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대위 귀환하다 083화
22. VIP 상점(1)
“크케엑!”
재빠르게 돌진하는 삼익마를 바라보며 한태휘는 무심코 주먹을 꽉 쥐었다.
살벌한 놈의 모습에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고속도로 한가운데에서 질주하는 덤프트럭을 마주 보는 느낌이었다.
그는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강현의 표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만이 우리를 이 상황에서 구할 수 있으니까.
다행히도 그의 표정은 위기감 하나 없이 편안했다.
‘그래, 산만한 군단장도 때려잡은 강현이야. 겨우 저런 걸 상대로 긴장할 리 없지.’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사내는 다가오는 놈을 바라보며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한태휘는 멍하니 그 남자의 등을 지켜보았다. 한편으로는 대단했다. 이렇게 심장이 저릴듯한 살기에도 아무런 느낌 없다는 듯 앞으로 나설 수 있다니.
“이, 이제 다 끝났어. X발 다 뒤지는 거라고.”
옆을 보니 안이슬이 절망한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그리고 3초 정도 흘렀을까,
마침내 놈이 우리의 앞으로 다가왔다.
투욱-
남자의 동작은 간단했다.
마치 귀찮게 하는 날파리를 잡는다는 듯 가볍게 손을 휘두를 뿐이었다. 그 움직임에 삼익마의 목이 마치 자석에 달라붙듯 남자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온다.
“크케에에엑!”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펄떡이는 삼익마.
놈의 어마어마한 괴성이 숲 전체를 진동시킨다. 그 막대한 살기에 한태휘는 온몸이 정전기에 오른 것마냥 찌릿찌릿한 느낌을 받았다.
“조용히 해, 인마.”
남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놈의 대갈통을 한 대 때리더니 창을 빼앗아 바닥에 던졌다.
여태껏 긴장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압도적인 힘 차이였다.
***
안이슬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겁도 없이 오익마를 잡겠다는 신입 놈 때문에 영원히 소멸하겠구나 싶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그동안의 삶을 주마등처럼 복기하고 있을 찰나, 눈앞에 보이는 비현실적인 모습.
‘사, 삼익마를 맨손으로?’
기록사에도 있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 어떤 불세출의 영웅도 놈들을 상대할 땐 스킬을 사용했다고 되어 있지, 저렇게 무식하게 잡았다는 말은 없었다.
더군다나 별 힘도 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말이다.
게다가 웬일인지 그는 삼익마를 곧바로 처리하지 않았다. 그저 놈의 목을 틀어잡고 간단하게 고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죽이는 것보다 포획하는 게 몇 배는 더 힘들다는 것을.
“크케에에엑!”
놈은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 강력한 음파를 계속 쏘아댔다. 그러면서 징그러운 이빨을 계속 아득아득거렸다.
마치 ‘인간을 씹어라’라고 프로그래밍 된 로봇 피라냐를 보는 것 같았다.
‘근데 왜 저걸 안 죽이고, 잡고 있는 거지?’
순간 소름이 끼쳤다.
‘서, 설마 해코지하겠다는 건가?’
이윽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그녀는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일들을 쭉- 떠올렸다. 늘 하던 군기 잡기지만, 이번엔 평소보다 조금 더 심하게 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시, 실수했나? 아니. 그저 건방진 신입이 들어왔다 해서 총대 메고 지도를 좀 했을 뿐인데…….’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얼굴이 뜨겁게 익었다. 삼익마를 저렇게 잡는 사람한테 교육을 안 받았다느니, 건방지다느니, 훈수질을 하다니.
군대로 따지면 이제 막 중위로 진급한 장교가 장군에게 군기를 잡은 것이다.
‘제기랄. 쪽팔려.’
수치심에 입술을 부들부들 떨고 있을 때, 남자가 손나연을 향해 입을 열었다.
“흐음……. 이걸 바로 처리해야 하나?”
“왜요?”
“배고파 보여서. 이거 봐. 얼마나 배고프면 잡힌 상태에서도 이렇게 이빨을 움직이겠어. 봐봐 귀엽잖아.”
저게 귀엽다니……? 안이슬은 사내의 충격적인 미적 감각에 경악했다.
“그건 그렇네요. 싸이클롭스 베어에 비하면 이 정도야 뭐. 아, 혹시 제가 봐둔 먹이가 있는데 드릴까요?”
“호오, 그런 거도 가지고 있었어?”
“네, 단장님. 인격 성장이 덜된 여자애인데, 맛은 없겠지만 그래도 굶주림은 해결해 줄 수 있을 거예요.”
