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97화
26. 레비아탄(2)
크라켄.
거대한 문어과의 연체동물로 북쪽 바다를 지배하는 포식자.
웃음이 나왔다.
감히, 나와 붙어보지도 않고 바다를 지배하니 마니 하는 표현을 쓰다니.
나는 자신 있었다.
지금보다 몸뚱이가 훨씬 작을 시절부터, 그 누구에게도 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결심했다. 놈을 만나보기로…….
[북쪽이 어느 방향인지 말해라.]
난 놈에게 방향을 물었다.
그러자 놈이 아가미로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크크, 저기다. 그나저나 겁도 없군. ‘크라켄’께서는 네놈보다 수 배는 더 크고 강하시다.]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날갯짓 한 번에 땅을 가르고, 바다 물살을 쪼갠다.
감히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해놓고선, 내 힘을 판단하다니…….
게다가 아직 싸워본 것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확신한다는 건가.
황당했지만 일단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생전 처음 만나본 소통이 가능한 상대니까.
[그래? 그럼 좋은 별미가 되겠구나.]
경험상 연체동물과는 오묘한 맛이 있다.
쫄깃하면서도 달짝지근한 그 맛. 놈의 설명을 듣자니 꽤나 거대한 놈 같은데, 간만에 배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크크. 허세는.]
[흠……. 보아하니 억지로 내 자존감을 긁는 것 같군. 애송이.]
더 이상 참아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제는 이름도 없는 고작 향유고래 따위. 난 그 자그마한 생물체를 한입에 삼켜 위장 속으로 넣어버렸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생명체를 죽이는 게 아깝지 않냐고? 어휴. 그것도 잠시간의 흥미일 뿐이다.
덩치도 작고, 싸가지도 없는 생물은 딱 먹이다. 절대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
이제 내 신경은 오로지 ‘크라켄’에게 쏠렸다.
나보다 큰 생물체가 이 바다에 존재하고 있었다니.
난 놈이 알려준 방향으로 무작정 항해를 시작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겠다.
해저산맥을 한 다섯 개 정도 넘고, 내 몸집만 한 화산섬도 수십 개를 건넜을까 수온이 점점 차가워졌다.
주변에 있는 생명체들 또한 처음 보는 괴수들과 공룡들이었다.
분명 비슷하지만서도 처음 보는 낯선 바다였다.
[이곳이 북쪽 바다로군.]
그러나 이곳 역시 시시했다.
나름 흉포하게 생겼다 싶은 해양괴수들도 나를 발견한 즉시 굴복하고 도망쳤다.
혼란과 공포.
놈들이 나를 보면 떠올리는 감정들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까지 만났던 놈들 중 가장 컸던 공룡이 겨우 내 지느러미만 했으니.
항상 전투를 원하던 나로서는 동쪽 바다나, 북쪽 바다나 거기서 거기였다.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었다.
분명 이곳에 ‘크라켄’이 살고 있다 했다. 향유고래가 했던 말이 맞다면, 놈은 내 삶에 활력을 넣어줄 것이다.
나는 일단 적당한 크기의 해구(海口)를 찾아 터를 잡았다.
놈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니,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다 먹어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다 보면 나타나겠지.
결과적으로 이곳 생활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항상 배고팠던 동쪽 바다와 달리 먹이가 풍족했다.
이때 알았던 것 같다.
기온이 낮은 해수에는 많은 영양분과 용존산소가 있어 더욱 다양한 어종이 살고 있다는 것을.
그렇게 몇 년간 북쪽 바다에서 깽판 치며 지냈다.
난 내 몸뚱이를 한 번 둘러다 봤다.
동쪽에 있을 때보다 훨씬 비대해진 몸통이 참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먹으면 먹을수록,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힘이 강해져 갔다.
나는 점점 이곳 생활이 마음에 들어갔다.
온도도 딱 좋았고, 예전처럼 배고플 일도 없었으니까. 진즉에 이곳에 왔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안락한 생활을 이어갈 찰나였다.
쿠구구구-
바다 전체를 울리는 거대한 진동이 밀려왔다. 나름 익숙하다면 익숙한 소리였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소리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해구에 몸을 눕혀 휴식을 취하고 있는 상태인데?
