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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90화 (90/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90화

24. 서로 다른 선택(1)

“하아…….”

선소연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벌써 오빠가 그곳으로 간지 반년째. 이미 무더위는 넘어갔고, 다시 쌀쌀한 낙엽의 계절이 왔다.

KH 꼭대기 층에 있는 단장실은 현재 안치실로 개조된 상태.

팀장급과 주치의 외엔 출입금지령이 내려졌고, 각 침대 위엔 강현과 손나연의 육체가 물방울로 둘러진 채 눕혀져 있었다.

“벌써 다 떨어졌네.”

그녀가 링거 위 걸려 있는 포도당을 교체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간만에 연락 오는 오빠의 어머니였다.

-얘 바쁘니?

“아니요. 괜찮아요. 어머님.”

-다름이 아니고, 혹시 현이 연락 없나 해서. 이번 달도 통 연락이 없네.

강설아의 동의로 어머님껜 오빠도 해외파견 나간 거로 해놨다.

걱정을 덜려는 의도였는데, 알고 보니 오빠가 여태껏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었던 것.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바빠서 그럴 거예요. 아시다시피 지금 ‘종말의 날’ 준비 때문에 난리도 아니잖아요.”

-어휴, 그래도 그렇지 어찌 통화 한 번을 안할꼬.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연락 오면 곧바로 알려드릴게요.”

-그래, 그래. 항상 미안하다. 소연이도 바쁠 텐데 고생하고, 언제 한번 식사나 하고 싶은데……. 시간이 되려나?”

“그럼요. 어머님. 조만간 연락 드릴게요.”

뚝-

전화를 끊으니 숨이 턱 막혀왔다.

그녀도 알았다. 오빠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 못하단 걸.

「아베르노」가 어딘지, 진짜 부활은 할 수 있는 건지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냥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게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들겼다.

“누구세요?”

“날세.”

“아저씨.”

최강수였다. 하긴, 지금 이 방을 들어올 사람은 주유라 아니면 그밖에 없으니.

그 역시 연합 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선소연을 도와 KH에 전념하고 있었다.

“손나연 씨 부모님께도 파견 중이라고 연락드렸네.”

“별다른 말 없으신가요?”

“그렇던데. 별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어.”

“후우……. 그렇군요. 그래도 잘하셨어요.”

“현이 상황은 어떤가? 진전은 있나?”

“그대로예요. 독 안개 지역에 들어간 지 벌써 5개월이 흘렀는데 소식조차 없어요.”

그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그와의 감각 공유가 끊겼다는 점이었다.

그가 불의 능력을 쓰지 않는 거라면 다행이지만, 혹여나 소멸했다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저번보다 더 투명해졌어. 혹시 잘못될 가능성은…….”

“아닐 거예요……!”

오빠가 독 안개 지역에 들어간 이후부터 그와 비서의 육체가 조금씩 투명해지고 있었다.

마치 그대로 영영 사라질 것처럼.

“아직…… 사라지진 않았잖아요.”

처음엔 깜짝 놀랐다.

간부 비상소집까지 열었을 정도였다. 그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걸 보고 ‘아직까진 살아 있겠거니.’ 하며 추측하는 것이다.

“끄응…….”

최강수가 침음을 흘렸다.

사실 선소연은 크라켄을 제외한 팀원들에게 그곳이 저승이란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오빠가 죽었다.’, 혹은 ‘사후세계로 갔다.’라고 말하면 사기가 떨어질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세한 상황이 퍼져나가면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도 나올 수 있었고…….

그저, 새로운 세계로 이동한 것 같다고만 말했다.

“그나저나 3차 팀원 모집은 완료됐나요?”

“그래. 안 그래도 이것 때문에 들어왔는데, 어제부로 S급 헌터 단원이 500명을 넘겼어. 이거 보게.”

최강수가 스마트폰 KH 홈페이지에 스크랩된 뉴스기사 자료를 보여줬다.

[세계 최고 집단 KH. S급 헌터 500명 이상 보유. 국가 재난 급 비대칭 전력에 몇몇 국가 우려.]

[KH가 선포한 ‘종말의 날’ 정말일까? 반년 동안 바닥없는 증시 폭락.]

[‘최소한의 대비’ WHO를 주축으로 전 국가 헌터 사업에 올인.]

