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98화
26. 레비아탄(3)
[그래서 ‘세이렌’이 있는 곳은 어딥니까.]
난 문어에게 예의를 갖췄다.
뭐, 겁먹은 거 아니냐고? 당연히 그렇다. 원래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존하고, 살아남으려 노력한다. 그게 자연의 이치이니까.
난 절대 그 행동이 쪽팔리지 않았다.
[그분은 판게아 반대쪽 중앙바다에 거주하신다. 아마, 네가 북쪽 바다로 온 거리보다 두어 배 정도는 더 긴 거리일 것이다.]
[꽤나 긴 여행이 되겠군요.]
[아니, 걱정하지 마라.]
[네?]
[한시가 급하다 하지 않았느냐. 여길 보면 된다.]
‘크라켄’이 빛나는 작은 보석을 내밀었다.
이걸 쳐다보라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가 하라는 대로 해봤다.
번쩍-
그리고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보석을 약 5초쯤 쳐다보자, 주변 환경이 서서히 새로운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으니까.
기후와 수온 역시 원래 있던 북쪽 바다와 현저하게 달라졌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았다.
[무슨……. 이건, 도대체 뭡니까.]
나는 당혹스러운 감정을 그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이틀간의 전투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크라켄’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방식과 궤가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한다.
나도 나름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현상들을 보면 아직 어리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괜찮다. 그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고 흡수하면 되는 거니까.
[이곳은 「영혼의 순례길」이다. 앞으로 모든 만남은 이곳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덩치가 큰 우리 종족의 특성상, 직접 만나기보다는 영혼끼리 만나는 방법이 더 편하니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육체를 내버려 두고 의식만 이곳으로 옮겨온 것 같았다.
이런 방식의 모임이 가능하다니. ‘크라켄’은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였다.
난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곳 바다는 따듯하면서도 푸근했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해양 생물이 단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거대한 섬이 하나 떠 있다는 것이다. 그 섬 위에는 생전 처음 보는 두 존재가 있었다.
먼저 보이는 것은 도도하게 생긴 커다란 새.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자가 세이렌. 우리 종족의 ‘왕’이라 불리는 자구나.
‘크라켄’의 첫인상이 연약해 보였던 것에 비해 ‘세이렌’은 확실히 강해 보였다. 감히 싸워보겠다는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다음 ‘세이렌’ 앞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존재는…….
[좀만 기다려라. 먼저 온 손님이 있나 보다.]
‘크라켄’이 그 존재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왜 저러지? 굳이 ‘손님’이라 표현한 것 보면, 일단 우리 종족은 아닌가 보다.
나는 다시 시선을 집중했다.
아니, 시선을 뗄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머리에 자라있는 붉은색 털.
등 뒤에 나 있는 아름다운 뼈날개.
아가미도 비늘도 없는 매끈하고도 자그마한 육체.
생전 처음 보는 신체구조였다. 저건 절대 바닷속에 사는 생물체가 아니었다.
[세이렌이여. 왜 이렇게 답답하게만 구는가. 그대는 정말 종족의 소멸을 원하는 것인가?]
그 존재가 옥구슬 같은 목소리로 의사를 전파했다. 갑갑하고 절절한 감정이 나한테까지 전달되는 것 같았다. 그러자 새가 대답했다.
[그만해요, 총사령관. 테르미노의 뜻에 따르는 게 자연의 섭리인 걸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미련을 버리세요. 이제 우리 세대는 끝났어요.]
[그대는 겁쟁이로군.]
[어차피 막을 수도 없을뿐더러, 더 이상 존재하는 것 또한 욕심이에요. 벌써 2억 년을 넘게 살았잖아요.]
[아니, 막을 수 있다.]
[불가능해요.]
[방법을 찾았다고 하지 않았나!]
총사령관의 일침에 세이렌이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행동이에요. 그의 뜻에 반하는 한 언젠가 더 큰 화로 돌아올 겁니다.]
[하아- 세이렌. 도대체 종족의 멸종보다 더 큰 화가 어디 있다는 거냐?]
