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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96화 (96/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96화

26. 레비아탄(1)

시야가 번쩍였다.

아무래도 레비아탄의 기억 전송이 시작된 것 같았다.

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심해에서 크라켄이 경고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너희들의 정신력이 한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소통 방식은 인간과 다르게 고차원적이다. 내가 알려주려 해도 너희가 본능적으로 거부하겠지. 거부하지 않고 수억 년에 걸친 정보를 억지로 받아들이는 순간, 고작 100년도 살지 못한 너희는 존재 자체를 잊어버릴 것이다. 아마 정신이 붕괴되고 말겠지.]

크라켄이 과거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도 말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사실, 조금은 걱정했었다.

레비아탄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순간 미쳐버리면 어떡하지? 크라켄의 말대로 정신이 붕괴된다면?

그러나 믿기로 했다.

자격이 있으니 알려주겠다고 하는 거겠지. 레비아탄 또한 물의 종족이고, 그들도 내 기억을 읽을 수 있다면 알 것이다. 적의 적은 동료라는 것을…….

게다가 불의 종족과 척 지고 있는 상황에서 날 해할 리 없다.

또한, 분명 레비아탄도 나에게 원하는 조건이 있었다. 문어를 죽이는 것.

이해는 가지 않지만, 그것 때문이라도 안전은 어느 정도 보장될 것이다.

감정이 복잡해졌다.

혼란스러움 50%, 그리고 기대감 50%.

레비아탄은 정보 주입이 끝나는 즉시,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 했다.

그 말은 놈들의 과거와 인류 비극의 원인까지 전부 알 수 있다는 말.

드디어 그 첫 단추가 어떻게 끼워진 건지 볼 수 있는 것이다.

난 재빠르게 주변을 확인했다.

그것과 별개로 이질감 또한 느껴졌다. 시야는 확실히 보이는데 내 육체가 보이지 않는다.

[이게 뭐지?]

어, 대화가 된다.

분명히 육체는 보이지 않는데, 내 의식의 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진다.

성대를 통해서 말하는 것이 아닌 마치, 군단장급들이 말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겪어 보는 느낌에 신기했다.

[아…….]

사실, 이 상황을 명확히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주변을 보고 추측할 수는 있었다.

[이것은…….]

주변은 우주였다.

광활하지 않은 작은 우주.

오직, 커다랗고 아름다운 지구만 보였다. 인공위성에서 직접 내려다보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그런데 지구의 모습이 내가 알던 모습과 확실히 달랐다. 7개의 대륙으로 나누어진 모습이 아닌, 하나의 대륙으로 뭉쳐 있는 육지.

[판게아, 지구의 과거……. 그렇다면 이곳은 레비아탄의 기억 속이겠네.]

물론 판게아 말고도 초대륙은 많았다.

발바라(Vaalbara)도 있고, 우르(Ur)도 있고, 판노티아(Pannotia)도 있고…….

그러나 지구를 보는 순간 직감으로 알았다. 저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약 3억 년 전의 판게아(Pangaea)라는 것을…….

사실, 기억이란 게 청각, 시각, 후각, 촉각 등 여러 가지 감각을 통해 뇌에 저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남들에게 전달할 때 이것을 고작 언어로밖에 전달하지 못한다.

이렇든 근사한 장면과 초감각까지 동원하여 보여주는 물의 종족들과 다르게 말이다.

[확실히 대단하군.]

감탄하기가 무섭게,

전방에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쿠구구구구!

[저건 또 뭐지?]

가공할 속도로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균열에서 봤던 익숙한 모습.

지금까지 상대했던 허접한 괴수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 육체가 없는 의식일 뿐임에도 그 존재는 나를 향해 정확히 날아오고 있었다.

[허억, 저것은…….]

푸른빛의 고고한 새.

불의 왕과 치열한 혈투를 벌였던 물의 종족의 수장. 전신을 사파이어로 치장한 것 같은 아름다운 모습의 푸른 새였다.

그 존재는 내 시야 한가운데 멈춘 후 나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내 육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반가워요. 그대여. 오래 기다려왔어요.]

의외로 부드러운 목소리여서 놀랐다.

그것도 인간 여성의 목소리.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습니까?]

새에겐 좋은 이미지가 남아 있었다.

인류가 모르는 공간에서 불의 종족과 맞서 싸웠던 존재.