[통조림, 라면 수요 급증. 아직도 전 국민 지하 벙커 만들기에 여념.]

[증폭 무기 전 세계 구매요청 잇달아. KH 개발사업본부장 홍이나 ‘올해 안에 전 세계에 보급하도록 힘쓸 예정’]

“항상 그렇듯, 난리도 아니네요.”

“기자들만 신났지. 그래도 홍이나 팀장이 잘해주고 있어. 모든 결정체를 헌터 증진이나 무기 제작에 쓰고 있음에도 자산이 날로 불고 있네.”

어차피 돈은 계속 생긴다.

지금은 모든 힘을 대비에 쏟아야 할 때. 놈들을 대비한 방벽도 세워야 하고, 지하 벙커와 안전시설도 더 늘려야 한다.

“굳이 모을 필요도 없어요. 모든 자산은 그날을 위해 아낌없이 써주세요.”

“그러지. 식사는 했나?”

최강수의 물음에 선소연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입맛이 없네요.”

“……그런가? 요즘 통 먹는 걸 본 적이 없어.”

“나름 잘 먹고 있어요.”

“그래……. 자네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야. 건강 잘 챙기고, 조금만 더 힘 써주게.”

“알겠어요. 아저씨도……. 같이 힘내봐요.”

최강수는 가벼운 응원을 던진 후 터벅터벅 밖으로 나갔다. 그 역시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선소연은 다짐했다.

불의종족이든, 총사령관이든, 뭐든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리고 혹여 오빠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모든 상황을 종결짓고 직접 찾으러 가겠다고.

***

사흘 전, 이지한은 분명히 죽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장면은 중앙선을 침범에서 달려오는 25t 트럭이었다.

강력한 충격.

귀에 찌꺼기처럼 낀 노이즈.

세탁기처럼 뒤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의식을 잃었고, 깨어보니 이곳이었다.

신비한 고양이가 영혼석을 내놓으라 하는 곳. 그리고 오래되어 보이는 빈 작은 건물.

이곳의 특징은 정말 뼈가 시릴 정도로 춥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요했다.

그는 말없이 온몸을 웅크린 채 추위에 덜덜 떨며 건물 속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기약 없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루가 지났고, 또 하루가 지났다.

배가 고프면 잠을 자고, 목이 마르면 침을 삼켰다. 그렇게 의미 없는 시간이 계속 흘렀다.

“키이이이-”

밤마다 내는 이질적이고 괴상한 소리는 이곳이 현실이 아님을 자각시켜줬다.

빛도 없어 앞도 안 보이는 시커먼 공간 속에서 당장에라도 누군가 튀어나와 덮칠 것 같았다.

네 번째 해가 뜨는 날 아침.

그는 결국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굶주림이 공포를 이겼기 때문이었다. 당장 밖에 있는 흙 뿌리라도 파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건물 문밖으로 나가, 얼마 걷지 않는 순간 그는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경험을 했다. 네 쌍의 날개를 달고 있는 건물만 한 크기의 시커먼 괴물을 목격한 것이다.

그는 미친 듯이 달려 건물 뒤편에 숨었다. 놈은 공포 그 자체였다. 숨도 쉴 수 없었다.

‘그래. 못 봤을 거야. 그 큰놈이 잠깐동안 날 봤을 리가 없지.’

놈과의 거리는 꽤 됐다.

한 200m 정도? 그에겐 나름 긴 거리지만 놈에겐 몇 걸음도 안 될 짧은 거리였다. 그게 불안했다.

쿵-

놈의 발걸음이 땅을 진동시켰다.

이지한은 양손으로 귀를 막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곳은 지옥이라고. 생전에 착하게 살지 못해 벌 받는 거라고. 생전 처음으로 기도했다. 제발 누구든 좋으니까 살려달라고.

쿵-

심장이 철렁했다.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놈이 날 봤나? 어떡하지?’

쿵-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심박수가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했다. 세 번의 걸음이었는데 벌써 이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눈물이 흘렀다.

분명히 죽었는데, 저 괴물한테 죽으면 또 어떻게 되는 걸까. 이 공포스러운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걸까? 영원히?

쿵-

놈이 걸음이 멈췄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피부가 짜릿하게 울리고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짧은 정적에 이지한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발.’ 이란 말을 수도 없이 생각하며…….

그러나 신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다.

