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87화
23. 독 안개(2)
여자는 의식을 놓았다 찾았다 반복하는지 간간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물의 치유」 스킬을 걸었음에도 저러는 것 보면 애초에 상태가 많이 악화되어 있었나 보다.
손나연은 그런 그녀를 업은 후 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도울 수 있게 해달라는 눈빛이었다.
“……딱 쉘터까지만요.”
사실 물을 것도 없었다.
눈앞에 쉘터가 있는데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구해주면 책임도 져야 하니 돕지 말자는 안이슬의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다.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해요!”
그제야 그녀가 환하게 웃는다.
“쩝, 복덩이 씨가 그렇다면 더는 말 안 할게.”
내 허락에 안이슬도 깔끔히 인정했다.
확실히 그녀가 볼꼴, 못 볼 꼴 다 본 느낌이라면, 손나연은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었다.
그렇게 우린 쉘터 쪽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역시 그곳은 빈 쉘터가 아니었다. 입구에 서 있는 두 명의 보초를 보면 알 수 있었다.
확실히 ‘고려’보다 좋아 보이는 신식 건물에, 울타리에 둘러있는 살벌한 날붙이들.
나름 위험한 온대지역 쉘터답게,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제가 물어볼게요.”
여자를 업은 손나연이 급하게 보초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나와 안이슬은 그런 그녀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어이, 거기 잠깐 멈춰라!”
경계를 서던 보초 중 한 명이 칼을 뻗어 우리를 가리켰다.
“저기, 실례하겠습니다.”
“누구냐. 신원을 밝혀라.”
“…….”
보초의 말에 손나연의 말문이 막혔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본 안이슬이 한숨을 쉬며 나섰다.
“독 안개 지역을 통과하려 하는 ‘도전자’다. 안개가 열릴 때까지 잠깐 쉬어가도 될까?”
‘도전자’
오익마를 잡거나 환생을 목적으로 하는 자들을 통틀어 하는 말이었다. 그러자 후임으로 보이는 보초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우리 쉘터는 외부인을 받지 않는다. 돌아가라.”
“아, 그래? 폐쇄 쉘터인가 보네. 쩝.”
그녀가 입맛을 다시며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폐쇄 쉘터?”
“응. 몇몇 팀 꾸려서 지들끼리만 운영하는 쉘터들이야. 보통 뒤가 구린 애들이 많긴 한데.”
“그런가? 그럼, 다른 곳을 알아볼 수밖에.”
“아까 고지에서 봤잖아. 그 넓은 평지에 건물은 이곳밖에 없었어. 이제 날도 어두워지고 있고.”
그래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쉘터는 저들의 소유. 지금까지 잘 노숙해놓고, 잠시의 편안함을 위해 남의 보금자리를 침범하긴 싫었다.
계속 부탁할 정도로 간절한 것도 아니었고…….
“어쩔 수 없잖나. 가자.”
“쩝, 자기가 그렇다면 뭐, 또 하늘을 이불 삼아 자야겠구먼. 매정한 놈들.”
그렇게 돌아서려 할 때,
손나연이 보초를 향해 외쳤다.
“부상자가 있어요!”
“부상자? 거기 업혀 있는 여자를 말하는 건가?”
“네! 근처에서 발견했는데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여요. 제발 부탁할게요.”
“그거야 내 알 바 아니다. 썩 물러가라.”
보초는 철저하게 외부인을 차단했다.
내심 신기했다. 저런 식으로 운영하는 쉘터도 있구나. 하긴, 사람들이 제대로 터를 잡은 쉘터는 ‘고려’ 이후로 처음이었으니까.
인상을 찌푸린 손나연이 미련을 버리고 등을 돌렸을 때였다.
“잠깐!”
그동안 가만히 서 있던 다른 보초가 외쳤다. 선임 보초였다.
“거기. 잠깐 멈춰봐.”
“네?”
보초가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업힌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후임 보초에게 말했다.
“뭐야? 얘 샤론이잖아. 샤론이 왜 여깄지? 오늘 아침에 네가 데리고 나가지 않았나?”
“히긱……. 그, 그게 사실…….”
후임 사내가 ‘어떡하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곧이어 손가락으로 희롱하는 모양을 만들었다. 그러자 선임이 이해한 표정을 짓는다.
“쯧. 그렇게 된 거였구만.”
“죄송합니다. 제가 좀 거칠게 다루는 바람에…….”