무슨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존재는 열을 내며 싸우고 있었다. 물론 내용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직, 그 존재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저 아름답고 예쁜 존재의 이름이 ‘총사령관’이었구나…….
순간,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호기심’일까? ‘식욕’일까?
저 존재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다.
눈앞에 계속 두고 쳐다보고 싶었다. 누군가를 소유하고 싶다는 감정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중에 ‘크라켄’에게 들었다.
이런 감정을 ‘첫사랑’이라 부른다고…….
번식하지 않는 물의 종족에게는 잘 나타나지 않는 감정이라며 신기해하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어쨌든 총사령관, 그녀는 참, 말을 잘했다.
제삼자인 내 입장에서 봤을 때, 왕의 말보다는 그녀의 말이 더 와 닿았다.
세이렌은 불가항력적인 어떤 존재에 대해 그저 순응하는 것 같았고, 총사령관은 맞서 싸우길 원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종족의 생존이 달린 문제인 것 같은데……. 아까도 말했다시피 모든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역시 그녀와 나는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인 것처럼 그녀와 나를 연관시키려 했었다.
어쨌든,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총사령관은 아직도 푸른새와 함께 토론 중이었다.
[세이렌이여.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곧 테르미노가 움직일 거야. 그렇게 되면 되돌릴 수 없어.]
[제 입장은 변함없어요. 가서 그대의 ‘왕’에게도 전해 주세요.]
총사령관은 단호한 새의 모습을 바라보며 탄식을 흘렸다.
그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 이상 설득하기를 포기한 모습이었다.
[결국, 그대들은…… 2억 년 동안의 우정을 단숨에 져버리는구나.]
마침내 새를 등진 총사령관.
먼바다에서 고개를 내밀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떡하지?
[너는…… 처음 보는 물의 종족이구나.]
내가 고민하는 찰나,
그녀가 내 앞으로 날아왔다.
그러자 ‘크라켄’이 진한 먹물을 그녀에게 뿜어냈다.
[헛소리할 거면 돌아가라. 총사령관.]
[성격이 많이 변했구나. 그 온순했던 문어는 어디 가고.]
[이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 네년이 혓바닥을 굴리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
[후우- 걱정하지 마라. 이젠 정말 포기했으니.]
그녀는 그 먹물을 가볍게 피해낸 후 다시 내 앞으로 내려왔다. ‘크라켄’은 두상에 주름을 가득 채우며 살짝 비켜줬다.
순간,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아가미가 벌렁벌렁하기 시작했다.
한 입 거리도 안 될 것 같은 모습의 생명체에게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생각할 찰나-
[그래서 너.]
그녀가 물었다.
[이름이 뭐니?]
다행이었다.
이름이 없었으면 정말, 큰 쪽을 당할 뻔했다.
난 나를 찾아와준 건방진 향유고래에게 감사하며 당당하게 외쳤다.
[저는 ‘레비아탄’입니다!]
그러자, 그녀가 싱그럽게 웃었다.
[참, 용기 있을 것 같은 이름이구나.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지.]
[말조심해라. 총사령관.]
옆에 있던 ‘크라켄’이 빨판을 벌렁거렸다.
아까부터 문어가 거슬렸다. 그녀와 대화하고 있는데 왜 자꾸 옆에서 끼어든단 말인가.
힘만 셌어도 확 씹어먹어 버리는 건데…….
그녀는 ‘크라켄’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나에게 말했다.
[반가웠다. 처음 보는 물의 종족 ‘레비아탄’. 난 불의 종족 총사령관이다. 비록, 그대들의 선택으로 인해 자주 교류하긴 힘들 듯하지만 기회 되면 또 보자꾸나.]
그러고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나는 아쉬웠다. 더 대화하고 싶은데…….
그래서 외쳤다.
물어볼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
[그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그녀가 멈췄다.
그러고는 그대로 말했다.
[내 이름이라……. 후후, 아마 내 예측이 맞다면, 우린 조만간 또 만날 것 같구나.]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차피 ‘크라켄’을 만나고 나서는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으니까. 그저 또 만날 것 같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순례길 밖으로 나가며, 본인의 매력적인 이름을 나에게만 들리도록 전달했다.