“키이이이이-”

작은 건물 위로 드러나 있는 놈의 끔찍한 얼굴. 기이하게 찢어진 입은 분명히 웃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했다는 듯한 기쁜 표정이었다.

“으…… 으아아악!”

결국, 그는 눈물과 콧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참았던 비명을 터뜨렸다.

그때였다.

파즈즈즉-

하늘에서 떨어지는 새하얀 낙뢰가 놈의 머리에 꽂혔다. 그와 동시에 어떤 정체 모를 인영이 솟구쳐 놈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키아아아-”

끔찍한 비명 소리를 토해내며 검은 연기로 소멸하는 괴물. 그리고 떨어지는 커다란 검은색 보석.

이지한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 장면을 전부 캐치해냈다.

“…….”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의 시야에 두 여자가 나타났다.

“아싸. 이건 제거예요, 언니.”

“웃기는 소리 하지 마. 내가 먼저 스킬로 찜해놨잖아.”

“그럼 뭐해요. 막타치는 사람이 임자지.”

“뭐라는 거니? 니가 치지 않았어도 죽는 거였거든?”

이지한은 보석을 사이에 두고 싸우는 두 여자를 보며 생각했다.

‘……천사들일까? 악마랑 싸우는 존재라면……. 분명.’

특히, 하늘에서 번개를 떨어뜨릴 수 있는 존재라면 그거밖에 답이 없었다. 게다가 둘 다 예쁘기까지 하니.

‘아, 신께서 기도를 들어주셨구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이지한은 애꿎은 하늘을 향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 와중에도 두 여자는 그를 안중에 두지 않고 티격태격 싸워댔다.

그리고 곧이어 가방 하나를 멘 남자가 등장했다.

“반반 나눠 가지면 될걸. 무슨 아직도 그런 거로 싸우냐.”

“저년이 자꾸 신체 능력 좀 된다고 얄밉게 굴잖아!”

“저년이요? 지금 말 다 했어요?”

“그만.”

남자의 말에 두 여자가 곧바로 입을 다문다.

“더 이상 그걸로 싸우면 앞으로 다시 사익마는 내가 처리…….”

“아니야! 나눠 가질게!”

“죄송해요!”

그리고 곧바로 깨갱 한다.

이지한은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 두 천사를 자유롭게 다루는 존재라면…… 신?

“어?”

여자 중 한 명이 인제야 그를 발견했다.

“넌 누구니?”

“아…… 전…….”

이지한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여자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이거 딱 봐도 신입이잖아? 세상에. 이런 곳에도 신입이 떨어진다고? 제정신이야?”

“완전 가엾네요. 보니까 밥도 못 먹고 숨어지낸 것 같은데. 잠깐 기다려봐요.”

“너 또 밥 주려고 그러지? 하여간, 아직도 착해 빠져선.”

“그럼 언니가 숙식 담당하실래요? 언니 돈 쓰는 거 아니면 조용히 하세요.”

“쩝…….”

그는 정신이 없었다.

신입은 뭐고, 이런 곳은 또 어디란 말인가.

어느새 남자는 주변 나무에 기대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존댓말을 쓰는 여자는 고양이 앞에 자리했다.

그리고 거칠어 보이는 여자가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야.”

그리고 당당하게 반말을 쓴다.

이지한의 나이 35세. 20대 초반쯤 돼 보이는 그녀가 그러니 조금 어색하긴 했다.

그래도 뭐, 천사라면 보이는 것보다 나이가 훨씬 많을 테지.

그래도 천사가 내뱉는 말이 ‘야.’라니…….

상상 속 천사들의 이미지가 깨져버리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그대여.’나 ‘이지한이여.’ 이런 말투일 줄 알았는데…….

“야, 대답 안 하냐?”

“아, 네! 넵!”

“혼란스럽지? 일단 기다려봐. 재밌는 거 보여줄 테니까.”

“재…… 밌는 거 말입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지한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고양이 앞의 여자가 뭐라 중얼거리는 것 같더니, 작았던 빈 건물이 변형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드드드-

마법이었다.

돌이 절로 움직이고 건축 자재가 자동으로 나타나더니 약 1분도 안 돼서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초호화 펜션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앞 정원 식탁엔 바베큐와 입이 절로 벌어지는 음식들이 펼쳐져 있었다.

“신기하지?”

이지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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