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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86화 (86/128)

육군 대위 귀환하다 086화

23. 독 안개(1)

“점점 햇살이 약해져요. 꿉꿉한 기운도 사라지고 있고.”

손나연이 덩굴을 해치며 말했다.

쉘터에서 나온 지 벌써 3주째.

손날로 가시나무를 쳐내는 그녀의 모습에서 벌써 전문가의 냄새가 난다.

“이제서야 난온대 지역이네. 그래도 맞게 가고 있나 봐. 습기가 점점 떨어지는 것 보면.”

“그러게요. 이제 열대우림은 지겨울 정도네요.”

“50년 동안 거기 살았던 난 어떻겠냐.”

손나연도 그렇지만, 안이슬 역시 그동안 많이 성장했다.

50년 동안 정체되어 있던 능력이 3주 만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뛰어올랐다.

첫 만남에 건방진 신입 놈이라 했던 그녀가 이제는 날 복덩이라 부른다.

“크으~ 시원하니 술맛 좋네.”

벌이가 좀 된다고 갈증을 술로 해결하는 골 때리는 행동 빼고는 안내도 확실하게 했다.

“요즘 실력 늘었다고 너무 긴장감 푸는 거 아니에요? 무섭다고 단장님 뒤에 딱 붙어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흥. 아직도 스킬도 못 익힌 게 어딜.”

“……그거야! 제가 숙식을 담당하니까 그렇죠!”

“어쨌든, 나보다 실력도 없는 게, 술 마시는 것 가지고 뭐라 하지 마. 우리 복덩이 씨도 가만히 있는데.”

“……참나.”

그녀들은 언제 악마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이 공간에서도 아무런 긴장감 없이 떠들어 댔다.

물론,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있기도 했고, 둘 다 이제 이익마 몇 마리 정도는 가볍게 찜쪄먹을 수준이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덩굴 숲 끝자락에 도달했다.

확 트이는 시야.

눈앞엔 비단에 수를 놓은 것처럼 아름다운 산천이 펼쳐져 있었다.

“자- 저길 봐. 원래 음주자들은 저런 정경을 봤을 때 한 잔 땡겨주지 않으면 못 배긴다고.”

“그전부터 먹고 있었으면서……. 하여간, 말은 참 잘해요. 그래도 뭐, 아름답긴 하네요.”

“그치. 그동안 이런 풍경이 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어.”

드디어 온대지역에 도착한 것이다.

형형색색 개화한 꽃봉오리와 높고 파란 하늘, 초록으로 물든 나무.

칙칙한 밀림에서만 살았던 안이슬의 눈은 감동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마 지구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자기도 한잔할래?”

그녀가 본인이 마시던 술병을 건넨다.

난 잠깐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중에.”

불행하게도 난, 저 광경을 보고도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상했다.

정말 중앙으로 이동할수록 기온이 떨어지는 거라면,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이란 거다.

뭐, 그럴 만도 했다. 이곳은 애초에 과학과 거리가 먼 ‘사후세계’니까.

기묘한 고양이가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공간.

죽으면 모래로 부스러지는 공간.

어디서 뜨는지 지는지도 모르는 해와 달.

과연 이곳도 현실이라 할 수 있을까?

혹시 이 모든 광경이 총사령관의 환상은 아닐까?

정말 「아베르노」로 가면 지구로 복귀할 수 있는 실마리가 있는 걸까? 만약 그것 또한 함정이라면?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다.

“기록사에서 본 내용이 맞다면, 아마 곧 독 안개 지역이 나올 거야.”

잡생각을 하던 도중, 안이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이런 고민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선택지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독 안개 지역?”

“응. 온대지역 초입부를 두르는 지역이야. 듣기로는 아무리 신체 능력을 강화해도, 그 지역을 억지로 통과하려 하면 온몸이 녹아버린대. 넌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힘들걸?.”

“그럼 어떻게 가란 거지?”

“보름마다 한 번씩. 안개가 걷히는 날이 있다 했어. 운이 좋다면 오늘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주변 쉘터에서 대기해야 할 거야.”

“일단 그 지역까진 계속 가야 한단 말이군.”

우리는 평야를 지나 산을 타고 올랐다.

이제 체력적으로 문제 될 것도 없었고, 만약 그녀의 말처럼 독 안개 지역이 있다면 높은 지역에서 확인하는 게 나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산을 오르는 내내 나오는 악마들은 즉각적으로 처리했고, 얻은 영혼석은 각자 가방에 보관했다.