[나는 ‘사탄’이라고 한단다. 조만간 연락할 테니 기다리고 있거라.]
***
‘사탄’이 사라지고 ‘크라켄’과 나는 어슬렁어슬렁 육지를 향해 올랐다. 왕 ‘세이렌’을 알현하기 위함이었다.
참 웃기는 일이었다.
이렇게 몸뚱이를 불릴 동안 내 존재가 도대체 뭔지 감도 못 잡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 새를 섬기는 종족이었다니.
[그래요. 레비아탄이라고 했나요?]
왕의 목소리 또한 부드러웠다.
[그렇습니다. 절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대는 물의 종족의 마지막 아이. 미안해요. 더 빨리 찾았어야 했는데 동쪽 바다를 마지막으로 가려다 보니…….]
‘세이렌’은 구구절절하게 날 못 찾았던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북쪽의 ‘크라켄’부터, 서쪽의 ‘메갈로돈’, 남쪽의 ‘다곤’까지 순서대로 찾던 도중 골치 아픈 사건들이 줄줄이 터졌고, 그걸 해결하다 보니 까먹고 있었단다.
세상에 그게 말이 되는가?
들어보니 ‘크라켄’을 찾은 지 1억 년이 넘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바빴으면 그 긴 시간 동안 나를 방치해 둘 수 있는가.
[납득이 안 되는군요.]
[원래 세상이 그렇답니다. 이해 안 되는 것들투성이지요. 그대가 막내다 보니까, 그저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바다를 누비길 바랐어요. 때가 되면 부르려 했지요.]
[그럼 지금이 그때라는 겁니까?]
[그래요. ‘판게아’에는 현재 ‘불의 종족’이 살고 있어요. 그들은 지구와 우주 전 생태계를 파괴할 계획을 꾸미고 있어요. 말은 본인들을 위한다지만, 종국에는 세상의 종말을 가져오게 될 거예요. 이제 그들이 조만간 액션을 취할 겁니다. 우린 그걸 막아야 해요.]
별로 궁금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거슬리면 다 먹어버리면 되니까.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사탄’이 불의 종족 총사령관이랬는데, 그녀와 싸우는 건 전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크라켄.]
[네, 왕이시여.]
[그대는 ‘레비아탄’과 함께 남쪽 바다로 가 ‘다곤’을 만나세요.]
[알겠습니다.]
[나와 ‘메갈로돈’ 역시 곧 그쪽으로 갈 예정이에요.]
왕은 ‘크라켄’에게 각종 명령을 하기 시작했다.
순간, 불안해졌다. 왜 그쪽으로 가야 하는 건가.
보아하니 물의 종족 전부가 한곳에 모이는 것 같은데……. 난 곧바로 질문했다.
[혹시, 불의 종족과 싸우는 겁니까?]
그러자 ‘세이렌’이 웃었다.
[그건 아니에요. 다만 우리 다섯 존재가 반경 50㎞ 내에 함께 있으면 불의 종족은 무슨 수를 써도 우리를 공격할 수 없어요. 그것 때문에 모이는 거랍니다.]
[그…… 게 뭡니까?]
[종족 시너지(Synergy) 효과에요. 물의 종족이 번식이 안 되면서도 강한 이유가 그거예요. 모든 불에 대한 면역 능력이 생기고, 파워가 뻥튀기된답니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그냥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신기하군요. 그럼 결국, 그것 때문에 절 찾은 겁니까?]
[부정할 수는 없겠네요. 불의 종족은 지금 지구의 핵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게 성공하면 ‘레비아탄’도 지금처럼 풍성한 바다에서 더 이상 지낼 수 없을 거예요. 항상 배고프고, 항상 불편하겠죠.]
으음, 그건 싫은데.
내가 고민에 빠져 있자 ‘세이렌’은 다시 ‘크라켄’을 바라봤다.
[크라켄.]
[말씀하십시오.]
[그대는 이동하면서 ‘레비아탄’에게 고유능력 「창조」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세요.]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함께, 다음 세대인 「인간」이란 존재를 만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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