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91화
24. 서로 다른 선택(2)
이른 아침 만찬이 열렸다.
이지한은 배가 많이 고팠는지 걸신들린 것처럼 접시에 코를 박았고, 손나연과 안이슬 역시 천천히 식사를 시작했다.
4영혼석 10개짜리 초호화 펜션.
생전 처음 보는 고급 요리들.
식탁 가운데 놓인 값비싼 위스키.
아마 열대지역에 머무는 사람들이라면 100년을 꼬박 저축해도 구매하지 못할 가격일 거다.
지금 허겁지겁 먹고 있는 새로운 신입은 그 사실을 알까?
과거 안이슬이었으면 저 광경을 못마땅해 했을 것이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언갈 베푼다는 건, 그녀의 상식엔 없었을 테니까.
특히나 하루 1영혼석 두 개씩 밖에 못 벌던 시절에는…….
그러나 지금은 사익마 한 마리를 잡는데 채 1분도 걸리지 않는다.
4영혼석 한 개면, 무려 1영혼석 만 개.
배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복덩이 씨는 안 먹나?”
안이슬이 위스키를 털어 넣으며 말했다.
“입맛이 없어서.”
“……그래도 이제 마지막인데.”
그렇다.
사실 지금이 안이슬과 함께하는 마지막 식사였다.
굳이 말하자면 최후의 만찬? 그걸 알고 손나연이 무리해서 주문한 것이다.
“나에겐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지.”
독 안개 지역을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오익마가 위치한 공간을 찾을 수 있었다.
딱히 찾으려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멀리서도 그 존재감이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강렬했으니까.
한계 끝까지 각성했다는 신체임에도 그 기운만으로 온몸이 짓눌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군단장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놈은 구역 중앙 싱크홀처럼 파여진 깊은 구멍 밑에 있었다.
직접 들어가 보진 않았지만, 그냥 알았다.
사실 그녀들이 질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이런데 저들이야 어쩔까.
안이슬이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난 딱 여기까지야. 여기서 좀 쉬다가 천천히 복귀할게.”
“그동안 안내 고마웠다.”
드디어 오익마를 목전에 두었다.
이곳 자체가 계절 감각이 없어서 시간이 정확히 얼마나 흘렀는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근데 정말 그놈을 잡으려고?”
“그래야지.”
“……그냥 안 가면 안 되나?”
그녀의 얼굴 위로 쓸쓸함이 떠오른다.
그러고는 술을 다시 한잔 털어 넣더니 말을 잇는다.
“봐봐. 온대지역 기억하지? 지구에선 볼 수 없는 그 그림 같은 자연 절경.”
“응.”
“거기에 있는 영혼석을 다 털어 넣어서 최고급 건물을 짓는 거야. 거기서 농사도 짓고, 기타나 피아노도 배우고, 아! 물고기도 풀어놔야겠다. 그다음 또…….”
안이슬은 영혼석으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나열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네 미래계획은 왜 말하는 거냐?”
“그니까 내 말은 우리 영혼석이면 지구에서 못 해봤던 거 다 누리면서 살 수 있잖아. 근데 꼭 부활해야 해? 게다가 100% 부활할 수 있단 보장도 없어. 다 입소문으로만 전해져 내려온 뜬구름 잡는 얘기란 말이야.”
그간 정이라도 들은 걸까, 그녀는 굳이 나를 붙잡았다.
물론, 안이슬은 내가 왜 부활하려고 하는지 전혀 모른다.
“해야 할 일이 있어.”
모든 짐을 감당하고 있는 선소연. 그녀를 도와야 한다. 어차피 이곳은 나중에라도 다시 올 수 있으니.
난 말 없이 술을 들이켜는 안이슬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시려고요. 단장님?”
“출발 전 점검할 게 있다.”
***
“야, 맛있냐? 니 혼자 여기 있는 거 다 먹겠다?”
자리를 떠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안이슬이 괜히 이지한에게 툴툴거렸다.
그러자 재빠르게 움직이던 그의 포크가 곧바로 멈칫한다.
“왜 그래요. 몇 푼 되지도 않는 거 가지고. 게다가 언니가 구매한 것도 아니면서.”
“아니, 그냥 짜증 나서.”
“뭐가요?”
“그래도 지금껏 정들었는데 이제 나 혼자잖아.”
안이슬의 목소리가 울적해졌다. 확실히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모습이었다.
“갑자기 왜 저런데. 취했어요? 지한 씨 신경 쓰지 말고 마저 드세요. 어차피 오늘 못 먹으면 다 버릴 생각이거든요.”
손나연이 아직까지 굳어 눈치 보고 있는 그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시선을 안이슬에게 고정했다.