[여기 있었구나. 드디어 찾았다.]
순간, 꽤나 멋들어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때가 두 번째였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생물을 만난 것이.
난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보이는 거대한 몸집의 오징어, 아니, 문어가 보였다. 아, 저게 향유고래가 말했던 놈이구나.
[네놈이 ‘크라켄’이냐?]
확실히 대단했다.
최근 들어 부쩍 커다래진 몸뚱이임에도 내 사이즈보다 약 1.5배 정도 더 큰 어마어마한 녀석이었다.
[네놈이라니……. 버릇없는 아이구나.]
[아이?, 내 이름은 ‘레비아탄’이다.]
[그래. 레비아탄. 동쪽에 있는 줄 알았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 이곳까지 왔느냐. 너 때문에 괜한 바다만 뒤적거리느냐 시간을 소모했다.]
크라켄이 거대한 다리를 꿈틀거리며 말했다.
보아하니, 날 찾으러 동쪽 바다를 샅샅이 뒤지고 온 것 같았다.
이때 난, 그것이 시비를 거는 건 줄 알았다.
생각해 봐라. 서로 안면도 없던 사이인데, 날 찾는 이유라면?
호적수 찾기.
놈의 생각도 나와 똑같은 것이다.
오랜 기간 상대할 만한 존재가 없으니 점점 지쳐갔겠지.
난 놈의 의지를 받아 곧바로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무슨 바람이 불긴, 북쪽 바다에 ‘크라켄’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왔다.]
[날, 알고 있었느냐.]
[그렇다. 북쪽 바다에 맛있는 식사 거리가 있다는 소문이 들려서 말이지.]
난 곧바로 도발했다.
‘크라켄’은 덩치만 컸지. 정말 연약해 보였다.
앙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이빨을 제외하곤 위협적인 부분이 없었다.
그에 비해 나는 온 비늘이 칼이며, 뿔과 발톱, 이빨까지 가지고 있다. 확실히 승산은 있었다.
[아이야. 난 너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우리의 왕 ‘세이렌’께서 찾으신다. 널 그분께 인도하기 위해 온 것이야.]
[‘세이렌’은 또 누구냐. 수작 부리지 마라.]
놈이 갑자기 생뚱맞은 소리를 했다.
게다가 왕이라니?
난 그런 존재를 모셔본 적도 없고, 모실 이유도 없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없었으니까. 난 기세등등하게 날개를 치켜세웠다.
[싸우러 왔으면 덤벼라. 크라켄.]
[후우, 이거 말이 안 통하는군. 그래. 다 내 잘못이지.]
난 놈의 말을 듣고 확신했다. 역시 놈은 약하다고…….
아까부터 지금까지 걸어오는 싸움을 피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다짐했다. 이놈을 먹고 진정한 포식자로 거듭나는 거야.
내 전투준비에도 ‘크라켄’은 꿋꿋하게 말을 이었다.
[너는 ‘물의 종족’ 최후의 막내. 우리는 파괴와 포식을 일삼는 종족이 아니다. 창조의 임무를 받고 태어난 종족. 왕을 뵈러 가자. 그러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물의 종족’이라?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말이군. 내 눈엔 싸움을 회피하려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전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바, 놀아주고 싶다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급하다. 가장 마지막에 태어난 너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수작은 내가 아니라 ‘불의 종족’이 꾸미고 있거든.]
[웃기는 변명이군. 급한데 왜 볼일 보지 않고, 날 찾아왔느냐.]
[네가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다.]
난 놈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생각해 봐라. 내가 느끼기엔 억겁의 시간이었다. 아마 수천 년은 흘렀을 것이다.
그동안, 얼굴 한번 비추지 않다가 갑자기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내가 필요하다고?
내 생각엔 ‘크라켄’은 그저 겁쟁이일 뿐이다.
[꼴사납구나. 더 듣기 싫다. 너를 잡아먹은 후 ‘세이렌’ 역시 먹으러 갈 것이다.]
[후우……. 완전 비뚤게 자랐구나.]