약 6,600만 년 전 지구를 지켰다는 수호신.

그런 존재 역시 죽은 후,

「아베르노」에 온 것이다.

[그럼요. 그 균열 속으로 불렀던 게 저인걸요. 언젠가 이곳에 올 줄 알고 있었어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딱 제가 죽기 직전, 10년 후 발동되는 소환술을 무작위로 걸었었어요. 아마, 그대들을 특정하는 마법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저, 원래 죽을 운명이었던 두 영혼을 부르는 마법이었거든요.]

새가 죽기 전이라…….

순간, 선소연과 함께 발견했던 ‘일기장’이 떠올랐다.

불의 종족의 침공이 다가오면 이 균열에 틈이 생길 거라 했던 내용.

그 틈에 들어갔던 자는 일기장의 주인이었던 ‘은주 아빠’뿐이었고, 사실 우린 마법에 의해 불려온 거였다니.

새는 왜 그런 마법을 걸었을까.

불의 왕과 최후의 전투 후, 그 결정체를 인간들이 회수하기라도 바란 것이었을까.

[아마 그곳으로 불려가기 전, 모종의 이후로 죽기 전이셨을 거예요.]

[그건, 맞습니다.]

선소연과 함께 떨어져 죽기 직전이었으니까. 그때가 딱 푸른 새가 죽은 지 10년째 되는 날이었을 거다. 덕분에 우린 그곳에 빠졌고, 저승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의 종족이 흩어진 이상, 지구를 지킬 방법은 그것뿐이었어요. 그 공간에 결정체를 그대로 남겨두는 순간, 총사령관 그녀의 계획대로 되는 거였거든요. 물의 종족이 없는 지구에서 인류에게 힘을 실어줄 방법을 찾다 보니 어쩔 수 없었어요.]

[이해합니다.]

뭐든 상관없었다.

아니, 혹여 그 자리에 그냥 떨어져 죽었다면, 내 운명은 더 비참했을 것이다.

그저 저승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살다가 불의 종족을 위한 에너지로 화했을 테니까.

오히려 인류는 목숨까지 걸어가며, 포기하지 않고 전투를 벌였던 푸른 새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나저나, 이곳은 레비아탄의 기억 속 아닙니까? 그쪽은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물의 종족 전원은 지금, 놈들에 의해 봉인되어 있어요. 저도 그렇고, 레비아탄도 그렇고…….]

역시나였다.

이곳에서도 불의 종족과 물의 종족은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저승에서의 싸움은 불의 종족이 이긴 것 같았다.

입구에 들어갔을 때 보이는 놈들이 온통 빨간 놈들뿐이었으니까.

[저도 온 지 10년밖에 안 돼서 잘 모르지만, 이곳 「아베르노」의 모든 시스템을 레비아탄이 만들었다 하더라고요. 그 아이가 간섭 채널을 만드는 바람에, 불의 종족 몰래 의식으로만 모일 수 있게 됐답니다. 자세한 건, 곧 아실 수 있을 거예요.]

또 그 소리.

왜 크라켄을 죽여야 하는지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조급해하지 말아요.]

푸른 새의 부리가 이상하게 미소 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대의 의식은 곧 있으면 레비아탄의 과거로 들어갈 거예요. 다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너무 몰입하면 먹힐 수 있거든요.]

[먹힌다구요? 뭐, 내가 레비아탄인지, 레비아탄이 나인지 모르는 상태라도 된다는 겁니까?]

[비슷해요. 그러나, 걱정 마세요. 제가 중간중간, 도움을 드릴게요.]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면 알겠군요.]

[좋은 자세에요.]

푸른 새가 싱그러운 웃음을 지었다.

나 역시 보이는 시야를 상하로 끄덕였다. 겨우 그런 거에 발을 뺄 거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그럼 시작할게요.]

순간, 의식이 판게아 대륙 구석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줌인을 땅기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말이다.

***

나는 누구일까.

언제부터 존재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굳이 물어본다면 그냥 있었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다.

물론 떠오르는 건 있었다.

나는 항상 배가 고팠고, 갈증이 일었었다. 보이는 것은 뭐든지 잡아먹고 싶었다.

그리고, 난 그것을 행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끝이 없는 바닷속에서 날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강력한 뿔과 이빨.

날카로운 비늘과 날개.