“왜 혼자에요? ‘고려’로 가면 되잖아요.”
“안 가려고. 그딴 곳. 너라면 가겠냐?”
“그건 그렇죠.”
싱겁게 웃는 손나연을 바라보며 안이슬이 한숨을 쉬었다.
“아니. 근데 그놈은 지구에 뭐 꿀이라도 숨겨놨대? 왜 자꾸 사지로 기어들어 가려 하는 거야.”
“…….”
“너도 느꼈잖아. 거긴 미쳤어. 난 내 몸에 닭살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니까.”
그녀들이 봤었던, 마치 무저갱(無底坑)을 보는 것 같은 깊은 구덩이.
사실, 저승은 이곳이 아니라 저곳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끔찍했었다.
안이슬은 말없이 포크질하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분명 손나연도 많이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곧 그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후우, 독 안개 지역은 또 언제 통과하나.”
일단 온대지역으로 갈 생각인데, 혼자 새로 시작하려니 막막하다.
제일 귀찮은 건 믿을 만한 사람을 모아야 한다는 건데…….
옆을 보니 이지한이 어느새 배를 다 채웠는지 괜스레 눈치를 보고 있다.
“야.”
“네?”
“넌 원래 지구에서 뭐 했냐?”
그녀는 가볍게 금기를 어겼다.
“아! 전 호텔 바텐더였습니다.”
“그게 뭐야? 내가 살던 시절엔 그런 거 없었는데.”
“간단하게 술 만드는 직업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술?!”
“네……. 지금 드시고 계시는 그런 술이요.”
“좋아. 합격!”
“네?”
안이슬은 미래에 본인이 만들 쉘터의 주조사를 구했다.
***
넓게 펼쳐진 침엽수림.
근처 마른 나무 옆에 기대어 앉아 지금껏 익힌 스킬과 아이템을 정리해봤다.
먼저 아이템으론-
「특급 마법 가방」
「신체능력 향상 반지」
「기억의 목걸이」
반지는 나에겐 효과가 없었고, 목걸이는 사용법을 몰라 장착만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마법 가방엔 적어도 1년 치는 버틸 수 있을 만한 식량을 채워놓았다.
혹시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니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가방 속에 보존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건지, 아니면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건지 상하거나 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스킬은 총 다섯 개였다.
나머지 두 개 있는「랜덤 스킬 상자」의 재고도 내가 다 가져올 수 있었고, 그 상자는 나름 쓸만한 스킬들을 선물했다.
난 자리에 앉아 지금까지 얻었던 스킬들을 쭉 정리해 봤다.
「구사일생」
등급 : Lv. 10 (MAX)
유형 : 패시브 (영혼 각인)
기간 : 하루에 한 번.
설명 : 상점 제작자가 심혈까지는 아니고 제법 성의를 들여서 제작한 스킬이다. 사용자가 죽음에 가까운 피해를 받기 전, 그 육체를 자동으로 급조한 아공간에 1분 동안 이동시켜 몸을 완전히 회복시킨다. 그 후, 다시 그 자리에 뱉어낸다.
「텔레포트」
등급 : Lv. 10 (MAX)
유형 : 액티브 (영혼 각인)
기간 : 하루에 두 번.
설명 : 상점 제작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스킬이다. 미리 ‘지정 등록’ 해둔 장소로 순간이동 할 수 있다. ‘지정 등록’은 직접 그 장소에서 해야 한다.
「리스토어」
등급 : Lv. 10 (MAX)
유형 : 액티브 (영혼 각인)
기간 : 하루에 한 번.
설명 : 상점 제작자가 심혈까지는 아니고 제법 성의를 들여서 제작한 스킬이다. 타인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대상자의 신체상태를 1시간 전으로 되돌린다. 다만, 죽음은 되돌리지 못한다.
「의사소통」
등급 : Lv. 5 (MAX)
유형 : 패시브 (영혼 각인)
기간 : 영구지속효과.
설명 :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종’의 언어 장벽을 없애준다.
「물의 치유」
등급 : Lv. 5 (MAX)
유형 : 액티브 (영혼 각인)
기간 : 하루에 세 번.
설명 : 시전자 주위 반경 500m 내 모든 ‘인간’의 치유 속도를 20배 증폭한다. 체내의 수분을 공급하여 갈증을 없앤다.
사실 독 안개 지역을 돌파하는 데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략 2개월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이 지역을 떠돌며 사익마들을 학살했던 이유는 바로 이 스킬 숙련도 때문이었다.
온대지역을 넘어 냉대지역으로 들어설 때부터, 쉘터 상점엔 스킬을 강화할 수 있는 〈스킬 강화〉 항목이 새로 추가되었다.
