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94화
25. 아베르노(2)
나는 5영혼석 두 개를 들고 주변 빈 쉘터로 이동했다. 그리고 하루 동안 휴식했다.
휴식의 이유는 별거 없었다. 「구사일생」의 사용시간을 충전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는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만 움직일 생각이었다.
방심했다가 어떤 꼴을 당했는지 떠올려보면 아직도 등골이 오싹했다.
놈들을 죽인 후,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굳이 벽을 타고 오르지 않아도 됐다. 지정해 뒀던 ‘구덩이’로 다시 텔레포트 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24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구사일생」의 사용시간이 초기화됩니다.]
[「텔레포트」의 사용시간이 초기화됩니다.]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직접 몸으로 부딪쳐 보는 것.
나는 곧바로 고양이 상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상점에 온걸 환영한다. 뭐가 필요하냐 인간.]
“VIP 상점에서 「군단장의 심장」과 「아베르노 초대권」을 구매하겠다.”
내 말에 고양이가 놀란 눈빛을 했다.
[5영혼석을 구해왔군. 대단하다 인간.]
“잔말 말고 빨리 줘.”
난 5영혼석 2개를 그대로 던지며 말했다. 영혼석은 고양이 앞에서 스르르- 녹아내렸다.
[이 영혼석이면 4영혼석 1,999,998개로 교환이 가능할 텐데, 그대는 진정 「아베르노」로 갈 생각인가?]
“그래. 이제 영혼석은 필요 없다.”
내 대답에 고양이가 신묘한 빛을 냈다.
[좋다. 조건이 충족되었다. 다만, 초대권을 구매할 시 곧바로 문이 열리기 때문에 심장부터 구매할 것을 추천한다.]
“문이 열린다고?”
[그렇다. 문이 열리면 초대권을 가진 자는 그 즉시 「아베르노」로 소환된다. 그 후 다시는 이곳으로 내려올 수 없다.]
알아서 불러준다니…….
「아베르노」에 가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어쨌든, 고양이가 하는 말은 볼일 볼 거 있으면 다 보고 초대권을 구매하란 말이었다.
“좋아. 그럼 심장부터 내놔.”
[좋은 선택이다.]
고양이는 「군단장의 심장」부터 건네주었다.
허공에 생성되는 사람만 한 크기의 바위. 그때 균열에서 골렘이 꺼냈던 핵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부수면 흡수되는 거였나?”
골렘도 그렇고, 5군단장도 그렇고 핵을 부쉈을 때 탈피했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나는 곧바로 주먹을 뻗어 심장을 터뜨렸다.
부스스- 하며 사라지는 돌덩이. 곧이어 몸 안으로 콸콸 쏟아지는 군단장의 기운이 느껴졌다.
4차 탈피가 시작된 것이다.
심장 주인의 고유능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알 수 있겠지.
탈피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몸속 곳곳에서 날뛰던 기운들이 다시금 심장 속으로 자리 잡았고, 천천히 안정되어갔다. 고통도 없었다. 그저, 불의 능력의 한계가 조금 더 뚫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애초에 지구에서 이 힘을 쓰는 자가 나밖에 없다 보니 수준이 얼마나 상승했는지는 모르겠다.
여태껏 군단장급을 제외하고는 격에 맞는 상대를 만나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당장 선소연과 비교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참 막연했다.
뭐, 「아베르노」로 가보면 알겠지…….
“자, 이제 문을 열어라. 「아베르노」로 가겠다.”
[알겠다. 상위 차원으로 향하는 인간. 그대의 무운을 빈다.]
쿠르르-
고양이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하늘이 번쩍이며 시뻘겋게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주변은 금방 어둑해졌으며 인위적이었던 구름이 둥근 회오리를 만들어 냈다.
“저게 뭐지?”
[문이다. 기다려라.]
문이 저렇게 직접적으로 열리는 거였다니.
아무래도 각 상점마다 문이 있고, 고양이들이 「아베르노」의 문지기인 것 같았다.
[「아베르노」에 가기 전 그대에게 묶여 있는 영혼의 결속을 풀겠다.]
“영혼의 결속?”
[그대는 ‘생령’, 지구에 이어져 있는 끈이 있다. 그것을 끊어내지 않으면 「아베르노」에 갈 수 없다.]
“그런가?”
지구에 이어져 있는 끈이라…….
원래 살아 있던 걸 죽이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혹시, 선소연과의 감각 공유를 말하는 건가?
사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물어보려 해봐도 고양이의 진지한 표정과 바쁘게 움직이는 기운에 쉽사리 말을 걸 수 없었다.
[이제 되었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고양이의 말과 함께 소용돌이의 중앙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나를 비췄다.
곧이어 둥실둥실 떠오르는 몸. 그 빛은 마치 UFO라도 되듯이 날 끌어당겼다.
호리병 모양이랬으니까, 위로 끌고 올라가는 건가?
일단, 몸에 힘을 풀고 빛의 의도대로 따라줬다. 만약 위험한 공간이라면 「구사일생」이 발동할 테니까 걱정은 없었다.
그럼에도 정신은 바짝 차렸다.
몸은 계속 천천히 올라갔고 소용돌이의 핵까지 올라가자마자 시야가 암전됐다.
***
같은 시각.
선소연이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았다.
“크윽.”
가벼운 통증과 함께 무언가 쑤욱-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불쾌했다. 마치 가슴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해졌다.
‘불안해.’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잠깐 느꼈던 감각은 분명 그동안 발동하지 않았던 감각 공유였다.
‘오빠한테 무슨 일이 생겼나?’
집에 있었던 그녀는 곧바로 KH 단장실로 이동했다. 급하게 문을 열어젖히고 침대를 확인한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철렁했다.