난 그의 말을 끝으로 ‘크라켄’에게 돌진했고, 그렇게 내 인생 최대의 전투가 시작됐다.
***
아마 이틀 정도 꼬박 싸운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그때 난 완벽히 패했다.
‘크라켄’은 강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약했다.
처음이었다.
싸움이란 방식이 덩치를 앞세워 뭉개버리거나 일방적으로 물어뜯고 포식하는 것만 있는 줄 알았지, 저런 방식으로 싸울 수 있는지 안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크라켄’은 전투 중에 계속 무언가를 ‘창조’했다.
빨판 사이사이마다 날카로운 발톱을 생성하기도 하고, 내가 공격하는 곳마다 단단한 방패를 만들어 내니 당해낼 방법이 없었다.
찔린다는 감각.
살점이 뜯겨 나가는 감각.
강한 압력에 온몸이 터져나갈 것 같은 느낌.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각들이었다.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날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단 것을 알았다.
‘크라켄’은 나와 달리 인자했다.
날 완벽히 제압하고도 죽이지 않았다. 그저 설득했다.
‘세이렌’을 만나러 가자고.
그래서 그때 알았다. 아까부터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난 고분고분하게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
[잠깐만 쉬었다 갈까요?]
순간, 정신이 번뜩였다.
다시 주변이 지구 위 우주로 바뀌었고, 옆에는 고고한 새가 떠 있었다.
그래. 난 ‘레비아탄’이 아니라 ‘강 현’이었지.
대단한 경험이었다. 마치 그의 인생을 산 것처럼, 그 당시 그가 느꼈던 감정과 시간까지 순식간에 전달되었다.
왜, ‘크라켄’이 위험하다고 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내 나이 해봐야 이제 31살.
그러나 지금까지 느꼈던 시간은 그 수십 배가 넘는다.
잘못하다간, 정말 내 존재 자체를 잊어버릴 수 있겠구나 싶었다.
[너무 몰입하지 마세요. 육체조차 없는 상태에서 잘못하다간 소멸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세이렌’ 입니까?]
[맞아요. 그대들의 정보에 따르면 말이죠.]
솔직히 지금까지 봤던 장면은 별거 없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게 있다면 ‘크라켄’이 상상 이상보다 강했다는 것?
보여지는 게 맞다면, 그때 크라켄과 레비아탄의 결투는 분명히 군단장급 이상이었다.
[‘크라켄’이 생각보다 강해서 놀랐나요?]
[사실, 그렇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크라켄’은 심해 속에 틀어박혀 있었거든요.]
[대전쟁 때 힘을 많이 써서 그래요. 아마 지금도 회복 중일 거예요. 사실 ‘물의 종족’이 ‘불의 종족’보다 월등히 강한 데는 별다른 이유가 없어요.]
[그게 뭡니까?]
[번식이 가능한 불의 종족과 달리, 물의 종족은 총 다섯 존재밖에 없거든요.]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어쩐지, 지구에서 ‘크라켄’ 말고 ‘물의 종족’에 대해 조사해 봐도 흔적조차 나오지 않았었다.
그런데 고작, 다섯이서 그 수많은 ‘불의 종족’을 상대했다고?
[왕, 푸른 새 ‘세이렌’]
[북쪽의 문어 ‘크라켄’]
[남쪽의 반신반어 ‘다곤’]
[서쪽의 상어 ‘메갈로돈’]
[동쪽의 뱀 ‘레비아탄’]
세이렌은 물의 종족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해 줬다.
현재는 문어만 지구에 살아 있고, 나머지는 전부 「아베르노」에 봉인되어 있다고 한다.
순간, 예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레비아탄은 정보주입의 대가로 크라켄을 죽여달라고 한 겁니까? 둘이 싸우고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겁니까?]
그러자, 세이렌의 부리가 살짝 비틀렸다. 아무래도 미소 짓는 것 같았다.
[이제 많이 쉰 것 같네요. 다시 들어가도 될 것 같아요.]
[……아니, 그전에 제 질문은?]
[이제 곧 아시게 될 거예요. 자, 레비아탄이 절 만난 부분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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