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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93화 (93/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93화

25. 아베르노(1)

1분은 금방 흘러갔다.

시야는 다시 밝아졌고, 앞에는 오연하게 서 있는 두 마리의 오익마가 보였다.

모든 악마들의 정점.

기록엔 환생을 시켜주는 신이라 표현되어 있는 이들. 그러나 실상은 군단장보다 약한 괴물이었다.

진짜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뭐라 부를 말이 없어 ‘하얀 용암’이라 이름 붙인 에너지의 응집체.

다행히도, 그 기운이 느껴지는 원형 홀은 완벽하게 닫혀 있었다.

역시 이번에도 ‘기록사’가 틀렸다.

분명 안이슬이 말하길, 처음 들어가면 오익마와 대화를 나눈 후에 환생할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대화는커녕 놈들은 다짜고짜 나를 죽이려 했다. 그것도 무지막지한 무기를 써가며…….

사실, 그게 정확한 기록일 수가 없었다.

만약 놈들이 매번 이렇게 인간이 들어올 때마다 ‘하얀 용암’을 이용해 죽이려고 시도했다면, 그 누구도 살아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생존한 자가 없는데 기록이 있을 수는 없는 법. 정보가 와전되었거나, 의도적으로 조작된 것이다.

난 한숨을 내쉬고 조용히 몸 상태를 확인했다.

「구사일생」은 내 몸을 완전하게 회복시켰다.

마치 구덩이에 뛰어들기 전으로 시간이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확실히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스킬이었다.

놈들은 가만히 서서 몸 상태를 확인하는 날 물끄러미 쳐다봤다. 화났다기보다는 흥미롭다는 표정이었다.

“인간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뱀이 장난을 친 모양이군.”

“이제 어떡하지? 오늘 그곳은 더 이상 열지 못한다.”

“나한테 맡겨라.”

“어쩌려고. 이곳까지 온 인간이야. 보통 놈이 아닐 것이다.”

“흥. 그래 봐야 인간일 뿐이야.”

난 놈들이 하는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가 놈들의 언어를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놈 중 하나가 ‘쿵’ 소리를 내며 내 앞으로 나섰다. 모든 악마가 그렇듯 놈도 창을 들고 있었는데, 확실히 다른 악마들과 다르긴 했다.

사익마 이하의 악마들은 무조건 무기부터 들이밀고 보는데, 요놈은 그렇지 않았다.

놈은 거체를 잠깐 멈칫하더니 창을 세우고 대화를 시도했다. 본인들끼리 내는 목소리가 아닌, 군단장들이 사용하던 방식의 언어였다.

[인간, 들리는가.]

난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이 대화할 의도가 있다면, 다짜고짜 잡는 것보단 좀 더 들어보는 게 나을 거란 판단이었다.

[보아하니 「기억의 목걸이」를 가지고 있군. 그렇다는 건 환생을 원하는 것인가?]

내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

사용법을 몰라 방치해 둔 VIP 상점 아이템이었다. 난 처음으로 놈들에게 입을 열었다.

“이 목걸이의 사용법을 아나?”

놈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안타깝게도 환생은 저승에서의 기억을 가지고 갈 수 없다. 그것이 이 세계의 법칙. 그것을 나에게 넘기면 그대의 기억을 목걸이에 담아주겠다. 하면, 후에 다시 이곳에 돌아왔을 때 자연스럽게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환생이라.”

놈이 환생을 이야기한다.

들어오자마자 죽이려고 해놓고선 갑자기 이게 무슨 수작일까.

[환생은 곧 영혼의 성장이다. 그대의 격은 반복되는 환생을 통해 올라갈 것이며…….]

“아까 그건 뭐지? 날 공격했던 거.”

난 놈의 헛소리를 끊었다.

어차피 환생할 생각은 없다.

그것보단, 아까 전 그 ‘하얀 용암’의 정체에 대해서 들어야겠다.

문이 닫혀 있음에도, 그 막강한 기운이 아직까지 온몸을 짓누르는 게 계속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놈은 잠깐 멈칫한 후, 한참이나 침묵을 지켰다.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을 텐데,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건 분명 꿍꿍이가 있다는 것.