손나연의 육체가 거의 90%까지 투명해져 있었고, 오빠의 육체는…….
“……사라졌어.”
침대 위에 떨어져 있는 모래 부스러기.
갈 곳을 잃은 물방울.
그의 육체가 완전히 부스러져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긴급하게 휴대전화를 찾았다. 긴급 소집을 하기 위함이었다.
***
앞으로도 뒤로도, 시커먼 어둠뿐이었다.
망막에 불을 지펴봐도 시야엔 제대로 된 풍광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빛이 없어서 보이지 않는다기보단, 진짜 아무것도 없는 공간인 것이다.
그러나 길은 있었다.
발 디딜 곳이 있고, 중력도 느껴진다. 난 내 기감(氣感)에 의존하여 앞으로 걸어나갔다.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속이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순간, 조급해져 걸음을 빨리했다.
머릿속에 잡생각들이 소용돌이치듯 떠오르기 시작했다.
혹시 함정이면 어쩌지?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죽을 때까지 갇혀 있는 거라면?
길 끝에 ‘하얀 용암’이 있는 게 아닐까?
걱정 속에서도 계속 걸었다.
걷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앞에 무언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예 주변에 불을 피우고 다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문이군.”
특수 금속으로 된 거대한 문이었다.
자세히 보니 예전 크라켄이 만들어줬던 무기와 비슷한 성질이다.
이 금속.
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크라켄이 전력을 다했을 때도 분명 조그마한 무기와 목걸이 하나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금속이라니, 그것도 고작 문 따위에…….
이 속에 있는 존재들이 얼마나 굉장할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어떻게 여는 거지?”
여닫이문인지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는 손잡이가 보였고, 난 그것을 잡고 힘차게 밀었다.
그러자 쿠구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환한 빛이 나를 비췄다.
순간 엄청난 기운이 전신을 압박했다. 한 곳에서 느껴지는 게 아니었다.
상하좌우, 방방곡곡에서 날 지켜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그 시선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왔다.
[간만에, 그곳을 나온 인간이 나타났군.]
[어떻게 인간 따위가 그곳을 나오지?]
[가끔 있었다. 보통 몇백 년에 한 명씩 나오지.]
[뱀이 허술하게 만들었나 보군. 새가 만들면 완벽하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새는 힘을 잃었지 않나. 그나마 창조에 일가견 있는 문어도 아직 이곳으로 오지 못했고.]
[그건 그렇지. 그럼 저런 놈들은 어떻게 처리하나?]
[그냥 죽이면 된다.]
여러 가지 정보들이 머릿속에 물밀듯이 밀려왔다.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놈들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
난 힘겹게 눈을 떠 전방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괴상하게 생긴 붉은 괴물들 수천 마리가 바닥, 그리고 허공에 떠 있었다.
도마뱀 모양의 괴물도 있었고, 익룡 모양의 새도 있었다. 마치 공룡시대를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주변 광경도 아름다웠다.
커다란 숲과 뜨거운 햇살. 한눈에 담기지도 않을 만큼 커다란 호수.
저게 전부 다 인간의 영혼 에너지로 만들어지는 거겠지…….
그리고 자세히 보니 친숙한 기운이었다.
내 심장 속에 자리 잡은 기운과 비슷했다.
그렇다.
이들 전부 불의 종족들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곳이 불의 종족 본거지라도 된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굳이 총사령관이 본진을 노출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그럼 다들 협공할까?]
[고작 인간 따위에게 협공이라니 불의 종족으로서 자부심도 없단 말인가.]
놈들 중 뿔 세 개 달린 커다란 익룡이 앞으로 나섰다.
[나에게 맡겨라.]
그러고는 힘찬 날갯짓으로 나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전체의 기운은 숨 막힐 정도로 막강했지만, 개개인 하나를 따지고 봤을 땐 ‘글쎄올시다.’ 였다. 해봐야 군단장 정도? 아니 군단장에 살짝 못 미치는, 그래. 오익마 정도였다.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난 속에 있는 불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무…… 무슨?]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피어오른 불꽃이 순식간에 놈의 육체를 소멸시켰다.
비명도 없었다. 그저 이 공간에 없었다는 듯 흔적조차 남지 않고 사라졌다.
그야말로 4차 탈피에 걸맞은 힘이자 속도였다.
[저, 저건 왕의 힘이 아닌가.]
[어찌 인간 따위가 왕의 힘을?]
놈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인간 따위의 힘을 한 번 보여주마.”
이제 부딪쳐야 할 때다.
「아베르노」에 서식하면서 인간의 영혼을 자기들 멋대로 에너지로 만드는 놈들이다.
게다가 지구를 침공하고 있는 ‘불의 종족’이라니 말 다 했다. 놈들은 인류의 적이자 기생충이다.
난 온몸의 힘을 집중했다.
골렘의 이미지를 형상화할 생각이었다. 균열에서 만났던 그 골렘과 똑같은 크기의 모습으로.
기운이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3차 탈피 때 담겼던 기운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제 자리 잡은 힘의 50%는 넘게 쓸 수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고 오 오 오-
붉은 골렘이 주먹을 들고 포효했다.
그 막대한 에너지에 공간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된다! 인간이 낼 수 있는 힘이 아냐!]
[저 모습은 뭐지?]
[다들 피해!]
역시, 놈들은 약했다.
난 사방팔방으로 도망치는 각종 괴물들을 향해 골렘의 주먹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내 모습이다.]
[구…… 구 5군단장님?]
내가 만든 골렘과 똑같은 크기의 외형.
수천 마리의 괴물들을 압도하는 산만 한 크기의 존재.
그래. 그놈이었다. 균열에서 봤던 골렘. 그렇다면 이곳은…….
[오랜만이다. 인간.]
제기랄. 놈들의 사후세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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