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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89화 (89/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89화

23. 독 안개(4)

“이, 이런 놈들이 벌써 들어왔어. 빨리 따라오게.”

노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어디 가시려고요.”

“독 안개 지역은 오늘 밤 자정에 열린다네. 후문으로 피해서 조금만 시간 끌면 괜한 시비는 피할 수 있을 게야. 자, 어서!”

그 와중에 우리를 걱정하고 있었다.

나와 그녀들이 멀뚱히 서 있자 결국, 노인이 내 손을 잡아 이끈다.

이대로 도망치면 큰 화를 당할 걸 알면서도 주저함이 없었다.

“뭐 하는 겐가. 급하다니까.”

차가우면서도 따뜻함이 있는 손이었다.

이 노인은 어떤 감정으로 우리를 바깥으로 피신시키려 하는 걸까?

더 이상 놈들에게 끌려다니기 싫다는 자포자기의 심정? 아니면, 본인이 하던 일에 대한 사명감?

“이봐. 이미 늦은 거 같은데?”

안이슬이 턱으로 놈들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씨익 웃는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날 믿기로 한 것인지 긴장조차 하지 않는다.

손나연 역시 굳은 표정으로 손목을 풀고 있었다. 노인은 그 모습을 근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봤다.

“……자네들.”

“걱정 마. 노인. 이 남자. 기록사 전부를 뒤져도 설명 못 할 괴물이니까.”

안이슬이 우리를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오는 놈들을 보면서 노인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치 오랜 지기라도 되듯이……. 나 역시 걸어오는 시비를 피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놈들은 20명의 남성과 10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인은 이 30명이 쉘터 전 인원이라 말해줬다. 이들 중, 노인을 배신했던 자들도 있겠지.

“괜히 꽃미남 노숙자들이 있는 게 아니었네.”

안이슬이 다가오는 여성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말했고, 곧이어 놈들이 우리를 포위했다.

길가에서 구경하던 노숙자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건물 뒤로 몸을 피신했다.

“쉘터장님. 이놈입니다!”

아까 두들겨 맞던 후임 보초가 나를 가리키며 씨근거렸다.

“이놈이 형님과 제 다리를……! 보통실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안이슬이 코웃음 쳤다.

“하- 질질 짜면서 숨어 있을 땐 언제고, 인제 와서 쫄랑쫄랑 이르는 거 봐. 무슨 애새끼도 아니고.”

“닥쳐라. 계집!”

“하이구, 목소리는 장군감이야 장군감.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살려달라고 울고불고했던 애 맞아?”

“…….”

그녀의 말에 분한 듯 노려보던 보초가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쉘터장이 굳은 채로 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쉘터장님?”

나 역시 그를 마주 봤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과거 집단 ‘황혼’의 주인이자, 내가 직접 죽였던 인물.

역시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 걸까. 저승에 오자마자 이런 짓을 벌이고 있다니.

“네놈이었군. 성낙연.”

이 커다란 저승에서 놈을 다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신이 있긴 있나 보다. 죽어서까지 나를 다시 만나게 하는 걸 보면.

“뭐야. 자기랑 아는 사람이야?”

안이슬이 물었고 난 고개를 흔들었다. 성낙연을 사람이라고 부르기엔 인성이 너무 쓰레기였으니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성낙연이 곧이어 큭큭 대기 시작했다.

“역시, 네놈도 뒈진 거였군. 그래. 황혼을 어떻게 일궈냈는데, KH 단원 하나 못 데려갔을까.”

뭔가 굉장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그가 턱을 젖혔다.

“그런데 어쩌나? 이제 네놈을 도와줄 KH도 없고, 있는 거라곤 약해 보이는 계집 두 마리뿐인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큭큭, 운명이 참 짓궂긴 해.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성낙연의 눈빛이 서슬 퍼렇게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이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다는 표정이었다.

“언젠가 이곳에 올 KH 놈들을 대비해 잡은 삼익마 수만 백 마리가 넘어. 내가 니놈을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알아?”

“그것참, 무례한 고백이로군.”

“그 여유가 언제까지 가나 보자고. 뭐하나. 처리해.”

그의 명령에 놈들이 각자 자신들의 병장기를 뽑았다. 성낙연이 그런 그들을 향해 말을 이었다.

“방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라. 확실히 보통 놈은 아닐 것이다.”

“그 정도입니까?”

“그래. 놈을 직접 처리한 자에겐 3영혼석 다섯 개를 주지.”

“저, 정말입니까?”

그 말을 기점으로 살기가 한층 더 거세졌다.