시간이 흐르자 놈의 의식이 천천히 흘러들어온다.

[……그곳은 환생을 위한 통로. 오늘은 닫혔고, 내일 다시 열어주겠다.]

환생을 위한 통로라…….

짧은 시간 치고, 제법 그럴듯한 거짓말이었다. 만약 그게 사실이었다면, 「구사일생」이 활성화되었을 리 없다.

놈은 환생을 핑계로 날 다시 ‘하얀 용암’ 속에 빠트려 죽이려 하고 있었다.

아까 훌륭한 에너지원이니 뭐니 하는 걸 들었으니 분명하다.

도대체 저들은 왜 나를 죽이려 하는 걸까?

그것도 굳이 저 이상한 공간에 빠트려서 죽이려는 것 같은데…….

아니, 그전에…… 정말 환생은 있는 걸까?

만약 환생이 없다면 「기억의 목걸이」는 그저 낚시를 위한 가짜 아이템인 것일까?

그건 말이 안 된다.

목걸이는 ‘상점 제작자’가 제공해 주는 것.

그 존재가 인간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스킬과 능력을 제공해 줄 이유가 없으니까.

“저 인간은 왜 저렇게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냐. 해결이 안 되는 건가?”

“느낌이 안 좋군. 놈이 속지 않는 것 같다. 선배들이 분명 이렇게 말하면 속는다고 했는데.”

“설마 또 환생 루트를 쓴 것이냐? 그건 너무 구식이다.”

“놈이 목걸이를 들고 있었어. 100% 넘어올 줄 알았지.”

내가 말없이 쳐다보고 있자 놈들이 본인들의 언어로 말을 주고받는다.

그 대화 내용이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역시 예상대로 사기꾼들이다.

[왜 대답이 없는가. 인간이여.]

놈은 다시 태연하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피식- 실소가 흘러나왔다. 내가 놈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을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여줄까?

일단 놈들을 잡기 전에 궁금한 것부터 해결할 생각이었다. 내 궁금증에 답해줄 만한 놈들이 저 둘 뿐이니 어쩔 수 없다.

“야.”

[왜 그러는가.]

놈의 대답에 난 주먹을 꽉 쥐고, 「의사소통」 스킬의 단계를 올렸다.

[의사소통 2단계 ‘말하기’를 활성화합니다.]

[이제 상대의 언어로 대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던지며 달려들었다.

“내가 호구로 보이냐? 새끼들아.”

***

전설의 오익마는 개뿔.

놈들을 제압하는 것은 별 어렵지 않았다. 불의 능력을 쓸 필요도 없었다.

두 주먹으로 몇 군데 건드려 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빌빌거리며 살려달라 외치기 시작했다.

“야.”

“네!”

“네! 인간님!”

극존칭으로 해석되는 놈들의 언어에 실소가 흘러나온다.

놈들의 상태는 처참했다.

날개는 거의 다 뜯겨 나가 있었으며, 커다란 몸 구석구석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었다.

“「아베르노」에 대해서 아냐?”

“그렇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려면 아, 설마…….”

놈 중 한 명이 눈치챘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떤다.

“그래. 거기 가려면 너희 중 한 마리를 잡아야 한다.”

“…….”

놈들의 거구가 뻣뻣하게 굳었다.

난 그 묘한 긴장감을 즐기며 말을 지속했다.

“그러니 약속하지. 궁금한 것에 대해 거짓 없이 성심껏 대답해 주는 놈만 살려주겠다.”

당연히 뻔한 거짓말이다. 난 5영혼석 두 개가 필요하니까. 그러나 놈들은 내 거짓을 간파할 수단이 없다.

“제가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뭐든 물어만 보십시오!”

일단, 그 ‘하얀 용암’의 정체부터…….

“그럼 다시 묻지. 아까 그건 뭐였지? 정말 환생을 위한 장소인가?”

내 질문에 오른쪽에 있는 오익마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아까 나에게 건방지게 거짓말을 했던 놈이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인간이 들어오는 낌새가 보이면 곧바로 그 장소를 엽니다. 어차피 대부분 인간들의 목표가 환생이기 때문…….”