“이 개시키야. 저게 니 거야? 소중히 다루라 했잖아. 소중히! 쉘터장님이 아시면 경을 치실 거다. 그리고 처리를 하려면 제대로 독 안개에다 해야지. 쯧쯧.”
“죄송합니다. 형님.”
바보가 아닌 이상 저들이 하는 말의 의미를 모를 리 없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가 듣든 말든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도전자’라 했으니 일행이 우리뿐이라 생각했을 테고, 뒤에 있는 쉘터의 뒷배경을 믿는 거겠지.
“어이, 그 여자 우리한테 넘기고 꺼져라. 피 보기 싫으면.”
선임 보초가 손나연에게 칼을 겨누며 말했다. 그 순간, 업혀 있던 여자가 다시 신음을 내기 시작한다.
“시, 싫어. 가기 싫어. 나쁜…….”
난 골머리를 잡았다.
어디서나 나오는 진부하고 뻔한 귀찮은 악당들. 이들을 어찌해야 할까.
어차피 이곳은 선과 악의 개념이 없다고 했다.
‘영혼석’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세상에서, 그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일까? 혹시 그릇된다 하더라도 내가 함부로 재단해도 되는 걸까?
설령, 그렇다 해도 이들을 내가 심판해야 할 이유나 권리가 있을까? 이들이 날 건든 것도 아닌데…….
“빨리 안 내놔? 꼭 피를 봐야겠나?”
난 두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들의 표정 역시 진부했다.
안이슬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그리고 손나연은 당장에라도 싸울 것 같은 분노한 표정.
“어, 잠깐.”
위협하던 선임 보초도 그제야 그녀들을 제대로 봤는지 멈칫했다.
“둘 다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예쁜데?”
“형님! 쉘터장님께서 외부인은 건들지 말라고!”
“씨! 그건 혹시나 센 놈일까 봐 그런 거잖아. 얘네 봐. 열 받아 하는 표정인데 쉽사리 덤비지는 못하는 거. 딱 봐도 애송이들이야.”
“흐흐…… 그런가요?”
“그래, 인마.”
선임은 손나연에게 내민 칼의 방향을 나에게 틀었다.
“어이, 생각이 바뀌었다. 두 년은 남고, 남자만 꺼져라.”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물론, 내가 아닌 이들에게.
손나연은 천천히 그녀를 내려놓고 있었고, 안이슬은 잘못된 선택을 한 저들에게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줬다.
***
“안 꺼지는 거 보니, 뒈지고 싶나 보네. 아님, 뭐. 남자의 자존심 이런 건가?”
“끌끌. 형님 저라도 저런 미녀들 사이에 있으면 쉽게 도망 못 갈 것 같은데요? 당연히 미련 남겠지요.”
“미련이 뭐, 목숨 챙겨주냐?”
두 남자는 칼을 꺼내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지겹고 감흥 없는 대화를 나누면서.
어쨌든, 이들이 악인이건 선인이건 중요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지금 내 비서와 안내자를 빼앗으려 하고 있고, 그렇다는 건 날 건든 것 맞지?
다행이었다. 쉘터를 빌리고 상점을 이용할 ‘명분’이 생겨서.
후웅!
선임 보초의 어설픈 칼질이 코끝을 스쳤다. 전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는데도 못 맞춘 다라…….
애초에 거리계산도 못 하는 애송이들이었다. 뭐, 맞았다 해도 생채기 하나 안 났겠지만.
“안 꺼져? 다음 공격은 진짜야!”
다시 한번 움직이는 안쓰러울 정도로 느린 칼질. 그래도 이번엔 거리를 잘 맞춰서 베어온다. 자세가 어설픈 건 매한가지였지만.
난 오른손으로 휘두르는 그의 팔목을 잡은 후, 왼손으로 놈의 무릎을 가볍게 움켜쥐었다.
뿌드득!
“으아아악! 내 무릎! 내 무릎!”
“이…… 이 새끼 뭐야!”
놈은 칼을 내동댕이친 채 본인의 무릎을 부여잡고 뒹굴기 시작했다.
한 번에 무력화된 선임의 모습을 본 후임의 낯빛에 당황함이 서렸다.
“X, X발. 실력자잖아?”
칼을 다시 고쳐잡는 후임.
그런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런데도 칼 하나 휘두르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으…… 으아아…….”
“넌 안 덤비냐?”
