났던 ‘불의 종족’이 다른 행성에서 점령한 생명체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총사령관이 길들인 것 같았다.

그녀의 고유능력은 「정신 지배」였으니까.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들이 이토록 철저하게 지구 침공을 준비했을 줄이야.

[크으……. 그때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는 게 아니었는데…….]

난 결국 온몸에 힘을 풀었다.

이제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지치고 힘들었다.

그리고 아팠다.

육체가 아니라 가슴이 쓰라렸다.

놈들에게 뚫린 상처 따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에게 뒤통수 맞은 것에 대한 아픔에 비하면…….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과거를 회상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삶에 대한 미련인 건지, 단순한 ‘주마등’인 건지, 그냥 회상해야 할 것 같았다.

그것도, ’세이렌’을 만나고 「인간」을 만들었던 그때 그 시점부터…….

***

나와 ‘크라켄’은 ’세이렌’의 명령에 따라 남쪽 바다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또 다른 형제 ‘다곤’과 함께 고유능력 「창조」에 대해 배웠다.

「창조」는 재미있었다.

바다에서 먹이를 먹고, 괜한 싸움을 하러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수백 배 신났다.

처음엔 작은 아공간부터 시작했다. 그곳에서 ‘사탄’처럼 멋들어진 날개를 가진 실패작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크라켄’도, ‘다곤’도 내 재능에 대해 칭찬했다. 멋들어진 창조를 위해서는 순수해야 한다고 했다.

수천 년 동안 혼자 바다 이곳저곳을 떠돈 게 많은 도움이 됐다고 했다.

그러나 그게 입에 발린 소리란 걸 알았다.

특히 과거 ‘크라켄’의 창조능력은 ‘다곤’과 나를 완벽하게 압도했으니까.

물론, 지금은 그에게 뒤지지 않을 자신 있지만 어쨌든…….

왕께서 ‘메갈로돈’을 데리고 올 때까지, 나는 ‘다곤’과 함께 처음으로 육지도 관람했다.

「창조」는 곧 창의력.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한다는 ‘크라켄’의 조언 때문이었다.

‘크라켄’은 ‘패밀리어’라는 기술을 알려줬다.

작은 가상 육체를 만들어 시야를 확보하는 기술이었는데, 대륙 여행 시 큰 도움이 되었다.

왕께서 오시면 바로 다시 바다로 이동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패밀리어’하나로 모든 게 해결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정말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항상 육중한 몸체로 작은 것만 바라보던 나였다.

그러나 ‘패밀리어’는 작은 육체.

조그마한 육체로 보는 세상은 분명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었다.

곧이어 왕께서 도착하셨고, 우리는 「인간」제작에 돌입했다.

수백 년은 걸린 것 같았다. 내가 연습 삼아 만든 괴물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작업이었다. 왕께서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신경 썼다.

사실 인간의 외형에는 내가 많이 관여했다.

왕께서는 「인간」을 무조건 작게 만들자고 하셨다.

현 ‘불의 종족’들의 생태계 파괴가 심각한 수준, 육체가 작고 약하면 그게 덜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물론 나도 찬성했다.

패밀리어로 보는 세계가 더 아름다웠기도 했고, 작은 육체 하면 떠오르는 ‘총사령관’이 있었으니까.

난 그녀의 모습을 초안으로 제시했고, 왕께서 수긍하셨다. 아쉬운 게 있다면, 뼈날개가 싫다던 ‘크라켄’의 요구도 받아들여졌다는 점?

어쨌든, 그렇게 태초 「인간」들의 샘플을 만들었다.

이제 테르미노가 오기 전까지 적절한 곳에 배치하면 되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불의 종족의 총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지구 전체를 메꿀 것만 같은 엄청난 수량의 육지 생명체들. 그러나 그들의 총공격은 가볍게 무산되었다.

간단해도 너무 간단했다.

그들의 공격은 우리 피부에 닿지도 못한 채 소멸했고, 우리의 공격은 그들에게 너무 치명적이었다.

종족 시너지는 위대했다.

불과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불의 종족 대다수가 소멸했고 그들 간부 전원이 제압되었다.

불의 왕.

총사령관.

그리고 1~5군단장까지.

하지만, 정 많은 ‘세이렌’은 그들을 소멸시키지 않았다. 아마 그때 나도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을 거다.

그녀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으니까.

자세한 회의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왕께서는 그들을 ‘지구’ 밖으로 내쫓았다. 그리고 ‘지구’ 접근금지령을 내렸다.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불의 종족이 그것을 선택했다.

불의 종족 2군단장 ‘발록’의 고유능력 「공간 이동」을 통해, 타 행성으로 갈 수 있다는 판단이었을 거다.

그 당시 왕께서 그들을 소멸시키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곧 ‘테르미노’가 출현. 우리를 전부 소멸시킬 테니까.

또, 지구에 접근금지령을 내린 이유도 있었다. ‘총사령관’이 알아낸 ‘테르미노’ 봉인 방법이 지구 내핵에 있다는 이유였다.

테르미노.

태초부터 존재해 왔다는 종말의 신.

‘크라켄’은 그를 ‘한 종족이 3억 년 이상 살면, 종말을 선고하는 시스템화 된 존재’라 표현했다.

우주의 자원을 수호하고, 종족의 영을 충전하기 위해서라는데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그리고 불의 종족과 물의 종족이 곧 있으면 3억 년이 된단다. 세상에, 난 그 당시 왕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생각해 봐라.

곧 누군가 본인을 소멸시키는데, 그 누군가를 봉인할 방법을 찾았단다. 그럼 당연히 시도해 봐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생각일 뿐.

이미 불의 종족은 지구에서 쫓겨났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대륙 각지에 「인간」의 씨를 뿌리고, 서서히 종말을 준비했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조급해졌다. 당연한 생존 본능이었다.

지구를 떠난 ‘총사령관’이 보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동쪽 바다에서 시간을 축내고 있을 때-

[오랜만이구나. 레비아탄.]

[……사탄?]

그녀가 균열을 통해 몰래 찾아왔다.

나는 사실 아직도 긴가민가 한다. 내가 그녀를 사랑했던 건지, 그녀가 나에게 「정신 지배」를 걸었던 건지…….

어쨌든, 그렇게 이 비극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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