위기감을 느낀 안이슬도 재빨리 본인의 칼을 뽑아 들었고, 손나연도 긴장한 표정으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난 그녀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너흰 싸울 필요 없다. 내가 처리하지.”

“이 인원들을 전부? 보니까 자기랑 알던 사이 같은데.”

“조무래기들일 뿐이야. 이번 기회에 오해를 풀어줘야지.”

“무슨 오해?”

“그런 게 있어.”

그 당시 성낙연은 제대로 상황을 보지 못한 채 즉사했다.

놈이 본인의 각성능력으로 공간을 다 무너트리려 했고, 그전에 주먹 한 방으로 터뜨렸으니까.

이번엔 죽이기 전에 확실한 격차를 보여줘야지.

또 그러면서 내 능력을 한번 돌아볼 생각이다. 3차 탈피까지 이루어진 불의 능력.

꾸준한 연습으로 이제 컨트롤이 많이 정교해졌다.

마침 실험대상이 필요했는데 잘됐네.

난 곧바로 기운을 끌어올려 하늘에 커다란 불골렘을 소환했다.

과거와 달리 걸리는 시간은 0.0001초 정도.

거의 이미지를 떠올림과 동시에 하늘을 다 뒤덮을 정도의 커다란 골렘이 등장한다.

쿠 오 오 오 -

“가, 갑자기 저게 뭐야?”

“……골렘?”

2차 탈피 당시 썼던 ‘골렘 펀치’는 그 열기가 너무 뜨거워 일부지만 바닷물까지 증발시켰었다.

그러나 지금 쓰는 골렘의 열기는 그때보다 훨씬 더 강렬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곳에만 닿게끔 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잘 봐둬라. 성낙연.”

“이, 이게 무슨?”

“네놈이 얼마나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당황하는 놈들, 그리고 벙쪄있는 성낙연을 뒤로 하고 난 골렘의 주먹을 두 손으로 모아 쉘터 내부를 찍어버렸다.

콰 가 가 강 -

모든 것을 태우는 끔찍한 화마(火魔)가 들이닥쳤다.

바닥을 향해 내려 찍힌 골렘의 형체가 사라지며 쉘터 온 구역을 불길로 덮어버렸다.

마치 핵폭탄이 터진 것처럼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터져나갔다.

그럼에도 내가 지정한 곳은 멀쩡했다.

건물, 노숙자들, 노인, 그녀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낙연까지.

놈은 일단 살려두기로 했다. 곧바로 죽여버리면 오해를 풀지 못하니까.

나머지는 비명소리 조차 내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부 스 스 스 -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지는 불길.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이 있었음에도 구역은 멀쩡했다.

건물에 금하나 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컨트롤이었다.

공간이 정적에 휩싸였다.

성낙연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으며, 나머지는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스킬이야? 분……. 분명히 불에 닿았는데 멀쩡해. 환각이야?”

살짝 눈을 뜬 안이슬이 상황을 파악한 후 읊조렸다. 그러자 나머지도 눈을 뜨고 주변 상황을 확인했다.

“놈들이 사라졌는데요? 한 놈 빼고.”

“허허……. 이럴 수가.”

노인이 허탈한 듯 웃었다.

마음이 착잡하겠지. 본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던 놈들이 순식간에 날아갔으니.

그 모습과 별개로 난 만족했다.

놈들을 처치한 것이 아닌, 나름 성공적인 컨트롤에.

마치 내가 불 자체가 된 것처럼 의식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진짜 불을 다스리는 왕이라도 된 것 마냥.

“후- 쓸만하네.”

“……자기. 이런 건 쓸만하다고 하는 게 아니야……. 개쩐다고하는 거지. 수천 년 넘은 기록사에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스킬은 없었어. 언제 이런 스킬을 숨겨뒀던 거야?”

“편한 대로 생각해라. 우선…….”

난 곧바로 발을 박차, 멍하니 서 있는 성낙연에게 들이닥쳤다.

그 후에 놈의 두 팔과 다리를 순식간에 뽑아냈다.

인정 사정 봐줄 것 없었다. 애초부터 그를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으니.

“이놈부터 처리하고.”

“끄아아악!”

솟구치는 피와 날카로운 비명 소리.

이번엔 놈의 목숨을 직접 가져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에게 당한 노인이나 노숙자들의 분풀이 서비스도 제공해 줄 생각이었으니까.

“끄아악, 이…… 개새끼!”

“개보다 못한 놈이 담을 소린 아닌데?”

“사사건건 내 앞에 나타나서…….”

“왜, 아깐 보고 싶었다며?”

파직-

난 놈이 더 이상 떠들지 못하도록 이빨을 다 부숴버렸다.