“그거 괜찮군.”
안이슬은 기겁했다.
누가 봐도 본인을 지칭하는 말이지 않은가. 저 악마에게 자신을 먹이로 줄 생각인 거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저 여자는 뭐야……? 얄미워 죽겠네.’
그녀가 창백한 안색으로 천천히 뒷걸음치자 사내가 천천히 다가왔다.
삼익마의 머리를 붙든 채로.
그러더니 이빨을 분쇄기처럼 여닫는 놈의 얼굴을 그대로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잘 가라.”
“꺄악……! 미, 미친놈아. 뭐, 뭐, 뭐 하는 거야!”
그리고 그녀는 또 한 번의 말실수를 했다.
***
‘역시 무서운 사람들이었어.’
한태휘는 옆에서 사내가 하는 행동을 말없이 지켜봤다.
그는 삼익마의 몸통을 붙잡고 쓰러져 있는 안이슬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놈의 흉측한 머리를 그녀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가 뺐다가 반복했다.
“꺄악! 살려줘! 이 미친놈아!”
“미친놈? 역시 먹이로 줘야겠군.”
“그만해! 내가 다 잘못했으니까 그만!”
“그래? 뭘 잘못했는데.”
“내가 감히 위대하신 신입분을 못 알아뵙고 나대버렸네. 잘나신 분이란 걸 누가 꼭 말해주지 않아도 딱 알았어야 하는 건데.”
“후- 비꼬는 건가? 안 되겠군. 자, 밥 먹자. 삼익마.”
“꺄아아악! 잠깐! 저거 진짜 무섭다고 그만 좀 해!”
계속 이런 식이었다.
안이슬도 상황이 반복되자, 남자가 본인을 위협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것 같았다. 사내도 눈치를 챘는지 괴롭힘을 멈췄다.
“그래, 사실 넌 딱히 잘못한 거 없어.”
“그, 그럼 나한테 대체 왜 이러는데!”
“그냥 협박하는 거다.”
“협…… 박?”
안이슬이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했다.
‘협박’이란 겁을 주어 남에게 억지로 어떤 일을 시키는 것.
삼익마를 맨손으로 잡는 사내에게 그녀가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판단했나 보다.
“뭐, 뭘 원하는데.”
아니,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은근슬쩍 두 손으로 본인의 몸을 감싸는 것 보니…….
그와 동시에 손나연 쪽을 힐끔 바라본다.
“쟤로 만족이 안 되는 거야?”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급하게!”
손나연이 어이없다는 듯 흥분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내가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들려 있는 삼익마도 점점 힘이 빠져가는지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느려졌다.
“오익마의 위치를 알고 있다 했지? 거기까지 안내해라. 이왕이면 악마들이 자주 나오는 코스로. 그럼 살려주지.”
한태휘는 깨달았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사냥에 관심이 없었다. 아마 출발하기 전부터 사냥대상을 일익마가 아닌 안이슬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녀가 초반에 분명히 위치를 알고 있다 했고, 일주일 동안 사내의 관심은 오로지 오익마였으니까.
“미…… 친, 아직도. 삼익마 때려잡았다고, 오익마가 우스운 모양인데, 놈은 거의 신이나 다름없어.”
“그건 내가 판단한다. 넌 길이나 안내하면 돼.”
“웃기지 마! 그곳 주변은 사익마가 일익마처럼 깔려 있다고. 네가 죽으면 난 어떻게 복귀해!”
“그러니까 협박하는 거지.”
“몰라! 안가! 딴 사람 알아보셔. 흥-”
한태휘는 배짱을 부리는 안이슬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저 사내한테 저렇게 깡다구를 부릴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그의 뇌피셜이지만, 지구에서 저 남자에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선소연밖에 없다.
똑같은 SS급 헌터이자, 그의 곁에 항상 붙어 다니는 여자.
그 외엔 둘 중 하나다.
목숨이 아깝지 않거나, 미쳤거나.
소문에 의하면 저 남자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어쩔 수 없군. 그럼 딴사람 알아보지.”
“응?”
사내가 잡고 있던 삼익마를 놓아버렸다.
그러자 놈의 느려졌던 이빨이 다시 빨라지며 공간이 다시 살기로 가득 찼다.
“그럼, 잘 가라.”
그러더니 손나연과 함께 등을 돌려 이곳을 벗어났다.
한태휘는 당황했다.
‘그럼 나는?’