일반 상점에서 배운 스킬은 다섯 단계, 상자에서 나온 스킬은 총 열 단계까지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나는 오익마를 사냥하기 전, 우선 배운 스킬 다섯 개만 한계치까지 올려보기로 했었다.
문제는 올리는데 드는 영혼석이 괴랄하게 많다는 것.
업그레이드할 때마다 요구하는 영혼석의 개수가 거의 세배에서 다섯 배씩 뛰다 보니 그토록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래도 작업해 놓으니 뿌듯하군.”
나는 높은 하늘을 바라보며, 독 안개 지역 초입부에 들어갔을 때를 회상했다.
그때, 우리는 먼저 빠르게 쉘터 하나를 찾아 점령했었다.
빠른 이동에 앞서 영혼석으로 수준을 좀 높일 생각이었다. 사익마가 어느 정도로 강할지 감이 안 잡혔으니까.
그리고 예상대로 24시간 동안 그 지역 쉘터에 몰려드는 삼익마들은 노다지와 다름없었다.
처음엔 그녀들도 많이 버거워했지만, 차츰 모여가는 3영혼석의 힘을 받아 금방 적응했다.
그때부터는 정말 폭풍 성장이었다.
쓸데없는 영혼석이 남아돌아, 그녀들에게 과하게 팁을 줬었으니까.
“그땐, 스킬 성장이란 게 있는 줄 몰랐지.”
손나연은 받은 영혼석을 오로지 신체강화에만 투자했다.
아마 첫 상점 방문 때, 내 신체 능력이 한계를 넘어섰다는 고양이의 말을 듣고 자극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독 안개 지역에서 굳이 불의 능력을 쓰지 않고 주먹으로 다 때려잡는 내 모습을 보고, ‘스킬이 꼭 필요한 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와 비교해 안이슬은 스킬 의존도가 높았다.
굳이 스킬이 있는데 징그러운 것들과 몸을 부딪쳐가며 싸우기 싫다는 것이다.
그녀는 일반 상점에서 그나마 가장 비싼 「십만 볼트」를 배운 후, 칼까지 버리고 그걸 애용했다.
아마, 지금은 MAX까지 강화한 상태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손나연보다 동 시간대 효율이 떨어지는 사냥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애초에 그녀가 만족하고 있으니 크게 상관은 없다.
그렇게 쉘터에서 한 달 동안 두 번의 웨이브를 겪은 후 곧 냉대지역에 들어섰다.
그곳에서도 두 번의 웨이브를 겪었다.
“그때 처음 본 사익마의 수준에도 크게 실망했었지.”
한 달 동안 걱정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약했다.
겨우 지구에 있는 싸이클롭스 베어와 동일한 수준? 아니, 그것보다는 좀 센가? 워낙 낮은 수준이다 보니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힘들다.
어쨌든 지구에서 S급 헌터 뱃지를 다는 기준이 ‘싸이클롭스 베어를 잡을 수 있는가’이니까, 그녀들은 이미 S급 헌터 수준을 넘은 것이다. 그것도 아득히…….
“이제, 마지막으로 「군단장의 심장」과 「아베르노 초대권」만 얻으면 되는데…….”
이제 남은 건, VIP 상점 목록 중 5영혼석 1개짜리 아이템 두 개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만약 구역당 오익마가 하나라면, 다른 구역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솔직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필요한 5영혼석이 총 세 개니까…….”
일단, 무조건 4차 탈피는 하고 넘어갈 생각이다.
그래서 한 개.
손나연까지 데려간다 생각하면 초대권이 두 장 필요하다.
그래서 두 개.
총 세 개다.
“후우,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또, 걱정스러운 것도 있다.
그녀를 데리고 그 무식한 구덩이에 빠지기 부담스럽다는 점?
나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정도로 강력한 기운인데 그녀를 지키며 싸울 정도로 여유로울 것 같지 않았다.
뭐, 구덩이엔 혼자 들어간다 쳐도, 「아베르노」 역시 문제가 된다.
어떤 공간일지도 모르는 곳에서, 그녀를 지켜주겠다 확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여기 앉아서 뭐 하세요? 단장님?”
여러 가지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져 갈 찰나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전생에 양반은 아니었는지 손나연이었다.
“식사는 다 했어?”
“네. 저도 입맛 없어서 짧게 먹었어요.”
“안 그래도 할 말 있었는데. 잘됐네.”
일단, 솔직하게 말할 생각이었다.
초대권은 줄 수 있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그녀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오익마 때문이시죠? 사실 저도 할 말 있어서 왔어요.”
그러나 그녀가 먼저 선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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