“크케엑!”

갑자기 튀어나온 이익마의 얼굴에 손나연이 여유롭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이제 삼익마 이상의 악마가 아닌 경우 모두 그녀들이 처리한다.

“앗싸. 제거예요.”

“젠장, 한발 늦었네.”

“헤헤, 뭐, 어때요. 이제 이익마가 빗발치는데. 확실히 전보다 비율이 훨씬 높아진 것 같아요.”

“중앙으로 갈수록 난이도가 훨씬 높아지거든. 봐. 이제 일익마는 보이지도 않잖아.”

“성장 속도도 훨씬 빨라지겠어요.”

떨어진 영혼석을 냉큼 가방에 넣은 손나연이 말했다.

나에게, 그리고 그녀들에게 악마들이란 단순히 영혼석을 제공해주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문득, 궁금했다.

저 악마들의 목적은 뭘까.

보아하니 인간에 대한 적대심이 강한데, 그들이 우릴 죽여서 얻고자 하는 게 뭘까.

옷이나 무기 등을 제외하고는 전부 모래로 사라지는데 말이다.

우리는 점점 더 속도를 올렸다.

그녀들이 성장해감에 따라 속도도 기하급수로 빨라졌다. 쉽게 지치지도 않았고, 전진하는 데 있어 머뭇거림도 사라졌다.

그래서 고마웠다.

3주 동안의 휴식 없는 강행군에도 지쳐 나가떨어지지 않은 그녀들이.

노력한 만큼 영혼석을 지급한다지만, 그래도 결국 오익마를 잡겠다는 건 내 고집이자 욕심일 뿐이니까.

사냥은 계속됐고, 불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고지에 도착했다.

“어, 저기 보세요!”

먼저 오른 손나연이 휴식보단 주변 상황부터 확인했다. 확실히 애송이 티를 벗은 그녀의 모습이었다.

“왜, 뭐라도 발견했나.”

나도 천천히 뒤따라 올라가 그녀가 바라보는 광경을 확인했다.

산 밑에 트인 광활한 대지와 초원.

그 끝엔 보랏빛 안개가 직선으로 펼쳐져 있었다.

아니, 분명 중앙을 두른다 했으니, 직선으로 보이는 거다. 곡선이 직선으로 보일 정도로 이 땅은 넓었으니까.

“저기가 독 안개 지역인가 봐요.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네요.”

“봐. 딱 봐도 저걸 생으로 통과하는 건 무리야.”

옆에 있는 안이슬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확실히 그랬다.

독 안개 주변의 나무와 풀들은 시커멓게 시들어 있었다.

푸르른 정경 끝에 자리 잡은 살벌한 독 안개는 마치 더 이상 이곳을 넘어오지 말라는 신의 경고 같아 보였다.

[그아아아…….]

[케르륵…….]

산속과 평지 곳곳에서 들려오는 악마들의 끔찍한 메아리 울림은 분위기를 더 을씨년스럽게 만들었다.

안이슬이 양손으로 팔을 쓸며 말했다.

“어쩔 거야. 기다렸다 갈 거지?”

“그래. 보름마다 열린다 했으면, 굳이 무리해서 뚫을 필요 없겠어.”

“잘 생각했어. 사실 맘 같아선 그냥 이곳에 자리 잡고 같이 살자 말하고 싶지만…….”

“헛소리하지 말고, 잠깐 지낼 공간이나 찾아봐라.”

내 말에 입을 삐쭉인 그녀가 ‘정상에 도착했으니 한잔해야지’ 하면서 병나발을 불었다. 그러자 재빨리 손나연이 달려온다.

“단장님! 제가 찾아볼게요, 쉘터.”

“그럴래?”

“네. 우리 노숙한지도 벌써 1주 넘었잖아요. 살 것도 있고, 배울 스킬도 있고 또, 집다운 집에서 좀 쉬고 싶거든요.”

1주 동안 쌓인 영혼석을 처리해야 했다.

나도 열심히 삼익마를 잡은 결과 벌써 VIP 상점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모았다.

[현재 보유 중인 영혼석]

3영혼석 130개

2영혼석 63개

1영혼석 235개

3영혼석 100개를 4영혼석 10개로 바꿀 수 있으니까, 「랜덤 스킬 상자」 하나를 구매할 수 있다.