또 더는 피를 흘리지 못하도록, 뽑힌 사지를 불로 지져 지혈까지 해줬다.

조금 더 기다리면 모래로 화해 소멸할 수도 있으니…….

놈은 말도 제대로 못 한 채로 땅바닥에서 펄떡이며 비명만 지를 뿐이었다.

그런데도 불쌍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람이 아닌 짐승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느냐.”

“으으아으…….”

그 모습에 손나연도, 안이슬도 살짝 질린 표정을 했다.

다만, 노인은 그 모습을 증오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다가온 노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놈에게 한 달 동안 얼마나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안내비는 이 정도로 되겠습니까?”

난 노인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충분하네……. 그리고, 고맙네.”

“이놈 처리는 원하는 대로 하시고, 마지막엔 독 안개에 집어넣으시면 될 겁니다.”

“……독 안개 말인가?”

“네. 놈들이 그러더군요. 독 안개에 처리해야 깔끔하다고.”

***

보랏빛 안개 지역 앞.

노인과 우리는 독 안개가 걷히기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쉬지 않고 자정에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안개가 걷히는 시간은 24시간.

1시간도 버리기 아까웠다.

성낙연은 쉘터 건물에 매달아 놓은 상태로 아직까지 인원들의 분풀이 상대가 되고 있었다.

침을 뱉는 자들부터, 돌을 던지는 자들까지 다양했다.

노인은 그동안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주었다.

“독 안개는 지역 곳곳에 있는 거대한 포이즌 트리의 호흡이라네.”

“호흡이요?”

“그래. 들숨을 통해 전 지역의 독을 순식간에 빨아들인 후, 하루 동안 기다렸다가 15일 동안 천천히 날숨을 통해 내뱉는 거지.”

“오늘 자정이 놈들이 들숨을 쉬는 날이겠군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기록사에 나와 있는 대로 절대 하루 만에 통과하려 해선 안 되네.”

“왜 그렇습니까?”

“독 안개 지역은 온대, 냉대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활한 지역이야. 자네들이 왔던 열대우림에서 이곳까지 거리의 다섯 배는 된다고 보면 돼.”

실로 막대한 거리였다.

이곳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약 3주.

그렇다면 도저히 24시간 안에 통과할 수 없는 지역이란 거다. 노인은 금방 해결책을 제시해 줬다.

“중앙중앙마다 쉘터들이 자리 잡고 있을 거야. 그곳엔 독 안개가 침투하지 않지. 우선 쉘터를 찾는 것에 전념하게. 그 후 다시 밤이 되면 쉘터에서 15일 동안 대기하면서 나무들이 안개를 마실 때까지 기다려.”

“시간이 많이 소요되겠군요.”

“그것뿐만이 아니야.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악마들도 독 안개를 피하러 쉘터에 모인다네. 문제는 저 지역부터 이익마가 없다는 거지. 무조건 삼익마 이상이야. 추운 지방에 들어설 때부턴 사익마까지 나오네. 물론 자네라면 쉽게 해결하겠지만.”

이건 좋은 소식이었다.

그 광활한 지역에 있는 악마들이 알아서 영혼석을 바치러 온다는 거였으니.

노인은 그 외에도 자잘한 정보를 계속 주었으며, 어느새 앞에 있던 보랏빛 안개가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자정이 되어가나 보군.”

“정보 감사했습니다.”

“감사는 무슨……! 오히려 내가 고맙지. 자네는 많은 이들에게 자유를 안겨준 것이야. 항상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겠네.”

“그 자유를 지키려면 힘도 길러야 하겠지요.”

난 노인에게 가방에서 꺼낸 영혼석을 전부 내밀었다.

세어보니 1영혼석 235개, 2영혼석 43개, 3영혼석 10개였다.

앞으로 3영혼석 이상만 쓸어 담을 상황에서 자투리는 털어버리고 새로 시작하려는 속셈이었다.

“아이고- 이럴 거 없네. 우린 이미 큰 선물을 받았어.”

노인이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거절하지 마십시오. 새로 들어온 신입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알다시피 이 지역. 일익마도 안 나오잖아요.”

신입들을 위한 거란 말을 통해 거절하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예상대로 노인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겨우 말을 내뱉었다.

“……고맙네.”

딱히 선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위선쯤 될 것이다.

어차피 나에겐 몇 푼 되지도 않는 영혼석이었고, 그들에겐 그게 무엇보다도 소중할 수 있으니까.

어느새 안개가 전부 걷혔다.

이제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자네가 원하는 게 뭔진 모르겠지만, 아마 꼭 이룰걸세.”

노인의 배웅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긴 여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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