총 3,300척은 되어 보이는 몸의 길이.

일단, 나보다 큰 몸집을 가지고 있는 생물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작은 생물들로 배가 차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바다를 항해하며 얼마나 많은 생물을 잡아먹었는지 기억도 안 날 즈음에, 누군가의 의식이 흘러들어왔다.

[강한 상대구나. 싸워보자.]

엄청난 투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그 투기보다는 다른 것이 흥미로웠다.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

그 두 가지 전부를 할 수 있는 존재는 여태껏 그 오랜 기간 바닷속을 거닐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 말고는…….

나는 호기심에 생전 처음으로 의사를 사방에 퍼트리기 시작했다.

[너는 누구냐. 이 세상에 대화를 할 수 있는 존재가 나 말고도 또 있었다니.]

반가웠다.

반가우면서도 흥분했다.

시시했던 일상 속에서 드디어 상대를 좀 해볼 만한 존재를 찾은 것 같아서.

[난 리비아탄 멜빌레이다. 그대가 이곳 생태계를 파괴하고 다닌단 소식을 듣고 왔지.]

[리비아탄이라…….]

이름.

본인의 존재를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

순간, 부러웠다.

누군가와 대화를 처음 해보는 나에겐, 그가 가진 것 하나하나가 전부 탐났다.

나는 그의 생김새를 보고 싶었다.

‘리비아탄’이란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는 어떤 위용의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

혹시 나 같은 건 한 입 거리로 취급할 만큼 거대한 녀석일까?

음, 그럼 안 되는데…….

아니다. 그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았다. 힘겨운 상대일수록 싸울 맛도 날 것 같고, 사실 슬슬 반복되는 삶에 흥미가 떨어지고 있었으니까.

[너는 어디에 있지?]

[그대 아래에 있다.]

[내 아래?]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빠르게 스캔했다.

[설마…….]

저건 아니겠지?

비늘 밑에 보이는 자그마한 향유고래의 모습.

내가 상상했던 리비아탄의 모습이 아니었다. 더 웅장하고, 더 먹음직스러운 놈이길 바랐는데…….

분명 다른 생물들에 비해서 크긴 컸다.

그런데 그뿐이었다. 내 앞에선 그저 한 끼 식사감도 안 되는 크기였으니까.

[리비아탄? 실망스러운 크기구나.]

[무시하지 마라. 싸움에 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응. 중요하다.]

난 곧바로 배의 비늘을 내려 놈에게 찔러넣었다. 봐줄 것 없었다. 놈의 말이 맞다면 이 정도 공격은 쉽게 피할 것이기에…….

그리고 역시는 역시였다.

투기에 비해, 놈은 정말 약했다.

이빨도, 뿔도 아닌 고작 비늘질 한 번에 시뻘건 피를 철철 흘리며 꽂혀 있었으니까.

[크…… 크윽…….]

놈은 정말 자살이라도 하러 온 것일까.

되지도 않는 힘을 가지고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기도 쉽지 않은데…….

[고작,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고, 이름도 가지고 있다니……. 황당하구나.]

[역시, 강…… 하다.]

[너는 약해. 그리고 가지면 안 될 것 또한 가졌다.]

[……무얼 말이냐.]

[이름.]

감히 미천한 먹이 주제에 나도 없는 이름을 가질 순 없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오늘부터 그 이름을 내가 가져오기로.

배고프면 먹는 것처럼,

원하는 것이 있으면 뺏으면 되는 거니까.

[이제부터 내 이름은 ‘레비아탄’이다.]

[크…… 크흐……. 웃기는군. 마음대로 해라. 그래도 놀라웠다. 동쪽 바다에도 이런 강자가 살고 있다니.]

[동쪽 바다는 또 무엇이냐.]

바다가 바다지, 무슨 또 구역을 나눈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이렇게 커다란 바다를 다 가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대는 아직 진짜를 만나보지 못한 어린애일 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제 곧 죽어가는 약한 놈이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비늘을 뽑은 후, 물과 함께 삼켜버리고 싶었지만, 일단은 더 들어보기로 했다.

[난 북쪽 바다 출신. 그쪽엔 ‘크라켄’ 님이 살고 있지. 아마, 그대 수백 마리가 덤벼도 그분은 못 이길 것이다.]

[……크라켄이라?]

지쳐가던 나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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