“오, 오지 마. 새끼야.”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치는 놈에게 다가가 뺨을 두어 번 때렸다. 그러자 칼을 떨어뜨린 후,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는다.
저러면 시야에 하나도 안 보일 텐데, 그냥 죽여달라는 건가? 이건, 뭐 싸울 맛도 안 나는 놈들이었다.
난 천천히 폭행을 시작했다.
먼저 허벅지 안쪽을 차 넘어뜨린 후, 주먹으로 후두부와 복부를 골고루 때려줬다.
물론, 죽지 않게 살살.
결국, 놈이 울음을 터뜨렸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참으로 약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악한 일을 머뭇거림조차 없이 저지른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더 강한 폭력에는 한없이 비굴해지고……. 짐승처럼 사는 그들을 사람이라 부를 수 있을까?
난 폭력을 멈춘 채 웅크리고 있는 그를 바라봤다. 그러고는 그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쉘터 내부로 안내해라. 피 보기 싫으면.”
***
놈들을 앞세워 쉘터 안으로 이동했다.
내부는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휘황찬란한 현대식 5층 빌라 하나와 그 앞 입구에 앉아 우리를 유심히 지켜보는 노인.
그리고 건물이 있음에도 밖에 자리를 깔고 노숙하고 있는 사람들.
특이한 점이라면, 그 노숙자들 전부 하나하나 예쁘고 잘생겼다는 것?
“처음이지?”
안이슬이 은근슬쩍 옆에 다가왔다.
“뭐가.”
“악덕 쉘터 말야.”
아까는 ‘폐쇄 쉘터’라더니 이제는 ‘악덕 쉘터’인가?
확실히 외부인들을 꺼리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광경을 보고 의문을 품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러는 너는 많이 봤나 보네?”
“세고 셌지. 열대지역에도 셀 수 없이 많거든.”
“그런가?”
“저기 노숙하는 애들 보이지? 여기 터 잡아 놓은 다음에, 이곳저곳 빈쉘터 돌아다니면서 갓 소환된 미남, 미녀들을 모아다가 놓는 거야. 그다음 기초적인 끼니만 주면서 가축처럼 키우는 거지. 이곳 사람들은 늙지도 않으니 평생 쓸 수 있는 가축.”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제야 저들의 눈빛이 제대로 보였다.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눈빛.
어떻게 살아가는지 눈에 훤했다. 아마 울며 겨자 먹기일 것이다.
소멸하기는 싫고, 도망친다 해도 성장할 방법이 없으니 악덕 쉘터에게 기대서라도 살 수밖에 없는 운명.
이런 대책 없는 사후세계를 만든 놈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해요?”
손나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안이슬이 여유롭게 주변을 돌아본다.
“저기 잘생긴 놈들도 있네. 아마 영혼석 한 개 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걸? 시험해 볼래?”
“뭐라고요?”
“장난이야. 장난. 별수 없잖아. 저게 저들이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걸. 그나마 예쁘고 잘생길 때 죽어서 저렇게라도 살 수 있는 거지 안 그러면…….”
“…….”
안이슬이 손으로 목을 베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녀들의 모습을 노숙자들이 슬쩍슬쩍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고, 아마 발을 절뚝이며 안내하는 보초들의 모습 때문이리라.
여태 이들이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을 테니까.
“이제. 꺼져라.”
난 그들을 보내주었다.
용서해준 게 아니다. 저들이라면 분명 무리를 이끌고 다시 나타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곳의 진상에 대해 더 자세히 파악할 수 있겠지.
“가, 감사합니다.”
보초들은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건물 내로 황급히 이동했다.
“이제 어쩌시려구요?”
손나연이 물었다.
난 그런 그녀에게 3영혼석 두 개를 건넸다. 그러자 샤론을 한 손으로 받쳐 든 후 냉큼 받는다.
“가, 감사해요. 근데 이건 왜요?”
“오늘치 팁이야. 몰아서 주기로 했으니까.”
“아…….”
“상점 이용해야지. 네가 쉘터 오면 볼일 있다며.”
나도 일단 VIP 상점에서「랜덤 스킬 상자」 하나를 까볼 생각이었다.
재고가 3/10이다. 즉, 나름 인기 있는 상품이란 것. 누가 채가기 전에 기회가 될 때마다 사둬야 한다.
그렇게 손나연에게 팁을 제공하고 상점으로 걸어가자 안이슬이 기겁하며 따라붙었다.
“나, 나는? 난 왜 팁 안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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