삼익마는 괴성을 지르며 가장 가까이 있는 안이슬에게 도약했고, 그녀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꺄아악! 가…… 갈게!”
순간, 시간이 정지하듯 멈춘 삼익마.
아니, 정확히는 순식간에 이동해서 놈의 목을 다시 틀어잡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삼익마의 이빨은 안이슬의 목에서 약 3㎝ 정도 떨어져 있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정말 소멸이었다.
그녀도 놀랐는지 멍청한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한태휘는 소름 돋았다.
그녀를 정말 죽이려고 했다는 것보다, ‘갈게!’라는 말 한마디에 달려온 사내의 엄청난 속도에…….
“가……. 간다고, X발. 흐어엉.”
이윽고 안이슬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이곳에 와서 처음 보이는 눈물이었다.
아까와 달리 이번엔 그가 진심으로 죽이려 했다는 게 느껴졌으니까.
묘한 지린내가 흘렀다.
자세히 바라보니 그녀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있다. 공포심에 오줌을 지린 것이다.
한태휘는 이해했다.
자신이었어도 저랬을 것 같았으니까.
사내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선택이야.”
***
결국, 계획대로 안이슬을 포섭했다.
이제 오익마가 있는 방향으로 향하며 천천히 악마를 정리해나갈 생각이었다.
물론, 곧바로 오익마를 잡을 생각은 없었다.
아직 놈의 힘을 판단하지 못한 상태.
사익마부터 처리하고, 거기에 100만 배를 곱해 어림잡아 판단해 볼 예정이었다.
또, VIP 상점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은 후 마지막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난 내 손아귀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삼익마를 간단하게 죽였다.
떨어지는 3영혼석을 가방에 주워 넣으며, 누워서 울고 있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일어나. 시간이 없다.”
비서는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지만, 나에겐 역시 고마운 존재다.
뻘짓으로 사냥 시기도 앞당겨주기도 했고, 또 오익마의 위치까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녀는 내 손을 보더니 금방 눈물을 멈췄다. 그러더니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하아- 쪽팔려. X발. 70살 먹고 어린애들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야.”
“70살?”
“이곳에 온 지 50년쯤 됐으니 그쯤 먹었겠지.”
생각보다 오래 있었네. 하긴, 간부라 했으니 그쯤은 있었겠지.
물론, 그녀가 몇 살이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이곳은 ‘영혼석’이 전부인 세상이니까.
“그렇군. 옷이라도 줄까?”
처음 얻었던 마법 가방에 여성용 의류가 몇 벌 있다. 아마 그녀에게 맞는 사이즈도 있을 것이다.
“아니, 됐어.”
그녀가 내 손을 툭- 쳐내고 일어나, 본인이 가져온 가방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물과 속옷, 바지를 꺼냈다. 비상상황을 대비해 가져온 모양이다.
“씻고, 갈아입고 올 테니까 기다려 줘.”
“그러지.”
풀숲으로 터벅터벅 들어간 그녀를 기다리고 있자, 한태휘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저, 저기. 전 어떻게…….”
아 참, 그가 있었지. 까먹고 있었다.
한태휘는 어찌해야 할까.
오익마가 있는 곳에 데려가기엔 모호하다. 바쁜 상황에서 두 명 케어하기도 벅찬데, 굳이 연고도 없는 인원을 늘리고 싶진 않으니까.
애초에 그러기 싫어서 정도 주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곳에 두고 가는 것은 그를 죽이는 것과 다름없는데…….
“네가 선택해라.”
“……어떤 걸 말입니까?”
“기존 쉘터로 갈지, 새로운 쉘터로 갈지. 네가 원하는 곳에 데려다주겠다.”
기존 쉘터 ‘고려’로 간다면 아마 상황 설명에 애를 먹을 것이다.
도망친 선배들이 있을 텐데, 삼익마에게 혼자 살아남았다 하는 것도 이상하니까.
그렇다고 새로운 쉘터로 가기엔 적응이 두려울 수 있다.
그의 고민은 짧았다.
“기존 쉘터로 데려다주십시오. 아무래도 적응도 했고, 한국인만 받는 쉘터가 편합니다.”
깔끔한 선택이었다.
‘고려’로 가는 길은 대충 외워뒀으니까, 금방 다녀오겠지.
“그럼 손잡아라.”
“네?”
“바로 데려다주지.”
“아, 알겠습니다.”
나는 그를 잡고 곧바로 날아올랐고, 안이슬의 정비가 끝나기 전에 다시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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