“닥쳐라.”

난 그대로 놈의 입에 주먹을 있는 힘껏 꽂아 넣었다.

“크케에엑!”

끔찍한 비명과 동시에 놈의 상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아까도 언급했다시피 환생을 위한 장소였으면 「구사일생」이 활성화됐을 리 없다.

분명 죽음에 가까운 피해로 인식됐다는 텍스트가 떴었으니까.

놈은 입이 함몰된 채로 소멸해 영혼석 하나를 남기고 연기로 사라졌다.

난 떨어진 5영혼석을 가방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이놈은 멍청하군. 뻔히 내가 본인들의 대화를 들었단 것을 알았을 텐데도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그러자 남은 놈이 긴장했다.

“그…… 그렇죠. 아까, 뻔한 환생 루트로 속일 때부터 알아봤습니다.”

“자, 다시 물을게. 그건 뭐지?”

놈이 잠깐 망설이더니 말을 잇는다.

“「아베르노」를 지탱하는 에너지원입니다.”

“에너지원?”

“네. 그렇습니다. 사실 이곳은 「아베르노」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인간들의 영혼을 원료로 하는 공장이라 생각하시면 편할 겁니다.”

나는 아까 봤던 ‘하얀 용암’을 떠올렸다. 그 막대한 에너지가 다 인간의 영혼이란 말인가?

“역시, 환생은 핑계였군.”

“그, 그렇습니다. 강한 영혼일수록 더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 상부에서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물론 지상에서 하급 악마들에게 죽은 영혼들도 짭짤한 에너지로 이용되고 있긴 합니다만, 직접 이곳까지 찾아와 에너지원에 직접 뛰어드는 영혼은 거의 1,00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고밀도의 에너지를 제공합니다.”

“……지상에서 소멸한 영혼도 이곳으로 흘러들어온단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충격적이었다.

‘기록사’에 남겨진 환생에 대한 기록들은 다 거짓이었다. 인간은 「아베르노」에 사는 자들을 위해 고작 에너지로 이용당하고 있었다.

굳이 지구에 있는 물품이나, 스킬까지 제공해줘 가며 발판을 마련해줬던 이유는 영혼을 성장시키기 위함이겠지.

아마 놈들은 고난을 넘어 오익마 지역까지 온 영혼들을 다 익은 과일 취급해 왔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영혼을 재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환생이 다 거짓이면, 부활도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 내 목소리가 무의식중에 점점 낮아졌다.

“「아베르노」가 정확히 어디 있는 거지?”

“음…… 그게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간단하게 호리병 모양을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상부가 「아베르노」고, 하부가 이곳입니다. 이곳에서 뽑아내는 에너지를 통해 상부는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곳이 더 있나?”

“그건 아닙니다.”

“그럼?”

“모든 구역 중앙에 존재하는 구덩이는 전부 이곳으로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사실상 오익마들도 이놈들 둘이란 말인데…….

애초에 손나연이나 「군단장의 심장」, 둘 중에 하나를 선택했어야 했었군.

“「아베르노」엔 누가 살지? 그럼, 너도 상부 출신인가?”

“……아닙니다. 저 역시 만들어진 존재. 이곳에서 1,000년 동안 일하면 상부로 올라가 살 수 있습니다. 전 태어난 지 100년밖에 안 돼서 사실 그곳이 어떤 곳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놈이 덜덜 떨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군.”

누군가가 악마들도 꾸준히 생산한다는 말인데…….

아무래도 「아베르노」에 가서 직접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가능하면 ‘상점 제작자’를 만나보고 싶었다.

놈은 이중성이 있었다.

VIP 상점에 5영혼석 아이템 두 개를 올려놨단 거는, 놈들을 처리해 달라는 의미다.

하지만 「기억의 목걸이」는 환생을 통한 저급한 유인책이다. 아니, 애초에 입장권과 군단장의 심장도 유인책일 수 있겠구나.

“뭐가 됐든, 고양이한테 가봐야겠군. 그럼 잘 가라.”

난 싱긋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분노의 힘을 담아-

“자…… 잠깐. 이건 얘기가 다르…….”

앞으로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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