“그럼, 그래라. 대신 오늘치 팁은 너한테 몰아서 주마.”

“좋아요!”

손나연의 안색이 밝아졌고, 안이슬은 목에 넘기던 술을 급하게 뱉어냈다.

“쿨럭, 쿨럭. 자, 잠깐! 내가 찾을 거야. 내가!”

공간 곳곳을 샅샅이 뒤질 생각이었던 것에 비해 쉘터는 금방 찾았다.

고지에서 시야가 닿는 평지에 개미처럼 작은 건물 한 채가 보였던 것이다.

그곳을 먼저 발견한 손나연이 손으로 가리켰다.

“하산해서 저기로 가면 되겠어요.”

***

그녀들과 산자락을 다 내려왔을 때쯤.

날은 다시 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가끔 느낀다.

이곳의 시간이 지구에 비해 훨씬 빠르게 흐른다고. 해 뜬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지려 하다니…….

서둘러야 했다.

건물이 있다는 건 운영 중인 쉘터일 가능성이 있고 야밤의 방문은 큰 실례이기도 하니까.

휘이이잉-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소리가 들려왔다.

“아, X발. 뭐야.”

이동 중에 멈칫한 안이슬이 팔뚝을 쓸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또, 왜요?”

“이게 무슨 소리지? 소름 끼쳐.”

그녀의 말에 잠깐 멈춘 손나연이 귀를 쫑긋했다. 그러고 잠깐 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찼다.

“쯧- 대나무 소리잖아요. 겁은 그렇게 많아서 악마들은 어떻게 잡나 몰라.”

“아니. 자세히 들어보라고.”

진중한 안이슬의 표정에 손나연도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숨죽이고 다시 제대로 들어보려는 것이다.

짧은 침묵 후-

힘찬 바람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흐…… 흐흑.]

신경을 찌릿하게 만드는 흐느낌. 마치 엄청난 한이라도 맺혀 있는 듯한 구슬픈 소리였다.

[흐으으…….]

지속되는 소리에 그녀들의 동공이 점점 확장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단장님!”

“으으아아악! 귀신이다!”

손나연은 나에게 달려들어 옷깃을 붙들어 잡았고, 안이슬은 다리가 풀린 채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조용한 목소리로 정신없이 중얼거린다. 가까이 가서 대충 들어보니 ‘그래. 악마도 있는데 귀신이 없을 리가 없잖아…….’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에휴-

난 한숨을 내쉬며 손나연의 손을 떼어냈다.

“다들 정신 차려라.”

그리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가리켰다.

“저기, 똑바로 봐. 사람이잖아.”

나무 밑 쓰러진 채로 신음을 흘리고 있는 여성이 보였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무슨 꼴을 당한 건지 옷이 다 찢어져 있었고, 머리는 산발로 헝클어져 있었다.

“아, 뭐야 사람이었어? 씨- 깜짝 놀랐네.”

툭툭 털고 일어나는 안이슬과 달리 손나연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신속하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으으으…….”

상태가 좋지 않은 듯 앓는 소리만 내는 그녀.

손나연은 재빨리 가방에서 여분의 옷을 꺼내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그러자 그 모습을 본 안이슬이 뾰쪽하게 말한다.

“너, 뭐하냐?”

“왜요. 아픈 사람이잖아요.”

“그거 챙겨서 어쩌려고.”

“사람한테 ‘그거’라니요! 참, 인간성하고는……!”

“뭬야?”

“그럼 그쪽은 앞에 바로 쉘터가 있는데 모른 체하고 넘어가잔 말이에요 지금?”

“하이고- 우리 신입. 정의감 넘치는 친구였네?”

안이슬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뭐라구요?”

“야. 잘 봐. 얘 딱 봐도 각 나오잖아. 온대지역에서 소환된 지 얼마 안 된 신입 여자애.”

“근데요?”

“얘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어. 일익마가 가뭄에 콩 나듯 보이는 지역이야. 초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고. 네가 열대지역에 다시 데려다주고 올 거야? 아니면, 영혼석이라도 준 다음에 오냐오냐하면서 키워줄 거야? 즉, 네가 얘 살려놓고 책임질 수 있냐는 말이야.”

“…….”

손나연은 빈정거리는 안이슬을 말없이 노려봤다. 그러고는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쉘터가 번듯이 있는데, 이대로 놓고 갈 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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